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86
986화 결코 단순한 공법이 아니다
진양은 두 손을 뻗어 콧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검은 기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천마왕은 고통스러운 듯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내 몸이 필요하다며? 왜 도망가는 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 이 몸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니깐.”
진양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몸에서 한층 강력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두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며 몸 주위로 한층 더 강력한 혈기가 솟구쳐올랐다.
패왕사갑 오 단계.
광폭의 억제가 사라지니 마음속에 남아있던 원한은 화산처럼 솟구쳐올랐다.
어느덧 십이마검의 첫 번째 검이 만들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양의 이성은 순백의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요한 순백의 허공 중에 진양은 온몸에서 검을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새하얗게 질린 천마왕이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져있었다.
진양이 손을 뻗자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장검이 잡혔다.
순백의 세계를 느끼며 가볍게 검을 휘둘러보았다.
두 번째 검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십이마검은 진양의 힘이 아닌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천마왕은 밀려드는 불필요한 정보를 소화하지 못해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자비를 구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이성이 맑아졌다.
눈앞에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진양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 곧바로 두려움이 나타났다.
“진양, 널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주겠다. 추격수를 죽이려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돕겠다.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주겠다. 그러니 제발 날 죽이지만 말아다오. 제발 나를 지우지는…….”
진양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검을 든 채 한 걸음씩 다가왔다.
진양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순백의 세계는 검게 물들어갔다.
진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힐끔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겨 천마왕의 앞으로 다가갔다.
“진양, 이렇게 부탁하마. 난 내부 첩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너희 인간, 아니, 대황의 내부 첩자는 허공 전장에도 왔었던 적이 있다. 정확한 신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추격수는 분명 알고 있을 거다.”
겁에 질린 천마왕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이었다.
“추격수. 그래. 그는 영제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 그의 부친과 조부 모두 영제의 손에 죽었다. 그는 복수를 위해 대황을 침공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순천사 내부의 첩자는 주작이다!”
천마왕은 잔뜩 겁에 질린 듯 눈알을 연신 이리저리 굴렸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진양은 검은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천마왕은 절규에 가깝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날 죽이면 안 돼! 날 죽이면 입마 상태에 빠질 게다……!”
진양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했다.
“상관없어.”
이어서 검을 휘두르니 천마왕은 두 동강으로 잘려 나갔다.
손에 들려있던 검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천마왕의 육신은 검은 화염에 휩싸이며 종국에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바로 그 순간.
순백의 허공 먼 곳에서부터 어둠이 몰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어둠은 일 장 조금 더 되는 순백의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전부 검게 물들였다.
진양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녀석이 단순히 겁을 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네 녀석을 죽인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편하게 잠들 수가 없을 것 같거든.
난 그저 나일 뿐이다. 입마 상태에 빠지건 말건 그건 내가 정하는 거야. 망할 녀석. 죽는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다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 조금 남아있던 백색 지대 안으로 어둠이 몰려들었다.
온 세상의 어둠은 하나로 압축되며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흑검이 되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순간 진양의 이성이 순수한 이성의 세계에서 사라지며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일곱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던 검은 기운은 이성이 사라진 것처럼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 정보들과 함께 천천히 부서지며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제자리에서 있었다.
두 겹의 후광이 돌연 부서지며 마기가 되어 솟구쳐올라 주위를 휩쓸었다.
궁전은 산산조각이 나며 평지가 되어버렸고, 거대한 해골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밖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던 거대 괴수가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녀석의 눈에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진양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진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녀석을 쏘아보았다.
거대 괴수는 흠칫 놀라며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진양은 도망치는 괴수는 무시한 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시전했던 십이마검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소모되는 힘의 양은 여전히 엄청났으나 이전과 다르게 대량의 진원이나 기혈, 수명을 소모하진 않았다.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마기는 전부 회수를 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상당히 침투력이 강한 마기였다.
마기는 진양의 기반까지 잠식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양의 기반은 선천지물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 어떠한 힘도 감히 선천지물을 잠식할 수는 없었다.
이어서 마기는 흑옥 신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백옥 신문은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기반을 잃은 마기는 고인 물과도 같았다.
때문에, 육신을 입마 상태에 빠뜨리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진양은 그것을 거두어 해안 한쪽 구석에 잘 보관해두었다.
원한다면 힘처럼 쓸 수도 있고,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양의 몸에선 마기가 점차 사라졌다.
이어서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왔다.
주위에 있던 마두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치고 없었다.
설령 멀리서 진양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죽을 걸 알면서 불나방처럼 불 속으로 뛰어들 사람은 없었다.
진양은 손을 뻗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오직 일자결만이 자신의 본심에서 비롯되는 힘이다.
때문에, 유일하게 이성만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이성의 세계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때 십이마검이 발동되었다.
천마왕은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토록 두려워했을 리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양은 그곳에서 천마왕을 죽이는 것만이 가장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십이마검이 일자결의 힘을 뿜어낸 것일까?
어떤 일자결일까?
한자결(恨字訣)일까?
하지만 한자결에 대해선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진양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십이마검은 분명 일자결과도 관련이 있다.
일자결을 만든 건 정점에 오른 한 인간 고수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고수가 나타나 기존의 일자결보다 한층 더 약한 일자결을 만든 건 아닐까?
이건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들이다.
심지어 십이마검이 어쩌면 일자결의 약화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십이마검을 시전할 때는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뿐이었고, 증가되는 것도 단순히 힘이 전부였을 뿐 일자결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제야 확실해졌다.
십이마검은 결코 단순한 공법이 아니다.
어쩌면 추측한 대로 일자결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일자결에서 파생된 신통력의 약화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천마왕은 깔끔하게 죽었다.
다만 이런 강력한 녀석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크게 아쉬웠다.
설령 익힐 수 없는 공법이라도 단순히 참고만 해도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진양은 지금까지 그 어떠한 것도 불필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단지 자기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을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욕심이 드는 것도 그나마 천마왕을 깔끔히 죽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쉽긴 해도 찝찝하게 후환을 남기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상황이 대략적으로 정리되자 진양은 우선 몸 상태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위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한계치 이상으로 사자결을 발동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최소 보름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이다.
때문에,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기 전까지는 머리를 써야 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고, 될 수 있으면 휴식을 취하는 게 안전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진양의 기세에 놀란 괴수와 이족들이 전부 도망가버렸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안심하고 요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진양은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해골은 진양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없었고, 주변의 땅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평지가 되어있었다.
이어서 진양은 비주를 꺼냈다.
비주에 들어가 요상에 집중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순수한 마기가 대량으로 남아있다.
진양이 입마하던 순간에 방출된 힘으로 결코 낭비할 순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중요한 걸 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폐허 속에서 붉은빛이 튀어 오르며 비주로 날아왔다.
이어서 빛에서 붉은 장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두는 머리를 쑥 내밀며 곧바로 진양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주인님, 축하드립니다. 마침내 천마왕을 꺾으셨군요.”
“갑자기 징그럽게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진양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녀석, 용케 죽지 않고 살아남았군.’
화혈마두는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천마왕이 죽이기 까다로운 녀석인 건 맞지만 전 주인을 믿고 있었습니다. 감히 천마왕 따위가 어떻게 주인의 몸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덧 말까지 높이며 잔뜩 아부를 하는 녀석의 모습에 진양은 피식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그쯤으로 끝내고. 지금부터 요상에 집중할 거니까 방해하지 마.”
진양이 비주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화혈마두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진양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만약 입마 상태에 빠져 돌아오지 못했다면 감히 진양에게 다가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분명 똑똑히 느껴졌다.
그것은 마두보다 훨씬 더 마두 같은 마기였다.
천마왕이 어쩌다 죽은 건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녀석이 일말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졌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몰라도 천마왕이 깔끔하게 사라진 걸 보니 진양을 배반했다간 어떤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나도 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