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157
77화.
조금은 어색한 자리.
도시 안에 있는 작은 선술집에 들어온 천마와 판테온은 서로 마주 앉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밖에서는 네브레 길드가 열심히 라이칸 길드원들을 학살하고 있는 상태.
이미 전투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는지, 판테온은 더 이상 이번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만 호기심을 드러낼 뿐.
“본좌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먼저 운을 뗀 것은 천마였다.
판테온은 단 둘이 만나는 걸 원했기 때문에 천강은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당연히 둘이 나누는 대화는 방송으로도 나가지 못 한다.
앞에 있던 잔을 깨끗하게 비운 판테온이 천마에게 말했다.
“나는 이 대륙을 정복할 거야.”
뜬금없는 스타트에 천마는 눈썹을 찌푸리다가도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 생각을 갖고 왔지. 그러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고.”
“음······.”
“여러 학살을 저지르고 정복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았지. 하지만 난 한번도 그런 것을 신경 쓴 적이 없어.”
천마는 판테온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맞장구를 쳐 주었다.
“패도를 걷는 자가 반드시 취해야 하는 자세이기도 하지. 올곧게 스스로의 길을 가는 것이 말이야.”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와 뜻이 잘 통하는군. 맞아. 대륙을 정복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주변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도록 해라. 귀가 가벼우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법이다. 본좌도 무림을 정벌했을 당시, 항상 그것을 되새겼지. 마음이 가벼워지면 검도 가벼워진다는 것을.”
“오늘 좋은 걸 배워 가는군.”
전혀 안 어울릴 것처럼 생겼어도, 둘은 이상하게 이런 쪽에서 죽이 잘 맞았다.
천마는 중원을 정벌한 경험이 있지 않던가. 어찌 보면 이제 막 대륙 정벌 초읽기에 들어간 판테온의 선배격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훈훈한 얘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네가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신경 쓸 만한 것들이 아니지.”
“그런데?”
“이렇게 성장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너도 너만의 길드를 만들게 되겠지. 그럼, 그 이후에는 우리 둘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천마가 새로운 직업을 찾으면서 그 직업에 관한 문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영상을 통해 퍼져 나갔다.
즉, 천마신교가 이곳 바실레이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판테온은 지금 그걸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의 능력이 마음에 들어. 그래서 너한테 권유를 하는 거야. 우리 네브레 길드로 들어와라. 내가 책임지고 모든 지원을 해 주지.”
그 말에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본좌는 이제까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갔던 적이 없다. 어찌 승냥이가 범을 품을 수 있겠는가. 너라면 본좌의 마음을 잘 헤아릴 거라 생각하는데.”
천마가 거절할 거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판테온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거절할 거라 생각했지. 그렇다는 건 결국 너만의 길드를 만들겠다는 건가?”
“본좌는 패도를 걷고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아쉬움을 달래려고 왔을 뿐. 천마신교를 이곳에서 부활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어.”
천마의 답을 듣고나니 마음이 놓이는 판테온이었다. 그러나 아직 천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요즘 들어 여러 길드들이 본좌에게 하는 행태를 보면 점점 본좌의 마음이 바뀌려고 해서 말이지. 너는 본좌가 왜 무림을 정벌하고자 천마신교를 세웠는지 아는가?”
판테온은 천마를 만나기 전부터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해 둔 상태였다.
천마란 어떤 존재이며, 또 소설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천마가 단순히 컨셉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유일하게 천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판테온 밖에 없을 것이다.
다들 은연 중에 천마가 극한의 컨셉충이라고 생각하지만, 판테온은 상대가 완전히 녹아든, 천마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희 같은 문파들이 천하를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을 보고 본좌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칼을 든 것이다. 단 10년만 피를 흘려 앞으로 1000년 동안 피가 흐르지 않게 말이다.”
천마는 단순히 정복욕 때문에 천하를 정벌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흘리는 피로 천하통일을 이뤄내고 앞으로 1000년 동안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순탄하진 않았어. 죽을 위기도 몇 번이나 넘기고 아끼던 동료들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좌가 왜 칼을 들고 정복 전쟁을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목적이 흐릿해지기도 했지.”
옛 기억을 상기하던 천마는 어두운 얼굴빛을 띠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아예 칼을 내려 버렸다.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걸 깨닫게 해 준 친구도 있었고.”
잠시 천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판테온도 입을 다문 채 천마가 입을 열기까지 기다렸다.
“아무튼, 본좌는 이곳에서까지 천마신교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희들이 계속 본좌가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이 터전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땐 직접 칼을 들고 나설 것이다. 예전의 본좌가 무림에서 그리했던 것처럼.”천마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한 판테온은 상대가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질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판테온은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천마에 완전히 녹아든 사람이라고.
어쩌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알지만 이 사람은 진짜 무림 세계에 있다 이곳으로 넘어온 천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다는 얘기군.”
판테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두었던 투구를 다시 썼다.
“솔직히 말할까? 오늘 얘기를 나눠 보니까, 차라리 네가 길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왜지?”
“그래야 내가 너와 싸울 명분이 생길 테니까. 지금 이 대륙에서 나를 상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너라면 다를지도 모르지.”
자신만만한 판테온의 말에 천마는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봤던 플레이어들 중에서 판테온만큼의 투기와 기운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가 스스로를 최강이라 자부하는 건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
“예전에는 너와 부딪히는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얼른 네가 성장해 나와 대등한 위치에 서길 바라고 있어. 그때가 되면 철저하게 짓밟아 주지. 겁이 난다면 물러나도 좋아.”
“자신감이 넘쳐서 좋군. 그러나 그렇게 자신만만한 상태로 본좌에게 싸움을 걸었던 고수들은 전부 땅에 묻혔다.”
“우리가 정식으로 싸우는 날이 오면, 그땐 네가 묻히게 될 수도.”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널 만나서 다행이야. 이렇게 말과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건 처음이거든.”
“각박하게 세상을 살아왔나 보군.”
“넌 안 그런가?”
“본좌가 걸었던 길과 네가 걷고 있는 길은 그 높낮이부터가 다르다, 애송이.”
핀잔을 주긴 했지만, 뒷말을 잇는 천마였다.
“하지만 본좌도 너의 기개가 마음에 드는군.”
그 말에 판테온이 미소를 보였다.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만나지. 그땐 이런 허름한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에서 대접을 할 테니.”
판테온은 다음을 기약하며 선술집을 먼저 나서려고 했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천마에게 말했다.
“혼돈의 탑. 거기 들어갈 건가?”
혼돈의 탑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는 천마였다.
“들어갈 생각 없다.”
“잘 생각했어. 거긴 안 들어가는 게 좋아.”
“넌 들어갈 건가?”
“아니. 거긴 두 번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
판테온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무시무시한 게 들어있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한번쯤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도 거기 끝에 보상이 뭐가 있을지 궁금하긴 하니까. 그래도 웬만하면 들어가지 마.”
“대체 그 안에 뭐가 있기에 그러지?”
“······악몽.”
판테온은 짧게 말을 남긴 뒤 선술집을 나섰다.
천마는 그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악몽이라.”
분명 헬라는 선물이라고 했는데 판테온은 그걸 악몽이라고 부른다.
‘그럴 줄 알았지.’
헬라의 겉모습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워 보였지만, 천마는 알고 있었다.
‘무림에서도 아름다운 여인들은 항상 조심하라고 가르치지.’
경국지색이 때론 100만 대군 보다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남자를 홀려 한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 것이 여자의 힘이다. 무림에서는 특히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분명 함정일 줄 알았어.’
천마는 다시 한번 그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 * *
판테온의 네브레 왕국은 라이칸 길드를 몰아내고 도시 하나를 또 수중에 넣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판테온이 천마에게 독대를 요청한 것이 방송으로 나갔던 것.
그로 인해 과연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시청자들이 연이어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천강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미 천강은 천마에게 판테온이 무슨 말을 남기고 갔는지 다 들은 상황.
판테온이 심한 중2병 환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걸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낼 순 없지 않은가.그래서 최대한 사실을 전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천마는 별로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본좌에게 천마신교를 만들 거냐고 묻더군.만약 만든다면 나중에 싸워 철저히 짓밟아 주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본좌도 만약 그 날이 오면 땅에 묻히게 해 주겠다고 경고했지.”
“······.”
쿨하게 판테온과의 대화 내용을 밝힌 천마였다.
-와ㅋㅋㅋㅋㅋ형님ㅋㅋㅋㅋ상대가 세계 랭킹 1위라는 건 알고 계시죠?
-ㅋㅋㅋㅋㅋ역시 천마좌
-5252 빅매치 성사냐곳!!
이번 방송으로 한동안 커뮤니티가 시끄러워질 것 같았다.
“아, 물론 지금 당장 싸우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본좌가 아직 천마신교를 일으킨 게 아니니까.”
-천마신교 언제 여나고오오오!
-제발 좀 열어 주면 안 됨?
-열어만 주신다면 바로 달려가서 천마님한테 오체투지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의 열성 넘치는 성원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도 고민 중이다. 아직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조만간 천마신교를 이곳에서 부활시킬지도 모르지.”
그 말에 가장 놀란 건 천강이었다.
“정말요? 정말 천마신교를 부활시켜요?”
“그래.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너무 호들갑 떨지 말거라. 본좌도 고민을 해야 하니까.”
판테온과 얘기를 나눈 뒤에 천마는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피가 끓었다.
판테온이라는 바실레이아 최강자도 있고, 그를 제외하고도 이곳에는 여러 강자들이 존재하니까.
그들을 하나씩 쓰러뜨려 가며 세력을 넓히는 재미는 경험해 보지 못 하면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굳이 여기에 와서까지 과거를 되풀이 해야 하는 것일까. 이곳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이지 않던가.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은 곳이다.
“아무튼, 본좌가 결심이 서면 그때 얘기를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을 남기고 천마는 그만 방송을 종료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스템 창이 모두의 앞을 가려 버렸다.
[바실레이아 있는 모든 모험가님들께 전합니다. 앞으로 1시간 뒤에 혼돈의 탑이 나타납니다. 다시 한번 전합니다. 앞으로 1시간 뒤에 혼돈의 탑이 나타날 예정입니다.]분명 예정일은 며칠 더 남았는데, 갑자기 1시간 뒤에 혼돈의 탑이 나타난다는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