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281
124화.
작품 제목: 관광
콰아아아-!!
누구도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천마가 브레스를 견뎌내는 것은 물론, 드래곤이 날린 브레스를 똑같이 돌려 준 것이었다.
그의 스킬 중 하나인 파천황이 발동되었던 것.
“이건 뭐······.”
처음으로 브레스를 맞아 본 드래곤은 순간 넋이 나간 얼굴로 천마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 이내 드래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완전히 멀쩡한 건 아니로구나, 인간.”
“본좌가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브레스라는 것이 강하구나.”
분명 겉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천마는 절반이 넘는 체력을 소모해 파천황을 쓸 수가 있었다.
수호자 스킬과 겹쳐 사용을 했는데도 절반 이상의 HP가 날아간 것이다.
만약 브레스를 한 번 더 받는다면 그땐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가히 영험한 신물이로군.’
괜히 드래곤을 떠받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천마였다.
“보통 인간들은 내 브레스를 견뎌내지 못 한다. 아! 딱 한 명 있었지. 판테온이라고 하는 어느 인간들의 수장이 내 브레스를 한 번 받아낸 적이 있었다.”
판테온.
어디를 가도 그 이름이 들린다.
“그자는 잘 버텼던 모양이지?”
“뭐, 뒤에 있는 자들은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 내게 일격을 가했지. 간지러울 수준이었지만.”
천마는 그때 드래곤 이마에 흉터 하나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흐흐. 고작 인간에게 이런 흉터를 얻다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놈은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지긴 했었다.”
“본좌는 어떠한가?”
“음. 네놈은 다른 의미로 인간 이상의 힘을 가졌구나. 더욱 놀라운 건 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는 거야. 몬스터와 대화를 하는 인간은 몇몇 있었지만, 나 같은 높은 존재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인간은 몇 천 년 동안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 말은 드래곤의 나이가 몇 천 살이라는 것이었다.
“지겹게도 살았군.”
“지겹게 살긴 했어도, 죽는 것보단 낫더군.”
“하긴. 죽는 것보단 사는 게 낫지.”
의외로 드래곤과 천마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
“말해 보거라.”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드래곤은 둥지가 있다고 들었는데.”
“둥지가 있긴 하지. 그런데 내가 원하면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내가 가고자 하면 가는 것이니까.”
그 말에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앉는 곳이 곧 집이 되는 거겠지.”
“이상하게 말이 잘 통하는군.”
“본좌도 그렇게 살던 적이 있었거든.”
무림에서의 천마도 드래곤과 같은 위상을 지녔었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무적의 존재.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요, 내가 앉고 눕는 곳이 곧 집이 됐다.
누가 감히 천마가 행차를 하는 것에 방해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가 갖고자 하면 무조건 바칠 수밖에 없는 것이 무림인들의 운명이었다.
“요즘 주변 도시에 시끄러운 이들이 많다고 들어서 말이야. 굳건했던 카르만 대도시가 무너졌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래서 그냥 흥미가 생겼던 것뿐이다. 싸움 구경이라면 나도 좋아하거든. 그걸 또 방해하는 것도 좋아하고.”
싸움 구경이라면 인간이든 신화적 존재이든 신분을 막론하고 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드래곤이 뜬금 없이 나타나서 전쟁 한복판에 브레스를 쏜다는 상상을 해 보라.
그것만큼 끔찍한 재앙이 또 없을 것이다.
“흠······.”
남들이 들으면 양아치 같은 놈이라고 욕했겠지만, 천마는 그걸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도 가끔 정파끼리 싸움이 나면 구경을 갔다가 도중에 끼어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도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재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도 이해가 가는군.”
“흐흐. 통하는 구석이 많아서 마음에 드는군.”
“그런데 용케도 전쟁에 참여하진 않은 모양이군.”
“사실 귀찮아서 둥지에 있다가 뒤늦게 나온 거라서. 나와 보니 전쟁이 벌써 끝나 있었고.”
천마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드래곤이 개입했다면 어떤 행방으로 일이 틀어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카르만 대도시를 무너뜨렸다는 인간이 바로 너였구나?”
“그렇다. 본좌가 카르만 대도시를 무너뜨렸다.”
“누군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다니.”
“혹시 카르만 대도시를 무너뜨린 것 때문에 감정이 상해 있는 건가?”
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인간 놈들이 뭘 하든 무슨 상관이겠어? 그냥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해 왔던 놈들이 갑자기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을 느꼈을 뿐이야. 그리고 오늘 와 보니 잘 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이제 슬슬 다시 둥지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이던 드래곤이었다.
“만나서 즐거웠다. 가끔 이렇게 와서 대화 상대를 해줬으면 좋겠군. 나를 적으로 두는 것보다는 아군으로 두는 게 너한테도 좋을 텐데.”
“본좌도 신화적인 존재와 이야기가 잘 맞으니 좋군. 여건이 된다면 도시 안으로 데려가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싶을 정도다.”
천마의 말에 구미가 당겼는지 드래곤이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게 정말이냐?”
“그래.”
“지금 내가 간다고 해도?”
“음······. 그 큰 몸을 감당할 자리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본좌가 힘을 써 보지.”
“크하하하하-!”
그러자 갑자기 드래곤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을 성으로 초대하는 미친놈은 아마 너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가?”
“당연하지. 이곳 대륙 인간들은 내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라 생각하니까.”
그 마음 이해한다.
천마도 어딜 가려고 하면 다들 난리가 나서 엎드리고 살려 달라 빌기까지 했다.
절대자의 삶은 그렇게 외롭고 오해받기 딱 좋은 자리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더 초대를 하고 싶어지는군.”
측은지심이 드는 천마였다.
드래곤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인간. 네 초대를 받아들이지.”
“그럼 조금만 시간을 주거라. 네가 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이 길로 카르만 대도시를 향해 날아가겠다. 너도 이동하거라. 거기서 만나면 되겠지.”
“음?”
그 말만을 남기고 드래곤은 횡 날아가 버렸다.
드래곤이 사라지자 저 멀리서 쭈뼛쭈뼛 거리기만 하고 있던 천강과 일행이 달려왔다.
“형!”
“천마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드래곤이 그냥 가네요?”
천마는 눈을 껌뻑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음······. 문제가 생긴 것 같구나.”
“무슨 문제?”
“저 드래곤이 지금 카르만 대도시로 가고 있다.”
“뭐어어?!”
* * *
전쟁이 끝난 뒤로 평화롭기만 한 카르만 대도시.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도 길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
“저, 저거 설마!”
날개를 펄럭이며 짙은 그림자를 몰고 오는 존재.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거대했으며, 그 존재에서 풍겨오는 기운도 대단했다.
“드, 드래곤!!”
“이런 미친!!”
“종을 울려라!! 비상 사태다!!”
차라리 중국 연합이 수백만 대군을 끌고 오는 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갑자기 드래곤! 드래곤 이라니!!
“모두 올라와!! 성벽을 수비해야 한다!!”
“수비태세를 갖춰라!!”
성 안에 비상종이 울리고 한창 관광을 즐기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전체 퀘스트 알림이 떴다.
[절대적 존재의 강림!]
-현재 카르만 대도시를 향해 드래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카르만 병사들은 전부 성벽을 수비하기 위해 달려갔고, 모험가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천마신교의 일원이라면 이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들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드래곤?!”
“와. 드래곤이 갑자기 왜 나타나는 거야?”
“여기서 먼 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드래곤이라니. 나 보러 갈래!”
“나도!!”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높을수록 걱정이 앞섰고, 반대로 레벨이 낮을수록 흥분에 가득 찼다.
영상으로만 보던 드래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리라.
“크롸라라라-!!”
이윽고 드래곤이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듯 포효했다.
그 포효에 성벽 위 병사들은 몸을 떨어야만 했다.
“젠장.”
“이게 드래곤인가?”
“저걸 어떻게 막으면 좋지?”
각 신전에 있던 신관들도 자발적으로 나와 성벽 도움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마법사들은 어서 방어 주문을 외우세요! 모험가님들도 도움을 주십시오!”
플레이어들도 퀘스트를 받아들이고 성벽을 수비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이곳은 천마님이 우리를 위해 만든 곳이다!!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한다!!”
“천마님을 위해 이곳을 지키자!!”
“막아내자!!”
드래곤 때문에 도망칠 줄로만 알았던 플레이어들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거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이 퀘스트에 참여해 드래곤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결속력도 잠시.
“모두 멈춰라!!”
이 넓은 카르만 대도시 전역에 천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 드래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본좌와의 인연으로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온 손님이니, 무례를 저지르지 말도록!!”
그 말에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이게 뭔 소리야?”
“손님?”
“천마님이 드디어 미치신 건가?”
그렇게 그들이 말하고 있는 동안, 드래곤은 어느덧 성벽에 도착했다.
“헉!”
“으어······.”
“이, 이제 어쩌냐?”
어떤 이는 스킬이라도 날려 공격을 하려 했다. 그러자 천마가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다.
“만약 지금 본좌의 손님을 공격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치 않겠다!”
그 말에 모두 스킬을 쓰려던 걸 거두었다.
드래곤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라 천마가 보이는 곳으로 날아갔다.
텔레포트를 통해 빠르게 도시에 도착한 천마는 일단 넓은 공터 쪽에 가서 드래곤에게 손짓했다.
드래곤은 그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일부러 공터가 망가지지 않게 배려를 해 준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너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군.”
“본좌의 가족 같은 사람들이니까.”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으면서 막상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
드래곤은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개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 성은 다른 성들과 다르구나. 항상 날 두렵게만 바라보며 도망치기 급급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네 말에 따라 모두 용감하게 맞서 싸울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시대가 바뀐 거겠지.”
“아니.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그들을 이끄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 참으로 신기한 족속이야.”
드래곤은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큰 몸뚱이면 확실히 구경하기가 힘들겠군. 그래도 여기서 봤을 때도 꽤 좋은 곳이라는 건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이 몸이 문제군.”
“음. 그건 본좌가 차차 해결을······.”
“됐다. 그렇게 수고할 필요 없어.”
드래곤은 그 말과 함께 놀랍게도 크기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평범한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됐다.
그러고는 그는, 아니. 그녀는 살짝 놀란 듯 보이는 천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 드래곤이야, 드래곤.”
“아······.”
역시, 괜히 신화적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