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
슈퍼 루키 (4)
“도준아, 괜찮아?”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감고 있는 도준의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진성현 실장은 놀라 도준의 몸을 흔들었다.
스태프들이 술렁였다. 주저앉아 있던 최민철이 고개를 저었다.
“도준아! 강도준!”
“으······.”
눈을 감고 있던 도준이 눈을 뜨며 신음을 흘렸다. 도준이 움직이자 그대로 기절이라도 한 줄 알고 놀랐던 진성현 실장은 겨우 가슴을 진정시켰다.
“야, 괜찮아? 너······.”
“괜찮아요. 잠깐 힘이 빠져서······. 저 물 좀······.”
“어, 그래. 잠깐만.”
“여기요, 실장님.”
최민철을 살피러 왔던 최민철의 매니저가 전정현 실장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생수병을 내밀었다.
같은 업계에서 오래 일했던 진성현 실장이라 최민철의 매니저와도 서로 안면이 있었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진성현 실장이 받아 내민 생수병을 쥔 도준이 최민철의 매니저에게 인사를 하고는 물을 삼켰다.
시원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자 조금 더 정신이 들었다.
“너 도대체, 그러게 사려가면서 하라니까. 많이 아파? 어디 아픈 데는······.”
어쩔 수 없이 진짜로 맞은 뺨이 아직도 얼얼한 것 외에는 괜찮았다. 입 안쪽이 부어오른 것 같기는 했지만.
‘안쪽이 터진 것도 아니고.’
자신을 때린 연기를 한 장본인인 최민철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이었다. 도준은 얼른 진성현 실장에게 답했다.
“실장님. 저 괜찮아요. 안 아파요.”
연기는 연기일 뿐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고, 엄살 피운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최민철은 극한의 감정 연기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상대 배우인 도준이 덜 아프거나, 맞지 않는 방향으로 연기했다.
호흡을 맞춰 연기한 상대이니 도준이 가장 잘 알았다. 물론 둘 다 연기를 너무 실제처럼 하는 바람에 분장한 멍이 진짜처럼 보일 정도인 게 문제였지만.
도준은 컷 소리에 역시 주저앉았던 최민철 쪽을 살폈다. 맞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힘들었지만, 때리는 이도 보통 진을 뺀 촬영이 아니었다.
최민철의 셔츠 뒷면 또한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뜨거운 조명에 대비해 추울 만큼 틀어 놓은 에어컨도 소용없었던 모양이었다.
“괜찮은데 왜 쓰러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러냐.”
도준에게 큰 문제가 없는 듯하자 그제야 다른 스태프들도 안도하며 각자 정리를 시작했다.
진성현 실장이 빈 생수병을 다시 받아들며 투덜댔다.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이었지만 정말 놀라고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게······.”
연기를 마치고 ‘컷’ 소리를 들은 도준은 긴장이 풀리며 순간적으로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졌다. 정신이 완전히 소진될 만큼 연기를 한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 역을 하는 최민철은 정말로 괴물 같았고, 자신은 괴물에게 짓밟히는 존재가 된 기분으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진 실장, 거 힘든 사람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쇼.”
말하자면 ‘혼신의 연기를 다 했다.’는 답이 되는 것인데, 차마 본인 입으로 대선배 앞에서 말하기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대답을 주저하던 도준 대신 최민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성현 실장과 도준의 시선이 곧바로 최민철에게 향했다.
“강도준이라고 했나.”
“네. 선배님.”
도준이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답했다.
최민철은 과묵한 데다가 낯을 가리는 편이라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촬영장 내에서 사적인 대화는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도 최민철의 언행에 영향을 끼쳤다.
그것을 잘 아는 진성현 실장이라 최민철이 먼저 도준에게 대화를 건넨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촬영 전 인사를 갔을 때도 “그래요.” 하는 한 마디만 받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 후에 촬영을 위해 대사도 주고받고, 동선도 맞췄지만,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수고했네.”
최민철이 도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도준의 눈이 커졌다.
도준이 잠시 쓰러진 이유를 최민철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최민철 역시 컷 소리가 나자마자 주저앉았으니까.
자리로 돌아가 바로 죽은 듯 쉰 적은 있어도 세트장 내에서 힘을 잃은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촬영 끝 무렵에는 최민철의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리허설 때 힘을 다했어도 바닥날 기미도 보이지 않던 체력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최민철의 체력은 보통 오십 대의 체력이 아니었다. 오래 연기 생활을 해오며 최민철은 체력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 누구보다 체력 단련에 힘써왔다.
그 때문에 웬만한 삼십 대 배우들과 견주어도 비등한 수준의 체력이 최민철에게 있었다.
그런 최민철조차 주저앉을 만큼 도준과의 촬영에서 기력을 다 쏟아부은 것이다.
가진 것 이상을 쏟아붓게 하는 연기.
박찬종 감독의 시나리오로 연기하며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일이었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신인이라니.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이 생겼는데. 한 맺힌 게 있는지, 연기로만 한 건지 몰라도. 아무튼 연기는 그렇게 해야 해. 온 힘을 다 써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평이었다. 도준은 송정호와 진성현 실장의 대화를 떠올렸다. ‘진짜’라는 것은 이런 것인 모양이었다.
최민철에게선 연륜에서 나오는 관록이 여실히 느껴졌다.
“앞으로도 한눈팔지 말고 잘해 봐.”
“네, 선배님.”
깍듯한 도준의 인사에 최민철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워낙 연기할 때 외에는 표정 변화가 없는 스타일이라 웃고 있는지 아닌지 감을 잡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진성현 실장은 물론이고 주변 스태프들도 최민철의 말에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더 놀란 건 그다음이었다. 최민철이 매니저를 불러 물었다.
“우리, 차에 얼음팩 있지 않나?”
“네, 있습니다.”
“여기 강도준 씨 갖다 줘. 젊은 친군데 벌써 얼굴 상하면 안 되지.”
최민철의 매니저가 얼떨떨한 채 끄덕였다. 몇 년은 알고 지내야 마음을 여는 최민철이 처음 본 후배 배우를 이렇게까지 챙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살살 때린다고 했는데······.”
“압니다, 선배님. 그래도 한 번에 끝나서 괜찮습니다.”
심지어 최민철은 미안함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어지간히 도준의 연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나중에 보자구.”
최민철이 흐트러진 백발을 넘기며 유유히 세트장 밖으로 나갔다. 최민철의 뒷모습을 보며 진성현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저 형님 인정까지 받게 될 정도의 연기를 하다니······.’
하기야 이미 도준의 연기를 알고 있었던 진성현 실장도 이번 촬영장에서의 연기를 보며 또 한 번 감탄했었다.
‘기대하긴 했지만, 그새 또 늘었을 줄은 몰랐어······.’
최민철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두 번째 촬영이어서인지 도준의 연기는 소속사 회의실에서보다 늘어 있었다.
***
도준을 실은 벤이 도준의 집으로 향했다.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진성현 실장이 운전하고, 도준은 조수석에서 최민철의 매니저가 전해 준 얼음 찜질팩을 볼에 대고 있었다.
부은 입안이야 자고 나면 나을 듯했고, 멍만 들지 않으면 됐다. 바닥을 구른 탓인지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려 어서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고 싶었다.
‘확실히 몸 관리를 더 해야겠어.’
자신보다 더 에너지 넘쳐 보이던 최민철을 떠올리며 도준은 생각했다. 배우지망생일 때는 오직 데뷔만이 목적이었지만, 데뷔만 한다고 끝은 아니었다.
최고 배우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다음, 또 그다음 계단을 밟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한눈팔지 말고······.’
도준은 최민철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에 새겼다. 한눈팔지 않고 노력했을 때에만 최고 배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 촬영해 보니 더 분명한 사실이 됐다.
‘그들조차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어.’
시나리오를 족히 백 번은 본 듯 연기하던 송정호와 온몸을 내던져 연기하던 최민철은 도준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도준은 어느새 미지근해진 찜찔팩을 주머니에 넣었다. 볼은 여전히 차가웠다.
***
몇 달 후. 어느덧 여름의 열기가 가시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었다.
“오늘이네.”
“그러게요······.”
도준은 진성현 실장과 함께 서울의 한 영화관에 와 있었다.
“어때, 오늘은 긴장이 좀 돼? 첫 촬영 때도 긴장 안 했으니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하.”
도준의 웃음이 티가 나게 어색했다. 진성현 실장이 딱 걸렸다는 듯 낄낄댔다. 도준은 분명히 긴장하고 있었다.
오늘은 의 관계자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연기하는 건 안 떨렸는데, 자신이 한 연기를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떨렸다.
도준이 정식으로 데뷔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아직 배우 강도준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소나무 엑터스와 관계자들뿐이었다.
소나무 엑터스에서는 고민 끝에 개봉 후 도준을 포털 사이트에 배우로 등록하고, 홍보 기사를 대대적으로 뿌리기로 했다.
먼저 캐스팅 발탁 기사나 촬영 기사를 내 봐야 소속사에서 꽂아준 신인 배우 취급만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봉 후 도준을 공개하면 얘기는 달랐다. 외모로도, 연기로도, 누가 보아도 마땅한 캐스팅이라 생각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새로운 얼굴인 도준을 궁금해할 거라는 소나무 엑터스의 자신감 가득한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다.
“이렇게 입으니까 더 훤하네, 더 훤해.”
진성현 실장이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도준은 스타일리스트 팀에서 준비해준 대로 흰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세미 정장이었다.
좋아 보인다니 다행이었지만, 목 끝까지 잠근 셔츠가 어색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도준은 괜히 위쪽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일찍 도착한 도준은 상영관 앞에서 두 주연 배우와 박찬종 감독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관련 기자들과 투자자들, 각종 방송·영화 관계자들이 도준을 스쳐 지났다.
종종 유명 배우들도 보였고, 얼굴은 모르지만, 누가 보아도 배우 같은 생김새의 이들도 있었다.
자리가 남기 쉬운 관계자 시사회였음에도 박찬종 감독의 관계자 시사회다 보니 굵직한 인사들부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참여해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내 연기를 보는 거야······.’
도준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 본부장님!”
“오, 진 실장! 어쩐 일······ 아, 송 배우가 진 실장네 회사지.”
“네. 그리고 여기 우리 신인 배우. 도준아 인사해, 여기 ‘프레쉬’ 대표님.”
프레쉬는 최근 3년 사이 천만 영화를 두 개나 배출한 굵직한 영화 제작투자사였다. 도준이 인사하자 프레쉬 본부장이 도준을 훑었다.
“잘생겼네, 아주.”
당장 도준에 대해 아는 것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일 터였다.
프레쉬 본부장 외에도 진성현 실장은 주요한 관계자들에게 도준을 소개키셨다. 다른 신인 배우들도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장면이 종종 보였다.
‘어? 저 여자는······!’
특히 사람이 몰려 있는 쪽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선 여자를 발견한 도준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짧게 친 단발머리, 도도한 표정으로 신인 배우의 인사를 받고있는 이는 SG 그룹의 백정아였다.
“저, 실장님.”
도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진성현 실장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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