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
봄비처럼 (2)
도준의 거절에 지영훈의 매니저는 난감함을 숨기지 않았다. 자존심 센 지영훈의 반응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도 선배님이 보내주신 건데 제가 여기서 밥을 안 먹으면 안 되죠.”
도준이 덧붙인 이유에 진성현 실장이 끄덕였다.
진성현 실장도 일단 알았다고 답한 후 점심은 레스토랑 대신 이곳에서 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려던 차였다.
역시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도준이었다. SNS 문제도 전혀 걱정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영훈 씨 어차피 점심 먹을 거면 여기서 먹으라고 하는 게 어때. 송정호 배우가 다들 먹으라고 보내준 건데.”
때마침 점퍼를 걸친 정지혜도 매니저와 함께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송정호라면, 같이 작품을 했든 안 했든 업계 대선배였다. 송정호의 귀에 들어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보내준 성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지영훈의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평소 지영훈은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배우, 스태프 가리지 않고 두루 잘 지내 소문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오늘은 도준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산만해 송정호가 보낸 밥차까지 생각을 못 한 모양이었다.
“그렇네요······. 이쪽으로 와서 먹는 쪽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용준 씨가 매니저니까 그런 부분은 관리해주고 그래야지. 배우가 생각 못 해도. 배우 얘기만 들어주는 게 매니저가 아니잖아. 근데 도준이랑 점심은 왜······?”
진성현 실장이 한소리 하며 물었다.
“유의할게요, 실장님. 점심은······. 앞으로 같이 촬영할 일도 많으니까 친목 다지는 차원에서요······.”
“그래?”
그 속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진성현 실장이 미심쩍게 되물었다.
“네.”
지영훈의 매니저가 곤란한 얼굴로 끄덕였다.
매니저가 떠난 후, 도준과 진성현 실장은 식판에 밥을 탄 후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과연 지영훈이 올까 싶었지만, 혹시나 싶어 구석 쪽에 가장 한산한 자리를 잡았다.
“반찬이 굉장히 잘 나오네요.”
“고기반찬 많으니까 보기도 좋네. 송 선배가 돈 좀 썼겠어.”
수육을 산처럼 쌓아 온 진성현 실장이 크게 한 숟가락 밥을 떠먹었다. 맛도 좋았다.
“그나저나 지영훈이 너랑 진짜 친해지려고 밥을 먹자는 건가.”
“글쎄요······.”
진성현 실장과 도준은 뒷말을 아끼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때 지영훈이 천막을 들추며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워낙 큰 터라 지영훈의 등장을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의외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진성현 실장이 손을 들었다.
“여기.”
지영훈의 매니저가 먼저 진성현 실장을 발견하고 끄덕였다.
곧 지영훈과 그 매니저가 식판을 들고 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언제 올지 몰라서 먼저 먹고 있었어.”
진성현 실장이 지영훈을 스치듯 보며 지영훈의 매니저에게 말했다.
지영훈이 수저를 들고 잠시 멈춘 채 도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진성현 실장과 지영훈의 매니저 모두 긴장된 채 지영훈을 보았다.
시비를 걸까 걱정한 것이다.
제대로 기 싸움이 시작되면, 일이 피곤해졌다.
16부작이었으니 촬영이 남은 회차가 12부나 됐다.
둘이 친구 역할이기까지 하니 남은 회차 내내 붙는 씬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촬영장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낄 터였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도준이 숙이고 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편이 차라리 속이 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준이 그럴 필요나 이유는 없었다.
진성현 실장도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배고, 서브 남자주인공이라고 해도 도준도 지영훈과 같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였다. 배우로서 자존심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조금 피곤해지더라도 질투에 눈멀어 어깃장을 놓는 선배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잘 먹을게요. 송정호 선배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러나 놀랍게도 지영훈은 다시 친절한 선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맛있네. 이모님이 많이 주셔서 남길까 걱정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네. 용준아, 너도 얼른 먹어 봐.”
“네, 형.”
도준이 잠시 지영훈에게 시선을 두자, 지영훈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도준과 시선을 맞췄다.
물론 이전처럼 그 미소가 시원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터뷰에서 도준의 말을 가로채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잠시간 도준의 테이블 위에는 식사 소리만이 울렸다. 대충 허기는 채울 만큼 밥을 비우자, 지영훈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도준 씨는······.”
“네?”
“연기는 언제부터 했어요? 데뷔는 작년에 영화로 한 걸로 아는데.”
지영훈은 오늘 도준과 연기하며 자신이 도준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전의 촬영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연기를 보이지 않은 건 못해서가 아니라 도준이 강약 조절을 한 사실 또한 깨달았다.
지영훈도 이름 있는 주연 자리까지 올라온 이였다. 아무것도 모를 만큼 영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전에 뭐 다른 작품들 했어요? 연극?”
“연기 처음 배운 건 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하면서였고, 그다음엔 학부 생활하면서 배웠습니다.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종종 있는데, 외에 출연했다고 할 만한 작품은 없고요.”
도준의 말에 지영훈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천재형인가 보네.’
지영훈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도준이 부단히 노력한 것은 생각지 않고, 데뷔 한 작품 만에 연기력을 꽃피운 것에 대한 판단이었지만, 반쯤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배우가 되기 어려운 외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꿈꾸었을 만큼 연기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던 것만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연기를 꽤 잘하네요.”
지영훈은 애써 ‘꽤’ 잘한다는 말로 도준의 실력을 얼버무렸다.
이미 지영훈은 도준에게 연기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였다.
그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도준은 답하지 않은 채 애매한 미소만 입가에 띄웠다.
애써 자신의 연기 실력을 깎아 말하는 상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갈수록 현장도 바빠지고, 스케줄도 빡빡해져서 많이 지칠 거예요. 그러니 우리끼리라도 잘 합심해서 최대한 안 지칠 수 있게 노력해 보자는 얘기, 뭐 그런 얘기하려고 같이 밥 먹자고 했어요.”
“아······. 당연히 그래야죠.”
그나마 지영훈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이제 현장 경험뿐이었다.
도준이 건조하게 답하자 지영훈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준 씨.”
“네. 말씀하세요.”
“내가 오늘 피곤해서 신경이 예민했던 것 같은데······. 불편했으면, 미안해요.”
그 순간, 네 사람이 모인 테이블에는 정적이 돌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과였다.
물론 솔직한 사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차마 도준이 2부에서 반응을 얻어 관심이 도준에게 쏠리자 그것에 분노하고, 도준에게 밀릴까 조급해졌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분노해 도준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도준을 완전히 꺾어버리려고 했다는 사실도.
도준도 거기까지 파헤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도준은 답을 유보한 채 옆에 앉은 진성현 실장을 곁눈질했다.
사실 자신보다 무안을 받았던 진성현 실장이 사과받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지영훈이 도준의 눈길을 눈치챈 듯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별수 없었다.
얼굴도, 연기도 보통 이상 정도인 지영훈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빠른 상황 판단력이었다.
도준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오히려 도준과 기 싸움을 해서는 안 됐다.
‘알아서 강약 조절을 해왔으니까······.’
자신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도준은 작품을 위해 ‘서브 남자주인공’의 포지션에 걸맞은 연기를 할 것이다.
오늘이야 어떻게든 도준의 연기에 맞춰 따라갔지만, 도준이 더 텐션을 높일 경우, 거기까지 따라갈 자신은 없었다.
동시에 카메라 앞에 서는 상황에서는 결국 실력이 권력이 됐다.
지영훈은 오늘 그것을 깨닫고 꼬리를 내리기로 한 것이다.
“진 실장님도. 불편하셨으면······.”
“아니, 아니. 난 그런 거 없지. 분량 많아서 피곤한가 보네. 오늘은 더 촬영 없죠? 이따 들어가서 푹 쉬어요.”
진성현 실장이 얼른 지영훈이 사과를 하기 전 말했다.
도준만 건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자신까지사과를 받아 자존심의 바닥을 볼 필요까진 없었다.
“그래야겠네요.”
답하며 지영훈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도준도 지영훈이 먼저 사과를 한 이상, 오늘의 일을 더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저 배우의 미소나 친절이 모두 위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만 나오는, 오만과 가식이었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도준은 씁쓸함을 삼키며 식사를 마쳤다.
***
다음 날, 주연 배우들이 참여한 연예프로그램이 방송되고 나자 또 한 번 인터넷이 들썩였다.
지영훈의 팬들은 자신들이 보낸 선물이 방송됐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곧 인터뷰 내에 ‘얼굴 천재의 노래 실력’이라는 짧은 동영상 편집본이 온갖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가수로 데뷔 안 하고 뭐했대?
-전국 소속사에 있는 캐스팅 매니저들 반성해라 강도준 같은 인재가 지금 데뷔한 게 말이 되냐
-연예인에 관심 없었던 거 아냐?
-ㄴㄴ예대 연영과임
-강도준 예능이나 인터뷰 많이 했으면 좋겠다 정보가 너무 없어
-내 남친이었으면 365일 모닝콜에 데이트는 매일 노래방
-아니라서 다행이다
-강도준 본인이야? 뼈때리네ㅋㅋ
-얼굴만 뜯어먹고 살래도 살 것 같은데 노래까지 잘하네
도준은 그렇게 또 한 번 온라인에서 화제성을 입증했다.
그 사실을 지영훈도 모르지 않았으나 이제는 분노하는 대신 외면했다.
인터뷰 분량 자체는 지영훈이 훨씬 많았다. 도준이 노래로 임팩트를 가져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떠오르는 별을 지영훈이 막을 방도는 없었다.
도준이 만든 SNS 계정은 생성한 지 반나절 만에 팔로워 10만을 달성했다.
송정호가 보낸 밥차 앞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자 훈훈하다는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자체도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1부에서 12.2%였던 시청률은 4부에서 19.8%를 찍었다.
4부 엔딩은 두 남자 주인공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발생하며, 도준과 지영훈, 두 사람 모두 극찬받는 장면이 됐다.
치솟기 시작한 의 시청률은 15부에 다다르자 24.1%까지 올랐다.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이었다.
젊은 층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터라 온라인 화제성 측면에서는 40%대 시청률의 드라마도 부럽지 않았다.
“광고만 13개가 들어왔댄다. 13개.”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도준은 진성현 실장으로부터 광고 제의 소식을 듣게 됐다.
“13개요?”
“그래. 다 찍을 건 아니지만, 오늘 촬영 끝나고도 맘껏 쉴 수는 없다는 소식이다. 미안하게도.”
“아, 그건 미안하지 않으셔도.”
“일 욕심 많은 것 봐. 사람들 눈에 그게 다 보이나.”
“왜요?”
“아직 이른데, 차기작 제의가 들어왔어.”
진성현 실장이 이르지만, 벌써 차기작 소식을 전하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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