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6
봄비처럼 (1)
“컷, NG!”
채민정 감독의 외침에 도준은 순식간에 얼굴 근육을 이완시키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신을 최대한으로 집중한 채 연기를 했기 때문에 그 피로감이 몰려왔다.
‘역시 NG구나.’
도준은 생각하며 채민정 감독 쪽으로 돌아섰다.
지영훈의 연기가 애매했었다. 도준이 남자주인공이고 지영훈이 서브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준이었겠지만, 아니라서 문제였다.
정지혜는 NG의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고, 지영훈은 조금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감정 살렸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질투하는 건 아직 이르지만, 아예 그 부분이 안 드러나면 안 될 것 같아요.”
도준과 지영훈, 두 사람에게 말하는 듯하던 채민정 감독의 시선은 말이 끝날 때쯤에는 어느새 지영훈에게로 가 있었다.
지영훈이야말로 술을 마신 듯 얼굴에 열이 올랐다.
“······네.”
하지만 명백히 방금의 NG는 자신의 문제였다. 지영훈이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도준 씨.”
“네, 말씀하세요.”
“좋았는데······ 조금만······. 아니,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갑시다.”
채민정 감독은 그 순간 도준에게 감정을 빼달라고 요청할까 고민했었다. 도준과 지영훈, 두 사람 중 누가 더 빛나야 하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영훈이었다.
아무리 서브 남자주인공의 인기가 오른다고 해도, 남자주인공이 빛을 보지 못하면, 모두 소용없었다.
어쨌든 메인은 메인. 여자주인공과 이루어지는 건 남자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메인과 서브가 함께 상승곡선을 그려야 의미가 있었다. 서브 혼자 치고 나가서는 안 됐다.
조금 전 연기만 보아서는 도준이 지영훈을 화면에서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러니 도준에게 감정을 조금만 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채민정 감독은 다르게 판단했다. 이제 겨우 한 자릿수의 테이크를 소비했을 뿐이었다.
지영훈의 부족한 연기에 맞춰 도준을 끌어내리는 것보다는, 도준의 연기에 지영훈이 맞춰 올라가는 게 맞았다.
‘지영훈도 여기서 더 큰 배우가 되려면 그게 맞겠지.’
어쨌든 주연 배우로 지영훈을 선택한 채민정 감독이었다. 배우를 믿어주는 것도 감독의 일이었다.
채민정 감독은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지그시 바라보았다.
도준도, 지영훈도 채민정 감독의 눈빛이 은근히 두 사람을 부추기고 있었다. 특히나 지영훈을.
채민정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고, 지영훈은 분한 감정을 누른 채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
다행히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지영훈은 도준에게 밀리지 않고 제법 괜찮은 연기를 해냈다.
도준의 연기가 지영훈의 연기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익스트림클로즈업 샷까지 찍은 채민정 감독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4부 엔딩도 무리 없이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엔딩 씬 촬영이 마무리되었을 때는 정오가 훌쩍 넘어간 시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 인터뷰와 촬영으로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지쳐갈 무렵이었다.
“자자, 오늘 점심은 저희가 쏩니다!”
진성현 실장이 나서 외쳤다.
촬영장을 정리하던 모두의 이목이 진성현 실장에게로 쏠렸다.
‘저희가?’
도준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도준은 어안이 벙벙한 채 진성현 실장을 바라보았다. 진성현 실장이 기분 좋게 웃으며 도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세트장 밖에 밥차랑 커피차, 모두 대기 중이니까 거기서 다들 식사 해결하세요. 송정호 배우님께서 우리 후배 위해서 한 턱 크으게 쏘셨습니다!”
진성현 실장의 말에 촬영장 내부가 술렁였다.
“오, 배고팠는데 잘됐다.”
“잘 먹을게요, 도준 씨.”
“친절한 오 사장 때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하하.”
“잘 먹을게요!”
스태프들이 도준의 곁을 지나치며 한 마디씩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송정호 선배라니, 더욱 얼떨떨해진 도준을 진성현 실장이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
세트장 밖 마당에는 진성현 실장의 말대로 밥차와 커피차가 와 있었다.
한편에는 육십여 명에 달하는 스태프들이 모두 자리해 먹을 수 있을 만한 수십 개의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추운 날씨에 대비해 천막도 처져 있었다.
밥차에서 밥 짓는 흰 김이 피어올랐다.
고소한 반찬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잊고 있었던 배고픔을 자극했다.
“이게 다······.”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밥차나 커피차가 와 있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그 앞에 달린 현수막과 등신대에 도준은 눈을 떼지 못했다.
현수막과 등신대에는 도준의 사진과 함께 각종 응원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도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송 선배가 제작발표회 때 화환이라도 보내고 싶었다는데, 네가 제작발표회에 안 갔잖냐.”
“아······. 괜찮은데.”
어차피 서브 남자주인공이었고, 캐스팅이 뒤늦게 되기도 하는 바람에 도준은 제작발표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다.
“일정 괜찮은 날 물어보길래 조감독이랑 조율해서 맞췄지. 너도 서프라이즈로 받는 게 더 기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말 안 했지.”
송정호는 도준과 같은 ‘소나무 엑터스’였기 때문에 일정을 조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도 했다.
물론 업체를 알아보고 현수막 제작을 하는 등의 직접적인 일은 송정호의 매니저가 도맡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준은 자신을 신경 써 준 송정호의 마음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너무 감사해서 어떡하죠.”
“어떡하긴 나중에 너도 한턱내야지. 이야, 선배라고 이 정도로 쏘네. 나한테는 술 한 번 살 때도 어마어마하게 으스대던 양반이 말이야.”
자신의 배우가 송정호에게 인정받고 귀염받는 일은 진성현 실장으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 선배가 이렇게 사람 챙기는 사람이 아닌데······. 네가 잘하긴 잘했나 보다.”
연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도준은 송정호와 최민철, 박찬종 감독과 함께 인터뷰를 돌 때도 반듯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많은 점수를 땄다.
세 사람 모두 한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도준은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한 도준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닿은 듯했다.
프로모션 일정이 모두 끝난 후에도 도준은 종종 연말 인사나 안부 메시지 등으로 세 사람을 챙겼다.
그러니 송정호도 선뜻 나서 도준을 챙긴 것이다.
“인증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낼까요?”
“아, 그래. 그래야지. 좋은 생각이야.”
도준의 제안에 진성현 실장이 끄덕이며 자신의 휴대폰에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자, 그 옆에 서 봐. 커피차랑 밥차 다 나오게.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어 거기.”
생각해 보니 휴대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까마득했다.
차라리 프로필 사진이나 작품 홍보 사진을 찍을 때는 연기라고 생각해서 편했는데, 일상 사진은 어색했다.
“뭐야, 강 배우. 표정이 왜 그래? 안 기뻐?”
어색하게 선 도준을 진성현 실장이 휴대폰을 내리며 핀잔을 주었다.
도준이 어색함을 씻으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옳지!”
“아유, 잘생겼다!”
최대한 현수막과 도준의 밝은 표정이 잘 나오게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고 있던 진성현 실장의 뒤로 한 아주머니가 추임새를 넣으며 지나갔다.
밥차에서 반찬을 나눠주고 계시던 아주머니였다.
그 뒤로도 또 여러 명 스태프가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잘생겼다.” 하며 지나갔다. 진성현 실장은 자신이 다 어깨가 으쓱한 기분이었다.
하필 오늘이라 더 기분 좋은 것도 있었다.
진성현 실장도 사람인지라 오늘 아침 지영훈의 태도로 감정이 상해 있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기 싸움을 해도 그렇게 유치하게······.’
아까 지영훈에게 무안을 당했을 때 진성현 실장은 혀를 차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물론 이해는 했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인기를 더 탐하고,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게 배우라는 종족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빛 삼아 빛나는 게 배우였으니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계속해 관심을 받고, 남들이 떠받들어주는 자리에 있다 보면, 당연히 지나가야 할 순간도 못 지나치는 경우가 생겨났다.
관심을 독차지하지 못한다거나 조금이라도 남에게 밀리는 기분이 들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 분풀이를 매니저에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악을 쓰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미지 관리고 뭐고, 이성을 잃고 촬영 현장을 감독과 싸우거나, 배우와 싸워 일을 난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에 비하면 싸가지 좀 없는 정도였지······. 더 내버려 두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사람 좋은 척하던 얼굴을 바꿀 정도면 지영훈도 엄청나게 위협을 느꼈던 것 같은데······.’
사진을 다 찍은 진성현 실장은 휴대폰을 내리며 도준을 물끄러미 보았다.
도준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현수막과 등신대 사진을 신기한 듯 찍어대고 있었다.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얼굴은 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연기를 하면 돌변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본래는 화제성에 위협을 느꼈겠지만, 오늘 지영훈도 알았겠지. 이미 연기로 안 된다는 걸······.’
진성현 실장이 손 쓰기도 전에, 도준은 촬영 현장에서 연기로 지영훈의 기를 꺾어 버렸다.
거기에다가 송정호가 도준에게 보낸 밥차와 커피차까지.
지영훈의 팬들이 준비한 간식도 매우 고맙고, 정성 어린 선물이었지만, 확실히 이쪽이 규모 면에서 남달랐다.
“이제 밥 먹자. 너도 먹어야지. 아, 그리고 이거 아마 홍보용 기사 나갈 거야.”
송정호, 도준, 제작진 모두에게 좋은 홍보거리가 될 것이었다. 도준은 간이 테이블 쪽으로 향하며 끄덕였다.
“홍보팀에서 시간 날 때 너도 SNS 계정 하나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던데.”
“그래요?”
가수와 달리 배우들은 팬과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 필요한 터라 개인 SNS 계정이 있는 배우는 많지 않았다.
배우의 팬들은 배우 자체보다 배우가 연기한 역할로 좋아하기 시작하는 터라 너무 친근한 느낌은 해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주 업데이트는 말고, 작품 홍보용이나 휴식기 때 쓰는 걸로. 인스타 정도. 올리기 전에 홍보팀한테 검토받고 올리면 더 좋고.”
원래라면 필수라고 말할 진성현 실장이었지만, 도준을 보아서는 크게 문제될 만한 내용을 올릴 것 같진 않았다.
“아아······. 만들게요. 만들어서 오늘 이 사진부터 올리면 되겠네요.”
“그래.”
도준과 진성현 실장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저기, 도준 씨. 실장님.”
지영훈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지영훈의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불렀다.
“어, 뭐야?”
진성현 실장이 찌푸리며 물었다. 아직 지영훈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놓은 상태는 아니었다.
“식사······ 여기서 마시고, 밖에 레스토랑 가서 저희랑 같이 드시는 거 어떠신지······. 영훈 씨가 점심 같이 드시자고 하시는데.”
무슨 이유로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표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영훈이 먼저 식사를 제안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거절했다가는 오히려 도준이 지영훈을 멀리한 게 돼버릴 수 있었다.
진성현 실장이 도준을 힐끔 보고는 알았다고 답하려던 때였다.
“죄송한데, 오늘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도준이 먼저 지영훈의 매니저에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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