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9
상승곡선 (2)
‘Don`t make it-’
흘러나오던 벨소리가 뚝 끊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거절 버튼을 누르는 이에게로 향했다.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윤정훈의 매니저였다. 윤정훈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도준은 그대로 멈춘 채였다. 소란에 신경 쓰지 않고 연기하던 감정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왜 켜져 있지. 죄송합니다.”
곁에 있던 스태프의 따가운 시선에 윤정훈의 매니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고는 촬영장 뒤편으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최동민 감독의 미간에 주름이 팍 잡혔다.
작품을 하다 보면 한 작품에 한 번꼴로 이런 사소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언젠가 일일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소품으로 쓰이는 휴대폰이 연기 중에 울렸다는 얘기도 있었다.
최동민 감독도 촬영장에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속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나 하필 첫 시청률이 나와 의욕이 가장 최고치에 다다른 상태에서 촬영장에 들어온 상태였다.
맥이 빠지는 기분에 더욱 기분이 상했다.
“하······ 방금 테이크 좋았는데······.”
최동민 감독이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부분은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다시 가는 게 맞았다.
“처음부터 다시 갑시다.”
“저, 그럼 잠시만······.”
최동민 감독의 말에 최고조의 감정을 유지하고 있던 도준이 양해를 구했다.
격정적인 감정 연기로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처음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정 화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최동민 감독도 도준이 무엇 때문에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 끄덕였다. 도준이 빠르게 수정 화장을 받는 사이 최동민 감독은 조금 전 촬영 장면을 돌려 보며 촬영 감독과 구도를 다시 논의했다.
그사이 대사를 할 타이밍에 벨이 울려 대사를 놓친 중전 역할의 배우가 조감독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야? 우리 스태프 같진 않은데.”
“아······. 배우 매니저분인데.”
바로 옆에 윤정훈이 있었다. 괜히 어색한 상황이라 조감독은 얼버무렸다. 중전 역할의 배우는 경력만 30년인 중견 배우였다. 경력이 윤정훈의 나이보다도 많았다.
그녀가 혀를 차며 조감독을 나무랐다.
중전 역할이다 보니 머리에 이고 진 장식만 해도 그 무게가 상당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아있기만 해도 고역이었다.
때문에 촬영 시간이 쓸데없이 길어지면, 짜증부터 나는 게 사실이었다.
“촬영장에 놀러 오나. 영진 씨, 조감독이 촬영장 관리 잘해야지.”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를 일일이 혼내기도 그렇고, 감독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으니 만만한 게 조감독이었다.
조감독의 업무분장표에는 ‘총알받이’가 있다는 말도 있었기 때문에 조감독은 억울한 입장이었지만, 죄송하다고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옆에 있던 윤정훈만 더욱 가시방석이었다.
“죄송해요. 저희 매니저 형인데······. 죄송합니다. 제가 한번 더 말하겠습니다.”
윤정훈은 중전 역할의 배우와 조감독에게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솔직하게 고백했다.
“느이 매니저라구?”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계속해서 사과하는 윤정훈에 중전 역할의 배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매니저가 사과를 하고 다녀야지, 배우한테 사과를 시키네. 참······.”
그녀는 핀잔을 주듯 한마디 하고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럼 주의 부탁드릴게요.”
조감독이 그렇게 자리를 정리했다.
자리로 돌아온 도준은 노란색 테이프로 지정해 놓은 위치로 향했다. 도준은 위치로 향하며 윤정훈에게 작은 목소리로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방금의 일로 윤정훈의 표정이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직된 표정으로 컷에 들어가 봐야 좋은 연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사는 없었지만, 어쨌든 풀샷일 때는 도준의 뒤편에 서 있기 때문에 얼굴이 화면에 걸리기 마련이었다.
“아······ 네. 죄송해요.”
윤정훈은 도준에게도 사과했다. 사과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준은 고개를 저었다.
“자, 다시 갑니다!”
최동민 감독이 소리쳤다.
다행히 윤정훈은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촬영에 임했다. 도준의 두 번째 컷 연기도 매끄러웠다.
***
다음 날, 2부 시청률을 받아든 제작진과 배우들은 23.2%였다. 하루 만에 2%가 더 오른 것이다.
단순히 목요일이라 시청률이 더 오른 수준이 아니었다.
1부를 본 시청자들의 평가가 좋았고, 2부 예고가 잘 뽑혔던 것이 시청률 상승세에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3부, 4부의 시청률도 연달아 상승세를 타고 올랐기 때문이었다.
3부가 24.6%, 4부가 25.8%였다. 이 기세라면 30%대 시청률까지 노려볼 만했다.
그렇게 단 2주 만에 은 전체 드라마 시청률 2위를 차지했다.
촬영장 분위기는 축제 분위일 수밖에 없었고, 촬영 또한 별다른 문제 없이 순조로웠다.
세트장에서 저녁 촬영을 끝낸 도준은 이치훈과 함께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해결했다.
오늘은 밤늦게까지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방송국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고 오는 이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옷을 다 갈아입어야 했다. 챙겨입을 것이 많은 복장이다 보니 옷 한번 갈아입는 것도 큰일이었다.
부실하지만, 배부된 도시락을 먹는 게 편했다.
“수염 붙이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안 붙여서 그나마 다행이네.”
진성현 실장의 말에 도준과 이치훈이 끄덕였다.
지난번 함께 밥을 먹을 때 보니 수염에 음식이 묻을까 밥이 아니라 죽을 먹듯 천천히 먹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촬영용 의상에 흘릴까, 자신의 옷을 목 위에 덧댄 채였다.
불편한 자세로 도시락을 먹으며 이치훈이 말했다.
“그나저나 지금 우리가 못 넘은 드라마는 ? 그것뿐인 것 같던데.”
첫 방송을 함께 보던 날, 도준은 동갑인 이치훈과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도준이 끄덕였다.
“거기 시청률은 워낙 콘크리트니까.”
은 KES1에서 8시 30분에 방영 중인 일일드라마였다.
KES1 8시 30분 일일드라마는 작품과 상관없이 언제나 일정한 시청률을 유지했다.
관성적으로 보는 고정 시청자가 워낙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 연령대의 문제이기도 했다.
젊은 연령대를 노린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인터넷으로 분산되는 바람에 예전만큼 좋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가 적었지만, 시청자 연령대가 높은 KES1 일일드라마의 시청률은 건재했다.
TV 조작에 서툰 노인들이 해당 채널만 틀어놓고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부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의 좋은 시청률 뒤에도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있었다.
판타지가 혼재되어 있었지만, 사극이라는 장르가 중장년층을 끌어들인 것이다.
거기에 도준과 김세희, 잘나가는 인기 스타들이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작품 자체의 시청률도 좋았지만, 도준으로서는 중장년층에게도 인지도를 높일 좋은 기회였다.
“하긴 거기는 30% 못 넘으면 망한 거라잖아.”
“대단하다, 진짜.”
도준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일일드라마 악역으로 출연하면, 시장이랑 마트도 못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도 아닌 게······. 아, 맞아. 나도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여태 나 몰라보더니 이제 알아보더라!”
말을 하다가 생각난 듯 이치훈이 조금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도준이 피식 웃었다.
“역시 사극을 찍어야 아저씨들도 알아보나 봐. 이러다가 나도 일일드라마 악역들처럼 마트에서 맞는 거 아냐?”
“그렇게 되면 좋은 거지. 시청률이 엄청 올랐다는 거잖아.”
도준의 말에 이치훈이 자기는 생각 안 하고, 시청률 생각만 하는 거냐고 구시렁댔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고, 말끝에 장난기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아저씨한테 혼났어.”
“혼났다고?”
“어. 연기 더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뭐라 하시더라. 잘생긴 친구나 잘 보필하래.”
이치훈의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말한 ‘잘생긴 친구’는 왕세자 역할을 맡은 도준이었다. 도준은 피식 웃었다.
사실 2부 방송이 끝난 후, 이치훈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 중에는 효명대군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운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부 효명대군의 얼마 안 되는 분량 중의 대부분이 도준과 함께하는 씬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부분의 연기가 다른 씬들보다 나았기 때문에 이치훈은 ‘발 연기’ 소리는 면피할 수 있었다.
이후 회차의 연기는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니 이치훈도 반응이 나아질 것을 알아, 가볍게 혼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맞는 말이지. 네 덕에 연기도 많이 나아졌고.”
“내 덕은. 네가 열심히 한 거지.”
“그래도. 시간 내서 도와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나도 연습할 수 있고 도움 됐어.”
도준의 말에 이치훈도 가볍게 웃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면 나야 좋지.”
그렇게 말하며 이치훈과 도준은 다시 도시락을 비우는 데 집중했다.
***
밥을 먹은 후, 진성현 실장과 이치훈, 이치훈의 매니저는 담배를 피우러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를 안 피우니 도준은 흡연실 대신 소화를 시킬 겸 세트장을 한 바퀴 돌았다.
도준이 멈춰선 곳은 다음 촬영할 씬의 배경인 효명대군의 방이었다.
‘······어떻게 감정을 가져가면 좋으려나······.’
효명대군의 방으로 꾸며진 세트장 내부를 둘러본 도준은 피곤한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때도 바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확실히 주연과 조연은 그 분량의 차이가 상당했다.
어제는 대본을 숙지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도준이었다.
와중에 높아지는 시청률에 부응하듯 섭외 요청이 밀려 들었다. 웬만한 섭외는 드라마 촬영 이후로 미루고 있었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잡혀 있었던 광고 촬영 일정은 미루기 힘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도준의 귀로 윤정훈과 윤정훈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판으로 만들어진 벽 너머 세트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안 된다니까······. 야, 정훈아. 너 일 하루 이틀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형. 형이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제가 조감독님께 직접······.”
“네가 말하면 뭐가 달라지냐?”
“그래도······ 사정이라도 말씀드려 보면······.”
“차라리 조감독 말고 강도준한테 말해보는 건 어때.”
“도준 선배님한테요?”
“그래.”
“······그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야, 거봐. 너가 생각해도 어렵지? 근데 왜 나한테 그 어려운 걸 시키냐. 물론 나도 너 안타까운데······. 너 같은 조연 때문에······.”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없었던 도준은 대화가 더 진행되기 전에 윤정훈과 윤정훈의 매니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정훈과 그 매니저가 놀란 눈으로 도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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