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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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 그룹 회장실.
백정한 회장은 회장실 내부에 마련된 손님 접대용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백정한 회장의 비서실장은 그의 옆에 선 채로 최근 SG 미디어 백천 사장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 건과 준비 중이던 김진숙 작가 제작사, 화진 스토리&컬처 인수까지 무산되었습니다.”
“NEXT? 거기서 인수했다는 말이지.”
“네, 회장님.”
백정한 회장의 시선이 비서실장의 등 뒤로 향했다. 건물 최상층에 위치한 회장실의 한쪽 벽면은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유유히 흘러갔다.
“흠.”
백정한 회장이 불만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두툼한 입술을 못마땅하게 구겼다.
이제 백정한의 나이도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자신의 아들인 백천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온 것이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상속을 위한 밑작업을 이어오고 있기도 했다.
회장의 자리에 앉은 지는 이십여 년. 이십여 년의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창업주인 선대 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나 회장에 자리에 오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백정한 회장이 장남인 그의 형을 내몰고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며 세간이 떠들썩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을 구시대 왕조 시절의 사건과 비교하는 것이 우습기는 했어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재벌家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막대한 부와 권력, 명예를 누린 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핏줄에게 세습되기를 바랐다.
백정한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일군 것들을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실은 자식들에게 주는 것도 영 탐탁지는 않았다. 남보다 나을 뿐이었다. 생각만 같아서는 자신이 일군 것들, 자신이 평생 누리고 싶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밤마다 어린아이의 오줌을 마신다는 L 그룹 천 회장이나 영생을 얻는다는 사이비 종교에 뒤늦게 빠져 버린 S 그룹 강 명예회장을 비웃으면서도 그들의 속내도 이해되는 건 그래서였다.
그러나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장 자리에 앉기 싫은 건지. 쯧.”
백정한 회장의 입에서 결국 백천 사장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자신의 자식은 자신처럼 형제끼리 서로 물고 물어 뜯는 진흙탕 싸움을 하며 회장 자리에 오르지는 않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가장 정통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장남을 태어나게 하려, 백정한의 부인은 백천 사장 이전에 임신했던 여아를 낙태하기까지 했다.
백천 사장 이후로 생긴 아이들은 남아일 경우 모두 지우게 했다. 여자인 백정아 본부장이 한참 후에 태어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차라리 경쟁을 시키는 게 나았으려나.’
본처인 이정희 여사가 임신했던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순진한 여대생부터 어린 배우, 비서실 직원이며, 술집 여자까지. 백정한 회장이 안았던 여인은 수많았으니까.
정기적인 관계를 가진 이도 있었고, 속임수를 써 겁탈한 이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는 임신을 한 이도 있었다.
물론 아이는 지워야 했다. 임신 후 아이를 먼저 지우겠다고 나선 이들한테는 백정한 회장도 제법 자비롭게 그 대가를 지불했다.
물론 그것 이상으로 대가를 바라거나 헛짓거리를 하려고 든 이들은 가차 없이 정리했다.
검은 손에 의해 처리되어 그 생의 마지막까지는 지켜보지 못했으나, 백정한 회장에게는 버러지나 다름 없었으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본처의 자식들은 내칠 수도 없을 테니 서자라도 들였다가 잘라낼 걸 그랬나. 아니, 아니야. 그깟 경쟁시키자고 괜히 싸구려 핏줄을 태어나게 해 속 시끄러울 것도 없지.’
다 뒤늦은 생각이었다. 그중에 백정한보다 나은 이가 있어도 문제였고, 없으면 괜한 수고만 하게 될 일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인 백천이 제 몫을 못한다면 이제라도 자신이 나서 제대로 앞가림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NEXT가 대진건설 대표가 차린 데지? 시멘트 바르던 양반이 왜 딴따라 판에 끼어들어서 피곤하게 하나.”
“이번에 NEXT 대표가 된 이진환이 대진건설 차남인데, 영화감독 출신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진환이 영화 쪽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하여튼, 자식들 멍청함이 문제지. 건설사나 물려받고 말 것이지. 쯧.”
백정한 회장이 혀를 찼다.
“그렇다고 해도 판이 작은 것도 아닌데 사사건건 겹치는 이유가 뭐야. 그쪽에서 SG 미디어 잡으려고 훼방을 하는 거야? 그런 거면 더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버려야 할 것 아냐.”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라 뒷걸음질치다가 걸린 것 같긴 한데······.”
비서실장이 말을 흐렸다.
“뒷걸음질치는 놈보다 백 사장이 느리다는 거네. 기가 막히군. 한데. 뭐, 걸리는 것 있으면 빠짐없이 보고하라고 이 실장 월급 주는 거야.”
“배우 강도준의 의도까지는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강도준?”
백정한 회장도 도준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다. ‘뉴 베이커리’ 모델이기도 했고 딸인 백정아의 눈밖에 나 ‘뉴 베이커리’ 모델에서 잘린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강도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투자자들도 많았다.
SG 각종 계열사에서 강도준을 광고 모델로 올렸다가 백정아나 백천 사장 선에서 기각되는 일도 잦았다.
“갑자기 그 배우 놈이 왜 나와.”
“알아본 바로는 NEXT가 김진숙 작가 제작사를 인수한 일에 강도준이 개입된 것 같습니다. NEXT가 관심을 보인 게 한창 백정아 전무님이 협상 중이실 때라···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SG 미디어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흠.”
“아시다시피 모델 건이나 상영관 문제로 백정아 전무님께 악의를 품고 있을 수도 있어서······. 아직 확실하진 않으니 지시하시면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놈 하나가 뭘 할 수 있겠어.”
백정한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알아나 봐. 그따위 배우 하나 때문에 백 사장이 계속 물 먹고 있는 거면 꼴이 아주 우스워지니까 말이야.”
“네, 회장님.”
“그리고 백 사장 불러와.”
다시 한 번 깎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비서실장이 회장실 문을 나섰다. 백정한 회장은 자리에서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
도준을 비롯해 김진숙 작가와 이윤오 감독, 김현욱 대표와 송초희까지. 의 주역들이 한남동의 한 술집에 모두 모였다.
건물 2층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술집을 통째로 빌린 이는 NEXT 이진환 대표였다.
의 성공을 축하하고 공동제작자에서 이제는 한 회사가 된 NEXT와 화진 스토리&컬처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김현욱 대표의 화진 스토리&컬처는 NEXT의 자회사로서 앞으로도 계속해 드라마를 제작하면 됐다.
대신 이제는 단독 회사가 아닌 NEXT라는 모회사가 있기에 제작, 투자 면에서 걱정과 부담을 덜게 되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부터 술을 주문해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여덟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했다.
“이 집 맥주 맛이 진짜 좋은데요? 한남동 자주 오는데도 여기는 처음인데. 이 대표님이 술 맛을 좀 아시나 보다.”
송초희의 말에 이진환 대표가 기분 좋게 웃었다.
새삼 송초희의 미모에 넋이 나간 이진환 대표였다. 편안한 차림에 옅은 화장, 포니테일로 머리를 질끈 묶어 그다지 꾸미지 않은 모습이었는데도 어두운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송초희는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털털하고 활발한 성격까지.
이진환 대표는 오늘 처음 가까이서 대화를 나눠 보는 송초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당장에라도 송초희에게 자신의 차기작에 나와달라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감독이 아니라 대표로서 자리를 지키는 게 맞을 듯했다.
‘나중에 꼭 내 영화에 나와달라고 해야지.’
이진환 대표는 생각했다. 대표가 되었지만 영화의 꿈을 접을 생각은 없었다. 대표 일을 하면서도 가능하다면 영화감독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초희 씨가 맛집 이런 거 잘 알지. 저기 앞에 있는 꼼장어집도 초희 씨 추천 맛집이라고 소문났던데.”
“맞아요. 거기 제 단골집인데 진짜 맛있어요.”
“그래? 그런 데 있으면 우리도 데려가고 그래 줘.”
김현욱 대표의 말에 송초희가 알겠다며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진숙 작가가 동생인 김현욱 대표에게 핀잔을 주었다.
“송 배우가 우리 같은 노땅들이랑 왜 어울리겠어. 그리고 송 배우랑 놀려면 최소 주량이 얼마랬지··· 얼마는 돼야 놀아준다고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아, 작가님 기억하시는구나. 소주 세 병이요.”
“넌 요즘에 한 병이면 맛 가잖아. 나는 맥주 한 캔이면 이렇게 벌써 머리가 어질하고. 젊은 사람들이랑 못 논다. 못 놀아.”
김진숙 작가가 장난스럽게 한탄했다.
“초희 씨 술 잘 마시는구나. 도준 씨도 잘 마시는데.”
옆 테이블의 이윤오 감독과 선우태가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도준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돌렸다.
도준의 옆에 앉은 이진환 감독이 도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번에 중국 투자자랑 같이 술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들 술을 어찌나 잘 마시는지, 저는 진짜 중간에 투자자고 뭐고 냅다 자리 내뺄 뻔했어요. 그런데 도준 씨가 결국 이기던데요. 그 독한 중국 술을 몇 병을 마셨는지.”
“아, 중국 사람들 술 잘하죠. 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잘 마시는 분들은 정말 잘 마시는데. 도준 씨 대단하네요.”
이진환 감독의 말에 송초희가 답했다. 다른 이들도 도준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워낙 바른 생활이라 술도 잘 못 할 것 같았는데.”
“그러게. 술도 딱 평균만치 한 병 반. 이렇게 할 줄 알았더니. 아니네, 역시 상위 1프로의 얼굴과 연기력을 가진 자답게 주량도 상위 1프로였던거네.”
김현욱 대표에 이어 김진숙 작가가 한 말에 테이블에 있던 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준도 이내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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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술자리는 더욱 무르익었다.
뒤늦게 도착한 김정난 이사에게 술을 몰아주며 자리는 더욱 떠들썩해졌다. 그사이 제법 술이 오른 이진환 대표는 바깥바람을 쐬러 건물 복도로 나와 창가에 서 있었다.
도준도 함께였다.
기분 좋게 취한 이진환 대표가 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도준 씨. 덕분에 사업이 아주 번창하게 생겼습니다.”
“뭘요.”
장웨이 회장의 투자를 받는 대신 투자처를 도준이 정한다. 도준이 내민 조건 속 투자처는 화진 스토리&컬처였고, 도준은 이 대표에게 제작사 인수를 제안했다.
백정아가 화진 김현욱 대표에게 인수를 제안했다는 사실은 진성현 부장이 SG 미디어를 주시하고 있었고, 이미 김현욱 대표와 친해진 사이여서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언제나 투자처를 찾아 드라마를 제작해 왔던 화진으로서는 모기업이 생기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비싼 값에 회사를 팔 수 있는 데다가 플러스로 지금과 같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김진숙 작가가 차기작으로도 막대한 제작비가 드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렇게 SG 미디어와 인수 얘기가 오가던 중, NEXT가 끼어들었다. 이진환 대표는 도준이 제시한 250억보다 50억이나 더 비싼 금액을 김현욱 대표에게 제시했다.
언제나 통 큰 김현욱 대표다운 선택이었다. 당연하게도 화진은 NEXT의 차지가 되었다.
“선택하신 건 이 대표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뭐가······.”
“난 도준 씨 덕분에 투자도 받고, 화진도 인수 했는데 도준 씨가 얻는 게 없지 않습니까. 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세요. 무엇이든.”
예상했던 말이었다.
‘이 감독님 성격이라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도준의 진지한 눈이 이진환 대표를 보았다. 초가을의 밤바람이 도준의 앞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