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11
“뭐? 남색도 즐겼다는 거야? 그것도 제 아래 기사들로?”
사람들의 수다에 이를 물었다.
‘뺨이라도 한 대 때려 주고 싶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짝!
시원한 소리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멈췄다. 나도 놀라 그곳을 바라보자 한 중년의 여자가 조금 전까지 라트반의 험담을 하던 남자의 뺨을 그대로 올려붙인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더러운 소리 작작 하고 꺼지지 못해! 짐승도 구해 준 은혜를 아는데! 그분이 마수를 막고 사람들을 살린 건 네놈들 기억에서 다 지워 버린 거냐! 우리 집 닭도 너보다는 똑똑하겠다!”
“뭐? 이 여자가…!”
“왜? 너도 때려 보려고?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라트반 경이 구해 주지 않았으면 이미 들판의 백골이 되었을 새끼가 말이야!”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화를 내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 여자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 여자를 욕하는 것일까.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들은 내 생각과 달랐다.
“그러게, 은혜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라트반 경이 구해 준 사람들이 몇 명인데.”
“맞아요. 그분이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어요.”
“우리 마을은 그분이 아니었으면 모두가 죽었을 거야!”
라트반의 도움을 잊지 않은 사람들의 말에 어쩐지 내가 다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때 라트반의 편을 들던 사람들이 말했다.
“이게 다 그 가짜 성녀 때문이라니까!”
“…….”
하마터면 죄송하다고 말할 뻔했다.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작정을 하고 덤벼들었겠지!”
들려오는 말에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가 생각났다. 이대로라면 불에 타 죽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를 무시하는 라트반에게 일부러 더 다가가며 살갑게 대했었다.
‘만약 내가 라트반과 얽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찌 되었건, 라트반은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으리라. 명예를 유지하며 신념을 지킨 채, 여전히 추앙받고 사랑받는 신전 기사단장으로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었겠지.
잠시 사람들을 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빨리 돌아가자.’
살 것은 다 샀다. 아무리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이곳에 오래 있어 좋을 것은 없다. 그렇게 내가 서두르는 걸음으로 시장을 벗어나려 할 때 갑자기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려는 순간 내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성녀님!”
***
이리스는 굳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헥사 하나만으로도 무서워 죽을 것 같은데 저를 끌어안은 이 남자도 마수라니.
그사이 헥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다음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발로 그녀를 내려찍으려 했다.
“아악!”
땅이 파이고 흙과 함께 고여 있던 핏물이 튀어 오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다음 순간 이리스는 제가 하늘에 떠 있는 것을 알았다.
“꺄아아아악!”
붕 떠오른 몸에 놀란 것도 잠시, 이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낙하감을 느끼자 이리스는 발버둥을 치며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힘주어 안더니 속삭였다.
“괜찮아, 무서웠나?”
다정한 목소리에 이리스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손이 남자의 옷자락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아슬란은 이를 갈았다.
‘망할 새끼.’
그의 주먹이 재빠르게 다가오는 헥사의 거대한 발을 후려쳤다. 그러자 돌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헥사의 발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헥사가 불러들인 다른 마수들이 아침부터 저에게 이상하다 싶을 만큼 달라붙었다. 그것들을 상대하다 아슬란은 곧 헥사가 제 주의를 돌린 채 다른 곳으로 날아간 것을 알아차렸다.
곧바로 뒤쫓았더니 헥사는 어느 작은 산속의 마을을 제가 불러낸 작은 마물들과 함께 박살 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도착한 순간, 아슬란은 제 마법의 흔적과 함께 성력을 느꼈다.
저와 상극인 힘이면서도 그동안 그가 아끼고 품었던 힘의 흔적에 다시 아슬란의 이성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성녀가 여기 있다.
마수의 본성이 그의 안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감히 성녀를 노리다니. 저 미천한 것을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어째서 성녀가 여기 있는지는 그 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아직 자유로운 아슬란의 한쪽 손이 바닥에 떨어진 헥사의 날개 끝을 붙잡았다. 산만 한 크기의 새와 인간보다 좀 더 큰 정도의 팔. 하지만 다음 순간 헥사의 날개는 가죽이 뜯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찢겨 허공으로 던져졌다.
캬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헥사는 남아 있는 날개를 퍼덕거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하늘로 날아오른 마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헥사를 따라가려던 아슬란은 곧 제가 무엇인가를 끌어안고 있던 것을 기억했다.
‘성녀.’
헥사를 잡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아슬란은 헥사의 추적을 포기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제 품에 안았던 그녀를 소중히 내려놓았다. 일단 왜 여기에 있는지부터 물어야….
제가 내려놓은 것을 보던 아슬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뭐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는 그의 성녀가 아니었다.
***
“성녀님!”
그 목소리에 순간 몸의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발밑이 꺼지며 심장이 추락한다. 시야가 어두워짐과 동시에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맙소사. 누가, 누가 날 알아본….
“성녀님이 오셨다!”
“새로운 성녀님이 이곳에 오셨대!”
“……?”
사람들은 멍하니 서 있는 내 옆을 스쳐 달려갔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저건 뭐야?”
내가 바라본 곳에는 화려한 마차가 걷는 것보다도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과 번쩍거리는 장식, 새로이 색을 칠해 화려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것은 분명 원래 짐마차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벽이나 지붕 하나 없이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만 있는 마차는 없을 테니까. 그 마차 위에 있는 의자에는 한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딱 보기에도 그 여자가 입은 옷이 무엇을 따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지 하나 없는 순백색에 금실로 수놓인 복잡한 문양의 자수들.
“성녀의 예복….”
여자가 입은 옷은 내가 매일같이 입고 다녔던 옷을 따라 한 것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이 이번에 새로 나타났다는 성녀님이신가?”
“그런가 봐. 트리온에서 마수의 독에 당한 수백 명을 한 번에 치료하셨대!”
“허어, 그것 엄청나네. 그럼 우리도 어서 가 보자고. 진짜 성녀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게 아니잖아?”
그러는 사이 여자는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 푸른 성력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성력이다!”
“성녀님이셔!”
사람들은 성력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거나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개중에는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대신전에서도 사람들의 광적인 믿음을 보았건만, 이곳은 더욱더 그 믿음이 굳건한 것 같았다.
‘…더 위험한 곳이니까.’
가장 안정된 땅이라는 대신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주 마수가 출몰하는 곳. 이곳에서 성력은 그들을 보호하는 절대적이며 하나뿐인 힘이다. 그러니 그만큼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벨리나가 계속해서 성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지.’
그녀가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힘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그녀는 인간들이 이 땅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존재였으니까.
나는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여 주고 있는 성력은 원래 내가 갖고 있던 것만큼 엄청난 양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중급 신관 정도의 성력은 되어 보였다. 어차피 성녀나 상급 신관들이라 해도 그 힘을 항상 다 끌어 쓰는 것은 아니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여자의 힘은 성녀나 상급 신관들만큼이나 강력해 보일 것이었다.
‘보여.’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여자의 손에 맺혀 있는 성력이 가늘게 다른 곳과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았더니 그 끝에는 마차의 마부가 있었다. 여자의 성력은 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원래 신관이었던 자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대신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끔 등장한다는 가짜 성녀인 것이다. 새로이 나타났다는 성녀가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금은 그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시기일 것이다.
성력의 근원인 마부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마수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자들은 성녀님을 따라오시오!”
사람들은 그 말에 마차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멀어지는 가짜 성녀를 보며 몸을 돌렸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던지는 사랑과 애정이 원래 이벨리나의 것임을 알고 있다. 다른 자를 향하는, 그리고 앞으로는 이리스를 향할 사람들의 마음을 보며 나는 어쩐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
“이건 뭐야?”
그 말에 이리스는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숨을 삼켰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수라는 것도 두려워 죽을 것 같은데 심지어 헥사를 주먹으로 두들겨 패고 날개를 찢어발긴 마수다. 막 나타났을 때는 구해 주려는 듯이 끌어안고 날아오르더니 이제는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