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10
트리온에 가까워질수록 나와 라트반은 마을에 다가갈 수 없었다. 언제 한번 이른 새벽에 작은 마을로 들어가려 했다가 입구 근처에 붙은 수배령을 보았다. 나와 라트반의 생김새에 대해서 적혀 있던 수배령의 밑에는 우리의 죄목도 함께 적혀 있었다.
내 죄목이야 과거 이벨리나가 했던 짓을 기반으로 열 배쯤 부풀려져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라트반의 죄목의 경우에는 누가 보면 욕정의 마수라고 생각할 정도의 낯 뜨거운 내용들로 가득했었다.
그 중에서도 끔찍한 것은 그가 기사단장의 위치를 이용해 대신전 안에 지내는 어린 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소리였다. 내가 그것을 잡아 찢으려 하자 라트반은 내 손을 잡아 말렸다. 찢으면 우리가 지나갔다는 흔적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라트반의 손도 미약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마을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식량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이야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지만 산짐승을 잡고 열매를 따 먹는 것으로 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하루 종일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이 정도인데….’
나는 흘끔 라트반을 보았다. 내 앞에 서서 걷고 있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
‘독도 이전보다 더 영향을 끼치고 있을 테고.’
그러니 더욱 몸을 챙겨야 할 때, 라트반은 오히려 제 먹을 분량을 나에게 넘겼다.
“저는 괜찮습니다. 전투 중에는 며칠씩 굶는 일도 허다했는걸요.”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계속해서 이런 식이면 더 빨리 한계에 다다를 것은 분명했다.
‘식량을 구해야 해.’
그러려면 마을에 가는 수밖에 없다. 마침 산자락을 타고 내려올 때, 멀리 보이는 큰 도시의 바깥 공터에 장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도시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지만 바깥에서 열리는 저런 장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라트반, 아무래도 식량을 사 와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기다리시면….”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내가 가겠어요.”
“안 됩니다!”
당연하게도 라트반은 곧바로 반대했다. 하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라트반, 어차피 둘이 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죠? 다들 함께 다니는 남녀를 찾느라 눈이 벌게져 있으니까요. 어딜 가도 두 명이면 가장 먼저 검문을 받아요. 그러면 따로 움직여야 하는데…. 라트반 당신의 체격은 너무도 눈에 뜨이기 쉬워요.”
“…….”
내 지적에 라트반은 말을 잃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워낙에 키가 큰 데다가 몸이 좋은 라트반이다. 누가 보아도 기사의 체구인 그는 로브를 뒤집어쓴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았다.
라트반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외모는 제 체격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입니다. 로브로 얼굴을 가린다고 해도 쉽게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역시나, 그 점을 지적할 것 같았다. 역시 포기하겠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는 라트반에게 나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요.”
“쌉니다, 싸요! 아침에 막 따 온 사과입니다!”
“구워서 바로 가져왔어요. 아직도 빵이 따끈합니다!”
공터에는 나무로 된 좌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좌판 위에는 온갖 채소와 과일은 물론 계란이나 빵, 우유 같은 먹을 것들로 가득했다. 또한 옷을 팔고 있는 사람, 빗이나 장신구 같은 잡화를 팔고 있는 사람도 볼 수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칼을 갈아 주는 사람에 꽃을 파는 사람, 단 과자를 파는 사람 등등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손님들을 불렀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공터의 가장 끝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훅 비릿한 냄새가 몰려왔다. 그곳에는 임시로 만든 울타리와 함께 여러 종류의 가축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막 도축된 고기를 쌓는 사람들을 흘긋 살펴보며 울타리 근처로 갔다.
사람들이 정신없는 틈을 타, 나는 울타리 옆으로 다가가 슬쩍 손을 뻗어 바닥에 있는 짐승들의 분변을 슬쩍 옷에 발랐다.
“으….”
곧바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것을 적당히 여기저기 옷에 묻히고는 잠시 후 털어 내자 적당한 얼룩과 함께 냄새가 남았다.
그러다 나는 가축들의 여물통을 바라보았다. 담겨 있는 물 위로 내 모습이 비쳤다.
‘완벽한걸?’
그곳에는 산발이 된 머리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더러운 꼴을 한 사람이 보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행색에 쓴웃음이 났다.
예전에 대신전 밖으로 나와 도시를 돌아다닐 때 유심히 본 것 중 하나가 시장 구석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기르는 가축들을 몰고 와 그 자리에서 잡아 고기를 파는 사람들은 그다지 깨끗한 꼴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계속 동물들을 끌고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그들에게서 조금 냄새나고 더러운 꼴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무심히 보던 것이 생각이 났다.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
내가 그들로 변장하기 위해서 갖고 있던 단검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으로 마구 흐트러트린 다음 개울로 내려가 진흙을 덕지덕지 붙이자 라트반은 정말로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며 나를 말렸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어 보라고 한 다음에 하던 일을 마저 했지만. 잠시 후, 개울물에는 엉망인 꼴을 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좋았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정체를 알아보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구석구석 뜯어봐도 성녀는 온데간데없고 험한 일을 하다 막 돌아온 사람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옷도 적당히 찢어 더럽히면 거지로 오해받는 데는 조금의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라트반?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리고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전날 먹다 뱉었던 열매를 꺼냈다.
“아….”
그것을 알아본 라트반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요. 어제 이거 먹다가 얼굴이 부었잖아요. 아픈 것도 없고 조금 저릿하다가 몇 시간 후에는 되돌아오긴 했지만.”
그때 개울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어쨌든 이런 모습에 이 열매까지 먹으면 잡아다 앉혀 놓고 제대로 보지 않는 한, 나라는 것을 알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안 됩니다. 그런 걸…!”
라트반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열매를 빼앗으려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그것을 냉큼 씹어 삼키자 신맛과 함께 혀뿌리 쪽에 아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뱉으십시오!”
그는 차마 나에게 강제로 뱉어 내게 할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붙들었다. 나는 그런 라트반의 팔을 붙잡고 달래듯 토닥였다.
“이러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연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향했다.
“아쉬워요?”
내가 물은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차피 도망치는 신세에 긴 머리카락은 귀찮기만 하고…. 라트반?”
라트반은 갑자기 나를 꽉 끌어안았다.
“왜. 왜 그래요? 라트반? 놔줘요. 당신 옷 더러워지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그를 밀어내려던 나는 그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가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더 밀어내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햇살 아래에 반짝이는 금색의 타래는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놔둔 채, 진흙투성이인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 후 라트반이 나에게 속삭였다.
“저는 그저…죄송할 뿐입니다. 제가 모자라 당신께서 이런 모습이 되도록 한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라트반을 끌어안았다.
“하….”
이곳에 오기 전의 일을 떠올리던 나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변장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것이 없다. 나는 재빨리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꾀죄죄한 내 모습과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눈치였다.
서둘러 딱딱한 빵과 마른고기, 오래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을 산 다음 사탕을 팔고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라트반도 은근히 단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계속해서 힘들게 산을 걷는데 단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을 것 같았다. 단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전 기사네 뭐네 하더니 결국 계집 다리 사이에 빠져 홀랑 넘어갔다는 거 아니야? 그 고고한 척하는 기사님들이라고 해 봤자 결국은 다 똑같다는 거지.”
“그러게. 게다가 대신전 사정을 좀 안다는 사람 말 들어 보니 대신전의 신관들에게도 손을 댔다던데? 신관들뿐만이 아니래. 수습 기사들 중에서도 맘에 드는 자들을 밤에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