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ing in the tower alone RAW novel - Chapter (2)
2화. 여기 몇 층이야?
2화. 여기 몇 층이야?
우드득.
바닥에서 잤더니 몸이 너무 뻐근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은 밤이 없다는 것. 그래서 해가 적당히 내리는 곳에서 자면 쾌적한 온도에서 잘 수 있다.
어푸!어푸!
세준이 연못에서 간단히 세수를 했다.
그리고
뽀득.뽀드득.
오늘 먹을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씻었다.
“뭔가 얼굴 닦은 물로 씻으니까 이상한데?”
아그작.
세준이 찝찝함을 뒤로하고 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우적우적.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단맛.
‘행복하다.’
출근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 단물이 다 나올 때까지 씹는 여유를 가져본 적이 있었나?
아그작.
우적우적.
해가 내리는 마른 흙 위에 가방을 깔고 앉아 하염없이 고구마를 씹었다. 씹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 심장이 천천히 뛰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신은 분명 조난을 당했고 며칠이면 먹을 게 떨어진다.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상하네.’
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자신의 마음이 신기했다. 그래도 초조한 것보다는 나았다.
“고 대리님이 ‘세준 씨 잠깐 볼까’라고 할 때마다 정말 심장이 쫄깃했었지. 아. 평화롭다.”
세준은 예전에는 쉽게 느낄 수 없던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고구마를 먹었다.
“다음 메뉴를 먹어볼까.”
고구마를 다 먹은 세준이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씹었다.
톡.
방울토마토의 껍질이 세준의 어금니가 위아래로 누르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방울토마토의 즙이 터져 나오자 새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다…”
평소 자신이 먹는 방울토마토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맛있었다. 어쩌면 허기로 자신의 미각 세포가 극도로 예민해졌는지도 모른다.
오물오물.
세준은 방울토마토의 맛에 오롯이 집중하며 열심히 씹었다. 하지만 방울토마토는 오래 씹는다고 맛이 더 좋아지지는 않았기에 방울토마토 5개는 금방 세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식사를 다 먹은 세준이 오늘의 일과를 시작했다.
천장의 구멍 바라보기.
“······”
세준은 멍하니 천장에 난 구멍만 바라봤다.
“아···심심하다.”
물론 중간에 한 번씩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천장을 보면서 하는 일. 몇 시간 동안 천장만 보고 있으니 좀이 쑤셔서 미칠 것 같았다.
“뭐 할 거 없나?”
세준이 두리번거리며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농작물에 물 좀 줄까.’
세준이 생수병에 물을 담아 파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고구마에 물을 주었다.
졸졸졸.
“빨리 자라라. 거대하게 자라라. 아빠 배고프다.”
연못까지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농작물이 심어진 땅을 흠뻑 적셨다.
그때
꼬르르륵.
배에서 연료 부족을 알려왔다.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금세 배가 고파졌다. 세준은 농작물에게 주고 남은 생수병의 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벌컥.벌컥.
배가 조금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준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천장의 구멍을 바라봤다.
그렇게 몇 시간.
“……”
세준이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삐비빅.삐비빅.
알람이 울렸다.
[5월 12일 오후 10시]이곳은 해가 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야 할 시간을 맞춰뒀다.
“잘 시간이네.”
세준이 일어나 취침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별건 없다.
탁탁.
누울 곳의 흙바닥을 고르게 만들고 해가 보이지 않게 가방을 머리에 쓰면 취침 준비 끝.
생각보다 잠은 잘 왔다.
***
세준의 기준으로 한밤중.
쿠우우웅…
쿠우웅…
쿠웅…!
세준이 땅을 흔드는 진동에 잠에서 깼다.
“으음…뭐지?”
그때
쿠웅!
다시 한번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가까운 거리였다.
“…!”
세준이 서둘러 얼굴에 쓴 가방을 벗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목격한 기묘한 광경.
“이…이게?!”
동굴의 천장으로 내려오는 빛이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키이이익!
카아악!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기괴한 표효가 들려왔다.
그때
쿠아앙!
거대한 검은 용이 하늘에서 나타나 포효를 질렀다. 홀로 고고히 푸른빛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검은 용은 포효를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용의 포효에 겁을 먹은 건지 지상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세준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몬스터라니…이럴 리가 없는데…”
세준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세준은 내심 이곳이 탑의 1층의 어딘가일 거라고 생각했다. 온종일 동굴을 비추는 빛도 탑 1층의 샹들리에 조명이 아닐까 믿고 싶었다. 그러나 탑의 1층에는 몬스터가 없다.
즉, 세준이 있는 곳이 탑의 1층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거기다 해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블루문.
모든 층은 온종일 해가 떠 있다. 하지만 층마다 주기적으로 해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시간이 있다. 헌터들은 이 현상을 블루문이라고 불렀다.
블루문 때는 몬스터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고 강해지기 때문에 헌터들도 블루문이 발생하는 층에는 가지 않는다.
‘블루문은 10층 이상의 탑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데…’
세준이 있는 곳이 10층 이상이라는 의미. 그래도 구조될 가망성은 있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어.’
그건 바로 용.
10년 전 탑이 생긴 이후 지구에서 가장 세력이 큰 피닉스 길드가 최근에 37층을 클리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31층에서 37층까지는 길드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중이라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30층 아래로는 돈이나 홍보를 위해 꽤 많은 클리어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알려진 정보로는 2~10층은 스켈레톤, 11~20층은 고블린, 20~30층은 오크가 출몰한다. 그리고 31층부터는 영상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거미 몬스터들이 나온다고 했다.
이건 여러 헌터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한 얘기이기에 믿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에 용은 없었다. 심지어 탑에서 용 비슷한 도마뱀 몬스터가 나왔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
‘여기 몇 층이야?!’
세준이 머리를 잡고 절규했다. 자신은 어쩌면 최상위 헌터들도 도달하지 못한 층에 조난된 상태일 수도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세준이 복잡한 마음으로 푸른빛이 내리는 천장의 구멍을 바라봤다.
하지만 전과는 목적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누군가가 지나가길 바라며 바라봤다면 지금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용을 본 이후로 세준은 이곳에 몬스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삐비빅.삐비빅.
[5월 13일 오전 6시]알람이 울렸다.
세준은 밤새 경계를 서느라 조난 4일 차를 뜬 눈으로 맞이했다. 다행히 블루문은 새벽 4시 정도가 됐을 때 다시 기존의 노란색 빛으로 변했다.
5시간 후.
“……”
경계를 서던 세준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어제 일어난 이후로 줄곧 천장을 보며 경계를 서고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으으…물…”
세준은 일어나자마자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더듬더듬 옆에 놓아두었던 생수병을 집었다.
그리고
꿀꺽.꿀꺽.
물을 원샷했다.
“캬아! 이제 좀 살 거 같다.”
꼬르르륵.
갈증이 채워지자 허기가 올라왔다.
뽀드득.뽀드득.
연못에 간 김에 간단히 세수를 하고 고구마와 방울토마토 5개를 씻었다.
우적우적.
세준이 고구마를 씹어 먹으며 천장의 구멍을 바라봤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41층 이상이라면 사람이 올 확률은 거의 0%.’
그렇다면 혼자서 살아남아야 했다.
세준이 농작물을 심어둔 밭을 바라봤다.
‘물이나 줄까.’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농작물이 더욱 각별해 보였다.
졸졸졸.
“너희들이 힘을 내줘야 해.”
“고구마야 거대하게 자라라.”
“방토야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라.”
“파야…음…너는…그냥 무럭무럭 자라라.”
물을 주며 농작물들에게 좋은 말을 해줬다. 뉴스에서 식물들에게 음악도 들려준다는데 이정도 덕담은 못해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물을 주고 세준이 자리에 앉아 다시 천장의 구멍을 바라봤다.
하지만 금세 지루함이 밀려왔다.
“저거나 먹을까?”
세준이 첫날 파의 뿌리를 심으며 뜯어냈던 파의 이파리가 보였다.
“으…맵네.”
파를 입에 넣고 씹자 세준의 입에 금세 파 향과 함께 알싸한 매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틀 정도 볕에 말려 뒀기에 수분이 날아가며 맛이 더욱 집약됐다.
우물우물.
세준은 삼키지 않고 계속 씹었다.
‘파에도 단맛이 있어.’
세준이 계속 씹자 매운맛이 지나가고 파에 숨어있던 단맛이 조금씩 올라왔다.
‘좋아!’
우물우물.
세준이 파를 먹으며 오후의 나른한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삐비빅.삐비빅.
조난 4일 차 밤이 됐다.
“오늘은 괜찮을까?”
세준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새벽에 몬스터들이 날뛴 것은 블루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블루문이 아닐 때는 몬스터들이 친절해지는 게 아니었다.
세준은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잠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춥겠지만,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해 아래서 자지 않아도 되기에 가방을 접어 베개로 썼다.
그리고
커어어.
세준은 가방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었다.
세준이 잠든 사이.
뿌드득.
땅에 뿌리를 내린 파가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
삐비빅.삐비빅.
알람이 울렸다.
[5월 14일 오전 6시]조난 5일 차의 생존이 시작됐다.
세준의 눈이 번쩍 떠졌다.
“흐아악! 왜 이렇게 가뿐하지?”
세진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항상 일어날 때 몸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몸이 너무 가벼웠다. 거기다 해가 없는 곳에서 자서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춥지도 않았다.
“회사 다니면서 쌓였던 피로가 풀려서 그런가?”
세준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연못으로 갔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오늘 먹을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집었다.
“으음…”
오늘 먹을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집자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던 식량의 절반이 사라졌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절반만 먹어야 하나.’
세준이 고민하며 집은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씻었다.
뽀드득.뽀드득.
그리고
뽀각.
고구마를 반으로 잘라 고구마 반쪽과 방울토마토 3개는 다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지금도 먹는 게 없는데 더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쭉 빠졌다.
“하아.”
세준은 한숨을 쉬며 해가 잘 들고 평평한 바위가 있는 자신의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이 그림자 아래에 있었다.
“응? 뭐야?”
항상 비춰야 할 해를 어느새 세준의 키만큼 자란 파가 가리고 있었다.
분명 어제 물을 주며 살펴봤을 때는 심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자기 전에도 변한 점은 없었다. 파가 새벽 사이에 엄청나게 자라버렸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세준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파의 뿌리가 있는 흰 부분도 손목 굵기 정도로 굵어져 있었다. 세준이 새로 자라난 파의 이파리 하나를 잡고 뜯었다.
“어?!”
파의 이파리는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릴 정도로 약했지만, 엄청나게 질겼다.
“흐압!”
뿌드득.
세준이 힘을 줘 이파리를 뜯어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기후나 서식지에 따라서 식물의 모습이 다르게 변한다고 하더니 그런 모양이었다.
“맛은 어떠려나?”
모양이 변한 만큼 맛도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준이 파의 이파리를 입에 넣고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