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염혼독귀(2)
‘어차피 독과 관련된 실험은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에서 이루어지지. 즉 지하실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야.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는 지상의 건물에서 이루어질 수 없어.’
그러니 이곳 어딘가에 지하실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건물 안을 꼼꼼하게 뒤진 결과 마침내 지하실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해 냈다.
거적으로 가려진 곳 밑이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문이었다.
비밀문에 거적을 붙여서 얼핏 보면 땅에 붙은 거적처럼 보이지만 들어 올리면 지하로 통하는 문도 같이 올라간다.
인기척을 죽이고 지하통로로 들어가는데 통로를 밝히는 불이 하나도 없다.
‘뭐야? 등잔불이 하나도 없네. 횃불이나 등불을 들고 들어왔어야 하는 거나?’
작은 등잔불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캄캄하게 앞이 안 보이는 지하통로.
‘하지만 축광석이 있어서 다행이야.’
축광석을 꺼내자 희미하게 보이는 지하통로.
축광석 빛에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지하통로가 생각보다 길다.
‘뭐야? 왜 이렇게 길어?’
조금 이상해서 지하통로 벽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사람이 깎아서 만든 벽 같지가 않다.
손으로 만지면서 확인해도 확실히 사람이 깎아 만든 매끄러운 질감은 전혀 없다.
모양도 자연동굴처럼 보이지만 표면은 분명 자연 상태의 암석과 흙이다.
‘자연적인 동굴벽처럼 보이는데? 그럼 지금 이 지하통로가 처음부터 자연동굴이었다는 건가?’
조금 묘한 지하통로를 따라 꽤 멀리 이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멀리 밝은 빛이 보인다. 등불을 켜고 있다는 뜻이다.
‘등불?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잖아. 염혼독귀가 저기에 있겠군.’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빛이 나오는 곳을 확인한다.
등잔불이 여러 개 불을 밝히고 있는 석실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한 사내.
오십이 넘어 보이는 얼굴만 봐도 염혼독귀임을 알 수 있다.
깡마른 얼굴에 좌우로 기른 콧수염. 움푹 들어간 눈. 꽤나 매서운 눈매를 가진 놈이다.
석탁 위에 사람이 한 명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상태는 참으로 보기 끔찍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온몸 곳곳이 녹아내리고, 곪아터진 상태다.
눈은 붉게 충혈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을 내고 있었다. 고통에 겨운 신음임이 분명하다.
“끄으윽… 끄윽!”
석탁에 묶인 사람을 살펴보면서 뭔가를 적는 염혼독귀.
“흠, 살이 녹아 뼈까지 독에 중독되는 시간이 일 각. 많이 단축되었군. 부시산염독의 성능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염혼독귀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를 적는다.
‘저, 저 새끼가 지금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어?’
역시 잔인한 놈이다. 사람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을 하다니. 저러니 내가 저놈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잠시 염혼독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해 봤지만 길게 고민할 것도 없다.
사람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이나 하는 놈은 일단 잡아서 족친 후에 죽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니 일단 제압부터 해야지.
놈이 제대로 방어하기 전에 큰 거 한 방을 날려서 일시에 제압할 생각이다.
‘일단 귀마개부터 하고.’
귀마개를 해도 청각 감각을 끌어올리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대로 강기로 귀를 막으면 강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귀마개로 귓구멍을 막고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면서 튀어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제 됐군. 놈의 염혼술에 대비도 끝났고.’
그렇게쏜살 같이 튀어나가서 검을 꺼낸 후에 놈의 어깨를 향해 일격을 날리는데.
어라?
– 팅─ 쉭쉭쉭─
“우웃!”
중간에 뭔가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나를 향해 날아드는 물체들.
따질 것도 없이 암기 아니면 독이다.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
– 데구르─
살기 위해서는 창피고 뭐고 없다. 예상치 못한 암기라서 대응할 시간도 없다.
일단 몸을 얼른 눕혀서 땅에 구르면서 암기를 피한다.
– 펑펑─
그 순간 터지는 암기인지 독인지 모를 물체들.
“크흣!”
역시 독이 포함된 암기다.
“저 새끼가 이런 곳까지 함정하고 기관을 설치하다니. 염혼독귀 저놈을 내가 너무 만만히 봤네.”
놈의 작업공간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경보장치와 기관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줄이야.
역시 강호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놈답게 만약의 상황까지 대비한 기관장치를 꼼꼼하게 설치해 두었다.
“침입자인 건 분명한데. 내 이름을 아는군. 그럼 알고 왔다는 이야기인데, 네놈은 누구지?”
“일단 네놈을 제압한 뒤에 알려주지.”
– 부웅─
다시 한번 놈을 향해 일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날리는데 놈이 석탁의 어딘가를 만진다.
– 쉬익─
갑자기 허공에서 나를 향해 내려오는 거대한 물건.
“우웃!”
– 데구르─
이번에도 개처럼 뒹군다. 쪽팔림이고 뭐고 없다. 일단 피하고 봐야지.
– 콰쾅─
바닥에 떨어지는 물체는 수십 개의 창이 꽂힌 물건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수십 개의 창에 꼬치가 될 뻔했다.
“이, 새끼가 이 좁은 공간에 뭘 이리 많이 설치해 놨어.”
내가 분노를 터트리는데 염혼독귀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한다.
“둘 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기관인데 피해? 이놈 고수로군.”
“그래, 고수다 어쩔래.”
울분을 토하면서 몸을 일으킨 뒤에 다시 놈을 향해 달려드는데, 다시 뭔가 나를 향해 쏟아진다.
“빌어먹을 기관장치도 많네.”
– 쉭쉭─ 휘릭─
암기를 피해 놈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어라? 놈이 안 보인다.
“뭐야? 여기가 막다른 곳이 아니었어?”
나와 반대편을 향해 사라지는 염혼독귀. 내가 고수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도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도주를? 내 손에서 도주가 가능할 것 같냐.”
– 휘릭─
나도 반대편 동굴을 향해 몸을 날린다.
– 휙휙─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른 신법을 자랑하는 나.
놈과 거리가 좁혀진다. 점차 좁혀지는 거리. 이제 일 장 정도로 좁혀진다.
– 콰직─
막다른 동굴처럼 보이는가 싶었는데, 그건 문이었다.
놈은 문을 열 시간도 없자 그대로 문을 부수며 튀어나간다. 갑자기 동굴 앞이 밝아진다.
– 휘릭─
“뭐야? 반대편은 산속의 숲이었던 거야? 이놈이 산속을 동굴을 이용해서 장원을 지은 거였군.”
작은 야산에 있는 숲이다. 위치로 봤을 때 목진장 장원 뒤에 있던 작은 야산의 뒤편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놈은 동굴 입구를 풀로 위장한 문으로 감추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염혼독귀는 산에 실험하기 좋은 동굴이 있는 것을 알고는 그 동굴이 끝나는 맞은편에 목진장을 지어서 활용한 것이다.
평소에는 목진장을 통해서 들락거리지만 실험할 때나 비밀리에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숲속의 동굴을 출입구로 사용하면서 비상구로 감추어둔 것.
– 휙─ 부웅─
결국 놈을 따라잡으면서 검을 날리자 놈도 내 공격을 눈치 채고 몸을 피한다.
“빌어먹을 새끼가 공격도 잘 피하네.”
– 찰칵─
뒤로 물러난 놈이 손에 뭔가를 끼운다.
쇠로 된 수갑.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이 손등에 박힌 수갑이다.
저 칼날은 일반적인 칼날이 아니라 극독이 묻은 독조일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중독되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무기다.
“내 신법이 결코 느리지 않는데 나를 따라잡다니. 더구나 기관장치 공격에 조금의 부상도 입지 않고. 무서운 놈이로군.”
놈은 나를 경계한다. 놈이 나를 경계하니 나 또한 놈을 경계하게 된다.
‘저 새끼가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또 어떤 암수를 감추고 있을지 몰라.’
염혼술도 몰랐다면 당했을 것이고, 내가 무공이 높지 않았다면 아까의 함정기관에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놈의 독수 역시 일반적이 수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조심할 수 있다.
그러나 염혼독귀에게 또 어떤 숨겨진 무기가 있을지 모른다.
놈은 끊임없이 이것저것을 만드는 놈이기 때문이다.
‘독침, 독연, 연막을 비롯해 각종 무기를 숨기고 있을 거야. 그리고 놈이 내게 상대가 안 된다 느끼면 분명 도주하겠지.’
물론 신법은 내가 더 빠르다. 무공도 더 높고.
하지만 백천막 막주 양중휘가 당한 것처럼 염혼독귀의 간계는 뛰어나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슨 방법을 써서 놈은 도주할 기회를 잡을 것이다.
놈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는 분명 시간을 벌 수 있는 물건이 있을 테니까.
‘간계가 심한 놈을 상대하는 방법은 놈의 간계가 먹힌다는 확신을 주어서 놈을 방심시키는 것이지.’
놈은 내가 염혼술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 분명 놈은 염혼술을 비장의 무기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염혼술이 안 먹히는 것을 안다면?
놈은 아직 꺼내지 않은 또 다른 비장의 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든 도주용 무기가 되든 분명 놈은 호락호락당하지 않겠지.
벌써 이곳까지 도주하는 것만 보더라도, 장원의 비밀통로에 지하동굴에, 별도의 비상구에, 연구실 안의 여러 기관장치까지 이중 삼중으로 철저하게 대비한 놈이다.
놈은 염혼술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도 해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놈의 염혼술을 역으로 이용해야지.’
검을 들고 놈을 향해 다가서자 놈의 눈빛이 바뀐다.
그 눈빛 깊은 곳에 자신감이 엿보인다. 저건 분명 염혼술로 나를 잡을 수 있다는 눈빛일 것이다.
내가 검을 들고 놈을 향해 공격하려고 하자 놈이 뭔가를 던진다.
‘피해야 해.’
놈이 던지는 것은 무엇이든 위험하다.
자칫 검으로 부수기라도 했다가 산염독 종류라면 액체인 독을 뒤집어쓰고 몸이 녹아내릴 수 있다.
놈에 대해서 잘 알기에 놈의 무서움도 아는 것이다.
– 휙휙─ 펑─
놈이 던진 물건이 깨지면서 터져 나오는 것은 액체. 역시 독액이다.
“네놈이 독에 달인이라는 사실은 안다. 독은 안 통해, 이 새끼야.”
– 부웅─ 캉─
내가 독을 피하면서 놈에게 일 검을 날리자 놈은 수갑으로 내 검을 막는다.
“크흣!”
– 촤자작─
놈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일 장이나 밀려나면서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크음, 이 정도 내공이라니?”
놈의 눈이 희번득거리면서 빛난다.
그 눈빛이 비장의 술수인 염혼술을 쓰기 위한 것임을 짐작한다.
“이번에는 네놈의 팔을 잘라주마.”
휘청거리는 놈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날리려는 순간 놈이 던지는 물건들.
이번에는 한두 개가 아니다.
– 쉭쉭쉭─
암기통을 사용했는지 수십 개의 독침이 놈의 소매 안에서 발사된다.
– 팅팅팅팅─
놈의 독침을 쳐내며 놈을 보는 순간 놈의 눈빛 색이 바뀌었음을 파악한다.
순간 아차 하는 심정이 든다. 놈이 염혼술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흐읏!’
놈의 눈을 피하면서 놈의 턱 선만 보고 공격을 들어간다.
정확하게는 놈의 입술을 보고 공격한다. 그리고 놈의 입술이 열린다.
‘현월심법─!’
현무문 비전무공을 이용해 호신강기를 일으켜 귀를 보호한다.
놈이 입술을 열어 염혼술을 펼치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놈이 지르는 소리의 음파를 기감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하게 진동하는 공기의 파장이 느껴진다. 놈은 강한 내공을 실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놈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나는 공격을 순간적으로 멈춘다.
그 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만들어지는 놈의 미소.
놈의 독 묻은 수갑이 동작을 멈춘 내 심장을 향해 날아든다.
놈의 수갑에는 분명 절독이 묻어있을 것이니 찔리거나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 것이다.
놈의 수갑에 달린 손톱 모양의 칼날이 내 심장에 두 자 근처까지 접근하는 순간까지 나는 동작을 멈추고 있었고, 놈의 얼굴에는 승리의 확신감에 가득 찬 미소가 만들어진다.
놈은 눈꼬리까지 내리며 웃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독조에 죽을 것임을 거의 확신한 상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