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98
98화. 검각산행(1)
“마지막으로 질문 있나?”
내가 조용히 손을 들자 모두 내게 시선을 돌린다.
“특작대가 파괴하려는 지옥혈왕의 신체 말입니다. 그 신체 주인이 누구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신체 주인이라니?”
금진교의 눈이 커진다. 교관들의 눈빛도 날카로워진다.
“지옥혈왕은 22년 전에 부활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도 몸을 바꾸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혈왕의 몸은 그때 실패로 썩어 사라졌을 것이니, 지금 지옥혈왕의 신체는 본래 지옥혈왕의 몸이 아니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흠, 자네가 22년 전 일을 어찌 아는 건가?”
“예전에 개봉을 지나는 한 이름 모를 협객에게 들었습니다.”
금진교의 눈에 잠시 의혹이 눈빛이 일렁거렸지만, 지옥혈왕 부활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무림에서도 유명한 일이라 대단한 비밀은 아니다.
그러니 꼬치꼬치 따질 일은 아니다.
“흠, 맞네. 당시 지옥혈왕은 신체를 바꾸는 일에 실패를 했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했지. 그런데 그때 개천혈교에서 놀라운 묘수를 찾아내 지옥혈왕의 몸을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네.”
“그 몸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나는 그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악가장의 주인 악주필이다.
악주필의 몸으로 갈아타려던 지옥혈왕은 마령이혼환을 내가 먹어치우는 바람에 마령이체술을 펼칠 수 없었고,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몸을 바꿔 죽음은 면한 상태다.
그 방법이 강시법이라는 것까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상태.
백정맹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 지옥혈왕이 바꾸려 했던 몸이 누구의 몸인지는 모르네. 당시 중원 땅 곳곳에서 수십 명의 실종사건이 있었네. 그 실종 사건을 조사한 결과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개천혈교에서 사람들을 납치했다는 정황이었지. 그래서 그때 일어난 실종사건의 피해자들이 혹시 지옥혈왕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일세.”
당시 납치사건이 수십 건이나 있었다고?
이건 내가 몰랐던 이야기인데.
당시 나는 내 임무를 완수하느라 바빴고, 임무 완수 후에는 놈들에게 쫓기다가 죽었으니 전후 사정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납치가 수십 건이라고?
그럼 악주필은 그 수십 명 중 한 명이고?
그렇다면 백정맹은 악주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
“혹시 납치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같은 것은 없었나요? 예를 들어 무슨 병이나 절맥을 앓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요.”
“없었네. 삼십대 나이의 남자들이라는 점 외에는.”
이것 봐라. 그럼 백정맹은 지옥혈왕의 마령이체술 대상이 현천절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럼 악주필과 악천군에 대해서도 모르고?
이건 생각지 못한 변수다.
백정맹은 지금 지옥혈왕의 누구 몸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나 역시 적안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정보이기는 하다.
그러니 지금 지옥혈왕의 신체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적안혈수와 세작을 만났던 나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뭔가?”
“특작대가 지옥혈왕의 몸을 파괴시키면 확실하게 지옥혈왕은 부활하지 못하는 것이 맞습니까? 특작대가 지옥혈왕의 몸을 파괴해도 지옥혈왕이 부활하거나 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냐는 겁니다.”
내 질문에 잠시 당황하는 금진교. 표진투의 눈빛 역시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금진교는 곧 마음을 정리한 후에 차분하게 대답한다.
“특작대가 임무를 성공하면 지옥혈왕은 부활하지 못하네. 신체가 파괴되었으니 부활할 수가 없지.”
금진교는 분명 지옥혈왕의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즉시 확고한 대답을 했어야 하는 질문 아닌가? 그런데 당연한 질문에 고심하다가 대답을 해?’
역시 수상하다. 뭔가 감추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다.
* * *
희의가 끝난 후 사흘 동안 여정을 준비하는 내내 표진투가 한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무려 백정학관의 최고인재 32명 중에서 다섯 명을 선발해 놓고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다니.
그럼 특작대를 왜 보내는 건데?
정말로 자살특공대인가?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백정맹에서 투자한 것이 너무 많잖아.
무려 반년이나 투자한 건데.
흑림에 귀독곡 인재까지 섭외했고, 정파 사파 녹림이 연합을 해서 운영했잖아.
더 의문인 것은 성공해도 지옥혈왕의 부활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표진투의 말.
그러나 표진투에게 그 해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임무부터 성공하고 봐야지.
내 목표는 임무를 성공하고 개봉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흘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깊은 밤 다섯 명의 특작대가 백정맹을 조용히 떠났다.
비밀 임무라서 백정맹 사람들도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낙양을 떠나 마침내 도착한 한중.
“오늘은 좀 제대로 쉴 수 있겠네. 관도에 있는 객잔은 너무 허름해. 씻는 것이 안 되잖아. 오늘은 좀 씻을 수 있겠네.”
당비취는 한중까지 오면서 제대로 씻고 먹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아미타불! 면벽을 하면 백일 동안도 씻지 않고 지내는데, 아무 문제 없어. 며칠 정도 안 씻은 거면 깨끗한 거지.”
“으이그, 땡중하고 여자하고 같아? 하여간 운강은 우리 또래인데 너무 고리타분해.”
여행 도중 대화를 나누는 것은 운강하고 당비취뿐이었다.
손연설하고 교적풍은 원래 말 수가 적은 인간들이라 여행 내내 말이 없었다.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어서 당비취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는 정도다.
식사 후 자리에 모인 특작대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는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작대는 따로 대주를 정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행동을 주도하는 것은 손연설이었다.
분석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손연설의 지시에 다른 네 명이 따르는 형태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검각산 독천곡 지도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각자 할 일을 설명하고 신신당부하는 손연설.
“몇 번을 이야기해서 귀에 못이 박혔겠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시간 싸움이야. 설사 함정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적의 대응력이 높아져서 결국 실패하고 말아. 그러니까 적이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시간에 각 관문을 통과해야 해.”
“알았어.”
“질문은?”
“하나 있어. 만약 우리가 지옥혈왕의 신체를 파괴했다고 쳐. 그럼 퇴각해야 하잖아. 그런데 우리가 적의 눈을 피해 관문을 통과했는데, 남은 적이 관문에서 우리를 기다린다면 우리가 살아날 확률이 있기는 한 거야? 아무리 봐도 적이 기다리고 있다면 퇴로가 완벽하게 차단당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아. 내가 봐도 그래. 연설이 생각은 어때?”
당비취 역시 내가 지도를 가리키면서 적이 퇴로를 차단할 지점 몇 개를 가리키자 서서히 고개를 끄덕인다.
“퇴로는 차단되는 것이 맞아. 갈 때는 적을 피해 잠입하겠지만, 임무가 완성될 때쯤이면 적들도 눈치챌 테니까.”
“퇴로가 차단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잠시 침묵을 하던 손연설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힘으로 뚫지 못하면 우리는 죽는 거야.”
“죽는다고?”
다들 손연설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응, 적의 무력과 기관을 고려하면 퇴로가 차단될 경우 힘으로 그들을 뚫어야 해. 하지만 쉽지 않지. 임무는 완성할 수 있지만 살아서 복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뭐야, 그럼 완전 자살특공대잖아.”
당비취는 눈을 치켜뜨면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어쩌면… 백정맹에서도 그걸 알면서 우리를 보냈을 거야. 백정맹의 목표는 우리의 무사귀환이 아니라 지옥혈왕의 신체 파괴니까.”
손연설이 냉정하게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일행은 말이 없어진다.
죽음이라는 낱말이 손앞에 잡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힘으로 뚫으면 되는 거지 뭐. 위기에 닥치면 그때 생각하자고.”
낙천적인 운강이 힘을 불어넣으려고 하지만, 힘이 나지 않는다.
다섯 명 모두 이번 임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돼. 손연설의 판단은 정확해. 임무에 성공한다 해도 무사귀환은 어려워.’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회의를 마무리하고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 특작대 대원들.
* * *
나는 오랜만에 변장을 한다.
– 우두둑─ 우두둑─
수라변체술을 이용해 몸을 변형시킨다.
뼈가 우둑우둑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골격이 변한 후에 잘생긴 현무비 대신 평범한 사내로 변장한다.
복장과 무기 등도 변장을 한 후에 객잔을 나선다.
목적지는 한중의 시내. 시장통을 지나 한 약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씨 약방! 오랜만이네. 어씨가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네.’
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약방 안으로 들어서자 약방 종업원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무슨 약이 필요하십니까?”
“약보다 주인인 어씨를 뵙고자 해서요.”
– 덜커덩─
“나를 찾는다고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방 안의 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문에 기대어 나를 살펴본다.
‘살아 있었군. 다행이다.’
환갑을 훨씬 지난 노인의 모습이다. 아마 칠십도 더 넘은 나이일 것이다.
예전에 내가 부상을 입을 때 몇 번 신세를 진 적이 있던 어씨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가움이 올라온다.
하지만 아는 척할 수는 없다.
“처음 본 손님이군요.”
“네, 뭐 좀 물어보려고요.”
“들어오시오.”
어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를 안으로 들인다.
“젊은 분이 나를 왜 찾은 거요?”
“검각산 지형에 대해서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요.”
“검각산 지형이오? 그런데 왜 나를 찾은 거요? 여기는 약방이오만?”
“주인장께서 과거에 검각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시던 명 약초꾼이라는 소문을 들어서요.”
“허허, 약초꾼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그걸 어찌 들었소?”
“검각산 이야기를 하다가 한 협객이 지나가면서 말해준 내용이었지요. 마침 제가 내일 검각산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요.”
“하지만, 나는 약초꾼을 그만둔 사람이오.”
– 철그렁─
“귀한 정보니 그냥 듣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 은자면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지요?”
적지 않은 돈을 본 어씨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허허, 검각산에 무슨 일로 가기에 이리 많은 돈을 내는 거요?”
“험한 곳을 지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검각산에 대한 지형 정보가 필요합니다.”
“허허, 앉으시오.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큰돈을 내신다면 아는 대로 다 설명해 드리겠소.”
– 호로록─
차를 같이 마시면서 어씨에게 검각산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역시 한중 주변의 산에 대해서는 어씨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하긴 수십 년을 산만 타고 다닌 사람이니 한중 지역 산에 대해서는 어씨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독천곡 주변 지형에 대해서 상세하게 묻는다.
“흠, 독천곡이라. 거긴 죽음의 지역이 되었소. 독천곡에 들어간 사람들이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독천곡은 이십 년 전부터 아무도 들락거리지 않는 죽음의 지역이 되었소.”
개천혈교가 독천곡에 자리 잡으면서부터 독천곡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어씨는 죽음의 지역이 되기 전에 수십 년 동안 독천곡을 드나들었던 약초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