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62화 >
“김샛별, 히로세 인터뷰 건은 어떻게 됐어?”
김샛별이 두말할 필요 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타국 스타인 만큼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국 언론에 얼굴을 비치기는 힘들었다.
원체 진솔하기로 유명한 그녀에게는 인터뷰 스크립트 또한 필요가 없었다. 말 그대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대답을 하기에.
“편집장님, 히로세 씨가 강현 씨를 아주 극찬하던데요?”
“히로세가 강현을 아주 이뻐한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많았잖아. 오죽하면 히로세가 일본 방송에서 자신의 바이올린을 한국의 강현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말까지 했겠어.”
“맞다, 그것 때문에 일본 우익들이 한창 히로세 씨를 물고 뜯었었죠.”
“방구석 거머리들이 물고 뜯으면 뭐하겠어, 히로세는 이미 일본의 영웅인데 말이야.”
일본의 거장 히로세가 강현을 아낀다는 말은 예전부터 공공연했다. 일찍이 앞으로 아시아 클래식계를 이끌 차세대 거장으로 일본의 아티스트가 아닌 한국의 강현을 손꼽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고 정말 협연 때문에 히로세가 한국에 왔을 줄이야.”
클래식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은 편집장의 얼굴엔 아직도 믿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설마하니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일본의 히로세가 협연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놀라운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뭐? 자작곡?”
“그렇다니까요. 히로세 씨가 분명 이번 협연에서 강현 씨의 자작곡으로 연주를 할 거라고 그랬어요. 결정적으로다가 강현 씨의 공개되지 않는 자작곡이 여러 곡 있다고 합니다.”
편집장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것도 그럴 것이 강현의 자작곡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클래식계의 권위 있는 음악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강현의 첫 앨범을 두고 명반이라 말했을 정도이니.
“편집장님 그래서 말인데 강현 씨 인터뷰는 어떻게 안 될까요?”
“인마, 나라고 안 하고 싶겠냐. 그런데 어찌 된 게 강현 인터뷰는 청와대 출입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오죽하면 음반지 기자들이 하나같이 강현이랑 인터뷰하는 걸 복권에 당첨되는 일보다 희박하다고 말하겠냐.”
편집장은 혀를 찼다. 어쩔 수가 없었다. 2년 전 영국왕실 공연을 끝으로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강현은 형식상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클래식 스타에 불과했다면 이 정도 신비주의를 고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허나 강현의 뒷배에는 화학 산업의 선두주자인 동주는 물론 제일그룹이 있었고 업계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강현도 이번 연도 수험생 아니야? 얼마 전에 수학능력고사가 있었잖아. 듣기로는 공부를 꽤 잘한다고 하던데.”
김샛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바쁜 와중에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수학능력고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백 명도 아니고 수험생 수십만 명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결괏값을 내기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기 아닌가.
그때였다.
“선배―!”
데일리Q의 막내 기자가 황급히 김샛별을 향해 뛰어오다 머리가 번쩍이는 편집장을 발견하고는 막내가 숨을 급히 돌렸다.
“인마, 여기가 시장바닥이야?”
“편, 편집장님. 지금 제일고등학교에 나가 있는 박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일고등학교? 거긴 왜?”
김샛별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막내가 다음 헤드라인을 읊었다.
“강현 씨가 수학능력고사 만점을 받았답니다.”
* * *
이촌동 저택이 시끌벅적하다. 더불어 고소한 음식 냄새까지 풍기니 누가 보면 명절인 줄 착각을 할 정도였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친인척들은 물론이고 각종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끊이질 않았으니.
“현이 네가 수학능력고사 첫 만점자라지?”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에는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브라운관 너머에서는 계속해 내 이름 석 자가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언론에서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1968년 예비고사가 도입된 이후 1998년까지 30년 동안 단 한 명의 만점자도 나오지 않다가 올해인 1999년 만점자가 나온 것이니 대서특필 감이었다.
하물며 그 만점자가 수년 전 영국 왕실에서 지휘를 했던 이라면?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아들, 시험 치느라 정말 수고했어. 엄마는 그동안 아들이 시험에 대해서 말을 안 하길래 생각보다 못 쳤나 보다 했거든.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눈을 글썽거렸다. 아버지가 옆에서 콧잔등을 훔치며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결과를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다.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삶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부모님의 반응이었기에.
“아버지, 저희 왔어요―!”
그때 이촌동 저택으로 불청객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모가 기어코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이 아닌가. 샛노란 색으로 염색을 한 유진석이 도살장에 끌려온 송아지마냥 힘없이 뒤따랐다.
“아줌마, 빨리 이거 좀 받아봐요. 아직 점심 식사들 전이죠? 현이가 수학능력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는데 이모가 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음식들 좀 해 와봤어요, 아버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을 이모였다. 내게 공부를 못하면 도피유학이라도 가라고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현이는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공부를 잘할까, 강 서방은 공부는 영 젬병이랬지? 아무리 봐도 아버지를 닮은 게 분명해. 이래 봬도 우리 집안에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야, 호호.”
“이모, 그럼 진석이 형은요?”
“어?”
아버지는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학자금이 없으셨던 것이다. 반면 유진석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지원을 받았음에도 결국 저따위로 엇나가 버린 것이다. 제 자식 제가 깐 꼴이다.
“진석이도 호주에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버지, 참. 이번 기회에 아예 외교관 쪽으로 밀어 보려고요. 진석이한테도 물어보니까 꽤 관심이 있는 눈치더라고요. 그치, 진석아?”
할아버지의 눈빛에 유진석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웬걸, 외교관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어울리지 않게 너무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않은가. 훗날 유진석은 외교관은커녕 사기꾼이 되는데도 말이다.
그때였다.
“유 회장, 나 왔소이다.”
때마침 이촌동 저택으로 왕회장이 찾아왔다. 수학능력고사 만점을 축하하기 위한 발걸음이었으니.
그것을 뒷받침하듯 뒤따라 들어오는 경호원의 양손에는 황금색 비단 함이 가득 들려 있었다. 몸에 좋다는 한우와 사골일 것이다.
방금 전까지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던 이모도 왕회장의 등장에 입술을 곧장 다물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나를 슬며시 바라보더니 물었다.
“현아, 어째 이모보다 유하네 할애비가 찾아온 것이 더 반가운 모양이다?”
“아니에요, 두 분 다 반갑죠.”
“표정은 그게 아닌데?”
아무렴, 말해 뭐하겠는가. 본디 반가운 것은 둘째치고.
“그나저나 이번 내기 또 제가 이긴 거 맞죠?”
* * *
“대표님, 난리도 아니에요.”
제일 갤러리의 직원 김미현이 울상을 지었다.
“미현 씨, 밖에 노상 치고 있는 사람들 전부 기자들이야?”
“기자들만 있으면 오죽하겠어요. 현이 팬들까지 뒤섞여서 완전 시장통이 따로 없어요. 안 그래도 민원 때문에 경찰이 몇 번이나 출동했는데 그때뿐이고, 오늘 현이 작업실에 안 온 댔는데도 도통 들을 생각도 안 해요. 차 안에도 이미 잠복 수사하듯이 기자들이 누워 있어요.”
달콤한 과실에는 여러 가지 벌레가 꼬이는 법이다. 하물며 강현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뜨거운 키워드임이 분명했다.
대한민국을 가리켜 입시 국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외환위기 이후 주춤거렸던 사교육 열풍이 다시금 불 때였다.
하물며 역대 수학능력고사에서 첫 만점자가 배출된 것이었으니.
“기자 중에서는 현이를 만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아예 현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현이 어머니를?”
“이 시대의 천재를 키워낸 현대판 신사임당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요. 오죽하면 출판사에서 현이 어머니께 아이 교습법을 집필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달라고 했겠어요. 이러다가는 현이가 삼시 세끼 뭐 먹는지도 알아내서 기사에 실을 기세라니까요.”
김미현은 학을 뗐다. 강현과 관련된 문의로 인해 갤러리가 마비될 지경이니 그럴 만도 했다.
“대표님, 그리고 청와대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뭐?”
임혜라 이사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김미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교육부 장관 주관하에 현이에게 표창장을 내리고 싶다고 하던걸요. 근데 어쩌다 보니 그쪽에서도 일이 커져서 청와대에서 직접 표창장을 주는 게 그림이 낫지 않겠냐며 말이 오갔나 보더라고요. 수학능력고사 만점 때문만은 아니고 일전에 영국 왕실에서 대한민국을 빛낸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수여자는 교육부 장관이고?”
일찍이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장관이 직접 표창장을 수여했었다. 그 수혜자가 바로 피아니스트 백정훈이었으니.
강현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뜬금없이 퀸엘리자베스에서 우승을 한 탓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김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문화체육부 장관?”
“아니에요, 대표님.”
그럼 누구란 말인가.
“설마?”
대통령?
* * *
“선생님, 이 부분에서는 왼손 피치카토를 좀 더 강하게 부탁드릴게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두 남녀가 바이올린을 맞대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강현의 부탁에 히로세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최고의 거장이었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함께 협연할 곡의 작곡가가 바로 강현이었으니.
두 대의 바이올린이 마치 서로를 시기하듯 현을 번들거렸다.
활을 움직이는 오른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미끄러지듯 현 위를 움직인다.
풍부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두 선율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이뤄내지 않는가.
벌써 몇 시간 째 서로 합을 맞추고 있었지만 두 사람 다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활을 켜면 켤수록 더욱 빠져드는 것만 같았으니.
예술의 전당 이사장은 이 두 사람의 리허설을 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결국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두 사람의 활이 동시에 바닥을 향했다. 하지만 현은 아직도 아쉬움을 머금은 채 한없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현, 이번에 수학능력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클래식 말고도 공부도 그렇게 잘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센터시험이 있어요. 하지만 현처럼 독보적인 일등을 하는 천재는 엄청 드물죠.”
“과찬이십니다, 선생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요즘 주변에서 하도 천재라고 말하는 통에 항상 비행기를 타는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지난 삶의 기회와 발달된 소프트웨어 덕분에 얻은 영광이 아닌가.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그렇기에 인터뷰를 전부 사양한 것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해봤자 ‘사교육 없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진부한 대답만 늘어놓을 게 뻔했으니.
“현, 이제 성인이 된다면 가장 먼저 뭘 할거예요?”
“아무래도 면허를 따야겠죠.”
“면허?”
히로세 선생님은 뭔가 다른 대답을 기대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도 말고 면허였다. 매번 김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가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셨지만 붙들어 매시라, 지난 삶 수십 년간 안전 운전을 해온 베테랑이 나 아닌가.
“현이 이번에 성인이 되는 걸 기념해서 제가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필요한 게 있나요?”
“선생님께서 주신다면 무엇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실 제 독주회에 협연을 해주시는 것부터가 큰 선물인걸요.”
사실이었다. 설마하니 히로세 선생님이 먼저 내게 협연을 제안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아무래도 면허를 딴다니 자동차가 좋으려나요?”
“선생님, 그건 너무 과분합니다.”
암, 선물로 받는 것에는 적정선이 있는 법이었다. 하물며 자동차라니 선물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과했다.
때마침 왕회장과의 내기가 불쑥 생각나지 않는가. 만약 내가 수능 만점을 받게 되면 원하는 건 뭐든 하나 들어준다고 했었으니.
왕화장과의 내기에 적정선은 없었다.
그래서 스포츠카 정도를 요구했냐고?
에이, 그건 너무 약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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