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1)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61화 >
이촌동 저택에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하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이 요리가 한창인 모양.
수학능력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다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평소에는 이촌동을 찾지 않는 혹들까지도 함께 말이다.
“자, 다들 들자.”
할아버지의 말씀을 시작으로 다들 숟가락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잘조잘 말이 많았을 이모도 지금만큼은 양반집 규수마냥 얌전히 아침을 먹는다.
그건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좌천을 당해 한동안 지방 공장에 내려가 있는 상태가 아닌가. 얼굴이 초췌해지고 수척해졌지만 어쩌겠는가, 전부 자신이 자초한 것을.
“현아, 수학능력고사는 어땠어?”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일순 식탁 위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고사장에 들어간 직후 조계사를 찾아 기도까지 하셨던 어머니다. 혹여나 아들이 시험을 못 쳤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묻지도 못한 것이다.
시험의 결과는 어땠냐고?
“아는 문제는 다 풀었어요.”
모르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어머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모가 한마디 거드는 것이었으니.
“현이 너는 대학은 어디로 가려고? 한동안 공부도 제대로 못했을 텐데 이번 수능 망치면 차라리 해외 유학이라도 가는 게 어떻니?”
“진석이 형처럼요?”
“그, 그래. 진석이처럼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버지, 진석이가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잘하는지 몰라요. 이렇게 언어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외교관 쪽으로 시켜볼 걸 그랬어요. 그나저나 얘는 공항에서 금방 이촌동으로 온다고 했는데.”
아무렴, 내가 발로 풀어도 유진석보다는 시험을 잘 치르지 않았겠는가.
이모는 숨통이 트일 만하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이모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으시고는 계속 나를 바라봤다.
“현아, 주치의한테 또 정밀검사 이야기를 했다고?”
“예, 할아버지.”
“허허, 우리 손주 때문에 이 할애비가 무병장수를 하게 생겼구만.”
지난 삶 할아버지는 내가 19살이었을 적 돌아가셨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처음 찾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쏟고 계셨고 형제들이라고 말하던 삼촌들과 이모는 눈을 흘기며 유산 배분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
“이번에는 바쁘시다고 거르지 마시고 꼭 가셔서 정밀검사 받아보세요.”
“욘석, 알았다.”
할아버지의 혈색은 일흔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밝았다. 외모만 보자면 20년은 젊어 보일 정도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정정한 걸음걸이는 물론 눈빛 또한 어둡기보다는 형형하고 활력이 넘친다.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부디 이번 삶에서는 지난 삶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유진석이 이촌동에 도착한 것이었으니. 동시에 가족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이모는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큰 삼촌마저 혀를 찰 정도였으니.
이유는 간단했다. 유진석의 귀에는 피어싱이, 그리고 머리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
식사가 끝나고 잠시 티타임을 가질 때였다. 유진석과 함께 2층으로 걸음을 옮기다 말을 건넸다.
“형, 유학 가서 이상한 거 배우는 거 아니지?”
“뭐?”
수년 전 처음 유진석을 만났을 때는 의아할 정도였다. 이토록 간이 콩알만 한 놈이 훗날 사기와 횡령을 저지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에.
허나 유진석이 유학을 다녀온 지금 이제야 얼굴이 낯익다.
“만약에 헛짓거리하면 가만 안 둬.”
양아치스러운 복장이 딱 지난 삶 서부지검에서 잡범으로 만났던 유진석이었으니. 사기와 횡령을 저지르고 내게 살려달라 애걸복걸하지 않았던가.
내가 한 차례 지그시 바라보자 유진석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목울대를 크게 출렁였다.
* * *
“선생님, 어때요?”
히로세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보고는 상당히 마음에 든 모습이었다. 것도 그럴 것이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끝낸 모습이 아닌가.
선율의 사각지대가 없을 만큼 건축적인 설계는 물론 외형적인 미가 뛰어났으니. 과거 예술의 목욕탕이라는 오명을 씻겨내기 위해 다분히도 노력한 결과였다.
“현, 산토리홀과 도쿄 오페라시티를 마치 합친 것 같은 콘서트홀이에요.”
“정말 그 정도입니까?”
“아직 바이올린을 켜보지 않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지만 분명 그래요. 설마하니 이웃 나라 한국에 이토록 훌륭한 콘서트홀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군요.”
분명 내 기억 속의 예술의 전당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였다. 그만큼 역사가 변화였다는 사실이기도 했으니.
뒤편에 서 있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은 상당히 감동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대충은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현, 앞으로 얼마 뒤면 성인이 될 텐데 월드 투어라도 다녀보는 게 어때요?”
“월드 투어라니요, 너무 과찬이십니다.”
“한 번씩 느끼는 건데 현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세계의 클래식 팬들이 얼마나 현을 기다리고 있는지 안다면 놀랄 거예요. 오죽하면 저와 친분이 있는 일본의 음대 교수들조차도 현의 소식을 간간이 묻겠어요. 그만큼 현은 클래식계에서 신비로움이 가득한 인물이랍니다.”
신비로운 인물이라,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비춰졌다. 2년 전 영국 왕실공연을 끝으로 모습을 다시 드러내지 않았으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몹시도 궁금할 것이다.
그때 백발의 여왕이 걸음을 옮겨 무대 중앙으로 다가갔다.
“현, 지금 여기서 바이올린을 한 번 켜볼까요?”
여기서?
히로세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모습에 상당히 감동한 모양이었다. 제대로 된 청중은 없었지만 지금 당장 바이올린을 켜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이곳이 마음에 든 것이다.
이사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자 이사장은 얼굴에 미소를 만개하며 흔쾌히 수락해 왔다.
아무렴, 여왕의 연주는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현, 함께 켜봐도 될까요?”
“선생님, 곡은 어떤 곡으로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현이 만든 자작곡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이용한 악보를 보고는 매번 심장이 두근거렸답니다. 마치 환희와 환상을 두고 만든 곡 같아서요.”
암, 애초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만들 때부터 환상과 환희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것이었다. 하물며 콘서트홀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대동한 상태였으니.
곧이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선율과 외형을 지닌 두 대의 스트라디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객석에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만이 홀로 착석해 있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감동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비쳐지고 있지 않은가.
Gang hyun Concerto for Two Violins.
그 순간 서로의 선율을 시기하려는 듯 두 대의 스트라디바리가 번들거렸다.
* * *
“선생님, 안식년 도중에 한국을 찾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데일리Q의 김샛별은 수첩을 손에 꼭 쥔 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한 흥분과 설렘이 깃들어 있었으니. 평소와 달리 통역까지 대동할 정도로 잔뜩 긴장한 그녀였다.
것도 그럴 것이 맞은편에는 현의 여왕이라 불리는 히로세가 앉아 있지 않은가.
“바이올리니스트 현과의 협연 때문입니다.”
김샛별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설마하니 예상했던 결과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
여태껏 현의 여왕이 직접 협연을 위해 움직인 경우는 없었다. 하물며 안식년 중에 협연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닌가.
“현과의 듀엣은 예전부터 기다려왔던 것이죠.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함께 바이올린을 켜보고 싶다고 염원했을 정도니까요.”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확히는 5년 전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일 거예요. 한국에서 날아온 비디오 한 편 때문에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영상 속의 아이를 찾아 헤맸죠. 헌데 오페라시티의 무대에 오른 순간 심장이 사정없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도 히로세의 뇌리에는 그날이 선명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천천히 활을 들어 올려 객석 중앙에 자리한 현을 가리키지 않았던가.
머릿속에 경종이 울려 퍼지듯 베토벤의 운명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으니.
“선생님, 그렇다면 이번에 강현 씨와 연주하는 곡은 어떤 곡인지 코멘트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현의 자작곡입니다.”
“자작곡이요?”
김샛별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강현의 자작곡은 이미 클래식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자작곡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첫 앨범은 그라모폰에서 명반으로 손꼽힐 정도로 상당히 유명했었다.
자작곡에 대한 내용을 더 알고 싶었지만 히로세는 그 이상은 말을 아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인터뷰는 계속되어 어느새 마지막 질문을 남겨두고 있었다.
“강현 씨의 자작곡에 대한 히로세 선생님의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감상이라.”
여왕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현의 작업실을 떠올렸다. 악보가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져 있지 않았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악보들 같았지만 하나하나가 엄청난 충격을 선사할 만큼 대단한 오선 위의 음표들이었으니.
“현의 수많은 악상들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 많은 클랙식인들이 환호할 것입니다.”
과거 베토벤,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접했던 음악인들이 그러했듯이.
* * *
“도착했어요, 강현 학생.”
수학능력고사가 끝난 고등학교의 풍경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특히 고등학교 삼 학년들에게는 자유 시간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오늘만큼은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과 설레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름 아닌 수학능력고사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
가채점을 통해 점수를 알고는 있을 테지만 다들 OMR 답안지가 제대로 작성되었을까 긴가민가한 모습이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서 점심 전에는 채점 결과가 발표되니 조금만 다들 기다려 보자.”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도 긴장이 한가득이었다. 아무렴, 어찌 보면 입시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날이 아닌가.
자신이 맡은 학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선생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힐끔 나를 바라봤다. 일전에도 내게 가채점 결과가 어땠냐고 한 차례 물으셨었다.
그때는 시험을 치르는 동안 경황이 없어 가채점을 할 답안을 옮겨 적지 못했다고 변명하고는 말았었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괜한 호들갑은 별로 반갑지 않았기에.
“현아, 설마 만점이니?
“왜?”
“난 긴장돼서 죽을 거 같은데 현이 넌 너무 편안해 보이길래.”
옆자리에 앉은 여자 반장이 죽을상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이 아이도 반에서 곧잘 2등을 하던 아이가 아닌가.
“민정아, 한국대학교 법학과를 지망할 거라고?”
“응, 나는 법학과에 꼭 갈 거야. 알잖아, 국선변호사 되는 게 내 꿈인걸.”
민정이와는 그래도 나름 일면식이 있었다. 솔직히 고3이 되고 옆자리에 민정이가 앉았을 때는 꽤나 놀랐을 정도니.
지난 삶 한국대학교 법학과 시절 동기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사법연수원도 나보다 한 기수 아래 들어왔었다.
당시에는 굳이 국선변호사의 길을 택하는 김민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창창 대로를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 건 지난날의 나였음을 깨달았다.
“걱정하지 마, 민정이 넌 꼭 갈 수 있을 거야.”
김민정의 볼이 붉게 물들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다시 교실로 들어서는 것이었으니.
수학능력고사 점수가 채점된 칼국수를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하나씩 배부해 주었다. 허나 내게는 배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의아함이 가득 차오를 즈음.
“이번 수학능력고사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 우리 반에 있다.”
담임 선생님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 학생―!’ 하며 외치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또한 오버랩되어 들렸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 어깨를 붙잡고는 장하게 외쳤다.
“강현, 만점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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