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23)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23화 >
안단테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강현의 손끝과 함께 2대의 호른이 동시에 연주를 시작했다.
호른의 선율 속에서 지휘봉이 허공을 조심스레 껴안듯 움직였다.
마치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고요하고 성스러운 음이 콘서트홀에 점차 차오른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강현의 손 끝이 점차 빨라지고 단원들을 향한 시선이 강렬해질수록 선율 또한 고결에서 화려함에 이르기까지 강한 콘트라스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마이클을 향한다. 조금만 더 채 끝에 힘을 주라는 뜻이었으니.
마이클은 능숙하게 지휘자의 시선을 받아내며 채를 쥔 엄지 끝자락에 조금 더 힘을 배분했다.
꿀꺽―!
김다현 피디는 강현의 지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일찍이 수년 전 왕실 공연에서의 지휘로 인해 강현의 지휘 실력은 인정받은 바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았던 강현의 지휘와 객석에서 마주한 강현의 모습은 과장을 더해 천지 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차이가 있었다.
‘대단해.’
정장이 아닌 사복을 차려입은 단원들의 눈빛은 대단했다. 리허설이 아닌 실제 무대를 하는 것처럼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지 않은가.
하물며 악기를 다루는 그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서로가 거미줄로 끈끈하게 연결된 것처럼 이뤄지는 유대와 화음은 그들이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라는 사실을 재차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그게 아니었지.
첼로!
강현의 능숙한 지시에 수석 첼리스트 에마누엘이 반응했다. 마치 눈빛만으로도 대화를 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가.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지. 강현은 단원들 한 명 한 명을 놓치지 않고 지휘를 하고 있었다.
흡사 바둑판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윽고 콘트라베이스의 웅장함이 천사의 숨결처럼 콘서트홀을 감싸 안았다.
두두두둥―!
숨결의 끝에서 환희가 이어진다. 토미는 온몸에 전율이 관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현이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의 커리어와 명성은 이미 교환학생으로 올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리라.
‘미쳤어.’
교향악단을 지향하는 토미이기에 지휘자가 가지는 무게와 부담감을 알고 있었다.
한 명의 단원으로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허공에서 수많은 악기를 다스려야 하는 지휘자의 어깨는 분명 그 어느 때보다도 험난한 여정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토미는 여태껏 강현이 천상 바이올리니스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생각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으니.
두두두둥―!
숨결이 또다시 콘서트홀의 천장까지 차올랐다.
사브리나는 강현의 모습과 어우러지는 단원들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강현의 지휘 실력은 예상대로였다. 바이올린의 현만큼이나 지휘봉의 끝이 아름답지 않은가.
사브리나는 강현이라면 분명 훌륭한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음악적 가치관을 이해한 첫 음악가이기에.
‘찍고 있지?’
김다현 피디가 눈짓으로 조연출을 바라봤다. 조연출은 이미 교향악단의 선율에 심취해 눈과 귀를 빼앗기고 있었다.
황홀해 보이는 얼굴은 그야말로 클래식의 정수에 빠져든 한 명의 어린아이 같기까지 했다.
반면 촬영감독은 촬영 카메라를 쥔 손아귀에 힘을 놓지 못한 채 무대 위를 줌인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흥분 어린 미소가 떠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선율의 감정이 차오를수록 심장이 해일처럼 요동치지 않는가.
당연했다. 수많은 단원들이 지휘자 강현의 손끝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기에.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을 장식할 대미가 완성된 것이다.
* * *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회의실에 진한 전운이 감돌았다. 계열사 사장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윽고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왕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반백의 임원들이 앞다투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 아프게 왜 일어나나, 다들 앉게나.”
왕회장이 상석에 몸을 앉히자 그제야 임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있는 사장단 회의가 아닌가.
사회에서는 하나같이 혁혁한 권력과 명성을 지닌 제일그룹 계열사 사장단이었지만 왕회장 앞에서는 마치 태양 앞에 반딧불만큼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임동춘이, 그간 잘 지냈는가?”
“예, 예. 회장님! 회장님 병세가 걱정이 되어 평창동에 몇 번이고 찾아갔었습니다. 이제 건강은 완전히 회복하신 것인지요?”
“보면 알잖은가? 그리고 내 건강이 그리도 걱정된다는 양반이 내가 병상에 눕자마자 일선이랑 강욱이 사이에서 간을 봤나?”
“아, 아닙니다! 오해이십니다. 회장님! 저는……!”
“농일세, 오랜만에 자네 얼굴을 보니 장난을 치고 싶어져서 말이야.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임동춘이 간이 콩알만 해졌구먼그래.”
제일증권 대표 임동춘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장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아무렴, 이들 중에서 손일선과 손강욱 사이에서 간을 보지 않았던 양반이 있을까.
왕자의 난이나 다름없었던 지난 수개월 동안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위해 움직였던 이들이었다.
“이 자리에는 분명 일선이를 도와줬던 이들도 있는 반면 강욱이의 편에 섰던 이들도 있겠지. 아니면 우두커니 중립에 서서 상황을 관망했던 사장들도 있겠고 말이야.”
“…….”
“난 오늘 자네들을 책망하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넘어가면 안 될 일이겠지.”
그 순간 왕회장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번들거렸다. 손강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세에 사장단의 목울대가 동시에 출렁였다.
“자, 누가 먼저 자리를 내놓겠나.”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나 다름없는 자리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그대로 단칼에 사장직을 내려놓아야할 판이었다.
하물며 왕회장의 성격상 직책만 내놓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법적 책임까지 뒤따르리라.
그때였다.
“다들 긴장 풀게나, 이래서야 농담을 제대로 못하겠군. 임동춘이.”
“예! 회장님!”
“서민기, 도일환, 정성기―!”
“예! 회장님!”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잘 들어.”
계열사 사장단 중 손강욱의 편에 섰던 이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나이가 지긋한 양반들이었지만 흡사 학생주임 앞에 선 중학생마냥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제야 사장단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왕회장은 손강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김 비서, 오늘 저녁 약속은 취소하게나. 대법원장한테는 미안하다고 말을 전하고 말이야.”
“예, 회장님.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이촌동으로 가세.”
사장단 회의가 끝난 왕회장은 곧장 이촌동으로 향했다. 대법원장과 선약이 있었지만 왕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약속을 파기했다.
아무렴, 대법원장 또한 왕회장이 직접 길러낸 장학생 중 한 명이었으니.
“손가, 왔는가!”
이촌동에 도착하자 유 회장이 왕회장을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왕회장의 손에는 언제 준비했을지 모를 약주까지 들려 있었다.
“오늘 사장단 긴급회의가 있다고 해서 손가 자네가 못 올 줄 알았는데?”
“어허, 사돈. 오늘 같은 날 내가 빠져서야 쓰겠나.”
“자네가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지 몰랐구만.”
“예고편을 보고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날이 추우니 어서 들어갑세. 이렇게 뜸 들이다가 시작을 놓치겠구만!”
왕회장이 이촌동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강현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3부작의 첫 시작을 알리는 본 방송을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 * *
“그라모폰 음악회?”
토미가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며 되물었다. 강현은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대답했다.
“일전에 초대장이 왔었어, 12월에 그라모폰에서 시상식 같은 음악회를 연다고 하더라고. 그라모폰에 문의해 보니까 나 말고도 2명 정도는 함께 와도 상관없다고 했어. 어때?”
“나야 물론 대환영이지!”
“토미, 그게 그렇게 좋은 일이야……?”
토미의 얼굴에는 감격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사브리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렴, 교향악단에도 관심이 없는 사브리나이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반지인 그라모폰지에 대해 관심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토미는 사브리나에게 그라모폰 음악회가 가지는 위상과 명성에 대해 입에서 수프가 튀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사브리나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으니.
‘스펜서의 제안에도 흔들림 없던 사브리나인데 당연한 거지.’
방송국 촬영 마지막 날 런던 심포니를 찾지 않았던가. 그곳에서 스펜서는 사브리나에게 직접 제안을 했었다. 왕립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괜찮다면 런던 심포니의 입단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브리나는 망설임 없이 어딘가에 소속되는 건 싫다고 대답했었다.
“현, 그라모폰 음악회가 언제야?”
“이틀 뒤야.”
“뭐어?! 드레스 코드는!”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어째 상을 받으러 가는 것은 자신인데 더욱 들뜬 것은 토미 같았다.
“평상복으로 차려입으면 돼. 상을 받는 게 아니면 그렇게 격식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강현의 말에도 토미의 얼굴에는 이미 무엇을 입고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흡사 수학여행 전날에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 고민하는 중학생처럼 말이다.
이틀 후 대망의 날이 되자 토미와 사브리나의 드레스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미, 사브리나. 옷을 산 거야?”
“이틀밖에 시간이 없어서 사우스케싱턴에 있는 상점에서 빌린 거야.”
토미는 강현과 마찬가지로 정장을 차려입은 가운데 사브리나 또한 여자 정장을 차려입었다.
허나 주근깨가 가득한 토미는 마치 아버지옷을 빌려 입은 모양새였지만 은빛 머리카락아래 진한 청록색의 눈동자를 지닌 사브리나는 고풍스러운 화보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현, 너는 보면 볼수록 정장이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난 아빠 옷 훔쳐 입은 것 같은데 말이야…….”
토미가 강현의 모습을 보고는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강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임해라 대표에게 부탁했던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가 넉넉한 리무진이었기에 세 사람이 타도 누울 자리가 있을 만큼 충분했다.
“출발하겠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을 시작으로 자동차가 그라모폰 음악회가 열리는 교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무진에 올라탄 토미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으니.
사브리나 또한 마찬가지였지. 이토록 기다란 자동차에는 타본 적이 없는 모양인지 신기하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강현은 마치 학부모가 된 것처럼 두 사람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현, 오늘 유명한 음악가들이 많이 오겠지……?”
“아마도?”
토미는 언제 흥분을 했냐는 듯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렴, 그라모폰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유명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클래식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 또한 대거 등장할 것이다.
상념이 짙어지는 가운데 리무진이 그라모폰 음악회가 열리는 교외에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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