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8)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48화 >
꿀꺽―!
박선영은 자신의 목울대가 출렁이는 것조차 신경쓰일 정도로 긴장되었다.
비단 박선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객석에 앉은 나머지 신입 단원들 또한 마찬가지의 모양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대 위에 흐르는 긴장감이 마치 전염병처럼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으니.
“드레센―!”
강현의 외침에 제1바이올린 파트의 단원이 움찔거렸다. 저도 모르게 음정이 약간 어긋나지 않았던가. 찰나였지만 강현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이 실수한 단원을 골라내고 있었다.
덕분에 혁혁한 경력을 자랑했던 베테랑 단원들조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휘자의 손끝이 매섭게 움직일수록 단원들의 연주도 그만큼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연습이 아닌 실제 무대라는 착각이 들 만큼 단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터벅.
강현이 지휘단상에서 내려와 단원들 사이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지휘자가 없다고 해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럽의 어느 교향악단에서는 지휘자가 없이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해내었으니.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
강현은 직접 단원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틀린 부분을 짚어주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광경일까……?
박선영을 비롯한 신입단원들은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긴장감과 전율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박선영 또한 파리 교향악단에서 제2바이올린 파트 단원으로 있었지만 이러한 리허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교향악단의 단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음악적 자존심과 가치관이 확고한 이들이었다. 오랫동안 그들과 합을 맞춘 악장이라고 할지라도 노골적인 지시는 무리였다.
실제로 과거에는 실력이 모자란 지휘자를 대상으로 교향악단 내부적으로 투표를 해 쫓아낸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허나.
“미라이, 현을 짚은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갔습니다!”
강현은 달랐다. 박선영은 무대를 자신의 손바닥처럼 내려다보며 진두지휘하는 강현을 보고 자신이 알고 있던 강현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물론이고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강현의 지도를 받고 나자 곧바로 교향악단의 선율이 바뀌지 않는가.
도대체 어떠한 부분을 조정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지도였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마치 마법 같은 광경이었으니.
“잠시 삼십 분간 휴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휘자가 단상에서 내려와 무대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콘서트홀을 팽팽하게 메운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단원들은 저마다 이마에 물씬 묻은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첫 리허설인데 많이들 놀랍지?”
그때 악장 안토니오가 객석에 앉아있던 신입 단원들을 향해 걸어왔다. 신입 단원들은 저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박선영이 조심스럽게 안토니오를 향해 운을 띄웠다.
“악장님, 실례지만 매번 이렇게 연습을 하나요?”
다른 지휘자들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일까. 박선영은 강현처럼 리허설을 진행하는 지휘자를 보지 못했다. 웬만한 거장들이라고 할지라도 단원들 전체를 통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
하지만 강현은 마치 바둑판을 내려다보듯 교향악단 전원의 문제점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우리도 이렇게 연습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이 모든 건 마에스트로 현이라 가능한 거겠지. 처음에는 단원들 사이에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전부 마에스트로 현을 인정하고 있단다.”
안토니오의 말처럼 단원들은 땀을 훔친 다음 곧장 악보를 보고 방금 전 리허설에서 강현에게 지도를 받았던 부분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토록 음악적 자존심이 드센 단원들이 강현의 지도에는 한 톨의 의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강현이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곧이어 삼십 분이 흐르고 다시 강현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끝없는 긴장감이 다시 들어차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하나같이 힘든 기색 없이 강현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박선영은 깨달았다. 강현을 향한 단원들의 믿음은 거장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는 것을.
* * *
‘해낼 수 있을까.’
박선영은 첫 출근 하루 만에 좌절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기라성 같은 선배단원들조차도 자신의 실력에 의구심을 품고 마치 음악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야말로 강자존이었다. 왜 뉴욕 필하모닉에서 신입 단원들이 그토록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실력이 모자라면 식구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 말처럼 기존의 단원들은 신입 단원들과 깊이 친해지려 들지 않았다.
막말로 내일 당장 뉴욕 필하모닉을 떠날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악장 안토니오 또한 정 힘들면 다른 교향악단으로 가는 것을 말리지 않겠다며 첫날부터 공언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오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강현이 피드백을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단원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욕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강현은 정말 단 한 명의 거장으로서 대하고 있었다.
강현이 떠나간 뒤에도 단원들은 강현의 피드백을 서로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지 않는가.
“지휘자님!”
박선영은 콘서트홀을 벗어나는 강현을 뒤따라 나섰다. 처음에는 과거처럼 이름을 부를까도 싶었지만 오늘 있었던 리허설 광경을 보자 더 이상 예전처럼 강현을 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강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나, 지휘자님이 뭐예요. 둘이 있을 때는 예전처럼 현이라고 부르세요.”
“아니, 내가, 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벌써 까먹었어요? 예전에 저한테 바이올린을 가르쳐 줬던 사람이 바로 누나라는걸?”
사실 바이올린을 가르쳐 줬다고 말하기도 힘든 부분이었다. 박선영이 마주했던 꼬마 강현은 처음부터 바이올린에 대한 재능이 상당하였기에.
한국대학교 음과대학에서 수석을 자랑했던 박선영조차도 가르칠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자신이 가르침을 받았으면 받았지.
“그럼, 저기 현아. 부탁이 있는데 신입 단원들을 네가 따로 지도해 줄 수 있을까?”
“네?”
말도 되지 않는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현은 이미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보였기에.
하지만 강현 또한 박선영의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악장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뉴욕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악장이 신입 단원들까지 챙기기란 요원했다.
하물며 뉴욕 필하모닉은 여태껏 악장이 나서 신입 단원들을 지도해 줬던 적이 드물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곳이 이곳이리라.
“사실 시간적 여유는 괜찮아요. 기존의 단원들은 제가 일일이 옆에 달라붙어서 지도를 해주는 것보다 자기 자신만의 고찰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강현의 대답은 뜻밖의 긍정이었다. 하지만 뒤이어진 목소리에 박선영은 또 다시 좌절을 느꼈다.
“그런데 제가 이 시기에 왜 신입 단원들을 도와줘야 하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강현은 뉴욕 필하모닉에서 계속해서 지휘를 하는 지휘자도 아니었거니와 단 한 번의 협연만이 결정된 지휘자였다.
강현이 신입 단원들까지 지도해 주는 것은 무리였다. 대들보를 고쳐주는 것도 모자라 기왓장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라는 맥락이 아닌가.
그때 강현이 박선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부연했다.
“대가없는 도움은 없겠죠. 누나가 그럼 절 한 번 도와줘요.”
* * *
“유하, 그 소식이 진짜야?”
미쉘이 호들갑을 떨며 손유하에게 다가왔다. 미쉘뿐만이 아니었다. 미쉘의 등 뒤로도 손유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필립스가 이토록 시끌벅적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강현의 뉴욕공연이 잡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아마 사실일걸.”
손유하의 짧은 대답에 웅성거림이 더해졌다.
것도 그럴 것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노리는 강현의 인기는 미국 십대들에게 팝스타만큼이나 거대해지고 있었다.
하물며 엘넌쇼를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스컴에 극도로 얼굴을 비치는 것을 싫어하였기에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까지 더해져 그 매력은 십분 상승했다.
“공연 표를 구할 수가 있을까?”
화두는 뉴욕 공연의 티켓이 되었다. 아마도 교향악단 콘서트홀의 좌석은 다소 제한적이라 팝스타들이 공연을 하는 스타디움처럼 몇 만 명을 소화시키기에는 힘들 것이다.
하물며 강현을 보고 싶어 하는 미국 전 지역의 팬들의 숫자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아직 못 받았는데…….’
미쉘이 은연중에 손유하를 바라봤지만 그녀 또한 확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손유하 또한 강현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보름이나 되었다. 평소처럼 센트럴 파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강현이 바쁜 것은 고사하고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바깥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파파라치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도 강현의 얼굴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하야.”
수업이 끝나고 학교 밖으로 나설 때였다.
손유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영이 언니?”
과거 자신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던 과외선생 박선영이었다.
수년 만의 만남에 손유하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헌데 박선영은 주위로는 각양각색의 인종으로 이뤄진 사람들이 함께였다. 바로 뉴욕 필하모닉의 신입 단원들이었다.
“아, 유하야. 이분들은 나랑 같이 뉴욕 필하모닉에서 신입 단원으로 연주를 하고 있는 음악가분들이셔.”
“뉴욕 필하모닉? 거기 현이 오빠가 협연하는 곳이잖아.”
“사실 오늘 언니한테 엄청난 임무가 주어졌거든.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박선영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의 신입 단원들은 하나같이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겉모습만 보더라도 손유하는 그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오빠아?”
강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파파라치들과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바깥으로 나올 생각조차 못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신입 단원들 틈바구니에 있다 보니 강현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 순간 강현이 손유하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끌었다.
“밖에서 만나고 싶어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니면 오히려 티가 났으리라. 하지만 평범한 음악가들 사이에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졸지에 강현의 데이트에 들러리가 되어버린 신입 단원들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불평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강현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기쁨에 눈에 불을 켜고 두 청춘남녀의 데이트를 도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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