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6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62화 >
벨기에 국영방송 RTBF의 다큐멘터리였다. 국가적인 축제라고 할 수 있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촬영한 방송으로서 유럽 전역에 송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브라운관 속에는 브뤼셀을 찾은 각국의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각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는 루키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각국의 시청자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이의 이름을 브라운관 앞에서 외쳤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대학교 음과 대학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한 다큐멘터리 방송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 방증으로 다큐멘터리 첫 방영일에는 대로변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클래식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처럼 퀸엘리자베스 다큐멘터리가 인기일 수 있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위해 초청된 심사위원들의 연혁은 실로 대단합니다. 먼저 프랑스 바이올린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고 씨와 동방의 현인이라 불리는 등륜 씨, 그리고 현의 여왕이라는 이명을 지닌 일본의 거장 히로세 씨, 카리스마 있는 인상만큼이나 클래식계에서 명성이 높은 러시아의 빅토르 씨…….]꿀꺽.
[마지막으로 7년 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불과 14살의 나이로 우승을 거머쥔 강현 씨입니다. 그는 최연소로 우승을 했던 것도 모자라 클래식 역사상 최연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린 나이에 심사위원에 초청되었습니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화려한데요.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 덕분일까요, 항간에는 21세기의 모차르트가 있다면 강현 씨가 아니냐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브라운관 너머로 강현의 약력이 소개되고 종국에는 얼굴이 비춰졌다. 그러자 동네가 떠나가리만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고 착각을 할 만큼 대단한 외침이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강현의 인기가 웬만한 가수나 배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잘 생겼을까?”
유현자 여사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옥석을 빚어 만든 것처럼 매끄러운 피부와 짙은 눈썹 아래 오뚝한 콧날, 그리고 투명한 호수가 담긴 것 같은 깊은 눈빛은 형용 못 할 아우라까지 느껴졌다.
“어머, 방송국 카메라가 저렇게 가까이 촬영하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네. 아무리 봐도 우리 아들 담력 하나는 알아줘야 해.”
브라운관 속에 비치는 강현의 모습은 21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각국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를 만도 하건만 강현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어깨에 딱 맞게 떨어지는 정장을 차려입은 강현의 모습은 유명 기업의 젊은 CEO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잘 어울렸다.
“와, 완전히 영화배우 저리가라인데요?”
“이사님, 아드님이 너무 잘생기셨어요.”
“현이는 어려서부터 봤지만 정말 대단하군요. 주눅이 들 만도 한 자리인데 저리 반짝반짝하니 이사님께서 자식 농사 하나는 제대로 지으셨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강현의 아버지 강선우 또한 회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었다.
때마침 퇴근까지 한 시간이 남은 터라 직원들과 다 같이 방송 시청을 하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강현을 알고 있는 이도 대다수였다. 것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이터처럼 돌아다닌 곳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동주화학에서 알아주는 괴짜 티호노프 박사가 헐레벌떡 들어와 브라운관 속 강현을 바라보며 ‘my hyun’이라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눈물을 훔치는 것인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서툰 한국어로 ‘과학자가 되라고 했더니 이렇게 멋진 음악가가 되다니, 크흡!’이라고 말했다.
* * *
“금년도는 아주 우수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많군요.”
프랑스의 거장 유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심사위원들은 각자 맡은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대한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금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우수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포진해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왔다는 호타루라는 학생은 신기할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샤펠에서 그의 성장이 어디까지 이뤄질지 정말 궁금하군요.”
“북유럽의 에단은 어떻습니까?”
“그 또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솔직히 금년도의 지원자들은 저희가 굳이 멘토링을 해주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잠재력이 충분한 이들이에요. 무대 위에서 과연 어떠한 연주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샤펠의 선율의 여명이라는 이명답게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한다. 그 덕분일까,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서는 샤펠을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차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각국의 거장들은 자국에서 올라온 신예들에 대한 평가가 자못 궁금한 모양이었다.
“빅토르, 자네가 맡은 지원자들은 어떠한가?”
유고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빅토르에게 향했다. 하지만 빅토르는 마치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빅토르?”
“아,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네가 맡은 지원자들이 어떠한지 물었네, 헌데 상태가 괜찮은가? 컨디션이 꽤 안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빅토르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미국에서 온 쌍둥이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실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형 쪽이 더 우세하더군요. 동생 쪽은 바이올린 실력보다는 작곡과 편곡에 더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빅토르는 대답을 끝마치고는 다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지난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았던가.
아직도 빅토르의 머릿속에는 샤펠의 정원에서 쏟아지는 월광과 함께 연주를 하던 강현의 모습이 생생했다.
‘저 양반이 갑자기 왜 저래?’
강현의 얼굴에는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번 자신을 잡아먹을 듯 고약한 인상으로 노려보던 빅토르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자신을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뭔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미간을 모으지 않는가.
‘다시 한번 연주해 달라고 할까?’
빅토르는 강현의 연주가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첫 대면 때만 하더라도 애송이라고 강현을 무시했던 빅토르였다.
하지만 지난 밤 단 한 명의 청중이 되어 강현의 연주를 감상하지 않았던가.
신동, 천재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던 빅토르였지만 강현의 선율 앞에서는 자신의 오래된 가치관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그 순간 빅토르가 강현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듯 목울대를 출렁였다.
* * *
벨기에 국영방송 RTBF의 피디 마리아는 이른 아침 보자르 홀로 향했다.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꿈에 바라마지않는 콘서트홀이었다. 오늘 그곳에서 벨기에 국립교향악단의 종신 지휘자 에덴 시므온과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만남이 있을 예정이었다.
12명의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보자르 홀에 당도했다. 카네기홀, 콘서트해보우와 같이 유럽 주요의 홀이라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널찍한 객석은 물론이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천장을 장식한 휘황찬란한 양각문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12명의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를 마주한 것은 벨기에 국립교향악단이었다. 그들은 이미 리허설을 하는 것처럼 악기의 조율을 끝마친 상태였다.
그 순간 마에스트로 에덴 시므온의 양손이 허공을 세차게 가로 그었다.
두두두둥―!
어안이 벙벙할 틈조차 없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교향곡이었지만 12명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마치 휴지가 물에 젖듯, 흡입되다시피 몰입했다. 피디 마리아와 촬영감독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솔자로 함께 보자르 홀을 찾은 강현만큼은 갑작스러운 악단의 연주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악단의 연주가 끝나자 에덴 시므온이 고개를 돌려 객석에 앉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바라봤다.
“다들, 교향곡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에덴 시므온의 카리스마에 모두가 압도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교향곡이 그저 황홀하게 들렸다고 대답했으며 또 다른 이는 마에스트로의 지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안나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7년 전 에덴 시므온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교향곡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틀린 부분이 2가지가 있다?”
“마에스트로,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찾은 부분은 2곳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2악장과 3악장에서 각각 틀린 연주자를 찾아냈을 뿐 더 이상 찾지 못했다.
강현은 힐끔 사브리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에덴 시므온의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했다. 바이올린에는 엄청난 재능을 지녔지만 다른 악기는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피디 마리아는 작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교향곡을 단 한 번 듣고 틀린 부분을 모두 찾아낼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 안나라는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틀린 부분 2곳을 찾아냈다고 했을 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많아 봐야 1개가 전부였기에. 그마저도 확실치 않은 것들이었다.
이게 현실적으로 맞힐 수 있는 문제인가?
다른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생각 또한 마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운이 깊게 남은 음악일수록 실수를 찾아내기보다는 황홀감에 젖기 바빴으니.
더군다나 벨기에 국립교향악단의 실력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하물며 종신 지휘자 에덴 시므온의 경우에는 야사 하이페츠와 함께 20세기의 서막을 열었다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마에스트로 구스타프의 애제자였다.
클래식계에서는 영국의 스펜서, 독일의 유리, 그리고 벨기에의 에덴 시므온을 가리켜 여제 카라스의 명성을 이을 차세대 전설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에덴 시므온이 객석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태껏 어렴풋이 한두 개를 맞힌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전부 맞히는 것은 모두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과거 제가 내었던 수수께끼를 모두 맞힌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처음 있었던 일이었고 그 바이올리니스트 이후에는 여전히 아무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마리아가 의문에 가득 찬 시선으로 에덴 시므온을 바라볼 때였다.
에덴은 포근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12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보자르홀로 인솔해 온 음악가를 바라봤다.
촬영감독의 카메라 또한 자연스럽게 에덴의 시선을 따라 돌아갔다.
“현, 이번에도 기대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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