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
001 서막
정마대혈전(正魔大血戰).
이단의 마(魔)를 숭배하는 마신교와 중원 무림의 혈투. 역사에 회자할 참혹하고 치열한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초전은 일방적이었다.
마신교는 안일했던 무림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학살과 도륙으로 피바람이 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무림은 부랴부랴 무림맹을 구심점으로 역량을 모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신교의 교주, 마왕(魔王) 장천경.
교주의 무위는 초월마경의 극, 마신경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증명이라고 하듯, 무림을 대표하는 절대고수의 합공을 받았음에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더는 희망이 없는, 암흑의 시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불현듯 튀어나온 존재가 있었다.
전투의 신, 전왕(戰王) 강무진.
전왕의 등장으로 무림은 반전을 꾀할 여력을 얻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어 보였으나 물가에 떨어뜨린 돌처럼 풍파를 일으켰다. 가히 일인무적이라 할 만했다.
전왕 강무진은 홀로 전장을 누비며 수없이 많은 마인의 숨통을 끊어내었다.
전왕의 전투는 처절하며, 끈질겼다.
지옥대천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누가 마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마신교의 교도들조차 치를 떨어야 했다. 마인은 전왕의 등장에 두려워했고 무인은 희망을 보았다.
전세를 반전시킨 전왕의 가세로 천군만마를 얻은 무림맹은 역공을 펼쳤다. 기울었던 형세는 차차 팽팽해지고 무림의 숨어 있는 저력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림맹은 기어이 마신교를 몰아붙였다.
궁지에 몰린 마신교는 마지막 수를 썼다.
마왕과 전왕의 일기결전.
안휘성 구화산.
무림의 명운이 걸린 전왕과 마왕의 공전절후 한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인외(人外)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신화경의 무인과 초마극에 이른 마인의 사투.
혈전은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공력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던 체력도 상대적이었다. 둘 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공의 극에 도달한 절대자들이기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처절한 혈투 끝에.
마왕이 무릎을 꿇었다.
전왕의 승리였다.
하나, 온전하지 않았다.
마왕은 절세의 무력으로 천하를 떨게 했던 천마를 능가한다고 알려졌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전왕도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숨이 끊어져 가는 마왕이었다.
하아, 하아!
간헐적인 숨의 기복에도 육체가 경련을 일으키며 핏물을 질척질척 쏟아냈다. 고통이 심할 텐데, 얼굴은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죽기 직전 염을 담은, 마지막 꽃이 피는 회광반조(回光返照).
업의 굴레를 벗어버리니, 눈빛도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마인이라기보다는 우화등선을 앞둔 도인을 보는 듯하다.
“드디어 사냥개 신세에서 벗어나는군……. 크크크크.”
“죽기 전에 한풀이라도 하려는 게냐. 평소 같으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들어주마. 복 받은 줄 알아.”
사흘 밤낮으로 싸웠더니 적임에도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다.
전왕에게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찰나의 흔들림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 마왕이 사용한 사법은 섬뜩했다. 사법에 당해 빈틈을 보였다면 누워있어야 할 대상은 자신이 되었을 거다.
“어차피 너나 나나 장기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 말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싸울 수 있으면 족한 거 아냐. 너나 나나.”
터무니없는 개소릴 하고 있었다. 죽기 전에 정신이 나갔나?
마왕이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니, 누군가 들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마왕의 무위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절대고수조차 추풍낙엽으로 쓰러졌거늘,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마왕은 의아한 기색을 비치었다.
보통은 그런 말을 듣게 되면 화를 내거나 부정했을 텐데. 마왕을 쓰러뜨린 절세의 무인이라면 더더욱.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방관자적 태도.
그리고 읽었다.
전왕은 삶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다. 초연함과는 다르다. 그저 살아갈 의욕이 없어 보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째……서지?”
“내가 일어서면 되는 일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봐라, 내 주변에 무엇이 남았나. 저 멀리서 다가오는 탐욕에 물든 인간군상만 남았잖아. 전쟁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어. 그저 내 지나간 실수, 잘못을 풀어낼, 아니 도피처가 필요했을 뿐. 네가 나보다 강했다면 지옥이 내 도피처가 되었겠지.”
전장에서 전왕은 진정 싸움에 미친놈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사이자 악귀의 화신. 그런데 애초에 죽음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이 죽은 채로 육체만 살아 있으면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허…… 그럼 난 아니, 그자 역시도 네 한풀이에 걸린 재수 없는 놈이었구나. 크크크크. 이것……도 나름 재밌군.”
“다 죽어 가는 놈이 실없이 웃기는.”
생사결을 펼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담담한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담은 친구처럼 다가왔다. 이상하기는 했지만, 자연스러웠다.
우정이란,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단 사흘에 불과하지만,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일생의 정수(精髓)가 부딪쳤으니, 그 사람의 전부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그리 후회되지?”
“내가 버린 가족. 그때의 난 쓰레기였거든. 그리고 지금은 살인귀에 지나지 않지.”
쓰레기나, 살인귀나.
인간으로서는 낙제점이다. 그런데 세상은 전왕을, 무림을 구한 영웅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전왕은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늘.
“돌아가고 싶나?”
“훗, 유언은 그것뿐이냐.”
비웃음과 달리,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하지 않을 거다.
내가 왜 그런 허망하고 부질없는 공명심에 집착했었는지, 철이 들지 않은 시기였다. 그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의 한이 되었고, 응어리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었다.
무림의 구심점, 중원을 구한 영웅.
그딴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내 화를, 내 실수를 풀 수만 있다면 설령 가루가 되어 비참하게 죽는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아냐?
하나도 안 풀린다.
속이 시원하기는 개뿔!
“너라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겠지…… 크크크크크!”
“너, 무슨 짓을?”
전왕은 위화감을 느꼈다.
손을 써야 한다.
아뿔사!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누워 있고, 서 있다는 차이일 뿐, 전력의 손실은 같았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마왕과 전왕의 결전을 지켜보는 자들.
그들은 현 무림의 절대자들이며, 무림맹의 핵심 수뇌부다. 그러나 전장에선 철저히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전왕은 진정 불세출의 절대고수였다.
패색이 짙은 무림맹을 이끌고 마신교를 처단했으니, 진정 하늘이 낳은 전장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꼭 이래야 하겠소?”
“저들을 보고서도 그런 한가한 말씀을 하시오!”
전왕과 마왕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초월자들이었다.
천중산(天中山)의 절반이 날아갔다.
무공이 입신에 이른 그들조차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부르르!
평생 무를 익히며 살아온 그들, 자부심이 남달랐다. 누구도 자신들의 위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저들은 달랐다.
인외(人外)의 강자.
천외천.
너무 강해서 몸서리가 쳐진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간사하고, 추악하다.
마신교를 몰아낸 불세출의 영웅에게 돌아온 대가는 토사구팽이었다. 전왕을 따르는 무수히 많은 무인들. 기득권을 가진 그들에게는 위협적이었다. 자신들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왕을 제거해야 했다.
적폐라 욕해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히 사라져 버릴 전설이었다.
“심신을 굳건히 하시오. 오랜 세월 우리는 대륙의 안위를 위해 싸워왔소. 당장의 하찮은 양심으로 조사께서 누대에 걸쳐 세운 위업을 외면해선 안 되오.”
“맞소이다. 저자는 타협을 모르는 자요. 절대 우리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전왕의 파격적인 등장과 거침없는 행동.
그는 기존의 질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전투를 위해 태어난 괴물이었다.
저자가 살아 있다면 그를 따르는 무수히 많은 무인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파격의 구심점이 전왕이었다.
지금도 봐라.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통곡의 벽이었던 대천악의 마인을 기어이 꺾어 냈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나서기만 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왕은 격이 달랐다.
‘죽여야 한다!’
‘우리의 세상을 위해!’
‘살아선 안 된다!’
회의적인, 양심적인 자들도 있을 거다. 하나, 대세를 거스르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한 번만 외면하면 기득권을 유지할 테니까.
그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을 거세게 흔드는 폭발로 산악이 붕괴한다. 무너져 내리는 산의 능선. 전왕과 마왕도 함몰되어 사라져버렸다.
“어찌, 저런!”
“차라리 잘 됐소.”
정도를 지향하는 그들로서는 꺼려졌던 일. 이것으로 마무리되는 게 나았다.
그러나 모르고 있었다.
난세는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