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102
101 (가)족 같은 세가(2)
무진은 사천당가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는 거라고는 전왕 때 같이 활동하다가 갑자기 뒈진 놈뿐이다. 잠깐이지만 이놈하고 죽이 잘 맞아 마신교를 많이 때려잡았는데. 명성을 얻고 나서 함정에 빠져 뒈졌다. 당시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돌이켜 보면 이상하긴 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뒈질 놈이 아니었거늘.
‘지금까지도 존재감이 없다고? 이건 말이 안 되지.’
눈에 잘 띄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가문에서 없는 사람처럼 쥐 죽은 듯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능력을 후일 만개하는 대기만성형이라는 소린데, 독공은 특성상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무공이든 완성하긴 힘들지만, 독공은 입문부터 정수에 이르기가 훨씬 어렵다.
‘몰래 익혔는데도 그 정도란 말이지.’
독공을 아무도 모르게 익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독 특유의 성질도 있고, 내력으로 다스리기도 까다롭다. 반대로 제약 없이 대놓고 익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까운 재능을 썩히면 곤란해.’
-맞는 말이야.
무진은 불필요한 가지를 치워 버리기로 했다. 줄기가 많으면 나무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럴 바엔 처음부터 치워 주고, 필요한 가지만 남기는 편이 효율적이다.
임무를 마친 육칠이 돌아왔다.
육칠은 무진의 말대로 하기는 했지만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록 독과 암기를 다루기는 하나, 사천당문은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파의 기둥이었다.
“이유가 뭡니까?”
“짐작하고 있잖아.”
“사천당문은 명문 세가입니다.”
“황실은 그럼 도살자 집단이냐?”
“헉, 제발 그런 무서운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제가 제 명에 못 살겠습니다!”
명문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권력욕에 사로잡히면 다른 건 눈에 차지 않거든.
***
소문이 적당히 퍼지기를 기다린 후 때가 되자 무진은 철호와 성도를 돌아다녔다. 사천의 수도답게 청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규모였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보면 다양한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특히 사천의 매운 음식은 무진의 입맛에 잘 맞았다.
매운 두부와 고기는 일품이었다.
그렇게 시내와 시장을 돌아다니다 단단면을 파는 이동식 포차에 앉았다. 연륜이 묻어나는 할머니가 면에 매운 양념을 넣고 육수를 부어 내주었다.
후르륵!
무진은 국물부터 마셨다.
‘굉장하네.’
매운데, 시원하다. 상극인데 맛을 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기엔 간단해도, 맛의 깊이가 다르다. 같은 포차라도 장사가 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떠냐?”
“매운데 계속 당기네요.”
“더 시켜 주랴?”
“먹어도 됩니까?”
“사부가 제자 국수 하나 못 시켜 주겠냐. 맘껏 먹어.”
“감사합니다, 사부님!”
철호가 어리광을 부리자 주변에서 먹고 있던 손님들이 식겁하기는 했다. 딱 봐도 철호가 사부인 줄 알았던지라 놀람은 컸다. 먹다가 사레 걸릴 뻔했다.
후르륵, 후루륵!
철호의 식성은 성장기답게 굉장했다. 무진과 함께 벌써 열일곱 그릇을 돌파하고 있었다.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라도 하듯 사제가 동시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퍼마셨다.
주인장 할머니의 안색이 점점 검어지자, 활기를 북돋기 위해 지금까지 먹은 음식 값을 치렀다. 먹고 튀는 놈들이 많아 주인장은 걱정이 많았다.
“네가 여기 어쩐 일이지?”
한창 먹고 있었다. 도중에 끊어지면 안 되기에 미리 주문한 상태였다. 돌연한 불협화음에 철호는 먹다가 돌아본 후 단단면을 섭취했다.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기억이 나지 않았던 철호는 상대를 꼼꼼히 살폈다. 복장이 달라져서 생경했는데, 그제야 기억이 났다. 무진과 마찬가지로, 철호도 한 번 본 사람을 잘 기억하진 못했다.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누구냐?”
“사천당가의 당천호입니다.”
“아, 그래.”
무진은 피식 웃으며 식사에 열중했고, 철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중하게 무례를 사과했다.
“당천호, 미안하다. 모습이 바뀌어서 잊고 있었어. 실수니까 너그럽게 용서해라.”
나름대로 사과한 철호는 미련을 두지 않고 흐름을 다시 잇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
호호호!
미성(美聲)의 청아한 웃음소리였다. 재밌다는 듯이 사태를 관망하는 여인의 태도에 당천호는 인상을 구겼다.
“우리 천호, 잘난 척하더니 임자 만났네.”
“실수였어.”
“실수 두 번 했다가는 얼굴이 남아나지 않겠는걸.”
“적당히 해! 누나라도 가만 안 둬.”
여인의 이름은 당천예로 당천호와는 세 살 터울이었다. 방금 동생의 모습은 꽤 신선했다. 남궁세가의 소룡대회에서 망신을 당하긴 했어도, 천호의 무력을 깎아내리진 않았다.
동생을 이겼다는 녀석이 어떤 놈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어떤 녀석이기에 동생을 이겼을까? 비슷한 또래 중에 동생을 이길 만한 잠재력을 가진 녀석은 많지 않았다.
과연, 굉장한 얼굴이었다.
저게 어떻게 동생과 같은 나이일 수 있을까. 천호가 발끈하지 않았으면 아버지와 동년밴 줄 알았을 것이다.
“도전하겠다.”
“밥 먹잖아.”
철호로선 귀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이겼고, 다시 싸운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밥이 아니라 국순데.”
사부의 신소리에 철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리 나오는 걸 보면 싸우라는 신호다. 거절하면 지옥이 기다린다. 어쩐지 순순히 면을 사 줄 때부터 알아봤다.
벌떡!
거절하려던 철호는 남은 국수를 후루룩 삼킨 후 일어섰다. 십칠 세임에도 앉아 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일어서니 두 배는 더 커졌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다. 사부와 함께 있다 보니 작아 보였던 것이다.
두둥!
철호가 일어서며 다가서자 당천호의 잘생긴 얼굴에 그림자가 형성됐다.
‘뭐야, 이 새끼!’
소룡대회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덩치가 훨씬 커졌다. 그저 몸만 부풀었다고 보면 오산이었다. 몸 전체에 풍기는 기질이 단단했다.
-적당히 하지 마라.
무진의 전음에 철호는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간파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눈치가 생겼다.
“간다.”
“오너라.”
기세에서 밀렸던 당천호도 물러서진 않았다. 소룡대회가 끝나고 돌아와서 두 달간 폐관수련을 했다. 눌려 있었던 기세가 깨어나며 철호와 맞섰다.
“날붙이를 써야 할 거야.”
무진은 철호의 능력치를 고려하여 당천호를 도발했다. 쓰지 않으려고 해도 쓸 수밖에 없도록.
둘이 대치하는 사이, 당천예가 무진의 옆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재밌는 분이네요. 혹, 아저씨가 천운권인가요?”
“그거 하지 마. 대체 어떤 새끼가 그딴 별호를 붙인 거야! 붙이려면 최소한 전왕 정도는 되어야지. 나를 뭐로 보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무진은 그 자리에 있었고, 운이 좋아 활약을 펼쳤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현악검을 이겼음에도 천운이 닿았다고 소문이 났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천운권이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광오한 아저씨네요.”
“그만한 실력이 되거든.”
“우리 할아버지와 자웅을 겨루시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못 할 것도 없지.”
무진의 태연한 대답에 당천예는 흠칫 놀랐다. 이자가 지금 제정신으로 한 말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쯤 되니 재밌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왕이란 칭호는 어설픈 실력으론 감히 넘보지 못하는 자리다. 하물며 당천예의 할아버지, 당사독은 현시대의 독왕이었다.
“당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그 전에 네 동생부터 챙겨야겠는걸.”
“그런 말로 나를…… 어?”
“보기완 다르게 제법이지, 내 제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호와 당천호의 대결이 펼쳐졌다. 규격의 대비가 확실하기에 속도와 파괴력의 싸움처럼 비쳤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펼쳐진 철호의 공세를 당천호가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천성으로 넘어오는 동안 기연을 얻은 철호였다. 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소룡대회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같은 무공을 쓰지만, 속도와 파괴력이 몇 배는 강해졌다.
투아아앙!
두 손을 십자의 형태로 교차하여 막은 당천호는 튕겨 나가며 바닥을 대차게 굴렀다. 다섯 바퀴를 돈 후에야 겨우 멈춰 선 당천호의 두 눈엔 경악이 담겼다.
부르르르!
막은 두 팔이 저려 왔다.
‘……괴물 같은!’
밀리다 보니 품에 숨기고 있던 구환살을 펼쳤었다. 일수에 펼쳐지는 아홉 가지 암기, 구환살을 육신으로 전부 튕겨 냈다. 전신이 쇠보다 단단하지 않고서야 어찌…….
게다가 빠르다.
추뢰환영보의 근간을 흔들어 대며 동선을 차단했다. 어디로 가도 놈의 궤적 안에 갇혔다.
단공보의 정수를 깨달은 철호는 자신만의 공간에선 최적화를 이루었다. 제어 공간이 형성되었고, 그 안에 갇힌 당천호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퍼억!
기회를 잡은 철호는 다리를 후려친 후 쓰러지는 당천호의 얼굴을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쿠다다당!
그것으로 당천호의 의식이 끊어졌다.
주변을 에워쌌던 사람들은 싱겁게 끝난 대결에 망연자실했다. 사천당가의 무인을 저토록 간단히 쓰러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너무하는 거 아닌가!”
“어른이 돼서 애를 괴롭히고 말이야.”
“그나마 나이 차이가 나서 다행이지.”
철호의 나이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당천호의 패배를 자위하고 있었다.
“운이 좋네.”
“본가를 무시하고 무사할 것 같아요!”
“무시한 적 없는데.”
“이제 와서 발뺌하는 거예요?”
“당가가 아니라 너희들을 무시한 거야. 솔직히 아무것도 아닌데 왜 자꾸 덤비지?”
사천당가는 대단해도 너희들은 아니라는 무진의 뼈 있는 촌철살인에 당천예의 고운 아미가 내천자를 그렸다. 그녀로서는 겪어 보지 않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무례한 건 둘째 치고, 겁이 없었다. 여기는 사천이다. 사천성에서 사천당가의 무인을 도발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도망칠 수 없어요!”
“내 제자도 못 이기는데 도망을 왜 쳐.”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이기면 내 팔을 잘라라.”
자를 수 있다면.
무진은 책임지지 않을 약속을 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의 사태에도 뻔뻔했다.
후륵!
국수는 맛있네.
무진은 모르는 척 국수를 흡입했다. 내용물이 조금 달라진 것 같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휘리릭!
당천예의 실력은 당천호보다 한 수 위였다. 가벼우면서도 예리하고, 정수가 실려 있었다.
타타탕!
사혈비 일곱 개를 날렸던 당천예는 황당한 표정으로 철호를 보았다. 철호의 옷에 닿았을 뿐, 그것들은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남은 암기는 주먹으로 쳐 냈다. 닿기만 해도 베이는 사혈비의 날카로움이 통하지 않았다.
‘……무식한!’
찰나의 간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제야 동생이 어처구니없이 당한 이유를 깨달았다.
명백한 실수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 간격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찾아오기에는 늦었다.
까아아악!
철륜박 충파(衝破).
철혈사자공의 진력이 담긴 충파에 부딪힌 당천예. 그녀의 신형이 저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다.
쿠다다다당!
바닥을 내리구른 후 엎어졌다. 청초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산발이 되어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었다.
툭!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기절해 있는 당천호를 깨웠다. 진짜 자기 집도 아니고, 냉 바닥에서 계속 자면 입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