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49
248 교란술(4)
바글바글!
우글우글!
송호문의 정문.
대결이 치러지기로 한 장소였다. 예전과 달리 송호문의 규모가 커지면서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긴 했다. 무명 문파라고 하기에는 이젠 송호문도 관록이 있어 보였다.
“청양제일문이라고 하더니, 과연.”
“정문에서부터 담벼락, 건물까지 모두 새로 지은 것처럼 깨끗하잖아.”
“확실히 강해지니까 돈이 들어오는구나. 전엔 우리보다 못했던 문파였는데.”
“부러워할 필요 있나. 곧 끝장나게 생겼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호문은 중소 문파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문파에 불과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소문파가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문파가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승승장구하던 송호문이 벽에 부딪혔다고 보았다. 상대는 사도 무림을 대표하는 패룡이었다. 그를 상대로 신검마협이 선전할 수 있을까? 패룡은 거산방의 방주였던 거산마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인이었다.
“지금쯤 초상집이 따로 없겠지.”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긴 하다.”
“도망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용기는 있다고 봐야지.”
“아직 몰라.”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이럴까나.”
몰려든 인파는 송호문의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면 패룡이 도착할 것이다.
패천문은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적지 않은 행렬이 이어졌다.
끼이이익!
송호문의 정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정문으로 쏠렸다. 신검마협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하인들이 나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쓰윽, 쓰윽!
문을 고정하고, 정문 주변을 빗자루로 쓸었다. 떨어진 낙엽을 한데 모아서 분리했다.
“저거 혹시, 청소하는 건가?”
“그렇긴 한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멀쩡하잖아.”
“오늘 대결하는 거 모르는 거 아냐?”
“소문이 자자하게 났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
“하면 왜 다들 평소처럼 행동해?”
“이거 혹시 우리는 대범하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 아닐까?”
평소와 다르지 않은 송호문의 태평함에 사람들은 의아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두려운 감정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라고 생각했다. 빗자루를 들어 청소하는 하인들도, 사실은 무인들일 것이다.
“청소 끝냈습니다, 소문주님.”
“들어가 보게.”
준비를 끝낸 무호가 걸어 나왔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먼저 나온 것이다. 다만, 송호문의 문주를 비롯한 핵심 수뇌부가 아닌 미래를 약속한 능소려가 같이했다. 주변에 무인이라고는 달랑 세 명이 전부였다.
“다들 도망쳤나?”
“도망치다니, 그랬으면 알았지.”
“그러면 이 중요한 자리에 왜 안 나와?”
“문파의 명운이 걸렸는데 저래도 되는 거야?”
“문파의 대들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안 되니까 포기한 거 아냐?”
구경꾼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송호문의 태도였다.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기 위한 위장치고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평소처럼 자기 일들을 하려는 모양새였다.
우르르르!
그때 무인들이 몰려나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며 자신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자랑했다.
“소문주님, 아침 구보 다녀오겠습니다.”
“적당히 굴리게.”
군중의 예상대로 무인들이 나왔지만, 무력대는 사열을 갖춰 문파 주변을 돌았다. 굳어진 몸을 풀기에 구보만 한 운동이 없다지만, 저래도 되나 싶었다.
오늘이 별달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송호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흑룡성과 무림맹에서 열심히 홍보했던 것과 달리 송호문은 잠잠했다.
너희들은 떠들어라, 우린 우리 길을 가겠다.
마이동풍, 우이독경이었다.
“끝나고 제가 맛있는 거 해 드릴게요.”
“려 매가 해 주는 요리는 뭐든 다 맛있어.”
“그러면 안 돼요. 자꾸 다 맛있다고 하며 발전하지 못하거든요. 나중에 엉망진창이 되면 어쩌려고요.”
“못 당하겠군. 그래서 려 매가 좋아.”
무진이 없는 동안 무호는 정운상단에 연통을 넣었다. 그 즉시 그녀는 열 일 제쳐 두고 무호를 찾아왔다.
능소려는 걱정도, 근심도 보여 주지 않았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할 뿐. 그것이 가문과 강 공자를 위하는 일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들어가 있어. 곧, 갈게.”
“기다릴게요.”
상당한 기운을 가진 무리가 송호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세를 갈무리하지 않고 패룡임을 숨기지 않았다. 사파답지 않게 패도를 지향했다.
‘패배가 없다고 했지.’
개방에서 패룡에 대한 정보를 보냈었다. 그는 패룡의 별호를 가진 이후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연전연승으로, 상대하는 자들을 일방적으로 무참히 꺾어 버렸다.
우우우우웅!
진신 무공인 광천패마공이 패룡의 전신을 감싸며 사위를 압도했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공간을 벌렸다. 가까이 있다가는 휩쓸릴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평생 마주하기 힘든 구경거리긴 하나, 목숨이 걸려 있다면 예외였다.
패룡은 상당한 거구였다.
무호도 무진과 비교해서 조금 작을 뿐, 평균보다 컸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무호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척!
패룡과 마주한 무호는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정도와 사도를 떠나, 후배로서 선배에게 정중히 예의를 차렸다.
“송호문의 강무호입니다. 담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법 예를 아는 녀석이군. 하나, 나는 상대를 봐주는 성격이 아니다.”
패룡 담사악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근자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하나 그 전까진 들어 보지도 못했다. 하물며 이제 막 검에 눈을 뜬 애송이였다. 그런 애송이한테 신검마협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별호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무인을 겪어 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에게 하늘 밖의 하늘을 알려 주기로 작심했다.
“시간 끌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바로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냐, 나도 시간 끄는 걸 원치는 않는다.”
무호와 담사악이 자리를 잡았다.
원을 그리며 관중이 넓게 포진했다. 이 대결이 가볍지 않음을 알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패룡이 대단하긴 해도, 신검마협도 떠오르는 신성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공전절후 한 대결이 펼쳐지리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화르르르!
광천패마공을 완전히 개방하자 염천패기(炎天覇氣)가 발산되었다. 패룡이라는 별호를 이어 가게 만들어 준 그의 투기였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주도하며 압도적인 기백을 과시했다. 능히 일대의 패자를 자처할 만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오너라,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게 해 주마.”
“가겠습니다.”
사파답게 패룡은 삼초 양보를 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전력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상대의 기를 죽이며, 자신의 영역을 창출했다. 경험이 많은 만큼, 변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작은 틈조차 내어 주지 않고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런 패룡을 향해 무호는 일보를 내디디며 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의미를 품진 않았다.
발검.
흥!
무호의 자세에 패룡은 헛웃음이 나왔다.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승부를 운에 맡기려는 것인가? 일격필살의 발검술로 승부를 보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발검은 분명 빠르다. 하나, 막거나 피했을 때의 허점이 크다. 그야말로 한 번 내지르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행위였다.
‘그따위 어설픈 수작이 내게 통하리라 보느냐!’
광천패마공의 폭렬잔악(爆裂殘惡)을 펼쳐 놈의 숨통을 끊어 주리라.
응?
살의를 품었던 패룡은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놈이 일보를 펼치는 순간,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 운신이 불편해졌다. 그러한 불편함은 점점 더 강해져 그를 옥죄었다.
‘이건 설마…… 역장!’
의념으로 창출해 낸 기의 공간. 하나, 실전에서 효과를 보려면 최소한 초절정의 중반,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서야 했다.
우웅!
서슬이 퍼런 기운이 무호의 검에 맺혀 완성되었다.
말 그대로 찰나였다.
‘……이건 말도 안 돼!’
패룡은 전력을 끄집어내며 역장을 무력화하려고 했으나, 무호의 검이 빨랐다. 순식간에 패룡의 염천패기를 갈라내고 숨통을 베었다.
스왁!
번뜩!
가르고 지나간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서로의 거리에서 멈춰 선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나를 속여!”
“담 대협,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창한 대결을 기대했던 모두와 달리 무호는 담사악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무패의 전적을 쌓아 오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이길 만한 상대하고만 싸워 왔다. 그러고선 잔혹한 수를 써서 패도의 화신처럼 포장했다. 다들 무패에 현혹되어 그를 강자로 보았을 뿐, 무호에겐 반쪽짜리 무인이었다.
털썩!
기력을 잃어버린 패룡은 모래성이 되어 허물어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멈춰 서 버렸다.
허!
구경꾼들은 숨을 몰아쉬고 내쉬었을 뿐.
그사이에 대결은 끝이 나 버렸다. 지나치게 허무한 결론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패룡이 저리 간단히 쓰러질 위인이 아니지 않는가.
장난도 아니고, 어서 다시 일어나라고! 이 대결에 판돈을 걸었던 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끝난 거야?”
“이리 싱겁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본 사람?”
“난 봤어. 검이 휙 하자, 홱! 하고 쓰러진 거야.”
“미친, 다들 눈뜬 봉사냐!”
발검을 제대로 본 사람들이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려서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결과는 나왔다.
패룡의 패배였다.
당연하게도 패룡과 함께 온 패천문의 무인들은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지 못한 채 분노했다. 이대로 대결이 끝나 버리면 패룡은 물론, 패천문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이다.
이 대결을 통해서 패천문은 청양의 지배권을 가져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손안에 들어왔던 패권이 꽉 쥐어진 모래알처럼 흘러내렸다.
“……사술이다!”
“감히 신성한 대결에서 사술을 쓰다니!”
“이러고도 정도의 무인이더냐!”
“어서 죄를 시인하지 못할까!”
패천문의 장로 육마도(六魔刀) 단천상은 분위기를 몰아갔다. 여태까지 패룡의 전적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 패천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공을 들여 쌓은 무쌍의 전적이 이런 식으로 얼토당토않게 끝나 버리다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우우우웅!
무호는 패천문의 적반하장에도 침착했다.
저들이 저리 나올 줄 알았기에 곧바로 검을 들었다. 굳건한 믿음이 찰나에 붕괴하면 불신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내력을 받은 검에서 기운이 응축되어 완전한 형태의 검이 드러났다.
흐억!
분노하여 미친 듯이 달려들었던 무인들이 멈칫했다. 억지로 반전을 주도했던 단천상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자의 검강이라고? 이런 미친!’
애초에 패룡이 이길 수 없는 자였다. 최소한 초절정의 극의에 도달했다고 봐야 했다. 이쯤 되면 패천문의 문주가 와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런 자를 사술로 몰아가 봤자, 될 턱이 있나.
“죽고 싶은 모양이지.”
무호의 담담한 호언에 단천상과 무인들은 사색이 되었다. 마른침이 꼴깍, 꼴깍 넘어갔다. 이대로 목이 베어 수급이 잘려도 그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정당한 승부를 사공으로 몰아갔으니 죽어도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