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81
280 규화(葵花)(2)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이 망할 놈의 문파는 겪을수록 상식적인 선을 벗어났다.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문파라면 그나마 낫다. 옛 유산을 복구하여 영광을 찾았다면 또 모를까.
그야말로 갈대 같은 문파였다.
과거의 찬란한 유산은커녕 있으나 마나 한, 물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역사를 자랑했다. 한 획을 긋기는커녕 점 하나조차 찍어 본 적이 없었던 듣도 보도 못한 무문이었다.
그런 문파에 화경급 고수가 있고, 초절정의 고수도 있으며, 절정의 고수들이 꽤 있었다. 대문파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막강한 전력이었다. 하물며 벽을 넘을 유망주들이 널려 있어 장래조차 밝았다.
‘약관도 안 된 애새끼들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문파의 막강한 전력 못지않게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늙어 가는 문파가 아닌 더욱 강해질 여력이 충분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전력을 숨기기 위해 위장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랬다면 강호를 시끄럽게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전부는 아닐지라도 송호문은 현재 강호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문파야?’
숨기려면 잘 숨기며 살 것이지, 왜 줄줄 흘리고 다니냐고.
사람 헷갈리게.
판단이 점점 모호해졌다.
흑룡성에서 패천문을 내세워 압박했고, 무림맹은 방관했다. 이쯤 되면 문파에 긴장감이 흘러야 하는데, 다들 여유가 넘쳐 흐르다 못해 한가하다. 그럴 만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긴장감이 없다.
그런 나날이었던 송호문의 방만한 기류가 어느 순간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수뇌부들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림맹과 흑룡성의 압박에도 긴장은커녕 실없이 웃고 다녔던 인간들이 날이 선 듯 바짝 굳었다.
난 또 전쟁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었다.
웬걸!
그냥 집 떠났던 문파의 장남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마땅히 기뻐해야 하거늘, 긴장 타고 있었다.
그럼 장남이 대단한 자일까? 그럴 리가? 자리조차 보전하지 못하고 쫓겨난 장남이 대단할 리가 없지 않은가.
‘또 뭐가 있는 거야?’
멀찍이서 봤을 때는 솔직히 밋밋했다. 몸집이 좋기는 해도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대외적인 소문도 그렇고. 운이 좋아 명성을 얻은 망나니라 보는 게 적합했다.
‘드러난 게 전부는 아니란 건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쟵니다. 주군!”
하루 이틀 찾지 않아서 안심했던 강철은 나릉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기겁했다. 찰나지만 나릉의 목소리에 ‘쫄았던’ 자신을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달라지긴 했어도 같은 오대야객이었다.
그러나 나릉의 뒤에 문파의 분위기를 바꾼 사내가 서 있었다. 함부로 경거망동은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만 평범해 보일 수 있었다. 정상적인 문파로 봐선 안 되었다. 평범한 얼굴 뒤에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흠.
집에 돌아온 무진은 가족과 보내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함께 해도 부족하고 바쁜 일상이라 객식구가 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었다.
사실 몰라도 상관은 없었다. 나릉이 간곡하게 요청하지 않았다면, 객식구 이(二)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이놈이야?”
“예, 저보단 못해도 제법 쓸 만합니다.”
흥미가 또 반감이 된다.
너보다 못하면 사람 구실 하기 힘든 거 아닌가?
객식구 삼, 사, 오(五)가 적합하려나.
나릉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문파에서 역할 대행을 제외하고 다른 쓸모를 고민해 보지도 않았던 무진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기억이 났었다.
그런 무진에게 오대야객 따위가 눈에 차겠나. 그나마 나릉은 성취가 있었는지 천무진경의 화후가 제법이기는 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나릉이었다면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새끼가 좀 강해졌다고 우쭐대기는!’
강철은 물건처럼 품평하는 나릉의 처우에 발끈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인정과는 별개로 개 같은 성질머리여서, 건드리면 하루가 지옥이었다.
사력을 다해 도망쳐 봤자 나릉의 발바닥 안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발가락에 입술이 꼬집힌 채 바닥을 나뒹굴 때의 기억은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일단 호구조사를 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나. 후일 나릉에게 시킬 일이 있겠지, 라는 대수롭지 않은 기대를 품고서.
“이름?”
“강철입니다.”
“오대야객이라고?”
“그렇습니다.”
“나이는?”
“나릉보다는.”
“됐고.”
무진은 강철의 신상을 물어본 후 잠시 침묵했다. 겉으론 고민하는 것 같은데, 실제론 무념무상의 극의였다. 나릉조차 당장은 집 안의 금고를 지키는 역할이 전부였다.
공짜 노예가 필요하긴 한데, 두 명이나 필요한가?
잘 먹어서 살도 찐 것 같고.
대체 얼마나 처먹는 거야?
다만, 잔뜩 기대를 담은 나릉을 보니 어떤 의도인지는 뻔히 읽혔다. 하긴 도둑놈들에게 의리가 있을 리 있나. 찰나 눈알을 굴리는 강철을 보자 확신이 섰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마다할까? 물론, 소원을 들어 보고 맘에 안 들면 부관참시에 능지처참이었다.
“너, 나 모르지?”
“천운권이시지 않습니까.”
“이런,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한 식구가 됐는데 숨기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가족 간에도 비밀이 많으면 분열을 초래하게 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이치로써 비밀은 될수록 만들지 않는 게 이롭다.
한편으로 우리만의 비밀을 간직했기에 진정한 식구가 될 수 있었다.
이른바 공범론.
혼자만 빠지면 배신자라는 동질감.
나릉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피는 안 나눠도 강철과 진정한 형제지간이 되고 싶다고. 같은 걸 공유하고 싶은 인간의 마땅한 기본 심리였다.
“이제 알게 될 거야.”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만.”
“눈치는 빠른데.”
“잠깐…… 헉!”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허공에 붕 떠 버린 강철은 말문이 막혔다. 내력을 발동하여 벗어나려고 했지만, 육체는 막대기처럼 빳빳해질 뿐이다. 천향루의 특급 기녀 예향과 잠자리를 나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허공섭물!’
이런 미친!
고수에게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는 어렵지 않은 기예다. 그러나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들어 올리는 것은 아예 다른 영역이었다.
하물며 자신은 오대야객에 속하는 대도로서 적지 않은 내력을 품고 있었다. 발버둥마저 무시하고 허공섭물로 잡아챘다는 사실만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릉아, 보기보다 의리가 어마어마하구나.”
“제가 의리 빼면 시체지 말입니다. 하하하하!”
사람 들어 놓고 딴짓을!
강철은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기가 막혔다. 그제야 저 간사하고 표리부동한 나릉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연유를 깨달았다. 하긴, 소문주만 해도 화경에 이른 절대고수다. 문파에 흐르는 긴장감의 실체를 깨달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안 되면 백치라도.
원흉이 재미난 장난감을 보듯 웃고 있었다. 강철은 잘못된 만남에 두려움을 느꼈다.
“뭘 하려는 겁니까?”
“나도 이러고 싶진 않지만, 나릉이 원하잖아. 친구 간에 동질감도 필요하고.”
“뭔진 몰라도, 계속 모르고 싶습니다! 그러니 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감이 좋아.”
이런 빌어먹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확실히 강철은 감이 좋았다. 앞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를 파악했다.
네가 하지 말란다고 내가 안 할 것 같냐는, 무대포 정신으로 무장된 완전무결한 우이독경의 총화.
스물스물.
무진에게서 물처럼 흘러내리는 검은 물체가 알알이 분열하여 날카로운 침으로 화했다. 신화마정갑의 통제력이 경이로웠다. 염산호를 치료하면서 더욱 발전된 영역에 도달했다.
‘마왕아, 노예 이호다.’
-시답지 않은 일을 시키는군.
‘내키진 않지만, 어쩌냐. 상은 줘야잖아.’
-언제부터 상벌을 가렸다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주고받음은 확실해.’
-그럼 나는?
‘…….’
툴툴대기는 해도 마왕은 순순히 신화마정갑을 펼쳐 강철의 육신을 휘감았다. 일순간에 삼백육십 개의 혈맥을 구속하여 더욱 철저한 금제를 가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죽어서도 영혼까지 금제 될지도. 그에 대한 실험은 구천을 떠돌 때 해 보기로 하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크아아아악!
귀를 따갑게 하는 하찮은 비명은 기막을 쳐서 차단했다. 문파 내에서 가혹 행위가 벌어진 줄 오해할 수 있으니 표정은 밝게 조정했다.
“네 거보다 좋은 금제야.”
“강철의 영광입니다.”
나릉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근래에 이보다 더 좋은 경사가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시작에 불과했다. 차후 오대야객을 전부 수집하여 동질감을 공유할 계획이다. 주군의 성은을 둘이서만 알고 있으면 서운했다.
금제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일정 영역에 오른 자들은 금제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금제에 걸려 있는 놈들은 더더욱 그렇고.
‘굳이 금제할 필욘 없지.’
-잔머리 하난 타고났군.
‘언제부터 전투에 수단 방법을 가렸다고. 마왕이 평화에 젖더니 물러졌군.’
-헛소리를, 나는 전투의 마왕이다!
전투 중에 금제를 무기처럼 사용한다면 제압이 수월할 터. 굳이 대단한 금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념을 집어넣어 집중력을 흩트려 놓기만 해도 전투의 향방을 손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백중세일 때 펼치면 유용했다. 양의심공을 익히지 않아도 마왕이 개별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맡겨도 되겠지?”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문파의 충실한 일꾼이 될 겁니다.”
나릉은 사명감을 불태우며, 기절한 강철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혼자일 때보다 든든하다. 몰랐는데, 혼자만 알고 있어서 억울했었다.
‘시험해보자.’
일단 여기선 곤란하다.
나릉은 강철을 업고 산으로 향했다. 인적이 없는 공터에 도착한 후 강철을 내려놓았다.
툭!
언제까지 처자고 있을 거야?
해가 중천…… 됐고.
주군이 없는 이상, 이 자리의 주인은 나릉이었다. 이제 본인의 처지를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 틈만 나면 도주할 생각일랑, 아예 나지 않도록 정신 무장할 차례였다.
헉!
의식이 돌아온 강철은 몸에 이상이 없나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자신을 옭아매려고 했던 나릉을 보자 짜증이 치밀었다.
“이 치사한 놈이 할 짓이 없어서 사람을 팔아!”
“주군의 은혜를 외면하지 마라. 이게 다 널 위한 거다.”
“누가 그딴 은혜가 필요하데! 하려면 너 혼자 해!”
“어허, 너 주군의 은혜를 모독하는 거야?”
“모독했다, 어쩔래?”
강철도 이판사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였지만, 나릉의 의도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내로서 자존심이 있지~!
한데, 나릉 이놈이 화를 내기보다 환하게 웃는다.
-크크크크크크!
“……?”
어째서 웃음소리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하나도 안 웃긴데.
어?
크아아아아아악!
이상함을 느끼기가 무섭게 전신의 혈맥이 뒤틀리며 바늘로 콕콕 찔러 대며 찢어발기는 극한의 고통이 밀려왔다. 분골착근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작금의 처지가 극한 직업인 줄 알았더니, 천외천의 겁천지옥이 열렸다.
바르르르르!
반 시진 동안 금제의 영향을 받은 강철은 전신을 땀으로 적시며 혼비백산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따져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어때, 주군의 은혜가?”
“은혜는 개뿔, 지옥 불에 바사삭 튀겨 죽여도 시원찮을 개자식이!”
“어, 욕했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