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89
388 귀환(4)
점심때가 되었다.
무진이 자리를 잡자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서문호는 자리를 평평하게 다지고, 철호는 사냥하고, 육칠은 양념을 만들었다. 세 사람의 일사불란 합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전음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경지였다.
반각 만에 훌륭한 정찬이 차려졌다. 노숙 시 필수 도구를 항시 구비하여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인생이 그렇듯,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밥때를 놓쳐 가면서 할 일은 이 세상에 많지 않았다.
무진은 될수록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다 챙겨 먹었다. 번거롭고, 귀찮다고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또한, 먹는 데는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의미보다, 맛있는 것만 먹으며 살아가도 짧은 인생이었다.
“수로채의 대응이 빠른데.”
“하오문주가 직접 챙기는 듯합니다.”
“그런 경우가 흔하냐?”
“향주급 이상도 흔치는 않습니다. 하오문이 교에 포섭되었을 가능성을 조사 중입니다.”
개방이 정보전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녹림의 대응이 한발 늦어 손해를 입었다. 개방에 버금가는 조직이 수로채를 돕고 있다는 뜻이다. 마신교의 정보력이라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현재로선 대놓고 활동하지 못했다.
‘하오문이 먹혔었나?’
-모른다.
‘아는 게 뭐냐?’
-내가 굳이 정보를 모을 필요는 없잖아.
마왕은 전투만 치렀던 교의 병기다웠다. 자잘한 일들은 성천급에서 처리했다.
무진은 하오문이 마신교에 붙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미래에 전력의 우위가 뚜렷했을 때조차 하오문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었다.
“하오문의 뒤를 캐 봐.”
“예, 강 대협.”
녹림의 피해는 예상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전체적인 국면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전력에선 여전히 녹림이 압도적이었다.
낭악으로선 전면전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겉으로야 밀리지 않아야 하기에 전력을 집중시켜야 했었다. 녹림과의 수적인 차이는 물론 녹림왕 개인의 무력도 경계할 수밖에 없다.
“때가 되었으니, 할 건 해야지. 필도에게 연락해서 협상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청성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처제들이 사고 치진 않았겠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무진의 당연한 불신에 육칠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래도 처젠데 이렇게나 믿음이 없다니, 지나치게 솔직했다.
무진의 예상과는 달리 처제들은 인기가 있었다. 미인계로 청성파의 도인들을 꿰어 냈고, 당연우가 파고들 여지가 생겼다.
“노인네가 조바심을 내면 안 되는데.”
“여태 많이 참았다고 하십니다.”
노인네를 진정시킬 뇌물이 필요하다.
무진은 친구에게서 빼낸 심장을 당문에 보내기로 했다. 흑마룡의 심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버릴 데가 없는 친구였다. 심장부터 발톱까지 쓰임새가 다양했다.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 유용하게 써 준다면 지옥에서도 흡족해할 것이다.
“무혈마독까지 내어 주면 좋아하시겠지?”
“그렇지요.”
차마 친구의 심장을 남의 손으로 빼낼 순 없다며 직접 뽑았다. 심장과 딸려 나온 핏줄은 술통에 넣어 보관했다. 술은 부수적이지만, 혹시나 정력에 좋을까 봐 고민은 된다.
“하북팽가의 내분이 격해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결판을 내기는 해야 할 텐데. 시기를 못 맞추면 곤란하단 말이야.”
맹주의 교체와 무림대회로 시끄러운 이때야말로 최적이긴 했다. 무진은 이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마신교를 견제하고 단물을 빼먹을 심산이다.
-천월의 자산을 노리는구나.
‘먹어도 탈이 없잖아.’
정운상단을 통해서 깨끗하게 털어 사용하면 된다. 어차피 정상적인 과정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아니니, 좋은 데 쓰면 이로운 일이지.
이번 작전을 위해서 하북팽가, 황보세가, 정운상단, 항주의 떨거지들까지 움직였다.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한 만큼, 보상은 확실해야 했다.
-그 보상을 왜 네가 먹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야.’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먹은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야 다음에도 이용할 수 있다.
한동안 뜸했으니, 이제 화려하게 귀환할 때였다.
***
수채의 굳게 닫힌 정문 위, 수적 두 명이 있었다. 밥을 먹은 나른한 오후라 하품이 절로 나왔다. 벌건 대낮에 침입자가 있을 리 만무하니 경계가 느슨했다.
“우리가 녹림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기든 지든 빨리 끝내고 영업이나 뛰고 싶다.”
“물가에 나갔을 때가 맘이 편하긴 해.”
재물이 들어와야 하는데 녹림과의 전쟁으로 영업 전선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정상적인 영업이 아닌, 제한적으로만 하기에 쓸 돈이 마땅치 않았다.
수채의 형제들에게 녹림이든, 수로채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영업만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면 만사형통이었다.
처벅, 처벅!
물가를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두 사내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녹림과 협정을 맺었지만, 산발적인 습격은 언제 다시 행해질지 알 수 없었다.
습격인 줄 알고 놀랐던 그들은.
“뭐야, 이 새끼들은?”
수채로 걸어오고 있는 네 사내가 있었다. 밤도 아니고 대낮에 정문으로 찾아오는 방문자라니, 전해 들은 소식이 없기에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뎅뎅뎅!
일단 종을 울려 수채의 형제들을 불렀다. 그런 후 엄포를 놓았다.
“멈춰라,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벌집을 만들어 주마!”
“나 몰라?”
선두에 선 거구의 사내가 해맑게 웃으며 잘 보라고 했다. 딱 보면 별호가 나오리란 기대감을 품은 표정으로.
수적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이 길어졌다.
“알 텐데.”
“우리가 네놈을 어떻게 알아! 장난치는 거면 좋게 끝나지 않을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오늘 또 접자.”
“뭐? 이런 미친놈이! 죽엇!”
수적들은 대체로 화살을 잘 쏘는 편이다. 영업을 하려면 갑판에서의 백병전도 중요하지만, 원거리에서의 지원도 필수였다. 명사수라고 할 순 없어도 일정 거리에서 열 발 중 다섯 발은 맞힐 수 있었다.
슈슈슉!
무진을 향해 활을 연사했다.
푸스스스!
쏘아진 활은 무진의 정면에서 튕겨 나가지 않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워낙 순식간이지만 화살이 갈려 나간 건 충격적이었다.
허억!
화살을 쏘았던 수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혹시나 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었다.
“……호신강기!”
“정답.”
“왜?”
“혈수채는 안녕하냐.”
여긴 사룡채다.
찾는 곳을 오해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전에는 혈수채로 불리었다. 혈수채의 두목이 죽고, 수채가 전부 불에 타서 소실됐었다. 전소한 수채를 어렵사리 복구하고 사룡채에서 인수받았다.
한데, 사라져 버린 혈수채를 묻고 있었다. 경계를 선 장수팔과 요추동은 상대의 정체를 깨닫고 말았다.
“……천운권!”
“천권이라니까.”
“천운권이라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정체가 발각되었음에도 무진은 느긋하게 쇄도했다. 화살 따위로 호신강기를 뚫을 수는 없으니까.
스윽, 착!
화살 세례를 받는 찰나 손을 뻗어 허공을 잡아챘다. 초절정의 절기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다급해진 수적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천운권이 침입했다…… 흐억!”
“잘 가.”
손에 잡힌 화살을 돌려주었다.
장수팔과 요추동의 눈깔에 박힌 화살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두부처럼 부드럽게 관통해 고통은 길지 않았다.
순간 따끔했을 뿐, 금방 끝났다.
추우웅, 쿠우웅!
힘을 잃은 시신이 수채의 감시탑에서 떨어졌다.
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했고, 수채의 정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권의 중심에 내력이 모여들었다가 발출되었다.
쏘아져 나간 권경이 수채의 정문에 닿는다.
꽈아아아아앙!
파파파파팟!
수채는 단단한 통나무로 지어졌지만, 권강 앞에선 나약했다. 나무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침입자를 막으려고 나섰던 수적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이번에도 부드럽게 관통하여 고통은 짧았다.
무진의 일권은 너그러웠다. 세상 살면서 느낀다. 이렇게 편한 죽음은 없다고.
크아아악!
파편에 휩쓸린 수적 중 절반이 죽고, 남은 절반은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은 치를 떨었다. 권강의 폭풍,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푸아악, 스걱!
철호와 서문호가 박차고 나가 수적의 머리를 부수고, 허리를 갈랐다. 후방의 육칠이 날아오르며 삼영각을 뿌렸다. 허공에서 차인 수적들은 고꾸라지며 형편없이 굴렀다.
쿠다다당!
제자 일호와 이호, 개방 일호가 날뛰는 사이 무진은 뒷짐을 지며 어슬렁거렸다. 초반의 화력 지원에 만족하는 듯했다.
“여기 두목 누구냐? 천권께서 친히 행차하셨는데 어디로 숨으셨나.”
무진은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치우며 두목을 찾았다.
수적의 수는 적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평상시 수적들의 인구 동태를 고려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연유는 사룡채에서 지부로 쓰기 위해 나누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수로채는 녹림을 견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각 수로채의 핵심 고수는 녹림왕과의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런 와중 대장전이 거론되고 있으니, 총단에서 사천성까지 신경 쓰기는 어려웠다.
“하긴 겁이 나겠지. 하나, 도망쳐 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여긴 두목이 없…… 크악!”
말하기 전에 친다.
무진은 진실을 원하지 않았다. 두목이 없다는 걸 알고 왔는데, 그 앞에서 없다고 까발리면 부끄럽잖아.
수치심을 느끼기 전에 수적들을 편히 보내 주었다. 부끄러움의 몫은 전적으로 수적에게 있었다.
“진짜로 두목…… 크악!”
퍼억!
입 여는 새끼부터 조졌다.
묻지도 않은 진실은 원천 제거했다. 원하는 진실이 중요하다. 원하지 않는데, 입을 열면 굉장히 곤란할 수밖에.
빠드득!
사룡채 서열 칠위 겁흉마곤 도극필은 치를 떨어야 했다. 저 망할 놈은 알고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저런 짓을 저지르다니, 자신들보다 더한 놈이었다. 세상 살면서 느끼지만 이렇게나 치사한 놈이 있었다니!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 놈이 앞에 섰다.
“왜 노려보냐?”
“……그것이!”
“괜찮아, 죽일 거야.”
“그럼 안 괜찮은 거 아닙니까!”
“말대답하네.”
“……살려 주십시오!”
도극필은 죽고 싶지 않았다. 천운권도 무섭지만, 흉악하게 날뛰는 놈들도 무서웠다. 애초에 강기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룡채의 채주와 수뇌부를 전부 끌고 와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싸워 봤자 개죽음밖에 되지 않았다.
“항복합니다!”
“항복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수적들의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온전한 힘을 가진 혈수채도 박살 냈던 천운권이었다. 사룡채가 혈수채보다 강하다곤 해도, 지금 전력으론 이란격석에 불과했다.
“말로만.”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영업을 못 해…… 아닙니다!”
도극필은 필사적이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예전에 사용했던 비밀 통로는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도망치는 놈부터 조지고 있었다.
하아아!
무진은 탈탈 털어서 모아 놓은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별로 없네.”
“영업 제한에 걸려서 어렵습니다!”
“너희들이 언제부터 그딴 걸 따졌어.”
“총채주의 명입니다!”
사파면 사파답게 명령도 어기고, 꼼수도 부리고, 편법도 쓰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놈들이 정파나 관군도 아니면서 말을 잘 듣고 지랄이야. 순간 화가 나서 영원히 영업정지를 시켜 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털어서 나오면 알지?”
“정말 없습니다! 지금 항복한 걸 알면 총채주가 저흴 살려 두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 달라는 거야, 뭐야! 이 새끼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아닙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남의 물건 털어먹고 사는 거머리들의 생사 따윈 어떻게 되든 관심 없었다. 위험한 일을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대가다. 이런 줄 모르고 이 바닥에 들어섰나.
그리고 이런 놈들을 일일이 다 보살피면 일 못 한다.
“다들 속의만 남기고 다 벗어.”
“예? 저희는 마음의 준비…… 크악!”
이 빌어먹을 것들이 감히 여자들의 ‘사선 팔 어깨 감싸기’를 시전해!
“어디서 개수작이야!”
“……벗겠습니다! 어서들 벗어!”
치부를 들켜 수치심에 죽어 버릴 것 같은 놈들은 두들겨 팼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놈은 재산을 숨긴 놈이 확실하다. 사로잡아서 모조리 다 뱉어 내도록 해야 했다.
“어차피 너희들은 아무것도 못 써. 여기 불 지를 거니까.”
“……잘하시는 일입니다!”
벌거벗은 도극필의 적극적인 옹호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팔꿈치와 복사뼈는 희망이 없고, 개방과 별 차이를 못 느꼈다. 발바닥의 검은 탄력성은 뭐냔 말이다. 맘 같아서는 강물에 푹 담갔다가 빼고 싶지만, 장강의 식수를 걱정했다.
“어서 꺼져, 셋 센다.”
도극필은 수를 세기도 전에 일어나서 도망쳤다.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걸 보니, 생존 감각은 뛰어났다. 천운권이란 걸 알면 한 번쯤 도전해 봄 직도 한데, 바짝 엎드린 것만 봐도. 명성 제조기의 위력이었다.
“셋.”
……컥!
사방에서 비명이 들리고, 우르르 몰리며 너도나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숫자는 항상 짧고,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느긋하면 인간은 원래 여유를 부리게 된다.
“기름 부어.”
“예, 사부님!”
불 지르는 데는 도가 튼 무진과 일행이었다. 연쇄 방화범으로서 명성이 자자하다.
화르르르르!
한 번 타 본 수채라서 그런지, 더 잘 탔다.
숯이 오래가듯.
갑자기 소고기를 구워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