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99
498 깎아 주지 않습니다(4)
헛!
무진은 그러한 빈틈을 두고 보지 않았다. 기세를 발출하여 월마장의 기감을 어지럽게 해 주었다.
“비겁한…… 커억!”
천강인은 막아 냈지만, 무진의 권강을 막지는 못했다. 호신강기가 부서지면서 반진력을 고스란히 받게 된 월마장은 피를 토하고 말았다.
“아직 끝…… 허억!”
“맛보기였는데.”
무진의 권강은 다발이었다.
첫발은 맛을 보라고 내어 준 기미에 지나지 않았다. 목표를 고정해 놓고 피할 방위를 차단한 후 다발의 권강을 선사해 주었다.
‘방심은 금물이지.’
-당연하지.
구대마장의 내구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더욱이 마공을 운용하면 회복력이 비상식적으로 빠르다. 그로 인해 본인의 육체를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무진은 마인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무진의 첫발은 사실 기만술에 가까웠다. 이중의 권경을 담은 무형의 내가중수권이었다. 호신강기를 두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부에 타격을 주었다.
그러니 첫발이지만, 첫발 같지 않은.
제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회복력을 지닌 구대마장도 심장에 충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육신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 워낙 회복력이 빨라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지.
푸스스스스!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쓰러뜨리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무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끝장을 낼 때는 틈을 줘선 안 되었다. 다발성 권강에 월마장의 상체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하체가 살아 있다고 꿈틀거리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렁이를 밟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넌 뭐냐?”
병신!
무진은 애초에 답할 마음이 없었다. 전투 중에 자꾸 호구조사를 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말 그대로 병신들이었다.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가? 알아서 뭐하게? 신상 내력을 제 발로 까발리는 짓은 상대를 기만할 때나 쓰는 것이다. 정체를 아는 순간, 본인의 절기가 누출되는데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지?
슈우웅, 꽈아앙!
부르르르!
쓸모없는 주둥이를 향해 주먹을 날린 후 무진은 무섭게 쇄도했다. 전투의 맥을 끊지 않고 권강으로 움직임을 속였다.
크윽!
사전 동작 따윈 존재하지 않는 무초식의 권강이었다. 기의 변화를 읽어 내지 못했기에 겁마장의 대응이 늦고 말았다.
“……놈을 막앗!”
다급해진 겁마장이 유마대에 소리치지만, 무진의 대응이 훨씬 빨랐다. 주변의 방해 따위는 애초에 통하지도 않았다.
실상, 겁마장은 무진의 손바닥 안이었다. 화마장, 월마장을 죽이기 전 날린 일격으로 겁마장의 육체에 투기를 심어 놓았다. 내부에서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결과는 자명했다.
“치졸한…… 제길~~~!”
겁마장은 구겁마공을 운용할 틈도 없이 무진의 주먹에 단전을 내놓고 말았다. 하나, 그것이 또 다른 패착을 불렀다. 구겁마공은 중단전을 이용한 마공이었다.
무인에겐 목숨과도 같은 단전을 무방비로 두고 반격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무진이 이를 몰랐을까? 단전을 부순 후, 사각으로 돌아서며 겁마장의 반격을 상쇄했다.
이어서 내지른 권강이 진짜였다.
뻐걱!
쌍장을 내질렀던 겁마장은 허공을 쳤고, 겨드랑이를 노린 무진의 일수는 심장을 부수었다.
“……어떻게?”
“단전은 너무하잖아.”
지나치게 뻔한 수작이었다. 후일 마신교 놈들이 써먹었던 적이 꽤 있었다. 일부러 단전을 내주어 상대를 끌어들인 후, 반격을 가해 끝장을 보는. 팽팽한 승부의 추를 반전시켜야 할 때 종종 사용했었다.
마공 특유의 압도적인 회복력과 흡수력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수법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육체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너였구나!”
겁마장은 이놈이 황실대계를 흔들어 놓은 장본인임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선 작금의 비현실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황실대계를 부순 건 차치하고서라도, 삼마장을 단숨에 쓰러뜨렸다. 마치 자신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것처럼 속절없이 당했다.
“……배신……!”
“궁금한 건 염라대왕에게 물어봐라.”
어딜, 시원하게 가려고!
답답하게 가야지.
무진의 주먹이 겁마장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마공이 깨진 이상, 겁마장의 대가리는 두부만도 못한 처지였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피와 두개골이 권강에 부서지며 타오른다.
철퍼덕!
대가리를 잃은 겁마장은 무진의 관심 밖에 있었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향해 일로절명살의 극의를 선보였다.
퍼억, 뿌거걱!
푸아앙!
권기, 권강, 권인, 탄강, 탄지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서창, 동창, 금의위, 유마대를 학살했다. 한창 혈전을 벌이는 중이라 대비를 못 한 자들은 절명했고, 혹, 알았다고 해도 사로를 벗어나진 못했다. 워낙 정교한 데다가 스쳐도 뒈질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부들, 부들!
전장은 대번에 얼어붙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전의는 사라지고, 망연자실한 자들이 속출했다. 압도했던 전력은 어느새 절반은커녕 삼분지 일도 남지 않았다. 돌아가는 전장의 흐름을 알아챈 이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런 건 있을 수 없다고!”
“……악몽일 거야. 어떻게?”
서창의 첩형, 방천은 왕 태감과 마장의 죽음을 그제야 알아채고 소름이 돋았다. 눈으로 보고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밀천을 압도한 자들을 소 잡듯이 도살했다.
저자가 과연 인간이란 말인가?
자신들이 누구인가, 황실의 최정예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서창과 동창이었다. 그런데 저자 앞에서는 추풍낙엽보다 못한 처지였다. 바람 앞에서 흔들리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어떤 수를 썼는지도 모른 채 픽픽!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신!
밀천의 숨겨 놓은 병기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밀천의 무인들도 경악한 채 망부석이 되었다. 알고 있으면 저렇게 놀라지는 못하지? 우리가 고자긴 해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왜 멀뚱히들 있어.”
저자의 말대로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방진을 형성해서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사신은 말보다 행동이 훨씬 빨랐다. 이미 살수를 뿌리고 난 후에 충고를 더했다.
우리의 마지막 발악을 즐기려는 듯이.
“이러면 좀 더 재밌겠지. 크크크!”
무진의 몸에서 뻗어 나온 장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공간을 휩쓸어 버렸다. 마치 해가 지면서 어둠이 대지를 감싸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런 미친…… 커억!”
장포에서 뻗어 나온 바늘보다 얇은 수많은 돌기가 무인들의 사혈을 찌르고 지나갔다. 얼어 버린 방천도 살수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려고 황상을 배신…….”
무진은 호쾌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렵고, 막막한 죽음을 내렸다.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절망의 도축장이 펼쳐졌다. 어떤 수를 써도 통하지 않아 몸부림을 쳐야 했다.
“……이길 수 없어!”
“이건 전투가 아냐!”
“난…… 사람이라고…… 커억!”
뭐라는 거야?
배신자 주제에.
무진은 모처럼 호의를 베풀었다. 마왕에게 신화마정갑을 내어 주어 형체를 이루도록 했다. 신화마정갑이 순간 다섯으로 분리되어 도살자의 전용 병기가 되었다.
인간의 형태를 했을 뿐, 신화마정갑은 관절이 없기에 예측불허의 움직임을 선보였다. 눈에 익숙하다면 모를까, 전혀 방어가 되지 않았다.
‘나보단 못해도 제법이야.’
-닥쳐!
없는 몸이 근질근질했던 마왕으로선 모처럼 맞보는 피의 향연이자 유희였다. 아주 그냥 마계 만난 마왕처럼 활개를 쳤다.
무진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다 흥미를 잃었다. 적이 너무 약해서 마왕의 꿍꿍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유난히 기본에 철저한 걸 보니, 비장의 수를 숨겨 놨다는 느낌이 팍! 왔다.
슈욱, 푸악!
솨아악, 뎅강!
뚫리고, 잘리고.
폭우 속에서 사지육신이 멀쩡하지 않은 주검이 늘어났다. 싸울수록 깨닫게 되었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괴물 같은 존재가 있음을. 압도적인 무력을 넘어선 전장을 지배하는 전투의 신과 같았다.
“……도망쳐!”
“……살려 줘!”
무진은 예정된 망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의를 잃은 망자들이 사방으로 도망치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전부 진정한 망자로 거듭나도록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진법!”
“……제기랄!”
“……왜?”
대단한 진법을 설치하진 않았다.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으면 족했다. 다만, 무진에겐 차고 넘쳤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놈들의 등판에 시원한 구멍을 내주었다.
폭폭폭!
찌르는 맛이 있었다.
솨아아아!
반각도 길었다.
강심전이 고요해졌다. 어느 누구도 쉽사리 말을 열지 못한 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현실이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밀천은 오늘 죽음을 각오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그랬거늘, 순식간에 전장을 지배하더니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빗속의 주검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홀로.
일인무적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런 자가 돌아서며 환하게 웃고 있으니 어둠에 물든 산기슭에서 홀로 귀신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지린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다행히 비가 와서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정신 못 차리는 건 아군이나 적군이나 마찬가지군. 지금이 멍하니 있을 땝니까. 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북친왕 그 새끼한테 잡아먹힐 텐데.”
“아!”
“아는 무슨, 어서 안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너희들 상관 아니다.”
“……알았다!”
“용감한데.”
“죄송합니다! 다들 움직이자!”
사람을 갈구는 데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이른 시간에 일대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한시라도 빨리 황궁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들을 막아야 했다. 그나마 사대천주 중 동천주와 서천주가 움직였기에 시간은 있었다. 동조한 자들을 추포하고, 문을 막는다면 역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무진은 부상을 추스르는 남천주와 북천주에게 다가갔다. 도움을 받았음에도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저자가 돌변하는 순간,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 감당이 되지 않았다.
“넌 누구냐?”
“알아서 뭐하게.”
“이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더냐!”
“보시다시피 내가 사람을 아주 잘 죽여. 괜찮겠어?”
“……?”
비참하게 구함을 받은 처지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남천주와 북천주는 입을 닫았다. 자신들이 어찌하기에는 불가항력의 존재임을 인정해야 했다.
더욱이 스스로를 인간 백정이라고 하는 놈이었다. 방금까지 도륙했던 장면이 떠올라 반박하지 못했다.
“수틀리면 다 뒈지는 거야!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도록 해.”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나설 일 아니라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나?
이런 놈들은 고지식한 게 아니라, 무능한 것이었다. 단체로 우월감에 젖어 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병신 같은 고인 물들.
무진은 그런 놈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뼈를 때리고, 우려 주는 수밖에.
“무능한 주제에 자존심 세우지 마라. 오죽 못났으면 나 같은 야인까지 나서게 해. 좀 너희들끼리 해결하면 안 되냐?”
“크윽! 이 모든 원흉은 강호의 무뢰배들이 저지른 일이다!”
“아주 그냥 끝까지 꼴값을 떨어요. 너희들 나중에 따로 나 좀 보자.”
“……보잔다고 겁낼 것 같으냐!”
남천주와 북천주는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지만, 떨리는 육체를 진정시키기도 어려웠다. 고작 날을 세웠음에도 항거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다. 자신들로서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절대자였다.
‘대체 누구지?’
‘이건 숫제 괴물이 아닌가!’
남천주와 북천주는 자신들의 상태를 돌아볼수록 터무니없는 현실에 좌절했다. 죽음으로도 바꾸지 못할 전세를 혼자서 뒤집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되었다.
무엇보다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그저 듣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반발심이 생겼을 뿐이다.
저벅, 저벅!
천주와 밀룡대를 뒤로한 무진은 황제에게 걸어갔다.
황제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황실의 예법도 모르는 힘만 센 강호의 무뢰배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황실의 주력인 서창, 동창, 금의위를 일순간에 도륙해 버린 불가해를 그리 폄하할 순 없지 않은가.
“어사대부의 자리를 주지.”
“됐고, 오천만 냥이나 내놔요.”
“……?”
“깎아 주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