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1052)
1019화 Always (9)
(제이미 캐러거) – Sky Sports 공동-코멘테이터
“현재까지, 리버풀의 경기력은 완벽합니다. 시티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막아서고 있죠. 그리고 제 생각에, 그 중심에는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있습니다. 그는 리버풀 선수 중에서도 한 단계 더 위에서 뛴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이 리버풀의 백포를 좀 보세요. 이들을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강력한 중앙수비수. 유능하고 젊은 풀백.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을 놀랍도록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틴 타일러) – Sky Sports 코멘테이터
“아놀드. 오-! 훌륭한 방향 전환 패스입니다. 오른쪽 풀백이 그대로 왼쪽 풀백에게 피치를 가로질러 보냅니다. 앤드류 로버트슨. 그대로 박스 안으로 보내고, 이는 살라에 의해 마무리됩니다!!! Oh-! That`s Beautiful!! 리버풀이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합니다!! 앤드류 로버트슨이 모하메드 살라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전달했습니다!! 노력이 거의 필요치 않았던 헤더였습니다! 그만큼 크로스가 훌륭했죠! What a Start for Liverpool! What a Brilliant Goal by Liverpool!! 펩 과르디올라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제이미 캐러거)
“다시 한번, 정말 뛰어난 플레이였습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내는 알렉산더-아놀드의 플레이를 좀 보시죠. 이게 바로 현대 축구에서 풀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두 명의 풀백이 하프라인 아래에서 단 한 번의 패스만으로, 크로스를 올릴 기회를 붙잡습니다. 풀백 to 풀백. 바로 이게 지난 시즌 리버풀을 유러피언 챔피언으로 이끈 원동력입니다.”
삑-! 삐?익!! 삐—익!!
.
.
.전반 종료
리버풀 2 : 0 맨체스터 시티
전반 6분과 13분 잇따라 실점을 허락한 우린 이후 반격에 나섰다. 그 중심엔 나와 주앙이 있었고, 왼쪽 측면에서 시작되는 공격으로 몇 차례 슈팅까지 연결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아쉬웠던 마무리와 알리송의 선방. 그리고 간간이 터져 나온 리버풀의 역습은 우리가 경기를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프타임.
패배의 기운은 진하게 내려앉았다.
“Sit Down!! Nobody Talk!!”
네 개의 단어로 언짢은 기분을 알린 펩이 화이트보드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금세 보드엔 리버풀과 우리의 전형이 그려졌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선 펩은 고심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특별한 전술적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리버풀은 측면에서 우리를 완전히 압도했고,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중원에서마저 5:5의 팽팽한 대치 구도를 이뤘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바로 수비였다.
“나도 안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린 전반전 첫 15분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에 대한 벌을 받았는데, 그 무게가 너무 무겁군.”
“…….”
“어쩌면 내가 몇 개의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하지. 아직 절반이 남았다. 리버풀이 2골을 기록했다면, 우리 역시도 두 개의 득점을 기록할 수 있어.”
희망적인 이야기로 사기를 북돋으려 한 펩은 후반전 경기 접근 방식을 이야기한다.
전반전 좋은 장면이 연출되었던 모든 상황에서 나와 주앙이 관여한 것을 지적했는데,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는 건 클롭이 과연 그것을 모를까 하는 것이었다.
클롭이라면 전반전 팀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면을 이야기하며, 선수들에게 대처할 방법을 말해 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딱히 더 나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린 더 힘을 내보기로 하며 손뼉을 치고 목소리를 높여 서로에게 많은 격려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깨달은 건, 모든 게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와 같은 모습이란 사실이었다.
상대보다 뒤처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최소 승점 1점을 획득하고자 목표를 정하는 것 말이다.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어떻게든 2골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들으면서 내가 느낀 건 바로, ‘왜 3골이 아니지?’라는 거였다.
어째서 동료들은 승점 3점이 아닌 1점을 노리는 걸까? 도대체 어째서 우리가 후반전 리버풀을 상대로 역전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거지?
피치에는 늘 수많은 기적이 존재해 왔고, 난 그중 몇몇 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지금까지 줄곧 만들어 왔기에, Wonder라는 낯부끄러운 별명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 곁엔 언제나, 나와 같은 의지를 가진 용맹한 전사들이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강인한 사내들이 말이다.
갑자기, 아득한 기분이 느껴진다.
툭-
“?!”
이런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해 정신을 들게 한 건, 어느새 곁으로 와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베르나르두였다.
“무슨 생각인지 알아.”
“……진짜?”
“응.”
한동안 눈을 마주친 베르나르두가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것을 지금은 대화를 하기 좋은 때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 친구의 말이 옳다.
지금은 경기할 때다.
‘최소한 나만이라도.’
역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피치로 나서는 나였지만, 리버풀은 후반 시작 10분 만에 내 의지에 치명타를 가해 왔다.
{“—–!!!!”}
{“YEAH-!!”}
.
(마틴 타일러)
“헨더슨. 귄도안의 앞에서 손쉽게 달아납니다. 다시 측면이 무너진 시티. 크로스. 그리고 브라보가 잡지 못합니다!!!”
(제이미 캐러거)
“아, 지금 건 정말 실망스러운 수비입니다.”
(마틴 타일러)
“시티의 측면 수비가 또 한 번 무너집니다!! 이번엔 왼쪽이로군요!! 칸셀루가 전진한 자리를 귄도안이 커버하려고 했습니다만, 헨더슨에게 너무 쉽게 돌파를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사디오 마네가 조던 헨더슨의 크로스를 헤더로 마무리했습니다! 브라보가 막아 낼 수도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달아나는 리버풀!! 리그 1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경기 시작 56분 만에 스코어는 0:3이 되어 버렸고, 그 순간 고개를 숙인 내 눈엔 시티를 할퀴고 지나가 버린 상처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내 탓인가?’
지난날 나의 부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참, 빌어먹게도 말이다.
“후우~”
어쩌면, 새로운 출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
.경기 결과(2019/20 EPL 12R)
리버풀 3 : 1 맨체스터 시티
[골] 베르나르두 실바 : 후반 36분(김다온)김다온 ? 94분 출전(1어시스트/평점 7.0)
.
.
※ 2019/20 EPL League Table
-> 1,2위만
1. 리버풀 : 11승 1무 0패 28득 10실 승점 34
2. 맨시티 : 10승 0무 2패 45득 12실 승점 30
***
【6시간 뒤】 2019년 11월 11일. 맨체스터 M11 3DU, 잉글랜드. 13 로슬리 스트리트. 에티하드 캠퍼스. 더 퍼스트 팀 센터, 감독실.
본래라면 A매치 경기를 위해 전용기에 탑승했어야 했지만, 난 피곤을 이유로 팀에 요청해 출발 일정을 다음 날 아침으로 미뤄 두었다.
대신 민재는 퍼스트클래스를 이용해 예정대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길에 올랐다.
“응?! 자네…….”
“들어가도 되나요?”
“…….”
사람들은 내가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후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짐을 클럽하우스 내 비어 있는 방에 놓아두고 이곳의 시설을 이용했다.
아내에게는 사정을 말해 둔 상태인지라, 딱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간단한 회복 훈련을 따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자정이 넘은 이 시각에 펩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예상이 틀렸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펩은 조금 전 주차장에 차를 대어 두고 감독실로 왔다.
문에 기대고 선 나를 보며 무척 놀란 표정이었는데, 곧 피할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활짝 열린 감독실로 들어선 후, 나는 문을 닫아 버렸다.
딸깍-
“우리가 졌네요.”
“……그랬지.”
“네. 승점이 4점으로 벌어졌어요.”
“……굳이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뭔가를 마구 잃어버리고 있거든요.”
“뭘 말이지?”
“시간요.”
“…….”
가방을 책상 위에 놓아둔 펩이 길게 숨을 내쉬면서 나를 돌아본다. 당연하겠지만 그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는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A매치 주간이 끝나고 나면, 우린 첼시 FC를 상대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리그 16과 17라운드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FC가 연달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행착오를 겪을 시긴 아니라고 봐서요.”
“…….”
“우린 증명해야 하는 팀이죠. 시험이라면 이미 2년 전에 끝냈다고 봐요. 그런데, 요즘 가끔 당신을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새로운 축구를 하려는 것과 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어떻게든 변수를 두려고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펩은 줄곧 전자의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믿었기에 지난날 손을 뻗어 이 남자와 악수를 했던 거다.
한데 어쩌면 펩도 또 나도, 아직 많은 것들이 두려워 제대로 된 도전을 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요즘, 제가 실수한단 생각을 해요.”
“무슨 의미지?”
“제가 공격수로 뛰겠다는 의미는 이렇게 되려고 했던 게 아니거든요. 오늘. 아니, 어제 경기를 치르면서 그게 더욱 분명하게 보이더라고요.”
현재 나는 시티의 공격수로서, 기존 쿤이 해 왔던 축구를 살짝 변형한 정도에서 그치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나는 일정한 수준의 성과(13경기/9선발/814분/9골 10어시스트)를 거두는 중이고, 누구보다 빠른 10-10 달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를 두고 미디어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내가 공격수로서도 성공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
늘 무언가 조금 모자랐다.
그런데도 그 모자람을 표현하지 않았던 건, 나 역시 여전히 과거의 일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환상통은 극복했지만, 정신적인 환상통은 남았다는 뜻이다.
“우린 뒤처지고 있어요, 펩.”
이것이 리그 순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건, 펩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건 리그 순위가 아닌, 축구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업무 외의 시간에 만나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펩과 나는 언제나 축구 그 자체를 논의했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했고, 피치 위에서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지난 십수 개월, 그러한 대화는 중단되었고 우리 역시도 2년 전에 머물러 있다.
“맨체스터로 돌아오는 길에 줄곧 생각했어요. 만약에 제가 당신이고 이틀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를 말이에요.”
“……나도 그랬네.”
“그런가요?”
“그래. 일단 자리에 앉게.”
“네.”
감독실로 들어선 지 한참 만에 우리는 마주 앉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 가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했지?”
“대충 세 가지 정도요.”
“듣겠네.”
펩이 던진 물병을 받아 뚜껑을 연 이후, 나는 생각해 왔던 것을 덤덤하게 풀어놓았다.
우선 첫째, 지뉴가 아닌 민재를 기용했을 거다.
가장 결과론에 가까운 선택이다.
“물론 이것 하나만으로 결과가 바뀌진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최소 전반전 두 개의 실점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거라고 봐요. 지뉴는 최고의 선수지만, 센터백으로 나섰을 땐 종종 실수를 범해요. 그것도, 꽤 치명적인 실수요.”
과거에도 몇 번 지뉴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파울을 하거나, 자신의 마크맨 혹은 커버해야 할 위치를 놓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건 보통 일방적으로 기운 경기에서 나온 장면이고, 그렇게 되기까지 지뉴의 기여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지뉴는 아예 센터백으로 나서는 중이었고, 그래서 박스 안에서의 부족한 대처가 더욱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실점과 세 번째 실점 상황 모두, 뛰어난 센터백이었다면 공격수에게 크로스가 이어지기 전에 볼을 커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
“지금은 군도보다 필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봐요. 그는 지금 중앙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다비드가 풀타임을 뛸 수 없다면, 차라리 필을 넣는 게 더 나아 보여요.”
“…….”
군도는 이번 시즌 주로 오른쪽 중앙 미드필드로 출전하거나, 케빈의 부재 때 왼쪽 메짤라(Mezz`ala)로 출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색깔을 전혀 보여 주고 있지 못하다.
기동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포백 보호는 보호대로 안 되고 공격 지원도 신통치 않았다.
선수의 폼 자체가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지금 말하는 마지막 이유가 현재 시티의 모든 문제점의 근원이었다.
“4-3-3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펩. 그리고 이건 단순히 포메이션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아마도 펩은 나를 선수가 아닌 Team CFG를 감독한 남자로서 보고 대화를 나누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선수 기용이나 전형 선택과 같은 감독 고유의 영역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본래였다면 난, 내가 뛰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말했을 거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일단 이야기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찾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뭐가 말이지?”
“작년 여름부터, 우린 쓰리백을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센터백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에는 달랐던가요? 아니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이라면 로드리나 군도를 피보테로 쓸 수도 있겠죠.”
“…….”
현재 시티의 6번은 라볼피아나(Lavolpiana)와 후방플레이메이커의 중간 형태로 볼 수 있다.
수시로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전방 압박 인원을 분산하는 한편, 후방-빌드업의 중심으로서 볼을 미드필드로 배급하고 때론 전방으로 단숨에 찔러 주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반면 피보테(Pivotte)는 오직 전방으로의 볼 배급만 신경 쓰면 되고, 그것을 더 적극적으로 돕는 방법은 쓰리백을 택해 두 명의 센터백을 곁에 두어 수비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주앙이 왼쪽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미드필드 자리를 맡아 줄 것이기에, 중원의 수비력 부족과 같은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만약 리버풀처럼 측면이 강하다면 로드리-올루프라는 극단적인 수비형 미드필드 조합을 만들어 두고, 아예 중앙에서 지역을 장악해 버리는 전술을 펼칠 수도 있다.
공간을 점유하면, 자연스레 점유율은 높아진다.
점유율이 높아지면 상대의 장점을 억누를 수 있고, 로드리와 올루프 모두 경기당 11km 정도 뛰어 주는 사내들이기에 측면의 커버 역시도 활발하게 이뤄질 거다.
또 베르나르두와 나를 전방에 놓아두게 되면,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 역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말한 것처럼 결과가 꼭 달라졌을 거란 보장은 없으나, 내가 아는 이전의 펩이었다면 획일적인 4-3-3을 고집하는 대신 한두 가지쯤은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가 정체되어 있다는 거예요.”
“…….”
“저만 해도 그렇죠. 지금 저는 쿤이 하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뿐이라고요. 물을게요, 펩. 정말 저를 그렇게 쓰는 것에 만족하고 있나요?”
처음 공격수로 나서겠다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팀은 기대만큼 나의 움직임을 따라주지 못했고, 일단 거기에 맞춰 가고자 양보를 했으나 팀이 성장하는 모습은 아직까진 볼 수 없었다.
분명 훈련에서 더 많은 목소리가 나기 시작한 건 맞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내가 알던 시절의 모습이 된 것에 불과했다.
어느새 나는 김다온이 아니라 그냥 시티의 9번이 되어 버렸고, 피치 위에서 번뜩임을 거의 보여 주지 못했다. 오히려 어제, 피르미누가 내가 원했던 축구를 조금 보여 줬다.
그러니까, 클롭이 말이다.
“요즘…….”
“응?”
침묵하던 펩이 불쑥 이야기를 꺼내 든다.
“요즘 줄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리고 그건, 자네가 말한 이유 때문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좋은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리오와 같은 남자들 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생각이 옳군. 중요한 건 선수가 아닌 나였을 수도 있겠어.”
장인(匠人)은 도구를 탓하지 않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긴 하다.
가장 최근에 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작(作) 레스터 시티 동화만 보더라도, 꼭 우수한 도구가 쥐어져 있어야 성공이란 글자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확률이 높아지긴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 시티에는 훌륭한 자원들이 많고, 부상으로 빠진 선수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리그에서 우리보다 강한 팀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한 자신감이 팀에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어제 안필드에서 우린 줄곧 약자의 위치였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충분하지 않은 건, 그건 전적으로 감독의 잘못이 맞다.
“후우~ 모르겠군. 어쩌다 이렇게 됐지?”
“간단하죠.”
“?”
“제 발목이 부러졌었거든요.”
너무나도 간단히 발목 부상을 이야기한 탓인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던 펩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비슷한 타이밍에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발목 부상은 비극보다는 핑계로 쓰여질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쿡쿡쿡쿡. 그래- 자네 발목이 망가졌지.”
“네. 하지만 이젠 돌아왔죠.”
“……그래. 분명 그렇지.”
“네.”
주먹으로 허벅지를 몇 번 두드린 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화이트보드의 앞으로 가, 전날 리버풀 경기 관련 내용임이 틀림없는 것들을 몽땅 지워 버렸다.
그러곤.
삑. 삑.
새로운 글자들을 새겼다.
The Beginning.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하지.”
“좋은 생각이에요.”
“쓰리백이라. 그랬군.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 바보가 된 기분이야. 그런 간단한 것을 놓치다니.”
“누구든 실수할 수 있죠.”
“후우~ 하지만 그것치곤 대가가 너무 커.”
“저들도 실수할 거예요.”
“그런가?”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인 펩은 조금 홀가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축구가 그렇게 쉬운 녀석은 아니니 말이다.
분명,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올 거다.
“내일 출발인가?”
“정확히는 8시간 뒤죠.”
“그렇군.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Nope. 방을 하나 받았어요. 거기에서 자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려고요.”
얼른 방으로 돌아가 쉬라는 말에,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하며 감독실을 나섰다.
생각하면 할수록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일단 시작한 상태에서 꼬여 버린 무언가를 풀어내는 일이 몇십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지난번의 악수로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믿었지만, 그건 겨우 시작을 끊은 것에 불과했다.
오늘의 대화 역시, 우리의 걸음을 몇 걸음 더 걷게 만드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도 걸었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보다, 고작 반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게 우리의 삶에는 훨씬 중요하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지 않는가?
“다온!”
“응?”
“…….”
감독실을 나서서 몇 걸음을 걸었을 때, 내 이름을 펩이 불러왔다. 난 고개를 돌렸고, 망설이는 그를 보았다.
“더 할 말이 있으세요?”
“…….”
“??”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고 머뭇거리는 그를 보며 의아함을 더해 갈 때쯤,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은 펩이 이런 질문을 내게 던져 왔다.
“자네는 나를 믿고 있나?”
“…….”
“…….”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난 그것의 중요성을 안다.
신뢰는 성공의 아버지이자, 관계의 어머니다.
그렇기에 나는 저 남자를.
“그럼요.”
“!!!”
늘 신뢰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Always, Pep. Always.”
“……그래. 좋은 밤 되게.”
“넵. 그렇다고 밤을 새지는 마시고요. 알겠죠?”
“그래. 약속하지.”
깨져 버린 본인에 대한 신뢰.
흔들리게 된 인간관계.
그 사이에서 표류 중인 우리 시티는 얼마나 더 시간이 있어야 단단해질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는 문제다.
***
[펩 과르디올라, “리버풀 전 패배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 문제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생각해 보려고 한다.” – Goal.com/Written By ? Sa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