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70)
〈 170화 〉 170 다시 시작하자
* * *
1.
대쉬맨의 움직임은 다른 각성자들과는 달랐다.
보폭은 일정하되 몸은 가볍다.
표정은 가볍지만 시야는 넓다.
항상 어디론가 달려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전장에 선 군인같은 모습이죠.”
[언제나 칼을 품은 무림인같기도 하고요.]그렇기에 성녀 이브의 관심을 샀고.
그렇기에 해응응의 관심을 샀다.
“무엇에 얽매였는지는 몰라도 극복하기만 한다면 멀리 나아갈 수 있겠죠. 관건은 자신이 정한 규칙과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지만요.”
스스로의 짐에 짓눌린 채 죽어버리는 사람은 전장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수도 없이 보아왔으니까요.
이브의 피로가 느껴지는 미소를 해응응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의 참사에 얽매인 무림인은 수도 없이 많죠. 고통스러운 기억을 견디지 못하고 칼을 내려놓은 무림인은 더욱 많고요.’
특히나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누군가를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길로 폐인으로 전락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쉬맨은 각성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진정한 무인은 자신의 과거를 이겨낼 때에 비로소 탄생하죠.’
대쉬맨이 진정한 무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주저앉은 폐인으로 전락할 것인가.
광아검 이정운의 칼이 매섭게 그의 퇴로를 끊어내며 한계까지 몰아붙였을 때.
이브와 해응응.
두 사람이 고대하던 순간이 도래했다.
촤아악!
50cm의 대쉬간격.
그 간격을 그림자처럼 정확히 따라잡으며 대쉬맨의 몸통을 베어낸 이정운.
그의 칼끝에 묻어난 피가 허공으로 털려나가기도 전에 이브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넘어섰어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던 대쉬맨의 신형.
그는 몸이 베이는 고통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카앙!
두터운 의복 아래.
감추어진 갑옷이 충격의 대부분을 상쇄했다.
통일된 보폭.
정형화된 규격.
형?에 얽매이는 움직임.
그 모든 제약의 이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자기관조가 대쉬맨의 모든 움직임에 여력을 남겼다.
그는 이정운에게 공략당하지 않았다.
의도된 약점.
철저한 자기안배.
만들어낸 약점으로 이정운을 유인했다.
유유상종.
근묵자흑.
닮은 것들은 모인다는 말처럼.
광기 앞에 자신을 뒷전으로 삼는 이정운.
그의 전투법을 대쉬맨이 따라잡았다.
배는 내어주지. 대신 목을 받아가겠다.
“!!!”
이정운의 검이 갑옷을 가른 직후.
대쉬맨의 검이 그의 목을 쳤다.
2.
대쉬맨은 알고 있었다.
이정운이 광아검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코드네임을 무릅쓰고 위험을 자처하는 이유를.
‘거리를 지키기 위한 필요악. 이정운, 너는 그런 존재였었지.’
그가 명호길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자경대의 적이나 다름없는 위법각성자들이 명호길드에 고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위법각성자들의 목을 들고 당당하게 명호길드를 찾아갔다.
2인조 그룹은 여기까지다. 이 방식으로는 거리를 지킬 수 없어. 너도 알고 있겠지.
나는 나대로 길드에서 기회를 만들어보겠다. 혼자라고 꺾이지 말고 버텨라. 네가 올라올 자리를 미리 만들어두마.
이정운은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며 자신보다 독한 이들이 거리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나섰다.
과거를 잊고 출세에 눈이 먼 길드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무릅쓰며 거리의 주민들을 위해 모든 오욕을 감수하였다.
‘내가 정의로울 수 있는 건 전부 네 은밀한 지원이 있던 덕분이었고.’
영원불멸한 믿음은 없다고 했던가.
반년이 지난 뒤.
언제부터인가 작은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로 변하지 않았을까?’
상납금을 남몰래 채워서 돌려주던 이정운.
언제부터인가 건네주던 봉투가 얇아졌다.
은밀히 넘겨주던 정보도 점점 줄어들었으며.
손속은 점차 과격해졌다.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기도 한계에 달했다.
‘만일 정운이가 변했다면 그때는 어떡해야하지?’
서로 검을 맞대는 일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겨룬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길드와 주민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연기임을 두 사람만은 알고 있었으니까.
“밥팅아. 아직도 정운오빠를 못 믿어? 분명 다 생각이 있겠지.”
“딸 키워봐야 남 준다더니, 여동생도 똑같네. 어휴. 정운이 그놈이 그리도 좋냐?”
“정운오빠는 치킨 먹을 때 나한테 앞다리 다 주거든?”
“와. 그럼 인정.”
그래도 동생의 말을 듣고 내심 반성했다.
자신이 믿어주지 못해서야 누가 그를 믿겠는가.
정운이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이를 알려주는 상징과도 같다.
각자 서있는 곳은 달라도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니까.
“우리 정운이 줄 선물이나 사러 갈까?”
“그럼 백화점! 이번에 각성자용 신상 아이템이 들어온대.”
운명의 그 날.
백화점에서 이명운과 조우했을 때.
“너… 이런 짓도 하고 다녔냐?”
“지금은 설명하기 복잡하다. 물러서있어.”
사그라졌던 불신의 불씨가 커졌다.
이명운이 약속을 어겼다.
사건을 만들기 전에는 반드시 연락을 해주겠다던 그들만의 규칙을 깼다.
더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동생과 함께 네 선물을 사러 왔다는.
그런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수영이와 넌 여기까지다.’
이정운은 변했다고.
선물 같은 건 줄 필요 없다고.
그렇게 동생을 달래고 함께 명호동을 떠날 작정이었으니까.
그런 불신이.
그런 욕심이.
끝내 참사를 자처하고 말았다.
“수영아아아!”
층이 무너지고.
동생의 위로 낙반이 떨어지며.
닿지 못한 손이 눈앞에서 허공을 쥐었을 때.
이정운은 후회했다.
내가 그를 믿었더라면.
이곳에 동생이 와있다고 알렸더라면.
이정운을 막고자 능력에 여력을 남기지 않고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백화점은 붕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동생을 구출할 수도 있었다.
그날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오빠들 잘못 아니야. 그니까…… 예전처럼 다시 화해했으면 좋겠어.”
수영이는 그를 용서했다.
다시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죽었다.
“…….”
장례를 치르고.
유골함을 들고.
바다를 바라보며 유골을 뿌렸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일어설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바보행세를 시작했다.
방송을 켜고, 의로운 활동을 이어나갔다.
서울의 수많은 자경대가 그렇듯이.
길드와의 갈등을 거듭하며 한계도 느꼈다.
그럴수록 더욱 이정운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이런 거였냐? 네가 막고자 했던 미래가.’
이정운의 빈자리는 그보다 훨씬 지독하고 위험한 인물들로 대체되었다.
협회의 이름을 방패로 삼아 거리와 게이트를 넘나드는 싸움을 이어나가면서 새로운 동료들이 생기고, 더러는 죽거나 은퇴하기도 했다.
기나긴 싸움에도 끝은 도래했다.
협회의 자경대는 거리의 치안을 지켰다.
대신 길드는 게이트의 출입을 독식했다.
길드와의 싸움은 끝났지만.
그의 보폭은 변하지 않았다.
이 싸움이 일시적인 휴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언젠가 게이트에서 힘을 확충한 길드가 다시금 본색을 드러낼 날이 올 것을 알았기에.
레벨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
능력의 개발과 단련을 이어나갔다.
“명호길드가… 사라져?”
그랬던 명호길드가.
묵언검객이라는 희대의 강자가 등장하며 하루아침에 풍비박살이 났을 때.
기쁨보다 황당함이 앞섰다.
그와 이정운이 힘을 합쳐 어떻게든 살아남기에도 급급했던 대형길드를, 고작 한 사람이 나선 것만으로 몇 개월 만에 뿌리 뽑았다.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묵언검객의 방송을 찾아보았고, 그곳에서 그가 바라던 강함의 정점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시험해보자.’
명호길드가 해체되고 지금껏 그가 살고자 했던 가장 큰 원동력을 잃은 그에게.
명호길드를 파괴한 그녀, 묵언검객에게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성녀의 고귀함 앞에 그녀의 시종을 자처하였을 때에도.
그녀의 배려로 대회장에 올라섰을 때에도.
오래된 악연과 재회했을 때에도.
그 목적은 변치 않았다.
5년 전의 그날 그 자리에 다시 선다면.
다시 한 번 같은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면.
‘더는 외면하지도, 떠넘기지도 않겠어.’
5년 전에는 버텨내지 못했던 이정운의 일격을 다시금 받아낸다.
명호길드의 유망주였던 시절에도 본 실력을 감출 정도로 대단했던 녀석에게 주어진 5년이라는 시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했다.
까드득
갑옷 덕분에 살이 베이지 않더라도.
아래로 전해지는 충격에 늑골이 부러졌다.
부러진 뼈가 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버텼다.’
5년이라는 시간.
이정운의 검은 무게가 깊어졌지만.
대쉬맨의 몸은 더욱 강인해졌다.
???? 不???
자탄자과 불용치의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며
그 무엇에도 의심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실력이 아닌 의지.’
그가 불안했던 것은 이정운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정운이 달라졌다면 과연 자신은 그를 벨 수 있었을까.
자신을 위해 손을 더럽힌 친우를 정녕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혼자만 깨끗하고자 했던 자신은 과연 무고한가.
‘이제는 안다.’
강인한 신체는 강인한 정신을.
강인한 정신은 강인한 사명을.
강인한 사명은 강인한 정의를 이루니.
‘불신에서 비롯된 대쉬와 절대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대쉬가 같지 않음을.’
수십만, 나아가 수백만 번을 시전하며
몸으로 체득한 대쉬.
이를 실행하는 근육의 움직임을.
마력의 운용법을.
온전히 이해하여 펼쳐낸다.
대? 대산과도 같이 커다란
쉬? 담금질하고 물들인
보? 흔들림 없는 걸음
그 이동거리는 전과 같은 50cm.
그러나 미혹이 남은 50cm와 달리.
확신어린 50cm의 위력은 완전히 달랐다.
쿵!!
마치 전차에 치인 것처럼 밀려오는 충격.
공기의 벽에
신체의 위력에
대쉬맨의 기백에
거세게 치이며 세 걸음을 물러선 이정운.
간신히 목만큼은 지켜냈지만.
충격파가 스친 볼에서 흐르는 피가 말하고 있다.
“직격이면 죽었겠군.”
“그랬겠지.”
“왜 경로를 비틀었지? 수영이의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였을 텐데.”
대쉬맨은 검을 거두고는, 품에서 비단주머니 하나를 꺼내 던졌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구겨지고 더럽혀진 흔적이 남아있는 주머니.
그 안에는 검에 부착하는 악세서리형 보급형 아티펙트가 들어있었다.
“장례식에 오거든 주려고 했던 물건이다. 수영이가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그날 백화점에서 구매했던 선물이다.”
이정운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나를 원망하지 않는 거냐?”
“몇 번이고 버리려고 했다. 너 같은 녀석에게 주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 하지만 이 악세서리를 보며 깨닫고 말았다.”
믿음이 흔들렸던 그 시기.
수영이와 함께 그에게 줄 선물을 샀던 이유.
그건 두 사람의 믿음을 다시 굳건히 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우리가 바라던 목적지는 같았다는 것을.”
대쉬맨이 손을 내밀었다.
“양지로 돌아와라. 지금이라면 네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다. 해남파는 명호길드와 달라. 각성자자격증도, 경력도 모두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이정운이 닿지 못한 50cm의 간격을 좁히며 5년 동안 쌓였던 분노를 토해내었다면.
대쉬맨은 닿지 못한 50cm의 간격을 좁히며 5년 동안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쳐냈다.
“다시 시작하자. 해남파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