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272)
〈 272화 〉 272 뒷전으로 밀려난
* * *
1.
민우성은 이런 승진을 조금도 원치 않았다.
그의 입은 자연스레 변명을 찾기 시작했다.
“길드장님의 전속비서로 곁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비서 일도 하고 싶으면 같이 하세요.]“…아무리 저라도 업무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소경석씨만 해도 기업 일을 맡은 뒤로는 본당에 얼굴도 비추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행히도 해응응은 납득해주었다.
그렇다고 앞선 지시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우지우는 정말 시간이 많았다.
해남파 길드개설 초기만 해도 길드설립에 필요한 공헌도를 벌겠다고 온갖 굳은 일과 외근을 전부 도맡아 했었지만.
길드가 안정되고 공헌도나 치안 문제도 신성곽 어르신과 대산길드가 대신 해결하는 지금, 우지우 정도의 무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
다른 길드라면 무력도 어느 정도 중시해서 뽑을 비서자리지만.
해응응보다 강한 비서를 뽑으려면 인류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마크2를 맡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육아라면 이브가 좋아할 거예요. 이브는 절 좋아하니까 마크2도 어여삐 봐주겠죠.]동구권에서 온 성녀 이브.
그녀도 시간이 많기로는 우지우 못지않았다.
이브의 곁에는 늘 시종인 대쉬맨도 함께 하니, 마크2의 존재를 아는 대쉬맨이 곁에서 돕는다면 이보다 완벽한 인선도 없다.
뭐라도 더 핑계를 대고 싶은데 해응응의 결정을 번복시킬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왜 자꾸 거절하는 거죠? 데려온 아이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건가요?]해응응의 눈가에 어리는 희미한 노기.
더는 승진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아닙니다. 많은 일을 맡고 있었기에 다른 분들이 대신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을 뿐입니다. 책임감이 과한 탓이니 부디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이번 경연에서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저 아이들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요.]십대엔터가 단단히 거머쥔 엔터계에서 소속사도 없이 그저 해남파 소속으로 밀어붙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고, 민우성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만한 적임은 없었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좋게 생각하자.’
길드장의 곁에 서는 기쁨을 누릴 수는 없지만 지수의 해맑은 미소는 지킬 수 있지 않은가.
한나와 지연이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자신이 데려온 소영아도 책임져야 한다.
‘우지우 따윈 별 것도 아니고.’
우지우의 능력 상 해응응의 전속비서 노릇을 하기에는 역량이 크게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그에게 다시 본당으로 돌아오라는 해응응의 지시가 내려올지도 모른다. 민우성의 진정한 적은 따로 있다.
‘박지오. 엔터대표가 된다면 작곡가인 그 남자를 내가 고용하는 입장이 되겠지.’
조금은 음험한 욕심도 들었다.
돈이야 원없이 벌었고 아쉬울 것도 없는 A급 작곡가를 홀대할 수는 없지만 그 남자가 길드장과 마주칠 기회를 줄이는 수작은 부릴 수 있다.
내가 길드장의 곁에 머무를 수 없다면 그 또한 길드장과 마주칠 기회를 허락하지 않겠다.
민우성이 해남엔터 대표직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짧은 시간 사이에는 그렇게나 수많은 생각과 분석, 계산이 오갔다.
“그럼 앞으로의 해남엔터 경영방침에 대해 내려주실 지침은 있으십니까?”
해응응이 손가락 위로 볼펜을 수직으로 세우고는 볼펜 위에 지우개를, 지우개 위에 파일폴더를 쌓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긴장감을 느꼈나는 듯이 힘 빠지는 그 모습에 민우성이 주머니에서 담배갑 하나를 꺼냈다.
오.
해응응의 한 손이 담배갑을 붙들고는 반대손까지 어떻게 얹을지 고민하더니 손가락 끝으로 담배갑을 툭 가볍게 띄워올렸다.
독보적인 균형감각을 선보이며 서류철 위로 담배갑을 얹는 솜씨가 프로 서커스단원이 따로 없다.
‘나날이 기묘한 잔재주가 늘어 가시는군.’
다음에 이곳에 돌아올 때에는 불타는 링 속으로 뛰어 들어가거나 코끼리를 채찍으로 조련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즈음, 한 손으로는 묘기를 부리면서 반대쪽 손으로 펜을 쥐고 답변이 적혔다.
[가끔 제가 해달라는 것만 해주면 되요.]“나머지는 모두 제게 맡기신다는?”
[경석씨처럼 적당히 해주세요.]민우성은 확신했다.
이 인간, 소경석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을 거다.
해남기업의 이름 아래에 분리된 계열사의 숫자만 열 개를 넘기기 시작했는데, 이 기세로 보면 조만한 십대길드의 아성에도 도전할만하다.
물론 부하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든 해응응은 언제나 그렇듯 별 관심이 없다.
그녀의 눈에 뒤늦게 들어오는 답배갑 하나가 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뿐.
[담배는 원래 안피지 않으셨나요?]“어쩌다 보니 피게 됐습니다.”
같이 한 대 피우지 않겠냐는, 충동적으로 나오려던 말은 꾹 눌러 삼켰다.
서커스놀이에 한참 재미 들린 잼민이같은 길드장에게 담배를 핑계로 사적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 보내고 싶은 욕망이란.
민우성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바보 같았다.
2.
우지우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렇게 직접 옆에서 모시게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하하.”
민우성의 좌천 아닌 승진 이후, 내원에서 빈둥빈둥 놀던 그가 차기 비서로 내정된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해응응의 비서가 되었으니 매일매일이 꿈만 같았다.
[지우씨. 좀비해저드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게임이에요.]“아하하. 멀티모드가 좀 그렇죠? 그 인원 그대로 모이지 않으면 게임을 못하고. 애들이 워낙 바빠야 말이죠. 그래도 성적이 좋아서 그런 거니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기다려야죠.”
[저는 좀비해저드가 하고 싶어요.]“하하, 네. 저도 좀비해저드에서 좀비들을 호령하는 길드장님의 모습이 얼른 보고 싶습니다.”
우지우가 마냥 행복한 것과 달리, 해응응은 괴로움을 느꼈다.
민우성과 있을 적에는 이렇게 먼저 운을 띄우면 진즉 알아차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면서 손발처럼 움직여주던 민우성이었건만.
우지우는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거듭 확인을 해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소원의 우물 같네요.’
요계수도에서 잠입암살을 벌이던 도중, 언젠가 요괴들의 진명과 전승에 박식한 마가놈이 들려준 일화가 하나 있었다.
소원을 빌면서 우물과 이어지는 도르래에 물건을 싣고 내리거든 도르래를 올릴 적이면 전혀 다른 물건이 담겨서 돌아온다고.
그 물건을 사용하면 소원을 이룰 수는 있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하여 희망고문의 우물이라고도 불리었다.
‘시청자들은 고대원시랜덤박스라고 했었죠.’
해응응이 보기엔 우지우도 소원의 우물 못지않았다. 수첩을 던지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정 심심하시거든 엄길동 그분이랑 합방이나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번에 보니 계약하러 온 김에 합방 약속도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좀비해저드를 할 수 있나요?]“좀비해저드 멀티모드는 한 번에 하나만 지원한답니다. 인싸들이 자기패거리랑 놀러 가면 진행도 못하고 버려지는 아싸들이 불쌍하잖아요?”
그런 이유 궁금하지 않아.
“엄길동씨는 그런 점에서 안심입니다. 친구가 없는 분이거든요.”
“…….”
슬슬 불퉁해지는 해응응의 표정에도 우지우는 최첨단현대랜덤박스갈통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보다 엄길동 씨한테 너무 실례잖아.
“아니면.”
엄길동은 그냥 해본 소리라는 것처럼 우지우가 다른 인물을 제시했다.
“스피드마스터랑 합방은 어떠십니까?”
[싫어요.]“그 사람 엄청 잘나가는 스트리머던데요?”
[그 사람에게는 거는 기대가 커요.]“그럼 더 좋지 않습니까?”
합방을 향한 기대가 아니다.
정상급 스트리머로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간간히 드러내는 실력자에게 고수간의 호승심과 실력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호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현대에서 스피드마스터는 흔치 않은 별미.
‘어쩌면 저를 제외하면 업계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실력자를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상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는 딸기케이크의 딸기나 초콜릿케이크의 하나뿐인 화이트초콜릿 장식물을 가장 마지막까지 아꼈다가 즐기는 타입이다.
맛있는 걸 먼저 탐하지 않아도 타인이 빼앗아가지 않을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이 아닌 미식을 위해 즐겨온 식사.
해응응의 식사는 그만큼 각별하다.
‘아직은 아껴두어도 괜찮아요.’
정상급 스트리머의 아성은 그리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그럼 꿩 대신 닭이라고 국뽕검사 이해찬은 어떠십니까? 그 친구도 나름 칼은 잘 쓴다던데.”
“?”
“왜 전에 인터뷰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명호길드가 건재할 적에 몬스터 공습경보도 같이 겪어놓고 그새 까먹으셨습니까?”
기억이야 났다.
그녀가 의아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고작 검을 조금 잘 다루는 재주 따위.
자신보다 못할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우려는 뜻밖의 방면으로 해소되었다.
“길드장님이 강하기야 더 강하다지만 제자를 키우는 실력도 더 뛰어나다고 확신하기는 이르지 않겠습니까?”
[지우씨는 도발을 정말 잘하시네요. 해남파 문주인 제게 제자육성실력으로 도발을 하다니.]“하하. 제가 아니라 이해찬 그분이 대단한 거죠. 검투사키우기라는 게임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NPC를 키워서 서로 싸움 붙이는 게임입니다.”
이해찬이 거기서 한국랭킹 1위란 말이죠.
그 말에 반요곡이나 헬세살, 이복아카, 좀비해저드 생각은 까맣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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