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22)
〈 522화 〉 522 마지막은 폼 나게
* * *
1.
십대길드 몰락 이후, 거대길드의 이권을 대변하는 협회가 아닌 각성자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본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간 각성자협회.
십대길드 몰락 이후 수많은 실권을 잃었지만 조직의 수위는 어느 때보다도 맑아졌다.
[건물이 많이 작아졌군요.]“어떤 물고기들은 맑은 물에서는 살지 못하지. 더럽고 탁한 물에서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돈은 더럽고 탁한 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라는 걸세.”
[너무 궁핍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요.]“그 정도로 가난해보였나?”
[그냥저냥요.]“기부라면 언제든지 받겠네. 대한민국 각성자들의 인권과 미래를 위해서 헌납하겠다면야.”
[나중에 내키면요.]협회가 부유한지 가난한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관심이 있는 건 박재호.
협회라는 굴을 파서 그 안에 숨어살던 이 겁쟁이 양반이었다.
[제자의 치부를 외인이 대신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눈을 감다니, 사내답지 못하네요.]“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 비난이라면 달게 받겠네.”
[제 손으로 매듭짓지 못한 일은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에요.]휘리링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비수가 픽 하고 쏘아졌다.
퍽!
손잡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업무용책상 깊이 박힌 비수를 보며 박재호는 침음을 흘렸다.
“데코레이션 한 번 끝내주게 하는군.”
[한 번 봐준 거예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니.]“무엇을 원하나?”
[제게 원하는 것을 묻지 말아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신의 목이니까.]“역시 어려운 여자로군. 각성자와는 격을 달리하는 귀환자, 그 중에서도 한층 더 격이 다른 해응응이라는 여자는.”
박재호가 두 손을 펼치며 항복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하지. 내가 자네에게 필요할만한 것을 전부 건네주도록 하지. 만족했으면 나를 살려주고, 부족했다면 목숨을 거두어가시게. 그걸로 됐나?”
궁금하기는 했다.
1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협회장은 어떤 비밀과 자산들을 지니고 있고, 무엇을 건네줄 수 있을지.
“우선은 변명부터 시작하지.”
“내 손으로 키운 복제인간이 내 능력을 복제했고, 힘을 얻은 그가 본색을 드러내면 참사가 벌어질 것을 알았음에도 내가 그를 해치우지 못한 이유를.”
“그의 머릿속에 깊이 봉인해두었던 기억에서도 언급했지만, 귀환자는 강력한 몬스터의 반대급부로 등장하네. 혹은 귀환자의 반대급부로 강력한 몬스터가 등장하지.”
박재호가 목숨 값으로 지불하는 대가.
시작은 귀환자의 등장메커니즘이었다.
“믿어도 좋네. 지난 십년 간, 협회가 얻지 못할 정보는 없었고 검증도 완료했으니까.”
[몇 명의 귀환자가 있었죠?]“175명. 우리의 눈에 걸리지 않은 귀환자는 더욱 많겠지.”
[그 많은 귀환자는 지금 다 어디에 있죠?]“죽었네. 국가안보국 소속 귀환자 의 손에. 혹은 협회의 삼대장 중 하나였던 의 손에. 그마저도 아니면 아무도 모를 곳에서, 누군가에게.”
협회의 백소천.
국가안보국의 고스트.
십대길드의 조일성.
대한민국의 세 명 뿐인 S급 각성자 중 둘이 귀환자 제거에 열을 올렸다.
[왜 그래야만 했죠?]“어설픈 귀환자는 음지로 숨어들고 현행체제에 반하는 반사회조직의 전력을 향상시키니까.”
[그럼 그들이 당신이 자처한 부패한 협회와 타락한 십대길드에 붙어야 했나요? 제게도 그런 선택을 내리길 바랬나요?]“아니. 부숴주길 바랬네. 이 정도의 가혹함조차 이겨내지 못할 인물이라면 언젠가 내 능력의 반대급부로 나타날 사상최악의 정신계 몬스터를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괴물은 당신뿐이에요.]“그렇겠지. 인류가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닌 몬스터가 출현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경험’을 만들고자 했으니, 결과적으론 나 또한 괴물과 다르지 않지.”
박재호의 주름진 얼굴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세계의 비밀을 깨닫고 겁에 질렸던 중년인은 어느덧 너무 늙고 지친 노인이 되었다.
“내 선택과 유도가 최선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내 눈은 그 아이를 막는 것이 아닌, 언젠가 나타날 괴물과 맞서는데 싸우고자 아껴왔다네.”
[안대를 찬 눈. 실명된 것이 아니었군요.]“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한 번. 그 한 번을 위해 작은 불의는 모두 눈감고 넘어갔네.”
[제자의 머릿속에 메시지를 남길 여유를 부릴 때에 그를 바로잡았으면 좋았을 텐데요.]“출력의 문제였네. 그 아이를 해하는 방향으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생명의 위기 앞에서 무공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저항하는 자기최면도 깨야했지.”
[남은 힘을 모두 쓰느니 후일을 도모했군요.]이해는 했다.
낡고 비루한 이야기지만 그 또한 하나의 이야기.
박재호라는 겁 많은 자의 행동방침은 알았다.
“일종의 백신이라고 생각하게.”
“제자를 돌이키기엔 늦었고 그를 멈추려면 내 모든 힘을 써야함을 깨달았을 때, 그를 백신으로 쓰는 것은 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느껴졌네.”
“더 큰 정신지배에 당하기 전에 보다 작은 정신지배에 당하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정신지배능력에 대한 오랜 원한과 증오, 경계를 만드는 것이지.”
[결국은 실패했지만요.]“변명으로는 내 목숨을 구하기 부족한가보군.”
해응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집 위에 올라온 손은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럼 귀환자의 반대급부로 나타날 강력한 몬스터, 언터쳐블Untouchable급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얹어보도록 하지.”
“게이트와 함께 출몰하는 이 강력한 몬스터들에게는 실은 한 가지, 은밀한 비밀이 존재한다네.”
“바로 게임 속 몬스터라는 사실이지.”
…게임 속 몬스터?
해응응의 눈에 설마, 하는 기색이 어렸다.
박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네가 생각하는 바가 맞네. 일정시간 공략되지 않은 게임. 누구도 깨지 못한 난이도의 강력한 몬스터. 그것들이 현실세계에 나타나는 걸세.”
각성자들이 힘을 키울 수 있는 장소.
귀환자들만이 깰 수 있도록 안배된 최고난이도의 도전요소들.
그것들은 마냥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많은 탄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게임에 대한 제재만큼은 협회에서 하지 않고 방관해왔던 이유이지.”
생각해보면 더 골 때리는 이야기였다.
[당신네 협회는 해남파의 몰락을 위해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형성하기도 했을 텐데요?]“오푸스 기관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공세이자 십대길드 몰락을 앞당기기 위한 작업이었네. 덕분에 자네들이 서로 싸우고 십대길드가 무너지지 않았나.”
[오푸스 기관은 또 뭐죠?]“언젠가 정신계열 U급 몬스터가 출몰할 때, 이에 저항할 대항마를 육성하는 기관이었네. 내 능력을 마이너카피한 복제체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지.”
인류를 지키고는 싶지만 이대로 두기엔 너무 연약해서 면역력을 키우고 싶고.
시련을 주고는 싶지만 기회가 되면 제 손으로 치우고도 싶고.
참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먹는 것은 이래서 무섭다.
사람이 일관성이 없어지게 되니까.
“문제가 있네. 위기를 해결한 자에게는 세계가 지급하는 보수마냥 막대한 힘의 증진이 뒤따르고, 인류를 위협하는 빌런들에게도 기회가 허락된다는 것이지.”
[당신과 빌런들이 뭐가 다르죠?]“무능력자의 인권을 박탈하고 노동계급으로 만든다는 발상은 떠올리지 않았지. 여자를 만 명쯤 모아 하렘을 만들 생각도 안 했고. 그런 것들이 빌런일세.”
적어도 그의 목적은 사익이 아니었다.
과정은 추악해도 그 끝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만큼은 인류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알량한 대의일지라도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그와 빌런의 차이로서 존재한다.
[일리는 있네요. 흑의종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요.]흑의종군의 존재는 그의 변명을 부정한다.
협회에서 쫓겨난 무고한 이들에게 빌런의 낙인을 찍었던 십대길드와 협회.
그들의 과거가 말하고 있다.
그에게 어떤 이유가 있든.
어떤 변명을 일삼든.
그 발언에는 진정성이 없음을.
“이조차도 부족한가?”
해응응은 검을 뽑았다.
박재호는 담배를 들었다.
“갈 때 가더라도 한 대 정도는 피우고 싶군.”
해응응은 손을 내밀었다.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의 손을 쳐다보던 박재호가 담배 한 대를 건네주었다.
치이익
곧 상대를 죽일 사람과 곧 상대에게 살해당할 사람이 서로 담배를 입에 물고 맞담배를 피운다.
기묘한 광경임에도 누구 하나 이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난리를 벌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양쪽 모두 쌓아온 경험과 짓밟고 올라온 시체의 수가 너무 많았다.
“하드디스크는 잊지 말고 가져가게. 토벌되지 않은 몬스터와 그들의 출신지로 추정되는 게임의 리스트를 모아두었으니까.”
[그러죠.]“오푸스 기관도 조심하게. 닥터 요한 2세가 그들에게 반기를 들고 큰 피해를 입은 이후로 그들도 단단히 벼르고 있지. 이번 최면술사도 그들 중 하나일세.”
[알았어요.]“그럼… 마지막은 폼 나게 부탁하네.”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감는 박재호.
그의 몸을 해응응의 검이 베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