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11)
1.
“대요괴가 최강의 만요라면 선각자는 만요의 어버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폭군이 밝힌 진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상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였다니.
“선각자가 요괴를 만든 장본인이라도 된단 말인가요?”
“요괴뿐만이 아니다. 반요곡. 인세에 지쳐 반요곡에 숨어든 반요들을 거둔 것도, 인간들의 왕국의 위치를 당대 요괴왕에게 알린 것도 모두 그녀의 소행이었지.”
“!!”
“이제 알겠나? 그를 가장 깊은 원죄를 범한 자, 인류의 대죄인이라 부르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았다.
선악의 구분이 없는 등선의 문.
그는 선계에 발을 들인 신선이자 동시에 인계에 지옥을 만들어낸 마선이다.
그것은 대단히 안 좋은 사실을 의미했다.
신선은 보통 오욕칠정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의 모든 미련을 벗은 뒤에야 등선을 하지만… 간혹 자신의 힘으로 직접 등선문을 열고 오르는 신선들이 있다.
무림비망록에서 고금제일인 기극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방법이라면 마선이 인류에게 적대적인 지옥을 만들어낸 이유를 해명할 수 있죠.’
무림비망록 시절, 기극조급에 해당하는 초절강자.
과연,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같은 게임답다.
대요괴를 무찌르고 기고만장한 채로 게임을 계속 진행했다면 감히 마선을 무찌를 수 있었다고 장담할 수준이 아니었다.
토벌이 아닌 생존을 논해야 하는 수준.
잡을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요컨대… 엔딩에 분기점이 생겼군요.”
“엔딩?”
“당신, 플레이어인데도 엔딩을 모르는 건가요?”
“아아. 이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어. 엔딩. 엔딩이라… 그래. 이 세계에도 엔딩이 있겠군. 거짓선각자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당신. 이 세계에서 몇 년을 보낸 거죠?”
“내가 처음으로 과업을 하사받은 시기는 초대 요괴왕이 등장한 시기였다. 인류를 결집하여 인세의 악몽과도 같았던 요괴왕을 격퇴하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
인세의 재앙과도 같았던 초대 요괴왕.
사생아왕의 아버지였던 2대 요괴왕.
미래의 가능성을 빌려 힘을 얻었던 3대 요괴왕.
폭군은 모든 요괴왕의 출현시기를 살아온 유일한 인간이었다.
“시간으로만 치면 족히 100년은 되겠군.”
“고생했군요.”
“‘되돌린 시간’을 제외한다면.”
“!?”
“여기는 그런 세계다. 플레이어가 과업의 달성에 실패하고 세계의 구원의 가능성이 상실된다면. 인류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세계.”
“그럼 당신이 보낸 진짜 시간은…”
“긴 시간이었지. 최소로 잡아도 1만 년. 혼백이 닳아 없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폭군의 충격적인 고백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회차반복. 이 지옥이 되돌려지는 조건은 이 세계의 마지막 인간이 죽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죽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순간까지.”
“…다음을 위해서 말인가요?”
폭군은 부정하지 않았다.
회귀.
회차반복.
그가 짊어진 짐은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싸움.
그러나 자신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그의 사후에 남은 인간이 끝까지 살아남고자 발악한다면.
얼마나 처참한 세계가 펼쳐지더라도 인류는 다음 가능성을 얻지 못한다.
그저 요괴의 노예에 불과한 목숨을 이어가며 애완인간, 식용인간, 야생인간 수준의 비참한 삶을 연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요괴는 이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녀석은 반드시 모든 인간을 잡아먹으려 드니까. 놈이 살아있다면 실패한 회차를 간단히 끝낼 수 있지.”
“…당신의 이야기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군요. 플레이어라면 싫은 세계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을 텐데요.”
“모르는가? 완전공략에 실패한 세계는 언젠가 그 세계의 절망이 범람하여 흘러넘침을.”
“…게이트 폭주.”
“그렇다. 이 반요곡의 세계 또한 다르지 않지. 그리고 내 세계는 반요곡의 공략에 실패했다.”
“!!”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지금, 내게 남은 것은 고향을 없애버린 이 게임을 극복하는 것 하나 뿐. 그러니 묵언검객, 네게 묻겠다.”
가혹할 정도의 진상을 전한 폭군.
그가 물었다.
“네가 원한다면 이 게임은 대요괴를 물리친 시점에서 어떻게든 종료할 수 있다. 하지만 선각자는 누구도 막지 못하겠지.”
“…”
“거대한 어둠일수록 현실세계에 강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선각자 정도의 존재라면 너희 세계 기준으로 100년은 족히 걸리겠지.”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신의 세대에서 맞이할 절망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미래에 닥칠 인세의 최후를 자신의 손으로 지울 것인가, 가혹한 미래로부터 눈을 돌리고 반쪽짜리 승리만을 거둔 채 물러날 것인가. 선택해라.”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닌 세계.
이미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전적이 있는 반요곡.
신선급의 강자가 최후의 적으로 도사린 곳.
“제가 거절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나요?”
“너를 로그아웃 시킬 것이다. 그리고 시간정지 없이 이 세계의 시간을 끝까지 돌리겠지. 선각자와 나, 둘만이 남은 지옥으로.”
“…”
“패배를 맞이한다면 다시금 회귀할 것이고, 네 게임은 2회차를 맞을 것이다.”
“가혹한 미래군요.”
“모행성을 지켜내지 못한 용사의 말로일 뿐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영원히 반복할 뿐인…”
“제게는 승산이 있다고 보나요?”
“그렇다.”
“왜죠? 당신 정도의 강자와 제 실력에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이 세계가 1회차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패배에 의해 반복되는 세계.
플레이어의 승리에 의해 반복되는 세계.
플레이어의 포기에 의해 반복되는 세계.
플레이어의 만족에 의해 반복되는 세계.
“어떤 형태로든 2회차가 된다면 선각자는 알게 된다. 요력 105년. 네가 반요곡의 입구에 발을 들인 시점에서부터 이 세계에 새로운 변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타났음을.”
최종보스가 플레이어의 진입을 깨닫는다.
몰랐을 때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겠지만 모든 진상을 답안지처럼 엿본 뒤에는?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쾌적한 플레이.
더욱 빠른 공략.
그런 것들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불리함을 지닌 무언가가 벌어지겠지.
“회차반복은 함정이다. 한 번 빠져들면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그럼 당신은 어째서 그 운명을 받아들였나요?”
“몰랐으니까. 과거의 나는 나약했으니까. 요괴왕을 격퇴해도 또 다른 요괴왕이 출현하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받아들였다. 아직 정체를 몰랐던 시절, 선각자가 내민 제안을.”
“설마… 회차반복의 정체는…”
“그렇다. 이것은 선각자의 도술이자 저주. 세계단위로 새겨진 반복되는 종말의 선언. 이다.”
…무겁다.
즐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면, 게임에서의 패배가 언젠가 먼 미래에 인세에 닥칠 재앙과 이어진다면.
이것을 어찌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현실과 다르지 않다.
회차반복의 탈을 쓴 선각자의 잔혹한 유희처럼 이 세계 또한 게임이 아닌 미래를 위협하는 종말일 뿐.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다.
가끔은 내공을 채우고 싶어서.
가끔은 그냥 빈둥거리고 싶어서.
가끔은 시청자들을 꼴받게 하고 싶어서.
온갖 이유로 휴방을 하며 공략속도를 늦추었던 것이 득이 되어 오늘까지의 시간을 벌었다.
1회차로 이 먼 여정을 성공적으로 잇게 만들었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선각자 타도에 도전할 셈인가.”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아요. 경지를 올리고 돌아온다면 그 때에는 마선토벌에 도전하겠어요.”
“…그 말은 로그아웃을 해서 힘을 키우고 돌아오겠다는 뜻인가?”
“그래요.”
“그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보다도 선각자의 토벌을 원했을 그이건만.
어째서인지 폭군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기다려온 시간에 비하면 제게 필요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해요.”
“불호가 아닌 불가능이다. 네가 이곳에 온 시점에서, 나와 조우하여 사슬의 봉인을 깬 시점에서 이번 회차에 ‘다음 기회’ 따위는 사라졌다.”
“…그 봉인에 무슨 의미가 있었죠?”
“봉인이다. 너무 강해져버려 더 이상 스스로는 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봉인.”
삶에 지친 사람이 내쉬는 무거운 한숨.
마음 속 깊숙이 누르고 또 눌러 담아 지층처럼 쌓여버린 감정.
고이고 고여 부패해버린 마음.
그 무거운 과업이 아주 조금.
거대한 절망의 편린이 새어나온 것만으로도.
“!!!”
해응응은 느꼈다.
지금까지 펼친 힘으로도 충분히 괴물 같았던 폭군에게 아직 ‘그 너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요괴왕을 격퇴한 자.
수많은 사령의 힘을 빌리고도 동수를 이루는데 그쳤던 그녀와 달리, 일신의 무력으로 요괴왕을 꺾을 수 있는 터무니없는 강자다.
그것은 더욱 암울한 사실을 암시했다.
저 정도의 힘으로도 폭군이 선각자를 물리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럼 결정이군요.”
항거할 수 없는 절망은 사람을 한평생 미치도록 만드는 통곡의 벽이 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발을 돌린다.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도 마음이 먼저 꺾여버릴 정도의 강함이자 절망이다.
“당신이 만인의 정점에 올라선 폭군이라고 해도. 적이 만요의 어버이와 같은 선각자라고 해도. 저 또한 종을 대변하는 인물이니까요.”
“인간과 요괴의 종주를 내어주었다면 남는 것은 고작 반요밖에 없을 텐데.”
“세상은 하나의 항목으로 분류되지 않아요. 무림인은 인간과 요괴가 아닌 다른 구분법을 알고 있죠.”
정신이 무너질 정도의 절망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해응응은 폭군에게 걸음을 내딛었다.
‘이 여자, 지금 내 기운을 견뎌낸 것을 넘어서 거스른 건가?’
“저는 만마의 정상에 오른 자. 천마 해응응이에요.”
좋군. 역시 보인다.
이 여자에게는 선각자에게까지 닿을 가능성이.
“시간이 없다. 내 힘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앞으로 5턴.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선각자 토벌전을 개시해야 한다.”
5턴 안에 마선토벌에 도전하라.
라스트미션.
최종목표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