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
1화.
‘별이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빛내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별이 사라진다는 비유와 딱 맞아떨어졌다.
쏴아아아아아아!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어두운 밤, 또 하나의 별이 땅에 떨어졌다.
빗속에서 보이는 것은, 여기서 일어난 사건이 교통사고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우그러진 덤프트럭 한 대.
그리고…….
구겨진 박스인 양 엉망이 된 택시 한 대가 고장 난 방향 지시등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자! 조심! 조심!”
“이런 젠장! 참혹하군! 하필 비가 이리도 오는 날에!”
“반장님! 트럭 기사 쪽은 즉사한 것 같습니다!”
“여기 이쪽 청년은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신분증 확인! 이름, 윤찬성!”
사고 현장엔 소방관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구조 작업이 한창.
이미 사망한 사람이 나올 정도로 참혹한 곳에서 하나의 청년이 발견된다.
이제 갓 성인이 된 걸로 추정되는 앳된 외모. 그러나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기에 눈을 뜨면 여성들의 호감을 살 인상이었다.
“다, 다리가?”
“빨리 지혈부터! 그리고 옮겨!”
그의 무릎 아래로 본래 양다리가 있어야 할 곳이 구겨진 택시의 잔해로 덮여 있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온갖 사건 사고에 익숙한 소방관들도 안색이 파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고의 현장 뒤에는 한 자루의 부러진 검이, 마치 그의 운명을 상징하듯 비를 맞으면서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있었다.
***
사고가 일어난 그날은 본래 윤찬성에게 있어 최고의 날이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약 10년, 그 긴 기간 동안의 검술 수련 끝에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진검(眞劍)을 선물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 침상에서 의식을 차린 찬성은 자신의 다리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눈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하, 하하하.”
그리고 나온 것은 허무한 웃음. 원래 그날은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가져가려면 그냥… 목숨까지 같이 가져가지. 하하…….”
처음 일어날 때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이내 금방 자신의 두 다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 끝없는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 ‘검술’이란 팔로만 휘두르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엄연히 모든 신체를 사용하여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특히 다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 움직이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양팔만큼이나 중요했다.
“이제 내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거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인정받아 온 타고난 재능이었다.
그렇기에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희망찬 길만 걸어온 그에게, 이것은 너무나 가혹한 절망이었다.
“힘을 내렴.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어디냐? 택시 기사는 즉사했다고 하던데 말이야.”
“그래, 맞아. 일단 군대도 안 가고 좋… 커억!”
“너는 지금 평생 휠체어 타고 다녀야 할 애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려면…….”
그 뒤로 의료진, 가족과 친지, 스승 등등… 그를 걱정해 주고 사랑하는 이들이 와서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하지만 이미 잘려 버린 두 다리로 ‘검술’을 펼칠 수 없는 이상 그의 절망은 쉽게 거두어질 수 없었다.
절망을 이겨 내려면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야 하는데, 지금까지 ‘검’ 하나에만 매진한 그에게 금방 열정을 불태울 희망이 쉽게 발견될 리가 없었다.
“오오~ 찬성아, 저번 수련 이후 오랜만이다?”
“…삼촌?”
“그래, 나다. 상태는… 안 좋아 보이는군.”
“하아아… 네, 안 좋죠. 이렇게 살 바에는 그때 사고로 그냥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가족들과 친지들의 방문이 끝나고 등장한 한 남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친한 척을 하는 그는 함께 운동과 수련을 해 왔던 ‘삼촌’이었다.
“인석아, 그럼 형님네가 얼마나 슬퍼하겠냐? 특히 너는 막내라서 얼마나 애지중지하는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물론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나도 한때는 운동선수였다가 모든 걸 다 잃은 적이 있으니 말이야. 물론 너처럼 사고로 급작스럽게 잃은 건 아니었지만. 에휴.”
“삼촌… 전 이제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살아 있으니 살아야지.”
“이런 상태로 어떻게요? 저 머리도 엄청 나빠서 공부도 잘 못해요.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턱걸이로 합격했잖아요. 삼촌이 과외 안 해 줬으면… 아직도 공부하고 있었을걸요?”
엄연히 한 유파의 후계자인 만큼 찬성은 검술 수련을 위해서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패스한 상태였다.
삼촌은 찬성의 말을 듣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너한테 머리까지 주면 밸런스 붕괴지.”
“밸런스… 그게 뭐예요?”
“이야, 내가 지금 할 말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궁금한걸?”
삼촌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래, 그래도 너라면 그럴 수 있지. 가끔은 조금 부럽다. 이렇게 맑은 두뇌라니.”
“근데 삼촌… 역시 저 놀리러 온 거 맞죠?”
“얀마, 아니라니까. 설마 내가 너한테 그러겠냐? 자, 이거나 봐라.”
의심 많은 찬성의 시선이 삼촌이 품에서 꺼낸 스마트폰에 닿았다.
화면엔 마치 판타지 영화 같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전쟁, 형형색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용, 마법사, 성직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화려하게 싸우는 장면이 보였다.
“이게 뭐예요? 영화?”
“역시 넌 이 삼촌을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가상현실 게임도 모르는 그 순수함이라니…….”
“아니, 저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저도 중학교까진 나왔다고요. 애들이 이야기하는 거 다 보고 들었죠. 게다가 교과서에도 일부 나오니까요.”
고등학교 시절은 검정고시로 패스했지만 엄연히 찬성은 중학교까진 다닌 몸이었다.
하지만 지금 삼촌의 휴대폰에 나오는 영상은 기존에 그가 알던 게임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이었다.
“…이 정도로 리얼감이 넘치진 않았어요.”
“그야 차세대 최신작, 게임으로서의 성질은 성질대로 유지하면서 현장감과 움직임의 리얼리티는 리얼리티대로 살린 판타지 가상현실 게임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Another World Archive)’다. 줄여서 ‘월드 아카이브’ 혹은 ‘월드 아카’라고 부르지.”
삼촌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서비스한 지 약 세 달째인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아무튼 이걸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니?”
“뭐가 떠올라요?”
“지금 네 몸은 이래서 검을 다시 못 들지만… 여기서는 어떨까? 이걸 보렴.”
찬성은 삼촌의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세히 봐봐.”
이어서 보여 준 영상은 유명한 동영상 웹 공유 사이트인 너튜브의 한 크리에이터의 영상이었다.
현실에선 양팔이 없는 그였지만 게임 안에서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찬성이 짐작하고 떠올린 그대로였다.
“그래. 단순한 신체 스캔 아바타 제작을 넘어서 손실된 육체도 가상 구현화가 가능하며 실제 자신의 육체처럼 다룰 수 있는 세계다. 즉, 여기에선 넌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 음? 왜?”
“하지만 결국 가짜… 아닌가요? 게임 내에서 휘두를 수 있다곤 해도 그저 내 몸이 아닌 다른 것을 움직이는 위화감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 텐데. 게다가 제 검술을 그대로 펼칠 수 있나요? 그… 제가 지식이 모자라지만, 결국 0과 1이랑 개발자들이 짠 규칙으로 된 것일 텐데 말이죠.”
의외로 예리한 지적을 하는 찬성의 모습에 삼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예리한데?”
결국 검을 휘두른다고 해 봐야 ‘게임’ 속에서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아바타’를 통해서 하는 것이며, 0과 1로 짜인 세계 속의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것.
“그러나! 상식은 일시적 사람들이 대세로 여기는 지식! 즉, 패러다임. 패러다임은 결국 바뀌기 마련. 과거에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 상식이었고, 지금은 바뀌었지.”
“…네?”
“자, 그럼 나는 퇴원 수속을 하러 가지. 어디 직접 확인할 때까지 기대하고 있으라고.”
삼촌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찬성의 병실에서 나가 버렸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훌쩍 사라져 버린 삼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찬성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눈동자에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