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재회(1)
토요일이 되었다.
프로리그 시즌의 프로게이머에게 휴일 따위는 없지만, 이신은 쉬겠다고 방진호 감독에게 말을 해놓고서 최환열을 만나러 갔다.
블랙 셔츠에 같은 색의 슬랙스를 입고 외출한 이신은 운전사 정상범이 대기시켜 놓은 롤스로이스 팬텀 뒷좌석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청담동.”
이신은 구형 폴더폰을 꺼내 최환열이 문자 메시지로 보내준 카페 주소를 정상범에게 일러주었다.
“알겠습니다.”
정상범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차가 소리 없이 스르륵 출발했고, 안정감 넘치는 승차감 속에서 이신은 눈을 감고 잠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워 훈련을 한 까닭에 금세 잠에 빠져버렸다.
운전을 하던 정상범은 백미러로 잠든 이신을 응시했다.
‘기회다.’
적색불이라 잠시 멈췄을 때, 정상범은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어플을 실행했다.
찰칵.
차 안에서 깜빡 잠든 이신의 모습을 찍었다.
카메라 소리 때문에 잠시 마음을 졸인 정상범.
다행히 이신은 깨어나지 않았고, 정상범은 사진을 메신저로 지수민에게 전송했다.
[지수민: 꺄악! 깜빡 잠든 신 님 모습 너무 좋아♡ 블랙 셔츠도 좋아♡♡]‘휴우, 성공했다.’
이신의 운전사로 고용되면서 지수민에게도 따로 돈을 더 받는 정상범.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에 안도한 그였다.
하지만,
[지수민: 근데 오빠. 좀 밋밋하지 않아?]‘밋밋하다고?’
신호가 돌아와서 운전에 열중하면서도 정상범이 의문을 표했다.
차안에서 깜빡 잠이 든 사적인 모습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볼 수도, 찍을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평소에는 이것만으로도 심히 만족해하던 지수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수민의 메시지가 계속 속사포처럼 도착했다.
[지수민: 물론 신님은 언제 무엇을 하고 있든 존재 자체가 멋지지만!] [지수민: 그래도 이왕이면 좀 더 뭔가 컨셉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지수민: 잠자는 숲속의 왕자처럼. 근데 그 잠든 왕자에게서 색기가 느껴지면 더 훌륭하지 않겠어?] [지수민: 예를 들면 단추가 하나 더 풀려 있다든지…….]‘이런 미친! 지금 나더러 단추 하나 더 풀고 찍으라고?’
그러다가 걸리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프로 운전사 정상범.
그는 꾹꾹 참고 있다가 적색불이 들어와 차가 멈췄을 때 비로소 답장을 보냈다.
[그러다 걸리면 큰일 난다. 나 좀 살려주라.]지수민의 답장은 빛의 속도였다.
[지수민: 오빠 그것밖에 안 돼?] [ㅇㅇ미안.] [지수민: 단추 하나 풀면 백만 원.]정상범은 흠칫했다.
지수민의 메시지가 악마처럼 정상범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정상범: 오빠도 이제 서른다섯이지? 결혼할 때 다 됐네?]조금 늦은 편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죄다 결혼했다.
6년째 사귄 여자 친구가 술을 마시더니 오빠한테 난 뭐냐고 훌쩍거렸다.
정상범은 혼자 소주 6병을 까는 여자 친구가 데킬라 몇 잔에 취할 리 없다는 것도, 양심 있으면 이제 슬슬 눈치껏 청혼하라고 압박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수민: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까 결혼하려면 돈 정말 많이 필요하다던데. 결혼식 비용도 장난 아니고. 오빠도 참 고생이 많겠다!]정상범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 전에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자신의 신혼 시절에 고생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더니, 집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목표가 생기자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에 놓인 정상범이었다.
정상범은 다시금 백미러로 이신을 살폈다.
아주 푹 잠들어 있다.
사실 매사에 차를 타기만 하면 잠드는 이신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정상범이 깨우기 전에는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차 안에 정신이 깨어 있는 채로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시간낭비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었다.
‘괜찮을 거야.’
정상범은 과감해지기로 했다.
다시 적색등 신호를 받아 멈춘 차량.
정상범은 기민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뒷좌석으로 움직였다. 손을 뻗어 이신의 데님 셔츠 위 단추 하나를 풀었다. 원래 풀려 있던 것까지 총 두 개가 풀렸다.
‘이게 무슨 짓거리지.’
술에 꼴아 잠든 여자 친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던 짓거리였다. 잠시 자괴감이 들었지만 정상범은 여자 친구를 떠올리며 힘을 냈다.
찰칵.
사진을 찍어서 전송.
마침 신호가 바뀌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그런데…….
[지수민: 하악, 하악, 오빠 하나만 더!]‘그만해 이 미친년아!’
정상범이 속으로 절규했다.
[지수민: 말했지? 단추 하나에 백만 원!]갑자기 오늘따라 왜 지수민이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지 알 수 없었다.
정상범이 알 리가 없었다.
주디가 미국의 유명한 포토그래퍼를 꼬드겨 이신과 함께 매우 러블리한 포즈로 찍은 사진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그것 때문에 지수민이 매우 질투에 차올라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든지 처음만 어려운 법이었다.
정상범은 다시금 단추 하나를 더 풀러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아까와는 전혀 딴판인 사진이 되었다.
[지수민: 꺄아악! 너무 좋아!] [지수민: 그런데 오빠…….]‘이제 그만해!’
[지수민: 오빠 정말 못난 남자네. 하나에 백만 원이라고 했더니 정말로 하나씩 푸네.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사랑받고 살겠어?]다행히도 차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안,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수민: 정말 못났네. 역시 오빤 안 될 거야.]기껏 시키는 대로 했더니 욕을 먹고 끝난 정상범이었다.
‘선영아, 오빠가 이렇게 산다.’
울분을 뒤로하고, 정상범은 이신을 깨웠다.
“도착했습니다.”
부스스 눈을 뜬 이신은 차 문을 열고 나섰다.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카페였다. 아마도 최환열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셔츠 단추가 세 개나 풀려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이신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여기저기에 모여 앉아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수다를 멈췄다. 시선이 이신에게도 모여들었다.
“이신이다.”
“진짜 잘생겼다.”
“어머, 나 실물로 처음 봐.”
“세상에…….”
이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수군거렸다.
“사진 찍고 싶다.”
“같이 찍어달라고 해볼까?”
“아 젠장, 곧 있으면 남친 오는데. 존나 비교되네.”
“근데 여긴 왜 왔대? 설마, 데이트?”
“무슨, 게임에 미쳤다던데.”
“그 여자 있잖아. 올도어 부사장.”
“분명히 얼굴값 한다. 여자 많을걸.”
갑자기 카페 분위기가 들떴지만, 이신은 이미 관심받는 데에 익숙했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어서 오세요!”
헐레벌떡 나와 이신을 맞이하는 카페 여직원.
여직원의 눈이 이신의 얼굴과 셔츠 사이로 살짝 드러난 상체를 왕복했다.
“최환열.”
“아, 안쪽에 계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모리의 궁전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지내면서 남을 하대하는 데 매우 익숙해진 이신.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여직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아!”
복도 끝에 칸막이가 쳐진 구석 자리에 이르자 평범한 체구에 순박하게 생긴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마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막 상경한 듯한 얼굴을 한 사내.
그리고 실제로도 농사가 싫어서 집에서 뛰쳐나와 게임 하나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사내였다.
“어, 형.”
“야, 짜식! 반갑다!”
최환열은 활짝 웃으며 이신을 와락 끌어안았다.
“안녕하세요.”
최환열은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있던 예쁘장한 여자가 일어나 다소곳이 인사했다.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와 달리 여자는 굉장히 화려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금발 숏컷. 그리고 화이트 블라우스에 레오퍼드 숏팬츠 차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 20대 중반쯤의 여자였다.
최환열은 여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인사해, 내 여자 친구 유설희. 설희 알지?”
“몰라.”
최환열과 유설희가 동시에 움찔했다.
“BJ설희 몰라?”
“몰라.”
이신은 아는 척도 해주지 않았다.
“야, 너도 개인 방송 하는 놈이 무슨 설희를 모르냐.”
유설희는 파프리카TV에서 거의 톱을 달리는 BJ였다. 최환열과 함께 파프리카TV 최강의 커플로 유명했다.
“나 개인 방송 안 해.”
“안 한다고? Player_SIN이 너잖아?”
“나 아냐.”
“에이, 맞잖아.”
“아니라고.”
그 대답에 유설희가 푸훗 하고 웃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데 혼자만 잡아떼는 이신의 태도는 유명했다.
Player_SIN의 방송국 팬클럽 회장 자리를 놓고 돈다발로 경쟁을 벌이는 두 여자는 지수민과 주디일 거라는 게 유력한 추측이었다.
채팅창에서 가면 벗으라고 욕하는 시청자와 아랑곳하지 않는 이신은 그의 개인 방송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였다.
“왜 불렀어?”
이신은 자리에 앉아마자 대뜸 물었다.
“이놈아, 커피라도 좀 시키고 나서 얘기하자. 넌 어떻게 변한 게 없냐.”
최환열이 한숨을 쉬며 핀잔을 했다.
그는 메뉴판을 들고 유설희와 함께 이것저것 고르더니 이신에게 물었다.
“밥 먹었어?”
“아니.”
“여기서 뭐 간단한 거 먹을래? 아니면 나가서 제대로…….”
“먹을래.”
“크크, 그럴 줄 알았다. 쟤 귀찮은 거 되게 싫어해.”
“호호, 정말 방송 때랑 똑같다.”
“쟤는 TV나 개인 방송으로 보는 거하고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면 돼.”
“암튼 너무 잘생겼다…….”
유설희는 몽롱한 얼굴로 이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도 얼굴이었지만, 단추가 세 개나 풀어진 블랙 셔츠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상반신이 더욱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으흠!”
최환열이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찔끔해서 시선을 거두는 유설희였다.
“그나저나 시즌 중이라 바쁠 텐데 괜히 보자고 한 건가?”
“상관없어.”
“하긴, 네 성격에 바빠서 곤란하면 칼같이 거절했겠지.”
“어.”
최환열은 이신을 아주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신을 처음 발굴하고 프로게이머의 길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최환열이었던 것이다.
이신은 온라인 연습생으로 있다가 숙소 연습생과 2군 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1군 주전이 되었는데, 그것도 최환열의 강력한 지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서열을 중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데뷔까지 더 오래 걸렸을 터였다.
아무튼 이신을 발굴하고 데뷔시키고 이것저것 조언하기까지, 게임만 빼고 전부 가르쳐 주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은인이었기에 바쁜 와중에도 이 자리에 나온 이신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신이 다시 물었다.
최환열은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냈다.
“보여줄 게 있어서.”
“뭐?”
“보면 알아.”
동영상 플레이어를 재생시켰다.
그러자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리플레이 파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플레이하고 있는 개인 화면을 모니터째로 녹화된 영상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까지도 요란하게 들렸다.
“이게 뭔데?”
“한 번 평가해 봐.”
그야 어렵지 않았다.
이신은 잠자코 누군가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상 속의 주인공은 인류 종족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APM이 500까지 치닫고 있는 빠른 손놀림이었다.
마우스 커서와 화면 전환이 휙휙 변했다.
하지만 이신은 평소에 그보다 훨씬 빠르므로, 어렵지 않게 영상 속의 게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계속 보고 난 이신이 말했다.
“아마추어치곤 잘하네.”
“13살이야.”
“…뭐?”
그 말에 이신의 표정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