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능력(2)
“차이가 누구에요?”
함께 연습을 하던 주디가 문득 물었다.
쉬는 시간에 인터넷 뉴스로 뜬 차이의 사진을 본 것이었다.
막 자다 일어난 이신과 찍은 사진이 주디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았다. 저 투 샷 포지션은 자신만의 것이어야 했다.
“내 제자.”
“저는요?”
“내 제자.”
이신은 덤덤히 대꾸했다.
“같이 사는 거예요?”
“어.”
순간 주디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이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디가 다시 말했다.
“저도 갈래요.”
“어딜?”
“코치님 댁이요. 놀러가도 되죠?”
“놀러?”
이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주디는 냉큼 말을 바꿨다.
“연습하러 가도 돼요?”
“돼.”
이신은 주디의 32강전 첫 상대가 신태호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승낙했다.
이신이나 차이나 다 인류 플레이어니 신태호를 대비한 연습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주디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없이 기뻐했다.
그날, 저녁 식사와 체력 단련이 끝난 뒤에 이신은 방진호 감독에게 허락을 받았다.
“주디는 오늘 집에서 훈련시키겠습니다.”
“네 집?”
“예.”
“그 집에 네 제자가 또 한 명 있다고 했지?”
방진호 감독이 차이에 대해 언급을 했다.
“예.”
“왜 안 데려와?”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우선 연습생으로 받으면 되잖아. 실력 올라오면 선수 계약 하는 거고.”
방진호 감독도 차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신이 제자로 삼은 자질이라면 분명 대단한 인재임이 틀림없으니까.
이미 신의 제자 주디로 이신의 코칭 능력은 입증되었고, 역시 가르침을 받은 정다울도 팀의 전력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왜?”
“MBS가 저를 오래 붙잡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새끼, 돌려 말할 줄을 모르네.”
“아직 감독님이 관심 가질 정도는 아닙니다.”
“알았어. 가 봐.”
“예.”
이신은 주디와 함께 연습실을 떠났다.
그런 둘을 보며 방진호 감독의 표정은 쓸쓸해졌다.
서운함이 아니라, 저 둘을 붙잡아둘 수가 없는 현실이 싫어서였다.
e스포츠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암만 떠들어봤자, 이게 현실이었다.
애들 공부 방해된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며 끝끝내 게임을 천대하는 풍조 말이다.
보수적인 MBS 방송국 경영진이 e스포츠를 홀대하는 것도 그런 풍조 때문이었다.
***
주디와 함께 집에 돌아와 보니 의외의 풍경이 연출되어 있었다.
차이와 채정아, 그리고 어머니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 신아! 왔어?”
채정아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여 알은체한 이신은 어머니를 응시했다.
어머니는 이신을 보더니 어색함을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이제 왔니?”
“예.”
이신은 가볍게 대꾸했다.
예전과 달리 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거부감이 없었다.
“찬거리랑 이것저것 냉장고에 갖다 놨다. 네 성격에 끼니를 인스턴트로 대충 때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저 애 덕에 잘 챙겨 먹고 다니는구나.”
“예.”
“식혜도 갖다놨어. 단것을 싫어하는데 당 떨어지면 머리 안 돌아간다고 억지로 군것질했잖니. 그나마 식혜는 입맛에 맞지?”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에 입이 짧은 이신은 군것질을 싫어하는데, 그나마 입맛에 좀 맞는 게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식혜였다.
채정아는 그런 모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차이가 주디를 발견하고는 알은체를 했다.
“어? 주디스 레벨린 선수죠?”
“네…….”
주디는 차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신의 두 제자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그제야 어머니도 채정아도 주디를 바라보았다.
“그 주디라는 선수 맞니?”
“네.”
어머니의 물음에 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는 쪼르르 다가와 수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머니도 떨떠름하게 인사했다. 영락없는 외국인 소녀와 마주하자 긴장된 탓이었다. 게다가 이신이 누군가를, 그것도 여자를 집에 데려온 것에도 놀랐다.
“둘이 무슨 사이야?”
이럴 때 나서는 건 역시 정신 사나울 정도로 활기찬 채정아였다.
대번에 주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이신은 가볍게 대꾸했다.
“내 제자야.”
이신은 차이와 주디에게 연습 게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여분의 컴퓨터가 더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겨룰 수 있었다.
채정아와 어머니는 아직 나이가 어린 두 사람이 진지한 모습으로 돌변해 맹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특히, 이신만큼은 아니어도 손이 매우 빠른 차이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모습은 마치 피아니스트 같았다.
그에 비해 여자인 탓인지 더 손이 느린 주디.
언뜻 보면 주디가 질 것 같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막 데뷔한 신인이어도 프로팀 1군 주전인 주디였다.
손은 느리되 놓치는 것 없이 필요한 조작을 모두 하면 그건 느린 게 아니었다.
차근차근 차이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차이가 노리는 틈새를 하나둘 메워 나갔다.
노리던 바가 모조리 막힌 차이는 판도를 결정짓는 큰 싸움을 벌이지 않았음에도 패배에 도달했다.
할 게 없었다.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것이 생각나지 않은 채, 상대가 먼저 움직여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태.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이었다.
주디는 총공세로 차이를 격파해 승부를 마무리하였다.
프로다운 깔끔한 운영이었다.
“역시 잘하시네요.”
차이는 패배의 아픔을 추스르며 감탄했다.
“고마워.”
주디는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선생님, 제가 왜 진 거죠?”
“읽혔어.”
“의도를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애의 거짓말을 어른은 금방 알아채는 법이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차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거짓말도 해볼수록 늘어. 계속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사기꾼이 되어야지.”
“알겠어요. 아주 못된 사람이 될게요.”
그리 답하며 차이는 웃어 보인다.
어머니와 채정아는 그것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휴우, 역시 게임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경쟁이란 그런 겁니다.”
이신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도 어머니가 게임을 좋아해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존중해 줄 것.
모자간에 타협점을 찾은 것이었다.
“늦었다. 이만 가보마.”
“차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롤스로이스? 그거 너무 좋아!”
반색하고 좋아하는 채정아. 올 때는 택시 타고 왔던 두 사람이었다.
“가끔은 집에 오고 그러렴.”
어머니가 말했다.
“싫습니다.”
이신은 바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섭섭해하기보다는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땐 말이라도 알겠다고 하는 거란다.”
“…….”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어머니의 행동에 채정아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신과 제자 두 사람은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채정아와 어머니는 신발을 신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구두를 신으려 할 때였다.
쿠웅!
그만 삐끗 균형을 잃고 어머니가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어머!”
“어!”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큰 소리가 나면서 어머니의 머리가 벽에 들이받혔기 때문이었다.
이신은 거의 반사적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어머니를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이신은 어머니의 머리를 문지르며 물었다. 그렇게 다급한 그의 태도는 모두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르륵―
구슬 형태로 뭉쳐져 있었던 몸속의 마력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실타래가 풀리듯이, 한 줄기의 마력이 이신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따스한 온기로 화(化)하여 어머니의 머리로 스며들었다.
‘……?!’
그것을 행한 이신 본인도 화들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인간이 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짓거리를 당연하게 펼친 것!
더 놀라운 것은 다음에 나타났다,
어머니가 머리를 흔들고는 금방 이신의 도움을 받아 일어난 것이었다.
“어휴, 큰일 날 뻔했구나.”
“외숙모! 괜찮아?”
채정아가 기겁을 하며 물었다.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호들갑 좀 떨지 마라. 볼썽사납게 좀 자빠진 것 갖고.”
“머리 부딪쳤잖아!”
“그러게 말이다. 세게 안 부딪쳤으니 걱정 마라. 하나도 안 아프다.”
“한 번 봐봐!”
채정아는 발을 동동 굴리며 어머니의 머리를 살폈다.
다행히 어머니의 머리에는 혹 하나 없었다.
“외숙모, 정말 안 아파? 일부러 참고 있는 거 아니지?”
“얘는,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병원 가서 검사를 받겠지. 뭐 심각한 일이라고 숨겨?”
“하긴 그도 그러네. 아무튼 조심 좀 해! 심장이 멎을 뻔했네!”
“그래도 자빠지니까 아들 녀석이 걱정을 다 해주네.”
“…….”
이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이미 보았다. 안색이 변해서 뛰어들던 이신의 모습을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어이구, 아주 호강하셨네.”
“얘는.”
그렇게 해프닝이 일단락되고 두 사람은 집을 떠났다.
손님이 돌아가자 이신은 주디와 차이에게 연습을 시킨 뒤에 방에 들어가 홀로 생각에 잠겼다.
‘방금 그건 뭐였지?’
마력이 움직이더니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발출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다친 머리가 순간적으로 치유되었다.
그것은 즉…….
‘능력이다!’
한 번 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커터 칼로 팔뚝에 살짝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오른손을 상처에 가져다댔다. 아까 어머니를 치유했던 느낌을 떠올리며.
화악!
또다시 마력이 따스한 온기로 변해 상처에 스며들었다.
커터 칼이 만든 빨간 실선 같은 상처가 삽시간에 아물었다.
문질러 봐도 상처가 있었던 흔적조차 없었다.
그제야 이신은 완전히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치유 능력이구나.’
악마로서 각성한 이신의 고유 능력은 바로 그레모리와 비슷한 치유 능력이었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손목을 다쳤을 때, 이신은 간절히 회복을 기원했다.
다시 게임을 하고 싶다는 염원뿐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바로 그 경험과 바람이 영향을 주어 이신의 고유 능력이 판정된 것이다.
‘장각이 그랬듯이 나도 서열전에서 빙의를 통해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이군.’
이신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계 서열전의 휴먼 종족은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인류와 비슷했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서열전의 휴먼 종족은 초반에 턱없이 약하다는 것.
그 약함의 원인은 바로 의무병이 없다는 점이었다.
보병과 의무병의 조합으로 괴물을 상대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인류.
그러나 서열전의 휴먼은 의무병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단점을 이신이 극복할 수 있었다.
이신이 직접 사도에게 빙의하여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의무병처럼 치유를 발휘하면 말이다.
‘다음에 서열전을 치르게 되면 실험해 봐야겠군.’
그걸 시도하려면 사도들 중 한 명에게 빙의 능력을 부여해야 했다.
질 드 레에게는 이미 전군시야라는 능력이 부여된 상태.
이존효는 이신이 빙의하기에는 무위가 너무 아까웠다.
콜럼버스는 초반에 정찰을 해야 했고, 정찰 중에 죽을 일이 다반사였다.
‘새로운 사도를 알아봐야겠군.’
일단은 그렇게 능력에 관한 문제는 결론을 내렸다.
이젠 마계 쪽 일은 신경을 끄고 개인리그에 집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