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존(2)
주디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이신은 함께 밴쿠버 시내와 인근 지역을 관광 다니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냈다.
남매가 꼭 붙어서 이신의 밴쿠버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레벨린 가족은 다들 존의 활발한 활동에 놀라워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존은 어릴 적부터 체력이 약하고 지나치게 잔병치레가 심해 걱정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 웬일인지 열심히 돌아다녀도 지친 기색이 없어 다들 기뻐했다.
“이게 다 저 이신이라는 청년 덕분인 것 같아요.”
“녀석 참,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놀러오니까 기분이 좋아서 컨디션도 덩달아 괜찮아진 모양이야.”
“존이 저렇게 즐겁게 다가 놀다 오는 게 대체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네요.”
“이거, 이신이 더 오래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는데.”
레벨린 부부는 이신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관광을 하고 돌아와서는 게임 연습을 했다.
그래도 광기신족 최영준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으니, 휴가라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대 최영준 훈련을 온라인에서 MBS 선수들과 연습게임을 하며 준비했는데, 주디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코치님! 존 패트릭이 연습을 도와주겠대요.”
주디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존 패트릭?”
“그 있잖아요. 옛날에 코치님한테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진 신족 선수요.”
“그런 선수가 한둘이어야지.”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이신을 만나 지지 않은 선수는 없었다. 한 세트라도 따낸 선수도 손꼽힐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선생님과 존 패트릭의 경기를 보다가 누나랑 제가 선생님의 팬이 된 거예요.”
존 역시 흥분했는지 상기된 얼굴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야 뭔가가 떠올랐다.
“아, 그때 처음 봤을 때 얘기했던?”
“네.”
“내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존 패트릭은 현재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밴쿠버SCC의 코치로 있어요. 밴쿠버SCC의 선수들과 연습하게 해준댔어요.”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이신의 제자가 된 주디는 캐나다에서 꽤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본래부터 굴지의 재벌 레벨린 가문의 상속녀로 널리 알려진 주디.
예쁜 외모는 물론, 보통 여자들과 달리 게임을 굉장히 잘하는 면모 때문에 캐나다의 e스포츠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물며 e스포츠의 신이라 불렸던 이신의 제자가 되고 한국에서 프로로 데뷔하자 관심이 증폭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주디가 이신과 함께 캐나다에 입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캐나다 e스포츠계에서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밴쿠버SCC의 코치인 존 패트릭도 주디에게 연락을 해서 그런 제안을 했다.
스타성 있는 주디를 영입하려는 것도 있었고, 내친 김에 이신에게도 추파를 한 번 던져보겠다는 밴쿠버SCC의 의도였다.
“사양할 이유가 없지.”
이신이 대꾸했다.
밴쿠버SCC라면 캐나다 프로리그에서도 톱을 다투는 명문 프로팀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초대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도 가도 되죠?”
존이 물었다.
이신은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건 없었다.
한국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밴쿠버SCC에서 존을 주목한다면 그도 나쁘지 않았다.
아쉬워도 존에게는 한국보다 가족이 있는 이곳이 더 좋은 환경일 테니 말이다.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타고 밴쿠버 시내로 이동했다.
관광을 위해 중간에 내려서 거리를 걸었는데, 밴쿠버에 의외로 한국인이 많아 놀랄 정도였다.
“이신 선수 아니세요?”
“사인 좀 해주세요.”
주로 유학생들이었는데, 이신은 중간 중간에 유학생들의 요청을 받아 사인을 하거나 심지어 함께 사진을 찍어줘야 했다.
그렇게 15분 정도 걷고 중간에 길거리 공연도 보다가 밴쿠버SCC의 연습실이 있는 빌딩에 도착했다.
빌딩에 들어서자마자 안에 있던 직장인들로 보이는 캐나다인들이 수군거렸다.
주로 주디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날 알아보는데?”
“말씀드렸잖아요. 코치님은 유명하시다고요.”
“농구로 치자면 마이클 조던이에요.”
주디와 존이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머리가 반쯤 벗겨진 마른 중년 사내가 달려왔다.
“카이저!”
그는 헐레벌떡 나와 이신에게 대뜸 악수를 청했다.
“밴쿠버SCC의 수석코치 조지 로래요.”
“어, 반갑다고 그래. 예전에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봤던 것 같네.”
“네, 당시 존 패트릭의 전담 코치였어요.”
조지 로는 이신 일행을 안으로 인도했다.
빌딩의 20층에 커다란 사무실이 하나 보였는데, 컴퓨터가 빼곡하게 들어찼고 그 안에서 선수들이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는 모습치고는 대단히 치열했다.
밴쿠버SCC.
캐나다의 SC 프로리그에서 수위를 다투는 명문 프로게임단으로,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에도 심심찮게 출장하는 실력 있는 팀이었다.
이신은 깔끔하고 잘 이루어진 밴쿠버SCC의 연습실 시설에 놀랐다.
게임을 하는 연습실과 휴게실, 전략분석실, 시청각실, 회의실 등등.
모든 것이 아주 넓고 여유 있는 공간으로 넉넉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나 전략분석실은 전혀 새로웠다.
그 안의 사내들은 플레이 영상과 통계 그래프를 함께 스크린화면에 갖다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윽고 한 연구원이 정리된 자료가 들어 있는 태블릿PC를 갖고 선수들의 연습실로 갔다.
그리고는 한 선수에게 보여주면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여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런 곳에 내 리플레이 파일 하나 들어가도 낱낱이 분석 당하겠군.’
프로들은 누구나 수많은 경험으로 통계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고, 이 때문에 아마추어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데 만약에 전문가들이 실제 수학을 도입해서 구체적인 통계치로 분석을 하고 선수들에게 가르친다면 어떨까?
그건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왜 그랑프리 단체전에서 한국이 서양 프로팀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저것에 비하면 한국은 지나치게 주먹구구식이었다.
큰 금액을 투자 받지 못하니 저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팀을 간신히 유지할 최소한의 금액만 후원하고 홍보 효과는 최대로 뽑아내는 것이 프로팀 스폰서 기업들의 태도였다.
그 최소한의 금액에 대해서도 기업들마다 생각이 달랐다.
어떤 팀은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할 금액도 후원 받지 못해 라면을 먹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2부 리그 쪽으로 내려가면 그런 팀들이 수두룩했다.
“어떻습니까?”
조지 로가 물었다.
주디의 통역으로 질문을 받은 이신이 대답했다.
“여기서 연습해서 내 리플레이 파일들을 줘도 되는 건지 무섭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조지 수석코치는 크게 웃었다.
주디도 웃으며 통역해주었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쌓아놓고 분석해도 코치님을 이길 수 없었대요.”
“그때는 기본적인 컨트롤 능력과 멀티태스킹, 반사 속도 등에서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아무리 좋은 대응책을 내놓아도 이길 도리가 없었지.”
조지 수석코치의 말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본 스펙도 어느 정도 따라왔기 때문에 전략실의 연구가 성과를 발휘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이루어졌지.”
그는 별안간 이신 일행을 전략실로 안내했다.
전략실의 여러 연구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이신 일행을 자리에 앉혔다.
“보여줄 게 있소. 이건 카이저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의 선물이오.”
주디의 통역을 들은 이신은 흥미를 드러냈다.
이윽고 프로젝터가 쏜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rush_Joon]그것은 최영준의 닉네임이었다.
이어지는 화면은 최영준의 플레이 영상 하이라이트들.
병력을 쭉쭉 뽑아내면서 팽팽했던 회전(會戰)에서 점점 승기를 잡아나가는 과정.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붙었는데, 물량이 계속 뿜어져 나오며 거의 억지로 밀다시피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때, 옆에 숫자들이 나왔다.
최영준과 상대의 병력 생산 속도.
정확한 수치로 물량 생산 능력의 격차가 그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각 확장 기지에서 채집하는 자원량의 차이까지도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났다.
자원 채집량에서도 우위.
병력 생산량에서도 우위.
그리고 자원 채집-병력 생산-전투 사이클이 수치화되었다.
큰 싸움에서의 대병력 컨트롤에도 능한 최영준.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 참회실에서 쉼 없이 병력을 찍어내는 멀티태스킹. 그리고 무서운 확장능력.
싸움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최영준의 확장 기지가 늘어났다.
그게 수치화되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니 세삼 최영준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광기신족.
실로 미친 물량이었다.
‘정말 천재군.’
Player_SIN으로 붙어보기도 하고 플레이 영상을 보고 따라 하기도 했던 이신은 저 수치를 보자 더욱 최영준의 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 구체적인 수치가 최영준에게는 없었다.
최영준은 그저 본능에 따라 자원최적화를 해내고 있었다.
확장 기지에 일꾼을 얼마나 배분해야 최적의 자원 채집 효과가 나오는지, 최영준은 놀랍게도 ‘눈대중’으로 알고 있었다.
저런 게 훈련으로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그냥 타고난 천재였던 것이다.
“최영준을 이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사람은 다름 어닌 존 패트릭.
존 패트릭은 이신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얼굴을 보자 비로소 이신도 그가 누군지 기억이 떠올랐다.
“첫째는 빠른 타이밍의 치즈러시.”
최영준이 패배한 영상들이 보였다.
얼마 전에 황병철이 최영준을 격파한 그 경기 영상.
황병철은 뒤가 없는 독침충 올인으로 최영준이 힘을 발휘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끝내버렸다.
“대단한 명경기였지만, 이건 그다지 참고가 되지는 않습니다. 저걸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니까요.”
최영준의 디펜스는 준수했다. 상대가 일반적인 괴물 플레이어였다면 막아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하필 황병철. 그것도 부활한 이단자였다.
독침충들이 극한의 무빙을 선보였다.
독침을 쏘고 딜레이 타임에 전진, 다시 쏘고 전진, 쏘고 전진!
황병철의 컨트롤이 정확한 분석으로 드러났다. 독침충이 독침을 쏘는 방향이 화살표로 표기되었다.
독침충들의 일점사가 너무나 효율적이었다.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포착하고 우선적으로 파괴시켜나가는 돌파력!
“선수들에게 이걸 요구하는 건 무리거든. 한국에는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 많은 것 같소.”
존 패트릭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시점까지의 최영준은 광기신족이 아닌, 그냥 준수한 신족일 뿐입니다. 바로 이 시점이 지나기 전에 승부를 보는 것이 주효 전략 중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최영준의 물량이 폭발하기 전에 끝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저 시점 안에 신족을 끝낼 방법이 치즈러시 외엔 없었다.
‘가만?’
그 순간 이신의 뇌리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눈앞에서 엄청난 독침충 무빙을 펼치고 있는 황병철을 보니, 갑자기 영감을 받았다.
‘잘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무나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