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7
126화 존(3)
“다른 하나는 튼튼한 디펜스와 유닛 생산 사이클로 최영준에게 맞서는 것으로, 박영호가 보여준 패턴입니다.”
이신은 주디의 통역을 통해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박영호와 최영준의 경기가 보여 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결 과제는 박영호처럼 빠른 대응 속도를 갖춰야 하는 것.”
공격받은 순간, 박영호의 괴물주술사가 흑안개를 펼치고 반격하는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인류도 신족도 저 속도를 쫓아가는 선수가 극히 드물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드렸는데, 의문이 들지 않으십니까?”
“괴물 얘기만 했잖아.”
이신이 한마디 했다.
주디가 통역해 주자 존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최영준에게 패배를 안겨준 사례는 대부분이 괴물입니다. 종족 상성상 괴물이 신족을 이기기 때문이죠. 동족전에서도 거의 진 바가 없고, 인류를 상대로는…….”
존 패트릭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전제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인류 플레이어에게는 끔찍한 재앙이지요.”
“…….”
그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족 상성!
신족은 인류를 이긴다.
그 상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최영준이었다.
심지어 신족의 천적인 괴물을 상대로도, 박영호 외에는 좀처럼 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류 플레이어로서 최영준을 꺾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례를 찾아보도록 하지요.”
화면이 전환되고 또다시 플레이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신은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자신의 영상이었다.
정확히는 Player_SIN으로서 개인방송 중이던 최영준과 온라인에서 붙었던 그 내용이었다.
“저걸 어떻게 손에 넣었지?”
“방송을 실시간으로 녹화했습니다. 조금 꼼수를 부렸는데, 손에 넣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인류가 다전제로 최영준을 이긴 보기 드문 사례였으니까요.”
아주 무서운 놈들이었다.
개인 방송까지도 실시간으로 녹화해서 분석 데이터로 쓰다니.
그런 것을 방지하고자 개인 방송의 다시 보기 영상을 게시하지 않는데도, 결국은 손에 넣고야 마는 것이었다.
아무튼 영상은 Player_SIN이 최영준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는 모습이 나왔다.
한 번은 치즈러시로.
또 한 번은 최영준의 센터 참회실을 가뿐하게 막아내는 걸로.
그렇게 3판 2선승제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뒤, 마지막으로 한 판을 더 붙었다.
그리고 물량과 피지컬에 밀려 패했다.
보다 효율적인 싸움을 했지만, 최영준은 보다 효율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처음 두 세트는 최영준의 장기가 발휘되기 전에 끝낸 경우죠. 다음은 장기전에서 최영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최영준과 끈질기게 싸웠던 Player_SIN, 즉 이신이 펼친 플레이는 바로 고속전차와 지뢰였다.
배후에 지뢰를 매설해 후속 병력을 지연시키고, 지뢰를 다 매설한 고속전차는 견제 플레이에 써서 자원 채집을 방해한다.
“이 전략은 아주 유효했습니다. 피지컬에서 밀리지 않았다면, 결국 병력 손실이 더 큰 최영준이 먼저 자원이 바닥나 패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최영준의 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저 격렬한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피지컬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존 패트릭이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이신이 답했다.
“괜찮았습니다. 특히 플레이가 수치화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영준의 자원 최적화와 일꾼 배분을 정확한 숫자로 표현한 것이 감명 깊었던 이신이었다.
‘가능하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팀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군.’
지금이야 플레잉 코치지만, 정식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바로 이 밴쿠버SCC 같은 팀을 목표로 하고 싶었다.
“그럼 오신 김에 약속드린 대로 연습 게임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참고로 전 그때의 원한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참에 복수하는 것도 좋겠군요.”
존 패트릭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얼마든지.”
이신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습은 무려 30여 게임이나 진행되었다. 밴쿠버SCC 선수들이 너도나도 붙어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들의 바람 탓에 이신은 신족이 주 종족이 아닌 선수들도 상대해 줘야 했다.
주디는 물론이고 존까지도 밴쿠버SCC의 현역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연습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밴쿠버SCC의 선수들의 관심사는 단연 이신.
즉흥적으로 시작된 수십여 판의 연습이었음에도 이신은 70% 대의 승률을 거두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도 붙어보지 못했던 낯선 선수들과의 대결. 게다가 상대는 이신에 대해 잘 알았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왕좌에 군림했던 경험과 기본기로서 계속 승리를 따낸 이신이었다.
“역시 대단해.”
“컨트롤 하나하나에서 위압감이 느껴져.”
“어째 정찰 들어온 일꾼 컨트롤조차도 격이 다르군.”
“저런 컨트롤은 한국인 특성이잖습니까.”
상대방의 본진에 정찰 들어온 이신의 건설로봇.
본진을 쭉 둘러보며 정보를 캔다.
바퀴 4마리가 생산되어 달려드는데 요리조리 기막힌 운전으로 피해 다닌다.
건설로봇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승기는 이신에게로 기운다.
테크 트리가 지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어떤 건물을 짓는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
이신은 그렇게 상대의 빌드 오더를 확인한 뒤, 그에 알맞은 대응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승리를 가져가는 안정적인 운영.
슈퍼플레이와 공격성에 가려졌을 뿐, 사실 안전한 운영 또한 이신의 특기 중 하나였다.
고난도의 기교를 잘 부릴 줄 아는 선수가 기본을 못할 리 없는 것이었다.
주디의 탄탄한 플레이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초반 정찰을 막는 데 주력해.”
존 패트릭 코치의 지시에 선수들의 플레이에 변화가 생겼다. 초반부터 강한 경계로 이신의 정찰을 차단하는 디펜스였다.
그때부터 이신이 동원한 것은 바로 눈치.
맵의 지형적 특성과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타이밍 등을 고려하며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 냈다.
게다가 이신도 똑같이 정찰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열한 정보전이 펼쳐졌는데, 그런 눈치 싸움이 되니 유리한 건 경험이 풍부한 이신이었다.
밴쿠버SCC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겼어! 맙소사, 내가 카이저를 이기다니!”
간혹 연습 게임에서 이신을 이길 때마다 어린 캐나다 선수가 펄쩍 뛰며 기뻐했다.
연습이니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는 법인데, 상대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레전드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는 밴쿠버SCC의 선수들이었다.
이신의 입장에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정말 탄탄한 전략을 구사하는군.’
모든 상황에 대해 매뉴얼을 갖춰놓고 있는 듯한 밴쿠버SCC의 선수들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할 게 없는 상황’에 몰려 패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뚜렷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서 플레이를 했다.
명확한 목표의식과 방향성을 갖고 일관되게 나아가는 플레이.
다만 경험과 심리전 스킬 부족으로 그 방향성을 곧잘 이신에게 읽혀 버린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이신은 세계적인 전략의 추세를 체험할 수 있었다.
“어땠습니까?”
“좋은 선수들이었습니다.”
존 패트릭의 질문에 이신은 솔직하게 평가를 했다.
“기본기와 전략이 탄탄해 쉽사리 이길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평균적인 팀 역량은 한국보다 더 우위군요.”
“카이저에게 칭찬을 듣다니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영광입니다.”
존 패트릭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둔 건 개인전뿐입니다. 밴쿠버SCC는 단체전에서도 매번 좋은 성적을 거두는 강팀이니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워갑니다.”
“사실 저희가 카이저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존 패트릭이 말했다.
“한국은 확실히 전체적인 역량이 이미 우리 캐나다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게 추월당한 지 오래입니다. 프로리그의 규모와 인프라에서 격차가 벌어졌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꼭 특출한 선수를 배출하더군요. 카이저는 물론이고, 보다 예전에는 최환열 선수도 그랬고, 지금은 박영호나 최영준 같은 선수가 대표적이지요.”
“…….”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단지 한국인이라서 타고나는 재능인지, 아니면 아직 우리가 모르는 비결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존 패트릭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MBS와는 1년 단기 계약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카이저를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선수로든, 지금처럼 플레잉 코치든 당신을 꼭 우리 밴쿠버SCC로 모시고 싶습니다. 물론 당신의 제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존 패트릭은 존을 바라보았다.
“여기 주디 양의 동생 분도 당신의 제자가 맞지요?”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합니다.”
이신의 대답에 존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카이저의 제자로 인정받은 기쁨이었다.
“주디 양과 존 군은 독특한 남매더군요. 카이저의 장점을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가진 것 같아요. 그리고 두 사람 외에도 또 차이라는 소년도 제자로 데리고 있지요? 그 소년의 플레이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역시나 범상치 않았습니다.”
“…….”
“우리도 당신의 그 특별함을 얻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밴쿠버SCC는 돈이 많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 모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다른 팀에서 얼마를 부르든, 거기에 웃돈을 얹을 자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존 패트릭은 주디와 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에게도 고향인 이 밴쿠버가 더 활동하기 좋을 테고, 카이저 또한 이제는 한국이 아닌 다른 무대를 경험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훗날 지도자의 길을 걸을 생각이 있다면, 이 밴쿠버SCC가 당신에게 좋은 경험을 줄 겁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신은 그렇게 답했다.
“오늘은 그 말씀만으로 만족합니다.”
존 패트릭은 싱긋 웃어 보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존이 크게 흥분했다.
“지금 저까지 같이 영입하겠다고 한 것 맞죠?!”
“어.”
“세상에! 나도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가능해.”
이신이 대꾸했다.
존은 주디에게도 없는 컨트롤 센스가 있었다. 다만 선천적인 건강 문제에 의한 약한 피지컬이 단점이지만, 그것은 이신의 치유로 해결될 수 있다.
“우리가 다 같이 이곳 밴쿠버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면 정말 꿈만 같을 거예요!”
“그만해.”
존의 말에 주디가 꿀밤을 때리며 주의를 주었다.
아직 어린 존은 누나가 왜 눈치를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신은 고민에 휩싸였다.
밴쿠버SCC는 확실히 선진적인 인프라를 갖춘 명문 팀이었다.
체계적으로 선수를 강한 게이머로 성장시킬 줄을 안다.
배울 점도 많다.
하지만 그렇듯 과학적이고 명쾌한 시스템이 구축된 팀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신은 워낙에 타고난 천재였다.
언제나 직감으로 싸워왔지,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점이 많은 팀인 건 사실이니 고민을 해봐야겠군.’
일단은 개인리그가 끝날 때까지 그 고민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날 저녁.
레벨린 가의 저택에서 쉬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또다시 이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밴쿠버SCC의 선수들이 이신과 함께 연습한 이야기를 SNS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신과 제자, 밴쿠버SCC로?] [이신 초청해 함께 연습한 밴쿠버SCC “이신, 배울 게 많은 선수”] [존 패트릭의 찬사 “카이저는 위대한 선수”] [이신을 연습에 초대한 밴쿠버SCC, 신을 영입하기 위한 포석?] [밴쿠버SCC 선수들의 찬사 이어져 “e스포츠의 전설과 연습할 수 있어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