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 엔조(2)
파리 르부르제 공항.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1킬로미터에 위치한 이 공항은 찰스 린드버그(Charles A. Lindbergh)가 최초로 대서양 단독비행에 성공한 뒤 착륙한 곳으로 유명했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이 생기고서는 정기항공편의 발착이 중단되었고 주로 부정기 운항과 자가 항공기가 주로 이용하는 공항으로 전락했다.
공항치고는 대단히 한산한 이곳에서 입국수속을 마쳤는데, 문득 공항 터미널의 한곳에 인파가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수십여 명의 서양인들이 모여 사인을 요청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선 금발의 미남자는 선글라스를 낀 채 웃으며 요청에 친절히 응해주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이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차이가 말했다.
“엔조 주앙!”
“엔조 주앙이라고?”
“네, 프랑스 e스포츠의 영웅이요.”
엔조 주앙.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의 금메달리스트.
세계무대에서 최강자로 우뚝 서면서 프랑스의 신성이 된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상대의 심리를 파고드는 재치 있는 플레이 때문에 더더욱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남자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잘 못 알아봤는데, 잘 살펴보니 과연 인터넷에서 봤던 그 엔조 주앙이었다.
“왜 여기 있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그러고 보니 주디가 파리SCC 측으로 이신 일행의 파리행 일정을 이메일로 보냈다고 들은 바 있었다.
MBS 팀과는 따로 움직이니 양해를 구하는 이메일이었는데, 그걸 통해 엔조 주앙이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엔조 주앙이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기에 이신 일행은 다들 의아해졌다.
“Kaiser!”
엔조 주앙이 이신을 보더니 확 밝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어댔다.
그제야 엔조를 둘러싼 팬들도 이신 일행을 바라보았다.
“Kaiser?”
“Oh, God!”
e스포츠를 아는 몇몇 사람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엔조 주앙과 함께 인파가 이신 일행에게 밀어닥쳤다.
얼떨결에 이신은 팬들이 내미는 수첩과 펜을 받아들고 사인을 해주어야 했다.
엔조 주앙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톱스타의 위엄을 뽐내는 아까와는 전혀 딴판으로, 마치 광팬의 모습 같았다.
이신이 손을 내밀어 악수에 응했다.
엔조 주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와락 그를 끌어안고 포옹을 했다.
서양의 인사법이지 싶어 그것도 응해주었는데, 사방에서 찍히는 사람들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못내 거슬렸다.
엔조 주앙은 공항 바깥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주디가 통역해주었다.
“차를 끌고 왔대요.”
“우리는 따로 준비한 차량 없어?”
“예약해놓은 차량이 있어요.”
주디는 엔조 주앙과 뭐라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중에 엔조 주앙은 매우 열띤 반응으로 이신을 가리켰다.
주디는 무언가 불만이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 차는 2인승이라 코치님만 태우고 싶대요.”
엔조 주앙은 신이 난 표정으로 계속 뭐라고 떠든다.
주디의 입술이 더 많이 튀어나왔다.
“파리 시내를 구경시켜주겠대요.”
“그러지.”
이신이 그 제안에 응하자 주디의 표정은 더더욱 새침해졌다. 물론 이신은 그런 주디의 반응은 눈치 채지 못했다.
다른 짐은 주디 일행에게 맡기고, 이신은 키보드 등의 장비가 든 가방만 매고서 엔조 주앙을 따라나섰다.
엔조 주앙이 끌고 온 차는 BMW i8이었다.
가솔린과 전기를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 카였는데, 미래지향적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눈에 확 띠는 2인승 럭셔리 카였다.
엔조 주앙은 직접 보조석 문까지 열어주는 매너를 발휘하였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에 이신을 극진히 대우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엔조 주앙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운전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대충 들어보니 열렬한 팬이었다고 말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광팬이라는 프로게이머를 한두 명 만나본 게 아니므로 이신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엔조 주앙은 계속해서 뭐라고 말했는데, 이신이 못 알아듣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You, Choi, fought.”
“초이? 최영준?”
“Yes, Yes, rush_Joon!”
그제야 이신은 엔조 주앙이 최영준과 겨뤘던 얼마 전의 경기를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엔조 주앙은 뭐라고 떠들면서 손가락 2개를 폈다.
“2세트?”
“Yes!”
아마도 엔조 주앙은 이신이 최영준을 상대로 치열하게 퍼부었던 고속전차 견제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날 2세트에서 이신은 치밀하게 구상한 견제 플레이로 최영준에게 계속 타격을 입혔다.
생명석 심시티를 지뢰 비비기로 건너뛰는가 하면, 대피하는 신도를 후속 고속전차로 털어버리는 등, 갖가지 견제 플레이의 퍼레이드로 최영준의 물량을 원천봉쇄했다.
하이라이트는 크게 한 판 붙으려고 전 병력을 끌고 나가는 모션을 취했다가, 고속전차 4기 드롭으로 치명타를 입히며 썰물처럼 후퇴한 액션.
패배를 직감하고 최후의 한 타 싸움을 각오하고 덤빈 최영준을 심리적으로 한 번 더 죽인 악마적인 일격이었다.
엔조는 그걸 굉장히 감명 깊게 보았는지 쉴 새 없이 떠들며 열광했다.
간혹 이신도 아는 게임 용어가 나와서 적당히 호응해줄 수가 있었다.
꽉 막힌 도로를 1시간이나 기어간 끝에 파리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센 강이 흐르고 강 위로 이에나 다리가 가로질러져 있다.
그리고 다리가 향한 곳에는 그 유명한 에펠탑이 보였다.
인근 골목을 다닌 끝에 코인주차장을 찾은 엔조 주앙은 차를 주차해놓고 이신을 끌고 이동했다.
센 강변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무수히 많은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여들었다.
워낙 화려한 외모에 프랑스의 톱스타인 엔조 주앙은 어딜 가나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 이신까지도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인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 저거 이신이다.”
“어머머.”
“와 진짜다. 같은 있는 서양인은 엔조 주앙 아냐?”
“파리에 어떻게 이신 오빠가 있지?”
이신은 파리에 한국인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 줄을 처음 알았다.
다행히 사인 요청 등으로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멀리서 사진을 찍을 뿐, 관광지이니만큼 매너를 지키는 모양새였다.
커피와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센 강변의 풍경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이신은 거기에 반지의 힘까지 썼다.
안락한 기분까지 온몸에 퍼지자 더욱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런데 엔조 주앙이 돌연 진지한 얼굴로 꺼내든 스마트폰 화면을 가리켰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웬 스페이스 크래프트 경기의 다시 보기 영상이 떠 있었다.
말하는 투와 손짓을 보니 엔조 주앙 자신의 경기 같았다.
‘자기 플레이를 봐달라는 거군.’
방진호 감독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이신은 쉽게 이해했다.
엔조 주앙은 최근 들어 슬럼프에 빠진 상태라고 했다.
이신은 순순히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해설은 영어라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상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상대는 신족이었다.
엔조 주앙은 고속전차 2기와 기동포탑 1기를 항공수송선에 실어 견제에 나섰지만, 상대에게 읽혔다.
드롭 견제가 막히자 항공수송선을 뽑은 의미가 없어졌다.
지뢰를 박으며 맵 장악에 나섰고, 신족은 거신병기들이 쏟아져 나와 지뢰를 제거해나갔다.
엔조 주앙이 시도하는 견제 플레이가 족족이 막혀버린다.
결국 대병력을 모은 신족의 총공세에 부딪친다.
수려한 컨트롤로 효율적인 싸움을 했다. 금메달리스트다운 플레이였다.
하지만 신족은 인류보다 훨씬 빠른 유닛의 생산-소비 회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똑같이 병력을 소모해도 더 빨리 재생산했다.
다시 한 번 공격이 펼쳐지자 아까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확장 기지를 하나 잃었다.
게다가 다른 확장기지에 떨어진 아바타의 병력 소환 마법.
자원 공급이 휘청해진 엔조 주앙은 결국 무난하게 패배했다.
경기를 다 본 이신이 빤히 쳐다보자 엔조 주앙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신은 이전 경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말을 알아들었는지 엔조 주앙이 자신이 올해에 치른 경기들 목록을 화면에 띄워주었다.
이신은 그중 신족과 싸운 경기만 골라 봤다.
그리고 몇 경기를 보던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 슬럼프네.”
“What?”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자기 플레이가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버렸으니 지는 수밖에.”
엔조 주앙이 스마트폰으로 번역기 어플을 실행했고, 덕분에 갖가지 제스처도 섞어서 말뜻이 전달되었다.
“우승자 징크스라는 게 다 그런 건데, 특히나 내가 볼 때 너는 딱히 기본적인 역량이 뛰어난 편이 아니고, 임기응변도 좋지 않아.”
엔조 주앙과 박영호의 경기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랑프리 개인전 결승에서 엔조 주앙은 3승 1패로 철벽괴물 박영호를 꺾었다.
그 3승은 철저하게 준비된 정교한 전략으로 박영호의 철벽을 공략한 결과였다.
매우 치밀했다.
박영호가 어떻게 나올지 다 알고 한 발 앞서 움직였다.
처음부터 준비된 승리를 가져간 듯한 완벽한 게임.
하지만 1패.
박영호가 즉흥적으로 시도한 4벌레 빌드 기습에 걸려 맥없이 패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은 엔조 주앙이 실전형이 아닌, 철두철미한 전략가 타입이기 때문이었다.
심리전에도 뛰어나기에 상대의 의도를 금세 파악해낸다.
하지만 기본 역량이 뛰어난 건 아니므로, 계산에 두지 않았던 상황이 되면 약해진다.
이신이 그 의견을 전달하자 엔조 주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엔조 주앙도, 소속팀 파리SCC도 바보가 아닌 바에는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괴물을 상대로는 승률이 좋은데, 신족 전의 승률이 바닥이군.”
“Yes.”
“그건 신족을 상대로 한 전략적 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거기에는 엔조 주앙이 의문을 표했다.
전략가 엔조 주앙.
그는 신족을 상대로도 정말 많은 전략·전술을 펼치곤 했기 때문이다.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쉽게 말하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는 10개인데, 그 10가지 전략에 대한 대응법은 3개밖에 안 된다는 거지. 네가 뭘 하든 상대 신족은 그냥 그 3개 중 하나야. 즉, 신족이 정답을 맞힐 확률은 3분의 1, 네가 정답을 맞힐 확률은 10분의 1이라는 소리야.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겠어?”
번역기와 낙서장 어플까지 사용해가며 설명하자 엔조 주앙이 이해했다.
엔조 주앙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전략의 가짓수를 더 늘려서 상대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강요하던가, 아니면 기본기를 강화하거나 둘 중 하나지.”
당연하지만 인류 플레이어들이 다들 신족을 상대할 때 엔조 주앙처럼 많은 전략을 구사하는 건 아니었다.
주디처럼 정석 빌드만 고집해서 기본기로 이기는 경우도 있었다.
가위·바위·보에서 똑같이 바위를 냈을 때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기본기였다.
엔조 주앙이 다시 물었다.
대체 그 기본기라는 게 무엇이냐고.
이신이 말했다.
“디펜스.”
디펜스 능력 강화가 필요한 엔조 주앙.
때마침 이신의 결승전 상대는 디펜스의 달인인 신지호.
‘잘됐군.’
이신은 엔조 주앙을 상대로 디펜스를 깨부수는 연습을.
그리고 엔조 주앙은 이신을 상대로 디펜스 연습을!
두 사람은 서로 매우 적합한 연습 상대를 만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