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엔조(1)
마계에서 돌아오니 레벨린 가문의 전용기 안이었다.
파리SCC의 초청을 받은 MBS.
MBS의 1군 선수들과 방진호 감독, 그리고 코치들은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신과 주디는 레벨린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따로 출발했다.
MBS 소속 선수는 아니지만 함께 초대 받은 존과 차이도 함께 가야 했기 때문이다.
레벨린 가문은 몸이 안 좋은 존을 위해 전용기를 내어주었고, 이신과 주디도 전용기를 타고 함께 파리로 향했다.
단체 생활과 조직의 단결을 위하여 다른 1군 선수들과 함께 이코노미 석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결정 따위는 이신의 머릿속에 없었다.
방진호 감독도 이미 포기 상태였기 때문에 이신과 주디를 따로 가도록 했다. 누구도 따로 행동하는 이신에게 불만을 갖지 않았다.
덕분에 이신과 제자들은 전용기에서 편하게 먹고 자며 게임을 즐겼다.
“또 졌어!”
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맞은편 PC에서 차이가 소리 없이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이젠 주디와 대결해도 승패를 장담 못할 정도로군.’
이신은 차이의 엄청난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이신이 매일같이 일대일로 가르친 것도 있었고, 다른 팀 선수들과 연결시켜주어 연습게임을 치르게 한 것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있을 수밖에 없는 빈틈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프로들이 쓰는 컨트롤도 거의 다 손에 익었다.
누구보다도 이신과 가까이 있으면서 배우다 보면 그의 화려한 플레이에 홀릴 법도 했지만, 차이는 그의 흉내를 내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나갔다.
다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꾼 숫자를 조절하는 능력만 더 기른다면 완벽해질 터였다.
“오셨어요?”
차이가 인사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존에게 비키라고 손짓했다.
존은 자리를 비켜주면서 투덜거렸다.
“빨리 저도 가르쳐주세요. 계속 차이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PC 앞에 앉은 이신은 차이에게 말했다.
“피의 권좌. 방 만들어.”
“네.”
그리고 시작된 두 사람의 게임은 30분이 넘어가는 장기전이 되었다.
이신이 스텔스 전투기 편대를 끌고 나타나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차이는 기계보병 다수를 동원해 맞섰다.
스텔스 전투기와 기계보병의 대결은 정면 승부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신은 스텔스 모드를 펼치고 빠른 기동력으로 휘젓고 다녔다.
그 탓에 차이의 전선이 점점 균열이 갔다.
못 참겠는지 차이가 먼저 병력을 한 곳에 집결했다.
돌파를 시도해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돌파를 시도했다.
차이의 병력이 한곳에 집결되어 있는 탓에 다른 방면의 전선이 허술해져 있었다.
‘이런!’
이에 질세라 차이도 급히 공격을 시작했다.
양측의 주력 병력이 교차되어서 서로 상대의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섬멸전.
서로의 진영을 쳐서 먼저 모든 건물이 파괴되는 쪽이 패하는 게임 양상이었다.
차이는 이신의 본진을 노렸다.
본진은 이미 모든 자원이 고갈된 상태였지만, 병력 생산의 근원지인 기갑 정거장 밀집 지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신은 차이의 자원 줄인 확장 기지 3곳을 동시에 들이쳤다.
그 차이는 확연했다.
이신은 본진이 습격당하자 기갑 정거장 건물을 띄워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스텔스 전투기로 계속 치고 빠지며 차이의 총공세를 지연시켰다.
한편, 차이는 새로운 확장 기지를 모두 밀리자 자원 공급이 중단되어버렸다.
더 이상 병력 생산이 안 되는데, 이신은 끝끝내 버텨내니 갈수록 승리에서 멀어졌다.
차이는 한숨을 쉬며 GG를 쳤다.
“와아!”
주디와 존이 박수를 쳤다.
명승부였다.
둘 다 빈틈이 없이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일합(一合)에 판가름이 나버렸다.
일반 관객들이 보았다면 크게 싸우는 것도 없이 지루한 결전이었겠지만, 프로게이머들이 보기에는 수많은 계산과 심리전이 들어간 승부였다.
“차이.”
“네, 선생님.”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네, 좀 더 참아야 했는데 섣불리 움직였어요.”
“위급한 순간에도 승부를 보기 전에는 포석을 미리 깔아둬. 그렇지 않으면 그냥 발끈 러시야.”
“명심할게요.”
“그것만 빼면 잘했어.”
발끈 러시란, 상대에게 피해를 입고 화가 나서 전 병력을 끌고 무작정 총공세를 펼치는 것을 뜻하는 은어였다.
프로들 사이에서는 단지 감정적인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상대에게 큰 데미지를 입은 나머지 어차피 승산이 없게 되었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는 것이었다.
주로 이신의 견제 플레이에 생산유닛이 학살당한 상대 선수가 그런 패턴을 보이곤 했다.
그냥 견제에 GG를 선언하기에는 맥없고 자존심 상하니, 크게 한 방 싸워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아무튼 발끈 러시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문제군.”
이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차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가 뭐 잘못했나요?”
“아니.”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신지호는 너보다 더 빈틈이 없어. 오판도 좀처럼 하지 않고.”
약점이 없고 디펜스가 강한 선수.
딱히 강력한 장점도 안 보여서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주 종족으로 인류를 잡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만히 놔두면 후반에 가장 강력해지는 종족이 바로 인류였다.
신지호는 빈틈도 없고 디펜스가 강해 십중팔구는 장기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후반으로 끌려가면 좀처럼 안 진다.
장기전 머신이라 불리는 JKT의 신진 에이스 신태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5판 3선승제의 다전제.
한 세트 한 세트가 전부 장기전이 된다면 피지컬 승부가 된다.
거기서 불리한 쪽은 단연 이신이었다.
‘반지를 쓴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신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에 꽂힌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레모리가 선물한 반지.
영지의 기운을 전달시켜주는 매개체로, 잠깐의 휴식으로도 푹 쉰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반칙 같아서 아직까지 쓰지는 않았지만, 피지컬이 달리게 되면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것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차이가 말을 걸었다.
“왜?”
“신족은 안 하세요?”
“……?”
차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선생님과 매일 연습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뭔데?”
“선생님의 인류는 이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승패랑 상관없이 선생님의 스타일은 이미 교과서처럼 널리 알려졌으니까요.”
“그렇겠지.”
이신은 수긍했다.
확실히 차이와 연습 게임을 하면 지금과 같은 장기전이 자주 나왔다.
차이가 점점 이신의 견제를 디펜스하는 데 익숙해져서 빈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신족을 잡으시면 도저히 못 이기겠어요.”
“인류보다 신족이 더 힘들다고?”
“네.”
이신으로서는 의외였다.
물론 종족 상성상 신족이 인류를 이기긴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신의 신족은 메인이 아닌 서브 종족이었다.
당연히 이벤트 매치 때 마이클 조셉을 흔드는 깜짝 전략으로 한 번 썼을 뿐, 그 이후로 신족을 공식무대에서 플레이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점에서?”
“가장 강력한 건 거신병기 무빙이요. 무빙 당기면서 점사를 워낙 잘 하셔서 페이크 더블을 못하겠어요.”
페이크 더블이란, 신족을 상대하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빌드 오더였다.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것처럼 위장했다가, 병력을 이끌고 공격에 나서 끝내거나 앞마당부터 강력하게 압박해 조이기를 하는 전략이었다.
그때 공격에 나서는 병력 구성은 기동포탑 1기와 보병 약 6명.
그리고 뒤이어 지뢰 개발이 완료된 고속전차 1기가 충원되어서 지뢰를 심어 압박 라인을 보강한다.
이에 대항하는 신족의 전술은 2참회실에서 생산한 거신병기들로 막아내면서 시간을 버는 것.
그런데 여기서 이신의 컨트롤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 차이의 설명이었다.
“무빙 당기시면서 보병을 다 잡으시니까 전진을 못하고, 지뢰도 일점사로 잘 제거하시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법유닛을 너무 잘 쓰세요. 그걸 잘 이용하면 신지호의 강력한 디펜스 라인도 손쉽게 부술 수 있지 않을까요? 디펜시브 지뢰 플레이처럼 말이에요.”
이신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족도 가끔씩은 꺼내들 생각이 있었던 이신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끔씩 쓸 수 있는 깜짝 카드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류 대 인류 전으로 자신을 장기전까지 끌고 가게 만드는 차이의 의견이었다.
‘내 인류보다 신족이 더 힘들다?’
그럴 듯했다.
확실히 차이는 이제 전처럼 이신과 겨룰 때 주눅 들지 않는다. 점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직까지는 쉽사리 승리를 내주지 않지만, 때때로 차이에게 질 때도 있었다. 연습하다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신족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하니, 어쩌면 신지호 같은 인류 플레이어를 상대할 때는 신족이 더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법이라…….’
대사제의 전격과 환영.
아바타의 봉인과 소환.
사략기의 방해전파.
암흑 심문관의 세뇌와 혼란.
판세를 단번에 뒤집을 정도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마법들이 신족에게는 풍부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하는 전투는 손이 매우 많이 가기 때문에 난이도가 극히 어려웠다.
전투 중에 유닛들 컨트롤하기도 바쁜데 그 와중에 마법까지 써야 하니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
하지만 그런 손 많이 가고 까다로운 플레이를 귀신 같이 잘하는 선수가 바로 이신이었다.
오죽하면 아무도 못하는 디펜시브 지뢰 같은 플레이까지 하겠는가.
“한 번 해보자.”
“네.”
이신은 신족을 골라서 연습 게임을 시작했다. 존, 주디, 차이가 교대로 상대를 해주었다.
이신이 작심을 하고 신족을 플레이하자 양상이 전혀 달라졌다.
파치치치칙!
온 화면을 뒤덮는 전격 마법!
그와 동시에 광신도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퍼퍼퍼펑―
기동포탑들이 불꽃을 뿜었지만, 강력한 체력을 지닌 광신도들은 그 포화를 뚫고 들어와 붙었다.
엄청난 전격 마법 세례로 체력이 고갈되었던 기동포탑들이 광신도들과 거신병기들의 공세에 몰살당했다.
차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아직 확장 기지가 많았기 때문에 자원은 풍부했다.
계속 병력을 생산하며 버텨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 투지에 찬물을 끼얹듯, 아바타가 본진에 침투해 들어와 소환 마법을 펼쳤다.
파아아앗!
이신의 병력들이 차이의 본진에 소환되었다.
병력을 생산해야 하는 기갑 정거장들이 파괴되었다.
주요한 건물이 전부 파괴되자 차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GG를 선언했다.
‘좋군.’
이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17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 내용도 원사이드한 이신의 우세였다.
그러는 사이에, 비행기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들을 태운 전용기가 파리를 향해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