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0
159화 타이밍(1)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은 서열전에 소환되어 활약할 때마다, 공적만큼의 휴식이 주어진다.
그렇게 공적이 많이 누적되면 감형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계약자의 사도로 임명되거나, 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 도장을 찍어서 자주 소환되어 활약할 기회를 받는 것이 좋다.
로베스피에르가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운운하며 말한 내용이었다.
“애석하게도 계약자들 가운데 휴먼 종족을 선택한 사람이 많지 않네. 그래서 나는 더욱더…….”
그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신은 그가 하는 말에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찾아냈다.
“이제 됐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이해했습니다.”
이신이 로베스피에르의 말을 끊었다.
“오, 이해해 준 것이오?”
“사실 딱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
무안해져서 입을 다문 로베스피에르에게 이신이 계속 말했다.
“이제 곧 싸워야 할 상대에게 어떤 사상적 공감을 구하고 싶으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그저 다음 서열전에서 승리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이보시오! 당신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단 말이오?”
“예, 안 불쌍합니다.”
“뭣……!”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전장에서 보죠.”
“이익!”
로베스피에르는 씨근덕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실망이군!”
“…….”
로베스피에르는 그렇게 궁전을 떠나 버렸다.
‘저자는 이런 곳에서까지 이상을 추구하는군.’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르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을 들어주느라 피곤해진 이신은 궁전 뒤편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부터 이신은 서열전에 대비한 모의전을 시작했다.
사도 질 드 레로 하여금 휴먼을 지휘하게 했다.
그동안 이신의 서열전을 보아온 질 드 레였기에 그럭저럭 판단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휴먼 대 휴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질 드 레의 실력 같은 건 상관없었다.
이신은 불쑥 떠오른 전략을 실험하는 데 몰두했다.
로베스피에르를 상대해 주다가 힌트를 얻어서 불쑥 생각난 전략이었다.
“어떤 전략을 짜고 계시는 겁니까?”
궁금해진 질 드 레가 물었다.
“용기.”
“예?”
“로베스피에르의 능력은 병사들을 일시적으로 광전사처럼 강하고 사납게 만드는 것이라더군.”
“아, 예…….”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휴먼이 가장 강력해질 수 있을까?”
“병력이 충분히 모여서 공격할 때 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상식이고.”
“그럼……?”
“휴먼의 특성을 생각하면 돼.”
매일 주디·차이·존을 가르치던 이신은 자연스럽게 질 드 레에게도 제자를 대하는 듯한 태도가 되었다.
질 드 레는 이신이 낸 문제에 고민을 하다가 답했다.
“그렇다면 역시 초반에 약하다는 약점을 능력으로 극복한 게 아니겠습니까?”
“맞아. 내가 치유 능력으로 극복하듯이.”
게다가 승리를 향한 수많은 힌트가 숨겨져 있다.
일단 로베스피에르는 군인이 아니라 정치가였다는 점.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장황한 이상.
그런 요소를 모두 종합해 본다면, 언제가 가장 승부를 내기 적합한 타이밍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신은 끊임없이 연구했다.
계속 모의전을 시도해 보면서 타이밍을 쟀다.
***
“오랜만이군.”
“그렇군. 다시 우리가 붙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내가 도전자라니, 하하. 다시는 악마군주라 불리게 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정말 많이 성세를 회복했더군.”
도전을 하기 위해 방문한 악마군주 시메이에스는 키득거리며 비웃었다.
그레모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했다.
“계속 말 섞고 있기가 불쾌하군. 어서 찾아온 용무나 꺼내시지?”
“흐흐, 그러지. 악마군주 그레모리, 마신의 율법에 따라 너에게 도전한다.”
“좋다. 전장은 제7 전장 오린이다. 그리고 마력은…….”
그레모리는 이신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녀가 이어서 말을 끝맺었다.
“5만.”
“뭐라고?”
악마군주 시메이에스는 물론이고, 함께 온 로베스피에르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 로베스피에르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신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두렵다면 도전을 철회해도 좋다.”
이번에는 그레모리가 시메이에스를 향해 냉소를 지어보였다.
시메이에스는 이를 부드득 갈며 갈등에 빠져 버렸다.
5만은 배팅할 수 있는 최대 수치였다.
이만한 마력량을 잃으면 서열이 크게 추락해 버린다.
그런데 심지어 상대는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레모리.
정확히는 그레모리가 운 좋게 얻은 실력 좋은 계약자 이신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실력자로 정평이 난 오자서나 조아생 뮈라 역시 이신과 겨루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나 언제 다시 중위권까지 치고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그 두 계약자가 꺼려할 정도로 강한 상대라는 뜻!
“잠시 제게 발언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
로베스피에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진 로베스피에르였으나, 두 악마군주 사이에 끼었음에도 태도는 당당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께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
그가 채 말을 꺼내보기도 전에, 이신이 불쑥 말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로베스피에르는 기가 막혀서 화난 어조로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서 그러는 것이오?”
“세 번 이상 겨뤄서 승부를 보자고 하고 싶은 거겠지.”
이신의 말에 로베스피에르는 흠칫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안 거지?’
마치 자신에 대해 전부 파악한 듯한 태도였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면 도전은 없는 일로 하겠소.”
“마음대로.”
이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사람의 계약자는 서로의 악마군주를 바라보았다.
그레모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계약자가 그리 말하면 나는 따를 것이다. 두렵다면 도전을 포기하고 떠나라, 시메이에스.”
“누가 겁을 먹었다는 것이냐!”
쿠우웅!
시메이에스가 탄 거대한 흑마가 힘차게 투레질을 했다.
“도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건 붙어봐야 알겠지. 그럼 전장에서 보자.”
그레모리는 이신과 함께 먼저 텔레포트 하여 전장으로 떠났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다.”
시메이에스가 말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 도전을 하지 않으면 벨리알과 조아생 뮈라의 도전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처했을 테니까.”
불과 어제의 일이었다.
조아생 뮈라가 얼마 전에 흑태자 에드워드를 상대로 승리했다.
무려 5만이 배팅된 판이 큰 서열전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그의 악마군주 벨리알은 서열 6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63위가 바로 시메이에스와 로베스피에르.
로베스피에르는 조아생 뮈라를 매우 상대하기 꺼려했다. 상성상 맞지 않는 상대였다.
그래서 벨리알과 조아생 뮈라의 도전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 그레모리와 싸워 이겨서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양측의 서열전은 시작되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과 악마군주 시메이에스 님의 서열전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서열과 마력에 영향을 줍니다. 마력은 10만이 배팅됩니다.] [마력 10만이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됩니다.]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휴먼.”
“휴먼.”
이신과 로베스피에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로베스피에르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신을 보며 일말의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마치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태도인데……!’
[서열전이 시작됩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의 계약자 이신 님과 악마군주 시메이에스 님께서 참전합니다.]***
서열전이 시작되자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이신은 위치를 파악했다.
제7 전장 오린.
3시, 6시, 9시 세 군데에 시작 지점이 있는 전장으로, 세 지점의 거리도 매우 가까운 편이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전장의 지형이 산악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전장의 중앙부가 높이 솟아 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아지는 기이한 형태였다.
즉, 전장 중앙에서 3시, 6시, 9시 등 세 군데의 시작 지점까지는 내리막이었던 것이다.
이신의 진영의 위치는 6시.
‘좋군.’
3시나 9시, 둘 중 한 곳에 로베스피에르의 진영이 위치해 있다.
6시는 둘 중 어디와도 거리가 가까웠다. 3시에서 9시보다도 더 가까웠다.
일단 서로의 진영이 서로 가까이에 위치할 것.
이것이 그가 제 7 전장 오린을 선택한 이유였다.
“병영.”
“옛!”
8번째 노예가 달려가 병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00마력이 모이자 다른 노예에게는 식량창고를 짓게 했다.
그런데 노예의 숫자가 10명에 이르렀을 때였다.
“병영.”
“넷!”
똑같이 명하는 이신.
놀랍게도 시작부터 병영만 2개를 연이어 짓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어서 대장간을 건설하면서, 2개의 병영에서 꾸준히 궁병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소환된 궁병은 바로 로빈 후드.
“정찰을 무조건 차단해라.”
“옛!”
로빈 후드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때 마침 정찰을 떠났던 콜럼버스가 3시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진영을 발견했다.
“계약자님! 이놈들 궁병이 전혀 없는데요?”
조심스럽게 앞마당을 기웃거리던 콜럼버스.
아무런 제지도 없자 과감하게 본진 안으로까지 들어가 본 뒤에야 놀라 소리쳤다.
여태껏 수많은 정찰을 해봤지만 이 시간에 이만큼이나 무방비 상태인 경우는 처음 보는 콜럼버스였다.
앞마당에는 마력석 채집장이 건설 중인 상태.
그리고 본진에서도 궁병 하나 안 보이고 노예들만 바글거리며 마력석을 채집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력 채집에 집중한 운영.
화살탑 같은 방어시설은커녕, 궁병 하나 소환 안 한 무방비 상태였다.
앞마당의 마력석 채집장이 완공되어서 노예들이 붙으면, 마력 채집량은 더욱 많아질 터였다.
오로지 본진에서 마력을 쥐어짜 병력을 모으는 이신과는 크게 대비되고 있었다.
“특수병영도 보입니다! 놈들이 기사와 투석기 나타나기 전에 빨리 공격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시끄러. 첨언 넣지 마.’
“네! 죄, 죄송합니다.”
찔끔한 콜럼버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간 수없이 정찰을 하고 이신의 전략을 봐오다 보니, 아는 게 많아져서 자기도 모르게 아는 체를 하기 시작한 콜럼버스였다.
‘딱 예상했던 대로 움직이는군.’
이신은 미소를 지었다.
이신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의 말에 힌트가 있었다.
“난 당신도 나처럼 최대한 많은 죄인을 구제하는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소.”
이는 되도록 많은 병력을 소환할 수 있는 부유한 빌드 오더를 펼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로베스피에르는 군인이 아닌 정치가였다.
군인은 전투 지휘에 능하지만, 나라를 통치했던 로베스피에르는 전체적인 조율과 운영에 보다 익숙할 터.
그런 모든 면으로 미루어보아, 이신은 로베스피에르가 반드시 장기전을 택하리라 보았다.
무방비 상태인 초반에 공격을 받으면, 노예들을 동원해서 맞서면 된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약한 노예들이라 해도 로베스피에르의 능력에 의해 광전사가 되면 강해질 테니 말이다.
때문에 너무 초반도 안 되고, 중반 이후로 넘어가 장기전이 되어도 안 된다.
그 중간의 타이밍.
그 시점에서 이신은 칼처럼 승부를 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