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빌드(2)
총 10회로 기획된 방송은 흥행을 이어나갔다.
곧 시작될 2021년 프로리그를 앞두고 팬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방송이 되기에 충분했다.
시청자들이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은 이신의 평소 일상에 대해 알게 된 점이었다.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오늘의 일일 선생님인 주디가 웃으며 물었다.
“뭔데요?”
유지나가 관심을 갖자, 주디는 문득 옆자리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궁리 중이던 이신에게 말을 건넸다.
“감독님!”
“왜?”
“이거 일꾼 숫자 몇 명이게요?”
주디는 화면을 가리키며 퀴즈를 던졌다.
화면은 본진에서 자원을 채집하는 건설로봇이 득시글거렸다.
이신은 그것을 슥 보더니 바로 말했다.
“열여덟.”
세어보니 정말로 18기였다.
눈대중으로 견적 내는 데는 거의 득도한 상태인 이신.
하지만 유지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나, 저걸 어떻게 한눈에 아는 거죠?”
“틈나는 대로 캡처한 사진 가지고 숫자 맞히는 연습을 한 겁니다.”
최환열이 알려주었다.
“그땐 얘가 미쳤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정말로 그냥 한눈에 다 맞히더라고요.”
“어머머, 진짜 대단하시네요.”
“게임에 미친 거죠.”
뭐라고 말하거나 말거나 이신은 관심을 끄고 다시 자기 볼일을 봤다.
놀란 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정말 신인가;;;;
-얼마나 게임을 하면 저렇게 되나요?
-저렇게 될 정도로 게임을 하면 죽습니다.
-게임만 따지면 거의 초능력자네;;;
-저쯤 되면 그냥 뇌 구조가 스페이스 크래프트로 바뀐 게 아닐까?
-보았느냐? 신이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아무튼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더해지면서 방송은 종영을 향해 달려갔다.
이신은 유지나를 통해 실험할 빌드 오더를 점점 완성시켜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온라인에서 유지나와 지창수가 붙어서 승부를 내고, 뒤이어 유지나에게 올도어SCC의 명예 연습생 신분을 부여하는 것으로 촬영을 끝맺기로 했다.
“가르쳐 드린 대로만 따라하면 됩니다.”
“네.”
사실상의 승부처인 1세트 맵 투지에서 대결이 시작되었다.
유지나는 이신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했다.
바로 생 더블.
곧바로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짓고, 그다음에 병영을 지었다.
병영과 군량고 2개로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막았다.
‘좋아.’
지창수는 평범한 3부화실 빌드로 시작했다.
빠른 공격 타이밍이 아닌 부유하게 시작하는 전형적인 괴물 종족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괴물이 얼마나 부유하든 상관없었다.
일단 초반의 견제 없이 생 더블에 성공한 것으로 충분했다.
이신이 짠 빌드 오더는 그것만으로도 승리가 확정적이었다.
유지나는 서툰 손놀림으로나마 차근차근 배운 빌드 오더를 진행해 나갔다.
곧바로 기갑 정거장을 4개나 짓고서 기계 보병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오! 진짜 빠른데?”
최환열이 보고 깜짝 놀랐다.
“생 더블만 성공하면 무조건 이겨.”
이신은 단언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지창수는 쐐기충 한 부대를 이끌고 견제를 펼치러 나왔지만 득시글거리는 유지나의 기계보병에 기겁을 해서 도망쳤다.
대공 공격력이 매우 높은 기계보병은 쐐기충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가자!”
유지나가 신이 나서 소리치며 공격에 나섰다.
기계보병들이 우르르 지창수의 진영으로 떠났다.
지창수는 앞마당과 확장 기지에 잇달아 촉수탑을 마구 건설해 디펜스를 구축했다.
하지만 방어력이 1 업그레이드된 기계보병들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앞마당을 쓸어버렸다.
지창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쐐기충으로 컨트롤을 펼쳤으나, 기계보병들의 대응 사격에 녹아버렸다.
도저히 막을 수 있는 타이밍이 안 나왔다.
유지나는 계속 기계보병을 생산하면서 미니 맵에 어택만 찍어댔다.
별다른 컨트롤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슬그머니 지창수의 앞마당에 나타난 유지나의 건설로봇.
건설로봇이 지창수의 앞마당에 통제사령부를 짓기 시작했다.
일명 마패!
진 상대를 조롱하는 세리머니였다.
이를 본 올도어SCC 선수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지창수의 분노의 채팅이 마구 올라왔다.
-CSJ : 누나 이거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Z-NA : 네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렴.
-CSJ : 실력 좀 보자고 초반에 가만 놔뒀더니 뻔뻔하게 생 더블을 하고 앉았어?! 그리고 이거 뭐야. 완전 사기 빌드야!
-Z-NA : ㅎㅎㅎㅎ스승님께서 사랑을 담아 만들어주셨지롱!
-CSJ : 사랑-_-;;;
-Z-NA : 낄낄낄 얼른 GG 치렴.^^
-CSJ : 두고 보자-_-
그렇게 1세트는 유지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꺅! 완전 좋아!”
유지나는 그 틈을 타서 이신을 와락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엉겨 붙는 유지나 탓에 이신의 표정은 대놓고 당혹과 귀찮음으로 물들었다.
연이어 2세트는 피의 권좌.
인류가 괴물에게 질 수가 없는 맵.
어지간히도 실력 차이가 나거나, 괴물이 허를 찌르는 기습 전략을 펼치지 않는 한, 대개 인류가 승리하는 맵이었다.
특히나 게임의 콘셉트상 인류는 적응의 종족.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 플레이어는 더 다양한 전략·전술을 개발해 피의 권좌를 완전한 인류 맵으로 확정 지어버렸다.
이번에는 안전하게 앞마당에 참호를 하나 짓고 방어하며 출발한 유지나.
역시나 이신이 가르쳐 준 그대로 빠짐없이 따라한다.
대공포를 건설하는 위치.
기동포탑의 배치.
단 한 칸의 오차도 없이 이신의 주입식 교육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안 나가고 버티기!
일명 쇄국인류였다.
우주방어를 펼쳐 놓고 나오지를 않으니 지창수가 먼저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방어는 완벽.
이신의 대공포와 기동포탑 배치를 그대로 옮겨놓은 디펜스였다.
계속 공격을 시도했던 지창수는 병력과 함께 자원을 낭비했다.
꾸역꾸역 자원을 채집해서 대병력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어느덧 자원이 전부 바닥나고 말았다.
“와, 디펜스 봐라. 어떻게 저렇게 잘 막아내는 거야?”
“심시티.”
최환열의 질문에 이신이 간단히 답했다.
“대공포랑 기동포탑을 내가 시킨 대로만 배치하면, 손가락만 달려 있으면 무조건 이겨.”
이신은 피의 권좌에서 모범 답안이라 할 수 있는 심시티 디펜스를 갈고닦아 놓은 지 오래였다.
“이거 방송 나가면 좀 아까운데. 좀 편집해 달라고 할까?”
“됐어. 어차피 이 맵에서 괴물이 나올 일은 없잖아.”
맵 어디에도 이제 자원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쯤, 유지나가 공격에 나섰다.
전함 12척.
기동포탑 24기.
기타 병력.
호화롭기 이를 데 없는 조합으로 공격에 나선 유지나.
지창수는 그 조합을 이겨낼 만한 병력도 자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앞마당과 본진 외에는 전부 밀려 버린 비참한 처지의 지창수.
거기에 대고 유지나는 이 방송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Z-NA : 잘 가라! 이건 노잣돈이다.
-핵 발사를 감지하였습니다.
실용성이 거의 없어 상대를 조롱하는 세리머니 용도로만 쓰이는 핵폭탄이 사용된 것이다.
콰르르르르릉―
지창수의 앞마당이 초토화되었다.
-CSJ : ㅠㅠ
-CSJ : GG
그렇게 방송의 대미가 장식되었다.
촬영은 유지나가 명예 올도어SCC 연습생로 임명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예능에서 이신이 유지나를 통해 선보인 빌드 오더는 화제가 되었다.
일단 생 더블만 성공하면 거의 무조건 이길 수 있는 빌드 오더.
그리고 손가락만 달려 있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피의 권좌의 심시티 디펜스 완성판.
후자야 피의 권좌에서 괴물을 내보내는 팀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전자는 괴물 플레이어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우리도 한 번 따라해 보자.”
“정말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건가?”
프로게이머들이 방송분을 보고 그 전략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가 절대로 생 더블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과제가 괴물 플레이어들에게 던져졌다.
왜 이런 좋은 전략을 하필이면 예능에서 써먹었냐고 나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신은 정말로 유지나를 이기게 만들어야 했기에 그 목적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결국 이신은 역시 게임의 신이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올도어SCC는 팀의 인지도 상승이라는 엄청난 이득을 거두었고, 박태호 PD는 또 하나의 성공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 실력자로 인정받았다.
유지나, 지창수, 그리고 박영호 등등 출연자들이 모두 인기가 상승하여 광고 출연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렇게 화제의 예능이 슬슬 네티즌들 사이에서 언급이 수그러들 즈음, 마침내 때가 왔다.
2021년 한국 SC 프로리그가 개막을 앞두게 된 것이었다.
올도어SCC는 매우 바빠졌다.
이신은 본인과 선수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최환열은 자신의 인맥을 발휘해 계속 은퇴한 프로게이머를 수소문해서 코치로 일할 사람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적어도 종족별로 코치가 한 명씩은 필요했기에 수소문해서 직접 찾아가 만나는 등 최환열이 바빠졌다.
“내가 플레잉 코치 할까?”
어느 날, 문득 조용히 면담을 신청한 박진수가 꺼낸 이야기였다.
동갑이라 사석에서는 서로 말을 놓기로 했는데, 박진수가 진지하게 의향을 내비치자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선수 생활에 집중해.”
“홀로 훈련을 더 해봤자 슬슬 한계도 보이는 것 같고 해서. 코치가 부족해서 문제면 내가 해줄 수 있겠다 싶어.”
“넌 지금도 이미 팀의 연장자로서 역할을 해주고 있어. 코치 직책까지 떠맡을 필요는 없어.”
“억지로 떠맡는 게 아니라, 나도 슬슬 미래를 준비해야지.”
박진수는 쓸쓸히 말했다.
“네 말대로 견제 플레이 위주로 콘셉트를 짜서 인류 전은 폼이 어느 정도 올라왔어. 그런데 신족이나 괴물은 도저히 안 되겠고, 이제 내 한계가 너무 뚜렷하게 보여.”
“인류 상대로 내밀 수 있는 카드로 충분해.”
“내 말이 그거야.”
“……?”
“어차피 다른 종족은 필요가 없잖아. 내가 단골 출장하는 붙박이 주전도 아니고, 가끔씩 저격 카드로 쓰이는 선수니까, 코치 일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어.”
이신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옳긴 옳은 얘긴데, 그러면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서 이 팀으로 이적한 박진수에게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나도 하고 싶어서 그래. 전에 있던 CT면 몰라도, 여긴 이제 신생팀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나도 이 팀에서라면 코치가 되고 싶어.”
그 순간, 이신은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박진수는 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전략에 능한 선수였다.
이신은 언젠가는 올도어SCC에도 해외 명문 팀처럼 전략팀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만약 전략팀이 새로이 창설된다면, 박진수는 그 팀을 맡을 적임자였다.
이신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은 급한 대로 플레잉 코치로 좀 고생해 줘.”
“고생이랄 것도 없다니까. 지금처럼 애들한테 조언해 주고 멘탈 관리도 좀 해주면 되잖아.”
“그리고 전략팀을 새롭게 도입할 생각인데, 지금 고생 좀 해주면 나중에 그 전략팀의 책임자로 앉혀줄게.”
박진수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파리SCC 같은 해외 명문 팀에나 있는 그런 전략팀이 도입된다니.
심지어 자신이 그런 팀의 팀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