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출현(1)
1라운드의 MVP는 차이였다.
단 1패만 빼고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고, 특히 1라운드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이 매우 컸다.
화성전자 전에서 신태호와 황병철을 꺾었다.
쌍성전자 전에서 최영준과 신지호를 포함한 주전 5인을 올킬!
박영호에게 당한 1패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이신의 대항마라 할 수 있는 강자들을 단시일에 다 꺾어버린 셈이었다.
그 올킬로 그저 신의 제자일 뿐이었던 차이는 단숨에 톱클래스로 인지도가 발돋움했다.
-차이 선수, 오늘의 주인공이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아, 그런 단답형 말투까지 스승님을 닮지 말아주세요.
-음, 너무너무 좋습니다.
-하하하!
차이의 대답에 사회자 이병철은 물론 관객석에서도 웃음이 퍼져 나갔다.
-아니, 오늘 올킬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하셨나요?
-네.
-어, 진짜요? 오늘 나 올킬하겠네, 하고 나오신 거라고요?
조금 짓궂게 묻자 차이가 웃으며 답했다.
-예상이 아니라 결심이었습니다. 다행히 쌍성전자에서 선수를 내는 순서가 딱 박진수 코치님의 예상대로여서 준비했던 전략들을 모두 쓸 수 있었습니다.
-아, 플레잉코치인 박진수 선수가 크게 한몫했네요. 그런데 듣자하니까 선봉에 서고 싶다고 자청하셨다면서요?
-네.
-와아, 그건 아주 작정하고서 오늘 올킬을 준비하셨다는 뜻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물음에 차이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을요?
-제가 선생님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와아아아!”
“오오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 이병철은 재미있다는 듯이 이번에는 이신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자, 이신 선수. 호랑이 새끼를 키우셨는데요.
“와하하하하!”
이신은 마이크를 받아 들고 말했다.
-절 꺾고 싶어 벼르는 사람이 많다는 건 참 즐거운 일 같습니다. 개인리그가 기대됩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올도어SCC는 1라운드를 1위로 마감했다.
***
리쟈가 중국어로 뭐라고 타이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장양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따른다.
“장비는 다 챙겼니?”
옆에서 차이가 물었다. 장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확인해 봐. 꼭 하나씩은 빼먹던데.”
주디가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며 말했다. 이에 차이는 장양의 게이밍 백팩을 집어 들었다.
“좀 볼게.”
장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리쟈는 감동에 젖은 표정이 되었다.
장양이 타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며 또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가만 보면 장양을 친동생 내지는 자식처럼 보살피는 리쟈였다.
가방을 뒤적거리던 차이가 한숨을 쉬었다.
“마우스패드 안 넣었잖아. 또 연습실에 두고 왔구나. 마우스패드 아무거나 써도 상관없는 거야? 패드마다 느낌이 다 다르단 말이야.”
장양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소파에서 오대십국 시대를 다루는 역사책을 읽던 이신이 말했다.
“내꺼 하나 가져다 넣어줘.”
“네.”
차이는 거실에 비치된 수납장 서랍을 열어 잔뜩 쌓여 있는 마우스패드 하나를 꺼내 포장을 뜯고 장양의 게이밍 백팩에 넣어주었다.
제자들은 모두들 이신과 똑같은 장비를 쓰고 있었다.
주디와 존은 원래부터 이신의 열혈 팬이라 장비까지 똑같은 걸 따라 썼고, 차이는 자기 마우스가 고장 나자 임시로 이신의 마우스를 써봤다가 손에 잘 맞아서 계속 사용 중이었다.
장양은 중국에서 장비를 안 가져와서 이신이 주는 대로 갖다 쓰는 중이었다.
“그거 봐, 꼭 하나씩은 빼먹지?”
다 싼 도시락을 한 보따리 들고 온 주디가 생글거렸다.
“사소한 것을 별로 생각 안 해서 자주 빼먹곤 합니다. 잘 챙겨주십시오.”
리쟈가 모두에게 말했다.
“염려 마세요.”
차이가 웃으며 답했다.
“휴, 이렇게 친구들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 됐어?”
이신이 물었다.
“네!”
모두들 대답했다.
“그럼 가자.”
이신은 책을 덮고 일어섰다.
이 많은 인원이 다 이신의 롤스로이스 팬텀에 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리쟈가 따로 준비한 승합차에 타고 출발했다.
1라운드가 모두 끝나고 프로리그는 짧은 휴식기에 들어간 상태.
선수들 역시 1박 2일의 짧은 휴가가 주어졌는데, 제각기 집에 다녀오거나 곧 시작되는 개인리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신은,
‘이참에 아마추어리그에서 쓸 만한 애 있나 봐야겠군.’
그랬다.
오늘은 아마추어리그가 열리는 날이었다.
온라인에서 B등급 이상 되는 아마추어들이 모두 모여서 치르는 대회로, 우승 시 상금도 있지만 그보다는 준프로 자격증이 훨씬 중요했다.
장양의 온라인 랭킹은 벌써 A등급.
곧 있으면 S등급을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팀 내에서는 2군 선수들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
처음에는 컴퓨터처럼 자기 할 일만 하는 단조로움 때문에 심리전에 잘 속아 넘어가는 약점을 보였던 장양이었다.
하지만 이신과 함께 지내면서 슬슬 상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속임수의 대가인 최환열에게 워낙 많이 시달린 탓도 있었는지, 장양의 플레이는 점차 기계에서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1군 선수들도 가끔씩 질 정도가 되었다.
‘어서 준프로 따고 출전시켜야지.’
올도어SCC는 1군에 괴물 라인업이 유진영밖에 없었다.
끽해야 가끔 깜짝 카드로 써먹는 한태화 외에는 아직 다들 수준 미달이었다.
이러다가 유진영이 부진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이신이 괴물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신으로서는 장양을 어서 팀 주전으로 써먹고 싶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피지컬은 그야말로 괴물인 장양 아닌가!
정확 무비한 컨트롤과 조금의 오차도 없는 운영, 허를 찔러도 곧장 대응하는 미친 반응속도까지, 정말로 컴퓨터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박진수가 만든 선수 분석표대로 따져 본다면 컨트롤, 디펜스, 반응속도는 셋 다 100을 찍을 게 분명했다.
어찌 되었건 장양이 프로게이머로서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중요한 날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휴가를 얻어서 할 일이 없는 제자들까지도 따라가기로 했다.
아마추어리그가 끝나면 이 외국인들을 위하여 다 같이 경복궁에 관광을 가기로 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리쟈가 하도 간곡하게 매달리는 통에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외출을 싫어하는 건 장양이나 이신이나 매한가지.
하지만 그동안 폐쇄적으로 살아온 장양을 되도록 외출시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
용산 e스포츠 센터에 검정색 벤이 도착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차이가 내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와, 차이다!”
“쟤가 얼마 전에 쌍성전자 올킬해 버렸잖아.”
“여기 왜 나타났지? 아마추어리그 참가하러 온 것도 아니고.”
“사인해 달라고 해볼까?”
프로리그 경기도 없는 현재 e스포츠 센터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이 아마추어리그 참가자나 그 친구들이었다.
당연히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어 주디가 내리자 동요가 더욱 커졌다.
“예, 예쁘다!”
“쩐다.”
“차이에 이어 주디까지 나타났으면…….”
주디의 미모는 대부분 나이가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의 방심을 크게 흔들기에 충분했다.
존과 장양, 리쟈가 내리고, 마지막에 이신이 내렸다.
“우와!”
“신이다!”
“젠장, 난 가서 사인 받을래.”
그때까지만 해도 실례불구하고 접근해서 말 걸어볼까 말까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장양은 겁을 먹었고,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몇 명 사인을 해주다가 간신히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의외의 인물이 일행과 함께 있었다.
“너도 왔냐.”
바로 방진호 감독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긴. 우리 애들 몇 명 참가했다. 근데 얘도 네 제자라면서?”
방진호 감독은 장양을 가리켰다.
“그렇습니다만.”
“그래, 그때 봤던 걔네. 벌써 아마추어리그 참가시킨 거야?”
“예.”
“온라인 랭킹 몇 등급인데?”
“A.”
“잘하냐?”
“웬만하면 종합우승 할 겁니다.”
“…젠장. 우리 애들이랑 안 만나길 바라야겠네.”
방진호 감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신은 빈말을 할 줄 모르니 정말로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뜻이었다.
“근데 말이 없네. 한국말 못 해?”
“못 합니다.”
사실이었다.
알아듣기만 하지 입 밖에 한국말을 뱉은 적은 없었다.
방진호 감독이 쳐다보자 장양은 리쟈의 뒤로 숨었다. 워낙 인상이 강한 방진호 감독이라 극도로 낯을 가리는 장양이 겁을 먹은 것이었다.
“그만 보십시오, 애 겁먹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겁을 먹어?”
와락 인상을 찌푸리는 방진호 감독. 그럴수록 장양은 더욱 겁먹었다.
“저래갖고 프로 경기 뛸 수 있겠어?”
“부스 안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쟤 뭐 문제 있냐?”
“자폐증 외엔 딱히 없습니다.”
“문제 있었네! 왜 진작 말을 안 해?!”
“많이 좋아졌습니다.”
방진호 감독과 이신은 벌써부터 티격태격하기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함께 아마추어리그 내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이신과 제자들의 등장에 용산 e스포츠 센터가 웅성거렸다.
아마추어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이 쉬는 시간을 틈타 친구들과 함께 구경하러 오곤 해서 이신의 주변은 언제나 인산인해였다.
“온 김에 우리 애들도 좀 봐줘.”
“그러죠.”
이신은 장양을 리쟈 및 제자들에게 맡겨놓고 방진호 감독과 함께 움직였다.
장양은 B조라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방진호 감독이 데려온 연습생 2명은 A조라 이미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인류를 플레이하는 MBS 연습생의 128강 경기를 보았다.
슥 본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컨트롤 다듬어야 합니다.”
“어떻게?”
“컨트롤하지 말라 하십시오.”
“뭐?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보병 컨트롤은 쓸데없이 안 건드리는 편이 좋습니다.”
“넌 잘만 건드리잖아. 존도 그렇고.”
“그 정도로 잘하지 않으면 컨트롤 붙잡고 있어도 시간 낭비입니다.”
“쓸데없이 컨트롤하는 게 별로 효과가 없다는 말이지?”
“예. 그냥 효과적인 진형(陣形)만 잡고 다른 일 하는 게 좋습니다.”
“쯧, 쟤가 컨트롤에 좀 집착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또 다른 건 없고?”
“척 봐서 어떻게 다 파악합니까? 좀 더 보겠습니다.”
“어, 그래.”
계속 보다가 이신은 또 딴죽을 걸었다.
“랠리 포인트 찍을 때 일일이 화면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찍습니까?”
랠리 포인트(Rally point)란, 특정 건물에서 생산된 유닛이 집결할 장소를 뜻했다.
MBS의 연습생은 병영 6개의 랠리 포인트를 하나하나 일일이 앞마당으로 찍고 있었다.
“그럼?”
이신은 혀를 찼다.
“건물 모여 있는 곳과 랠리 찍을 곳 두 군데를 화면지정 단축키로 등록해 놓고, 단축키로 왔다 갔다 하면 더 빠르게 합니다.”
“…아, 그러네.”
방진호 감독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이신.
이는 방진호 감독에게 신세 진 일을 어느 정도 갚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이신이 코치로 합류하고 선수로까지 뛰어줘서 마케팅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지만, 팀을 나오면서 주디까지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방진호 감독을 힘들게 한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