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5
214화 미련(2)
팀 넥스트의 연습실에 손님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와, 이신이다…….”
“신이 우리 연습실에 왔다.”
“진짜 잘생겼네.”
“아까 봤냐? 롤스로이스 간지 끝장이더라.”
손님은 바로 올도어SCC의 1군 선수들이었다. 양 팀의 1군끼리 오늘 하루 연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두의 동경과 선망이 집중되는 대상은 단연 이신.
감독 겸 선수라는 사상초유의 직함을 갖고 있는 이신은 팬들은 물론 같은 프로 선수들에게도 신과 같은 존재였다.
“반갑습니다.”
“예, 잘해보죠.”
이신과 팀 넥스트의 수석코치가 악수했다.
“모두 빈자리에 앉아서 연습 시작해. 같은 팀원끼리는 하지 않는다.”
“옛!”
훈련은 패스워드가 걸린 비공개 채널에 접속하여서 대전을 하기로 했다.
올도어SCC의 선수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서 자신의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런 올도어SCC 선수들을 보며, 팀 넥스트의 선수들은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역시 국내 최강을 노리는 팀이라 그런 건지, 선수들 하나하나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세련된 유니폼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에 장난기 하나 없이 진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늘 해이해진 분위기 속에서 훈련인지 노는 건지 분간 안 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팀 넥스트와 전혀 달랐다.
“쟤들 다 잘하겠지?”
“장난 하냐? 만만한 사람이 하나 없다.”
“그나마 해볼 만한 사람이 플레잉코치인 진수 형 정도다.”
“우리 망신당하면 큰일인데.”
팀 넥스트 선수들은 나지막하게 수군거리며 동요했다.
훈련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기세에서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1라운드를 무패 행진으로 시작한 압도적인 포스의 올도어SCC!
그에 반해 팀 넥스트는 작년에 최하위로 강등이 확정됐었던 처지였다.
2부 리그로 강등되면 스폰서를 잃고 거의 팀 해체가 확정될 분위기였다.
다행히 한국 SC 프로리그가 10팀 체제로 바뀌면서 특별히 2부 리그 강등이 면제되었다.
하지만 한 번 팀이 와해될 위기를 겪은 팀 넥스트는 심기일전하여 독하게 열정을 불사르기는커녕 여전히 기강이 엉망이었다.
천운으로 다시 한 번 얻은 기회를 잘 살려보자는 의욕보다는, 어차피 망할 팀이라는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더 강해진 것.
‘우리는 희망이 없다.’
‘올해는 우리가 강등 확정이겠지.’
‘연봉 지급도 제대로 안 되고 있고 대우도 형편없는데 열심히 해서 뭐해?’
‘어차피 오래 못할 프로게이머 생활이었어. 빨리 때려치우고 개인 방송 BJ든 뭐든 하자.’
그런 심리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니 팀의 성적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런 팀 넥스트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올도어SCC와의 합동 훈련을 오히려 귀찮아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다.
손지훈이 성큼성큼 올도어SCC 선수들의 자리가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손지훈의 발걸음은 이신의 앞에 멈췄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장비를 세팅하던 이신은 손지훈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네 얼굴 못 본지 꽤 됐네. 요즘은 통 출전도 안 했고.”
손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이신 아니랄까 봐 여전히 직설적이었다.
“출전 기회를 잘 못 잡고 있었어요.”
“슬럼프야?”
“비슷하죠.”
손지훈은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이었다.
“손가락 관절염이 심해졌는데 만성이라 잘 낫지도 안더라고요.”
“관절염?”
이신이 문득 흥미를 드러냈다.
“부진하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야?”
손지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 때문만 있겠어요? 다 이것저것 복합적이죠. 아무튼 점점 손이 많이 가는 플레이를 기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겠네.”
원인이 손가락 관절염이라도 어쨌거나 피지컬 하락.
손지훈이 보이고 있는 현상은 피지컬이 떨어진 나이든 선수에게서 흔히 나오는 증상이었다.
아직 한창인 22세의 나이에 벌써부터 그런 현상을 겪게 된 불운한 손지훈이었다.
‘그럼 손가락만 나으면 실력이 돌아오는 건가?’
이신은 강한 관심이 들었다.
손지훈은 과거에 이신이 한국에서 본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던 그때의 기량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황병철을 제치고 이신의 최대 적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리그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손지훈은 급격히 추락했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한 번 반짝하고 몰락한 선수들이 어디 한둘일까?
하지만 그 몰락의 계기가 손가락 관절염이라면,
‘손가락을 내가 낫게 해주면 그게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손가락 또한 프로게이머가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부위 중 하나였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의 느낌은 컨디션에 크게 좌우된다.
그걸 20분, 30분 내내 누른다고 생각하면 손가락보다 더 중요한 부위가 없을 지경이었다. 20분, 30분 내내 관절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면 누구라도 미쳐 버릴 것이다.
“다 지난 옛날 얘기하러 온 건 아니고요, 저랑 게임이나 하실래요?”
“좋지.”
“5판 3선으로 제대로요.”
“알았어.”
이신은 쾌히 승낙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손지훈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그냥 하면 긴장감이 없으니까, 우리 내기 하나 안 하실래요?”
“무슨 내기?”
“좀 센 걸로요.”
“말해.”
“진 쪽이 은퇴하기, 뭐 이런 건 어때요? 아주 묵직하죠?”
“…….”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손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신은 말없이 손지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손지훈의 얼굴 표정은 담담했다.
“나더러 네 은퇴식 해달라고? 미련 없이 떠나게 한 판 붙어 달라?”
“…비슷해요.”
“도무지 알 수 없군.”
이신이 말했다.
“패배자들의 기분 같은 건 난 몰라. 그래서 묻는 건데, 졌는데도 속이 후련할 수도 있는 거야? 지면 그냥 기분 엿 같지 않아?”
“…….”
“채널 접속해. 몇 판이든 해주지. 실컷 깨졌는데 속이 후련하면, 그땐 정말 은퇴할 때가 된 거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대결은 시작되었다.
1세트, 유혈의 능선.
승부는 4분 안에 끝나 버렸다.
센터 2병영을 시도한 이신의 치즈 러시에 손지훈은 무참히 깨졌다.
-Kaiser : 이것도 손가락 아파서 진 거야?
이신의 도발에 손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2세트, 손지훈은 자신이 갈고 닦은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바로 철갑충차 컨트롤.
빠르게 테크 트리를 올려서 철갑충차와 수송기를 생산한 손지훈은 빠르게 견제를 갔다.
하지만 기다린 것은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된 기계보병.
기동포탑의 포격모드보다 기계보병의 사거리 업그레이드를 먼저 해버린 이신.
일전에 차이가 쌍성전자를 상대로 올킬을 달성했을 때 선보였던 철갑충차 저격 빌드였다.
기계보병의 지대공 미사일에 수송기가 격추되기 직전까지 체력이 간당간당해졌다.
다행히 격추되기 전에 수송기는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투타타타타타!
-퍼어엉!
본진으로 복귀하는 경로에 대기하고 있던 보병 4명이 기관총을 난사해 수송기를 터뜨려 버렸다.
수송기는 안에 태웠던 값비싼 철갑충차와 함께 산화되었다.
“아, 잔인하다.”
“지훈이 빌드 보자마자 기계보병 사거리 업그레이드하고 보병을 저기다가 배치했다. 완전 설계야.”
“진짜 귀신이냐.”
소름 끼치게 상대를 꿰뚫는 이신의 플레이는 격이 달랐다.
보편적인 답안을 쓰기보다는, 100명에게 적합한 100가지 답안을 쓰는 이신이었다.
삽시간에 2 대 0 핀치에 몰린 손지훈.
‘빌어먹을!’
손지훈은 분함을 느꼈다.
자신이 원했던 건 이런 무참한 완패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빡세다.’
낭패였다.
애당초 손지훈이 생각했던 다전제의 포석은 따로 있었다.
1, 2세트는 철갑충차 견제.
갈고 닦았던 철갑충차 컨트롤로, 이기든 지든 이신을 흔들어놓아야 했다.
그렇게 이신의 심리가 철갑충차를 막는 쪽으로 집중되어 있을 때, 3세트에서 다른 전략을 펼쳐 승부를 본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역시나 다전제에서 무패신화를 쓰고 있는 이신이었다.
1세트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치즈 러시에 당했다.
2세트는 철갑충차가 저격 빌드에 너무 처절하게 막혀 버렸다.
3세트에 임했을 때 손지훈은 선택권이 없어졌다.
그렇게 막힌 상태에서 또 철갑충차를 선보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걸 이신도 알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염두에 둘 것이다.
‘그래도 준비했던 대로 해봐야지.’
어차피 또 지면 끝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손지훈은 준비한 전략을 3세트에서 고스란히 펼치기 시작했다.
***
스노우볼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 용어로는 눈덩이처럼 알아서 주변의 눈을 삼키며 커지는 주식 종목을 뜻한다.
스페이스 크래프트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작용한다.
한데 모인 병력이 공 굴리듯이 맵 센터를 다니며 상대를 압박한다.
그러면서 추가 생산된 유닛이 합류하면서 병력의 덩어리는 점점 커져 간다.
그렇게 맵 센터를 휘어잡고 상대를 압박하던 병력 덩어리는 인구수 한계까지 커졌을 때, 대대적인 공세로 상대의 약점을 거세게 찌른다.
그것을 스노우볼 운영이라고 한다.
이 스노우볼 운영은 특히나 신족에게 최적화된 전략이었다.
유닛 하나하나가 강력하고, 병력의 생산-소비 사이클이 인류보다 월등하며, 적절하게 병력의 조합이 갖춰졌을 때는 무적에 가까운 군단이 되는 신족이었다.
2년 전의 손지훈은 이 스노우볼 운영의 대가였다.
2018년 후반기 개인리그 결승은 눈덩이를 굴려서 불리려는 손지훈과 그 눈덩이를 깎아나가는 이신의 싸움이었다.
끝끝내 모루와 망치를 치열하게 휘두른 이신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의 손지훈의 포스는 한국 역대 최강의 신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최영준이 최강의 신족으로서 자리매김했지만 말이다.
3세트, 손지훈의 거신병기가 맵 센터로 나왔다.
맵 센터를 활보하며 압박 플레이를 하며, 견제를 나서는 이신의 고속전차를 사전에 차단했다.
알아도 못 막는다고 불렸던 이신의 고속전차 견제 플레이를 디펜스 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거기에 광신도들이 합류했다.
광신도와 거신병기로 이루어진 눈덩이가 이리저리 맵 센터를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자,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지?’
손지훈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큰 병력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손이 많이 간다.
거기에 테크 트리도 올려야 하고, 확장 기지도 가져가야 하고, 병력도 계속 생산해 눈덩이에 편입시켜야 한다.
점점 높아져 가는 피지컬의 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지훈은 매섭게 집중했다.
서서히 스노우볼을 굴리기 시작하는 손지훈.
스노우볼을 굴리는 손지훈의 솜씨는 제법이었다.
맵 센터를 제대로 쥐고서 이신의 고속전차가 찔러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다.
2기, 4기씩 내보냈던 고속전차가 계속해서 손지훈에 의해 차단당했다.
안 되는 짓을 미련하게 계속 반복할 이신이 아니었다.
손지훈이 아는 이신이라면 이제 슬슬 다른 칼을 꺼낼 때였다.
2년 전에는 더욱 빠른 고속전차 기동과 지뢰였다.
‘2년 전이었으면 항공수송선이었겠지.’
항공수송선으로 고속전차를 태워 본진이나 확장 기지에 드롭시키는 기습 플레이를 펼쳤을 것이다.
손지훈의 덩어리 병력이 장악한 맵 센터를 피해서 말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가 된 한 방 병력으로 정면으로 치고 나올 수도 있지. 그런 플레이를 곧잘 하는 주디와 차이를 키운 게 이신이니까.’
개성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이신이었지만, 정석을 못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지금의 이신은 2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지 사뭇 궁금했다.
그때, 마침내 이신이 움직였다.
나타난 유닛은 바로,
‘의무병?!’
손지훈의 얼굴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의무병 1명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