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5
24화 코치(3)
“말 가려서 해라.”
방진호 감독이 으르렁거렸다.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한 한마디였다.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 존재감 없는 선수로 낙인찍힌 것이 얼마나 서글픈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즉, 이신은 절대로 모른다. 한 번도 안 겪어봤으니까.
“됐고, 인사 끝났으면 연습들 해.”
방진호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이 구시렁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진호 감독은 이신에게 손가락을 까닥이고는 전략회의실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이신에게 방진호 감독이 말했다.
“일단 처음 일주일은 연습 좀 하면서 너부터 감 되찾자.”
“예.”
“연습 상대는 어떻게 해줄까? 코치들이랑 할래?”
“선수들과 하죠.”
“인마, 연습이라도 선수들한테 실컷 깨지고 나면 우습게 보일 수 있어.”
“선수 상대 아니면 연습이 안 되죠. 날 우습게 보든 말든 상관도 안 하고.”
방진호 감독은 그런 이신을 빤히 쳐다봤다.
얕보여도 상관없다는 낯짝 철판 마인드. 어쩌면 이신의 가장 큰 강점은 저 멘탈인지도 몰랐다.
“그래, 마음대로 해. 네 자리 마련해 줄 테니까 연습실에 있는 애들 아무나 데리고 연습해.”
“예.”
“그리고.”
“……?”
방진호 감독이 좀 더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스타를 키워낸다고 했지?”
“그랬죠. 그러려고 나 부른 거잖아요.”
“그래, 실은 그게 너를 코치로 영입한 진짜 이유다.”
“신의 제자.”
이신의 한마디에 방진호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그래.”
이신은 MBS팀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신의 제자.
이신의 코칭을 받는 선수에게는 그런 타이틀이 붙는 것이다!
이신이 말했다.
“아무나 대고 제 이름 팔게 하고 싶지는 않고, 제 제자는 제가 직접 고르죠. 동의합니까?”
“1군 애들 중에서 고르면 안 되겠냐?”
현재 MBS팀의 1군 선수는 7명. 그중 이신과 같은 인류 유저가 3명이었다.
나머지는 2군이나 연습생.
“플레이 스타일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래라.”
***
이신은 곧 자신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재킷을 의자에 걸어놓았다.
가죽 백팩에서 챙겨온 자기 전용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꺼냈다.
연습실의 선수들과 연습생들은 그런 이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의 신.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신.
세계 e스포츠의 신.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불세출의 스타가 같은 연습실에서 게임을 하려고 한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봐, 게임 접속한다.”
“연습하려나 보네.”
“손은 괜찮나?”
“인터넷 기사 보니까 좀 나아지긴 했대.”
선수들이 수군거릴 때였다.
문득 선수들 쪽을 돌아본 이신이 무작위로 한 명을 지목했다.
“짭신.”
“예?”
지목된 사람은 바로 MBS 주전 박신.
이름도 종족도 키도 이신과 같다는 이유로 ‘짭신’이라 불리는 불행한 선수였다.
그래도 그 덕에 MBS 암흑사제군단 중에서는 그나마 인지도가 있었다.
“연습하자.”
“아, 예.”
이신은 신지호와의 게임 이후로 새로 공부한 인류 대 인류 전 빌드를 연습할 참이었다.
선수들은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의 연습 게임을 지켜보았다. 현재의 이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Kaiser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오오!”
“카이저다!”
e스포츠의 전설이 된 아이디가 등장했다.
-Good_jjab: GG요.
-Kaiser: 그래.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신은 실력 발휘를 하지 않았다. 컨트롤은 되도록 하지 않고 빌드만 확인하는 선에서 가볍게 플레이했다.
이신에게서 딱히 특별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자, 흥미를 잃은 선수들이 각자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 새끼, 너 일부러 살살 하는 거 아냐?”
언제부터 지켜봤는지 방진호 감독이 불쑥 물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또 뭡니까?”
“왜 컨트롤이 그따위야? 보통 빌드는 까먹어도 컨트롤은 안 까먹잖아.”
“손목 아파서 잘 못합니다.”
“이 새끼 이거 수상한데. 너 진짜 플레이어 신 아냐?”
“자꾸 그 얘긴 왜 합니까? 아직도 그 친구랑 쪽지 주고받아요?”
“그래, 어제는 뭐 인증 샷을 찍어 보내라는 등의 소리를 해서 보냈더니, 10년 전 내 사진과 비교하면서 다르게 생겼다는 등…… 아오, 그 새끼 걸리기만 하면 그냥!”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떠는 방진호 감독.
이신은 뻔뻔스럽게 무표정을 유지했다.
“진짜 너 아니지?”
“아니라고요. 제가 그만큼 실력 돌아왔으면 선수 복귀를 하지 코치를 왜 합니까?”
“……그러게.”
“저도 선수 하고 싶어 죽겠으니까 사람 그만 약 올리십시오.”
“쯧, 수상한데. 그 자식 싸가지는 아무리 봐도…….”
끝내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찜찜한 얼굴로 돌아서는 방진호 감독. 정말 날카로운 촉이었다.
‘정상에 다시 설 수 있기 전에는 복귀 안 한다.’
이신의 결심은 확고했다.
2020년 현재, 이신이 없는 한국 e스포츠 무대에 새로운 최강자들이 탄생한 상태였다.
첫째, 이신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이단자’ 황병철.
신에 대항한 유일한 자였던 황병철은 이신이 기권한 작년 후반기 개인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어 만년 2인자의 굴레를 벗었다.
하지만 황병철의 천하는 오래 가지 않았다.
둘째, ‘광기신족’ 최영준.
신인인 최영준은 2020년 전반기 개인리그 예선을 무패로 뚫고 올라와 주목을 받더니, 4강전에서 만난 황병철까지 3대 0으로 완파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러다가 이신처럼 무패우승을 해버리는 신인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었다. 그만큼 최영준의 포스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셋째, ‘철벽괴물’ 박영호.
무패행진을 하는 무시무시한 최영준을 상대로, 박영호는 결승전에서 접전을 치렀다.
끈질긴 디펜스.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고야 마는 괴물스러운 재생력.
박영호는 엄청난 물량을 퍼붓는 최영준의 광기 어린 공세를 끈질기게 견뎌냈다.
5전 3승 2패.
승, 패, 승, 패, 승.
누가 더 우위라고 할 수 없는 팽팽한 승부였고, 결국 우승컵은 박영호의 차지가 되었다.
이날의 명승부 탓에 박영호와 최영준은 ‘쌍영’이라 불리며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한국 e스포츠는 황병철, 최영준, 박영호가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3강 체제였다.
이 3강에 인류 유저가 없자, 일부 팬은 여기에 신지호를 끼워 넣고 4강 체제라 일컬기도 했다.
어쨌거나, 아직은 그 쟁쟁한 강자들을 꺾고 권좌를 탈환할 자신이 없었다.
‘아직은 말이지.’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코치라는 직업은 그 준비를 하기에 딱 좋은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