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53
252화 크롬웰(5)
도전자는 피도전자보다 불리하다.
피도전자가 원하는 전장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열전에 쓰이는 전장은 무려 12개나 된다.
피도전자는 그중 하나를 미리 골라서 전략을 구상하고 준비하면 되지만, 피도전자는 준비에 있어 그 부담이 12배였다.
하지만 이신은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전장에 대한 접근 방식과 전략 구상이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때문에 크롬웰이 제5 전장 이블 홀을 지정했을 때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앞마당과 뒷마당.
본진에 뚫려 있는 두 개의 출입구.
이 특징이 가져다주는 휴먼 대 마물의 방향성은 뚜렷했다.
앞마당과 뒷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펼쳐놓고 재빨리 마력을 확보하는 마물.
두 개의 출입구 때문에 방어에 더 신경 써야 하는 휴먼.
이는 본질적으로 마물이 휴먼보다 병력을 소환하는 시간과 이동속도 등이 더 빠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초반부터 헬하운드를 써서 압박을 하려 들 테지.’
이 전장의 지형상 마물이 휴먼을 상대로 나올 수 있는 기본적인 패턴이었다.
“콜럼버스.”
“옛, 주군! 정찰입니까?”
식량창고 건설을 막 마친 콜럼버스가 대답했다.
“그래. 앞마당과 뒷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짓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헬하운드를 공격에 동원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 점도 확인해야 한다.”
“옛!”
콜럼버스가 발 빠르게 출발했다.
정찰을 시킨 한편, 이신은 두 개의 출입구를 모두 봉쇄시키는 심시티를 구성했다.
병영 2개와 식량창고를 연결시켜서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약간의 공간만 주고 바리케이드를 쳐버리는,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심시티였다.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인류와 달리 건물을 공중에 띄울 수 없으므로, 완전히 틀어막아버리면 나중에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건물을 스스로 부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이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콜럼버스는 앞마당에 돌아가고 있는 크롬웰의 마력석 채집장을 포착했다.
그곳에 집결한 한 무리의 헬하운드들도 볼 수 있었다.
“놈들이 출발합니다! 그쪽으로 갑니다!”
헬하운드들은 달아나는 콜럼버스를 무시하고는 곧장 이신의 진영을 향해 달렸다.
“어떻게 할까요? 저도 본진으로 돌아갈까요?”
콜럼버스가 그렇게 물었다.
초반에 전투에서 불리함을 딛으려면 콜럼버스에게 빙의해서 치유 능력을 발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뒷마당과 추가적인 후속 병력이 있는지 체크해.’
“옛!”
콜럼버스는 그대로 우회하여서 뒷마당도 향했다.
때마침 마법진을 건설하기 위해 뒷마당에 나온 클로 1마리와 마주쳤다.
‘방해해.’
“옛!”
콜럼버스는 냅다 달려들어 클로에게 주먹을 날렸다.
클로도 날카로운 손톱으로 맞서면서 드잡이를 벌였다.
마비침을 한 방 날려서 1초간 마비시킨 뒤에 펀치 몇 번을 더 꽂아 넣자 싸움은 콜럼버스가 유리해졌다.
결국 클로가 본진 안으로 도망쳤고, 다른 클로가 나왔다.
“이제 그만 튈까요?”
‘그렇게 해.’
한 번 뒷마당 마력석 채집장 건설을 지체시켰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했다.
‘아군 진영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추가 병력이 공격하러 오는지만 체크해.’
“옛!”
한편, 이신은 2개의 병영에서 궁병을 꾸준히 소환하며 방어태세를 갖췄다.
심시티도 충분히 갖춰놨으니 당장 쳐들어온 데도 막아낼 수 있었다.
‘뒷마당에도 마력석 채집장을 가져갔으니 당장 공격에 크게 힘 실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예상대로 들이닥친 헬하운드들은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앞마당에만 서성거렸다.
콜럼버스가 감시하고 있는 길목에서도 추가로 병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크롬웰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읽혔다.
‘본진, 앞마당, 뒷마당에서 충분히 마력을 얻어서 대군을 꾸릴 생각이겠지.’
그렇다면 이신은 일단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헬하운드들부터 몰아내고서 앞마당이나 뒷마당 둘 중 하나에 마력석 채집장을 확보해야 했다.
***
폭풍전야.
앞마당과 뒷마당까지 총 3군데에서 마력을 채집한 크롬웰은 금세 대군을 모았다.
독포자꽃이 득시글거리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를 꾸준히 엔트로 진화시켰다.
크롬웰의 전략적 의도는 뻔했다.
지상전 대군!
휴먼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 뒤, 마력 채집량에서 크게 우위를 점해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시간을 더 주면 휴먼도 힘이 붙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전에 결판을 지어야 했다.
‘이번에는 네놈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전략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최근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신이라면 이 정도 전략도 간파 못 할 리는 없다.
아마도 막을 수 있는 방어책을 충분히 세워놨을 것이다.
‘하지만 넌 내 능력이 뭔지 모르지.’
크롬웰이 믿고 있는 구석은 바로 그 점이었다.
상대가 모르는 자신의 고유 능력이라는 변수!
독포자꽃이 계속해서 소환되었다.
득시글거리는 독포자꽃들과 엔트들이 공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됐군.’
크롬웰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사도 엘리게리우리아의 능력 빙의를 사용합니다.] [계약자 올리버 크롬웰 님께서 사도 엘리게리우리아의 육체에 빙의됩니다.]사도 엘리게리우리아는 독포자꽃이었다. 마물의 육체에 빙의되자 후끈거리는 열기를 느꼈다.
“크흐으으……!”
마물의 육체로 감각을 받아들이게 되자 크롬웰은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불타오를 것만 같은 뜨거운 체온.
온몸에 휘도는 마력.
폭발할 것 같은 혈기(血氣).
‘흐으으, 역시 이 희열은 잊을 수가 없어.’
이미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은 잊은 지 오래.
청교도 근본주의자였던 살아생전의 정신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물 그 자체가 된 희열!
끓어오르는 폭력성!
크롬웰은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자! 전부 짓밟아 버리는 거다-!”
“키에에엑……!”
“키에엑……!”
“끼에에에엑……!”
독포자꽃들과 엔트들이 일제히 진군을 시작했다.
노도 같은 진격.
크롬웰은 마물 대군을 이끌고 단숨에 이신의 진영 인근까지 도달했다.
먼저 앞마당 쪽으로 가보니, 식량창고와 화살탑 등을 연결해 지어서 탄탄한 바리케이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역시 방어가 튼튼하군.’
석궁병과 방패병이 집결해 있었고,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핵심은 뒤에 배치된 투석기들이었다.
이대로 냅다 공격을 개시하면, 건물을 때리다가 석궁병의 볼트와 투석기의 바위에 피떡이 될 터였다.
크롬웰은 병력을 양분하고, 자신이 절반을 이끌고 뒷마당 방면으로 향했다.
뒷마당은 텅 비어 있었지만, 본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역시나 빈틈없이 건물 바리케이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투석기가 꼼꼼히 배치되어서 바위 투척 세례에 당할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견고해 보이는 방어선은 처음 보는구나.’
크롬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나 상대의 솜씨를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프로게이머의 사고방식으로 최적화된 심시티를 연구하는 치밀성의 결과물이었다.
‘건물 배치로 이렇게까지 방어를 튼튼하게 해놓은 경우는 처음 보는군. 하지만 그거야말로 네 패인이 될 것이다.’
크롬웰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독포자꽃의 육체에 빙의된 탓에 그의 웃음도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총공격! 건물부터 때려 부숴라!’
전군에 명령을 하달했다.
마침내 개미떼처럼 모인 마물 대군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키에엑……!”
“히에에에에엑……!”
음산한 괴성을 지르면서 독포자꽃들이 달려들어 독포자를 마구 뿌렸다.
독포자는 건물에 달라붙어서 부식시켰다.
이신 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쏴!”
“다 죽여 버려!”
석궁병들이 볼트를 쐈다.
“일제히 발사!”
오귀스트 마르몽이 지휘하는 투석기 부대도 일제히 바위를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간다!’
크롬웰은 비로소 자신의 고유 능력을 펼쳤다.
[계약자 올리버 크롬웰 님께서 고유 능력을 사용합니다. 채집한 마력 중 300이 소모됩니다.] [5분간 건물 파괴 속도가 1.5배 증가합니다.]살아생전 영국의 종신 호국경으로서 철권 독재를 하던 시절, 크롬웰은 평등한 선거를 주장한 수평파와 왕당파 그리고 가톨릭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특히나 영국의 정권을 잡자마자 시행한 것이 통제가 불가능했던 아일랜드 가톨릭 연합의 정복이었다.
아일랜드의 가톨릭 연합 제후들과 켈트족 족장들의 세력을 기반까지 뿌리 뽑기 위하여 크롬웰이 시행한 것은 바로 무자비한 초토화 정책.
토지를 전부 강탈하고 재분배하는 그 정책은 아일랜드 전역을 철저하게 불살라 버리고는 알토란 토지는 측근들에게, 쓸모없는 땅을 아일랜드 인에게 분배했다.
극소수의 개신교 기득권층이 대다수의 가톨릭 소작농을 지배하는 아일랜드의 기형적인 지배 구조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악마가 된 크롬웰의 고유 능력 또한 그때의 일화에서 나타난 그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일명 초토화 능력.
서열전에서는 건물을 파괴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
‘뭐지?!’
이신은 당황했다.
치밀한 심시티로 지어진 건물들이 계산보다 더 빠르게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게 크롬웰의 고유 능력이군.’
이신은 곧장 사태를 파악했다.
완벽하게 방어가 되어 있었던 진영에 그대로 총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바로 그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즉시 견적이 나왔다.
이신의 감각이 위험을 알렸다.
이대로는 막아낼 수 없다는 견적이 나왔다.
어떻게든 막아낼 수야 있겠지만, 계속해서 추가로 소환되어서 밀려오는 후속타는 막아내지 못한다.
꾸역꾸역 막아도 결국은 크롬웰이 유리한 싸움이었다.
크롬웰의 마력 채집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으니 계속 싸워서 병력을 소모해도 충원시킬 여유가 충분한 것.
이신의 두뇌가 팽팽하게 회전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심시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이상, 수세에 몰릴 것은 확실한 상황.
물량 회전 싸움에서도 확실하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당장 방어선이 밀리고 밀려서 앞마당의 마력석 채집장까지 날아가 버리면, 마력 공급이 줄어들어서 병력 소환에 더 불리해진다.
‘그렇다면…….’
이신은 판단을 내렸다.
다행히 이신은 게임의 신이라 불린 남자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역전을 일궈낸 경험이 많았다.
‘공병 하나는 열기구를 제작한다.’
‘방패병들 앞으로 스크럼 형성.’
‘이존효는 나서지 말고 뒤로 빠져서 별도의 작전을 수행할 준비를 한다.’
‘마탑 건설 개시.’
빠른 결단.
끈질기게 막아내고, 지독스럽게 물고 늘어진다.
버티고 버티면서 꾸준히 견제를 넣어서 같이 피투성이가 된다.
그런 진흙탕 싸움은 이신이 누구보다도 잘하는 장기 중 하나였다.
퍼어어엉-
콰아앙-!
투석기에 피떡이 되는 독포자꽃들.
하지만 죽이고 또 죽여도 꾸역꾸역 밀려오면서 심시티를 해놓은 건물들이 무너져 버렸다.
진짜 진흙탕 혈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