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
26화 도전(2)
어느 때처럼 자리에 앉아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얌마, 나갈 준비 해.”
연습 중에 뜬금없이 방진호 감독이 다가와 툭 내뱉었다.
이신은 게임을 종료한 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딜?”
“말 짧다?”
“가긴 어딜 갑니까?”
방진호 감독은 잠시 이신을 패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렀다.
“아마추어리그 본선.”
“아, 오늘인가?”
“말 짧다?”
“혼잣말입니다.”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두었던 흰색 린넨 셔츠를 겉에 걸쳤다.
그제야 방진호 감독은 이신의 화려한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옷은 네가 신경 써서 입는 거냐 아니면 코디가 따로 있는 거냐?”
이신은 대답 대신 자신의 구형 폴더폰을 열어 문자 메시지를 하나 보여주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신님 ♡ 어제 보트 슈즈 보내드린 거 받으셨죠?그거 맨발에 신으시고 작년에 보내드렸던 스트라이프 셔츠랑 네이비 슬랙스 입으세요. 겉에 화이트 셔츠 걸치시면 더 좋을 듯! 오늘 컨셉은 마린룩이에요 ^^
사진 찍어서 보내주시면 좋겠는데 신님은 스마트폰 안 쓰시니 안 되겠죠? ㅠㅠ
광신도 몇 명이 신님 출근하실 때 사진 찍기로 했어요. 거슬려도 양해 부탁드려요 ;ㅇ;
오늘도 사랑해요 ♡
-이신교 대사제 일동]
방진호 감독은 문화 충격에 잠시 비틀했다.
‘뭐 이렇게 사는 새끼가 다 있지?’
신이라서 그런지, 정말 신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무튼 가자.”
“그러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연습실의 선수들은 살 떨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여태껏 이신처럼 방진호 감독 앞에서 건방 떨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확실히 두 사람은 앙숙으로 보였다.
이신과 방진호 감독은 연습실에서 나와 방송국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신은 방진호 감독의 하얀 승용차 보조석에 앉았다.
“면허 땄냐?”
“안 땄습니다.”
“따, 새꺄.”
“시간 나면요.”
방진호 감독은 이신이 앞으로도 면허 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전벨트 매고 바로 고개 숙여 자는 꼴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운전기사를 고용하면 했지 자기가 직접 운전할 놈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방진호 감독은 참고 시동을 켰다.
상대가 평범한 선수나 코치였으면 벌써 몇 대는 팼을 터였다.
***
보조석에서 졸던 이신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다 왔나?’
더 이상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며시 눈을 떠보니,
‘응?’
이신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방진호 감독의 오래된 준중형차 안이 아니었다.
앤티크 양식으로 호사스럽게 꾸며진 넓디넓은 침실이었다.
장정 5인은 족히 잘 수 있는 커다란 침대 위에서 이신은 깨어났다.
“일어나셨습니까, 계약자님.”
하얀 피부에 속이 비치는 얇은 비단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이신은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악마군주 그레모리의 궁전에서 일하는 시녀였다.
“그레모리 님은?”
“군주님께서는 장미 정원에 계십시다. 계약자님께서 깨어나시는 대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지금 가죠.”
“네, 따라오십시오.”
시녀는 앞장서서 걸었다.
얇은 드레스 너머로 걸음을 옮기는 시녀의 뒤태가 고스란히 비쳐져서 이신은 어디다가 눈을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궁전 복도를 지나면서 마주치는 다른 시녀들도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요사스러움과 공손함이 겸비된 태도를 보였다.
궁전 내부를 꾸며주는 장식품 하나하나가 비범한 예술성이 풍겨졌다.
온갖 욕망이 모여 있는 듯한 궁전. 이곳이 바로 악마군주의 궁전이었다.
‘나를 유혹하는 것 같군.’
모든 것이 그레모리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좋지 않으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영원히 있고 싶지 않으냐.
네가 원한다면 그럴 수 있다. 세상 모든 걸 누릴 수 있다.
“도착했습니다.”
시녀는 방긋 웃어보이고는 유유히 물러났다.
이신은 상념에서 깨어나 정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미 정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붉은 장미가 벽을 이루고 있는 미로였다. 온통 예쁜 빨간색 꽃잎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신은 내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게 아니면 미로에서 해매지 않도록 그레모리가 어떤 조치를 취했으리라.
짐작은 옳았다.
멋대로 걸었음에도 이신은 그레모리가 기다리는 정원 중심부에 이르렀다.
이신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마법입니까?”
“아뇨. 모든 길이 여기로 이어질 뿐이에요.”
“아…….”
“잘 지내셨나요?”
그레모리는 상냥하게 웃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악마군주 그레모리. 그녀는 화사한 장미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어떤 장미보다도 돋보였다.
“예, 덕분에.”
“다행이에요.”
“절 소환하신 것은 서열전 때문입니까?”
“맞아요. 조만간 71위의 악마군주에게 도전할 생각이에요.”
“암두시아스?”
“맞아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도전하기 전에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해야겠군요. 암두시아스의 계약자가 선호하는 종족과 전장을 알면 더 완벽한 준비가 될 겁니다.”
“좋아요. 저는 암두시아스와 서열전을 두 차례 치러봤으니 아는 대로 가르쳐 드리죠. 암두시아스의 계약자는 자코모 카사노바라는 자였어요. 당신과 같은 세계의 인물로 상당한 유명인이니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순간 이신은 황당함을 느꼈다.
카사노바라니? 혹시 그 카사노바 말인가?
이신의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그레모리가 웃으며 설명했다.
“짐작하는 그 인물이 맞아요.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던 시절에 암두시아스에게 음악적 재능을 받는 대가로 영혼을 넘기기로 계약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진지하게 음악에 몰두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런 자를 서열전에 내세웠단 말입니까?”
세기의 바람둥이에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고 듣긴 했다. 하지만 그 재능 중에 군사적인 부분은 없었을 터였다.
“전쟁에 능하다고 반드시 서열전에서도 두각을 보이지는 않아요. 암두시아스는 카사노바의 다재다능함과 약삭빠른 부분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겠죠.”
‘일리 있는 얘기군.’
이신 자신도 공군에 입대했던 것 외엔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어쨌든 카사노바는 엘프와 오크, 마물 세 종족을 두루 사용하고 전장은 제2전장 블루레인을 선호해요.”
이신은 잠시 자신이 알고 있는 카사노바에 대한 상식을 떠올렸다.
다재다능, 뛰어난 사교성, 연금술 사기행각, 여성편력과 도피생활…….
‘선호하는 맵은 하나인데 고르는 종족은 여러 개라…….’
이신은 수많은 모의전을 통해 파악한 제2전장 블루레인의 지형을 떠올려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타입일지 뻔합니다. 도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