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1
270화 소동(2)
블로그에 글 하나 올렸더니 기자들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편하군.’
중국 진출에 대해 무성했던 말들이 싹 사라졌다.
글 하나 올린 걸로 일단락된 것이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뜨거웠다.
글에 달리는 댓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이웃으로 등록한 유저들도 폭풍같이 늘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왜 글을 안 올리냐고 채근해 댔다.
또 개인 방송은 왜 안 하냐고 화내는 댓글도 있었다.
‘역시나 귀찮군.’
귀찮음을 느끼는 이유는 이메일 확인을 위해 포털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무수히 많은 알림이 뜨기 때문이었다.
“그냥 뭐라도 올려.”
최환열이 핀잔을 줬다.
“뭘 올려?”
“뭐든 보고 싶다는 뜻이잖아. 너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으니까 글 좀 올려라, 개인 방송 좀 해라 난리지.”
“…….”
이신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답잖은 글을 쓸 이신도 아니었다.
사진은 더더욱.
잠시 골똘히 생각한 이신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날, 블로그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역시나 게임 영상.
집에서 장양과 했던 리플레이 중 하이라이트만 짧게 올린 것이다.
마법이 난무했던 공중전 말이다.
공식전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특이한 장면이었기에 특별히 편집해서 공개한 것.
보통 뭐든 훈련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법.
하지만 이신은 다 계산이 있었다.
다음 4강전 상대인 진철환에게 퀴즈를 내는 것.
‘난 괴물 상대로도 신족을 쓴다. 너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댓글들이 또다시 수백 개씩 달리는 이신의 블로그.
“진짜 할 말이 없네. 저 인간 미친 거 아냐?”
박영호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무슨 컨트롤이 저 모양이야. 아, 진짜 머리 아파지네.”
진철환은 울상이 되었다.
4강전을 앞두고 상대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니 골치가 아팠다.
나란히 4강에 오른 박영호와 진철환.
올도어SCC 인류 제국의 핵심인 이신과 차이와의 승부는 JKT 괴물 제국의 듀오로서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다.
그런데 대결을 앞두고서 이신이 그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썰렁하기 짝이 없는 블로그에 달랑 게시되어 있는 글 2개.
그런데 2번째로 올린 글의 동영상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빌드 오더도 없이 그냥 공중전만 편집되어 올린 영상.
그런데 양측의 비행 유닛 편대가 맞붙는 공중전의 수준이 범상치 않았다.
한 번 잘못 싸웠다가는 삽시간에 망해 버리는 것이 공중전이었다.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양측은 서로의 동선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다.
이신과 장양은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의 위치를 꿰뚫고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맞붙는 순간, 이신의 엄청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사략기 편대와 함께 따라온 수송기 1기.
그 수송기에서 암흑심판관과 대사제가 내렸다.
삽시간에 갖가지 마법을 펼친다.
공중전 컨트롤을 하면서, 마법 유닛을 수송기에 태웠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며 미친 듯이 싸워대는 것이었다.
“봐봐, 잔손질이 하나도 없지?”
“어, 그러네.”
“급해지면 손이 빨라지면서 헛손질도 좀 나오고 그래야 하는데, 전혀 안 그래.”
박영호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다시 재생시키며 설명을 이었다.
“저 인간한테는 저 정도 플레이가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뜻이야.”
물론 컨트롤만 붙잡고 하면 저 정도로 할 수 있는 선수가 몇몇 있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병력도 생산하고 추가 확장 기지도 가져가는 등 운영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
이신의 진가는 바로 그런 점에서 나온다.
저렇게 컨트롤 난이도가 높은 플레이를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원채 손이 빨라서 하나도 무리가 안 된다. 그래서 손놀림이 차분하고, 실수도 웬만해서는 안 나온다.
그래서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아슬아슬한 플레이에 능하다.
때문에 상대도 이신이 뭘 할지 몰라서 불안을 느낀다.
심지어 이제는 3종족을 전부 다 플레이한다!
이신의 인류에 대비해 왔던 진철환은 이 영상을 보자 신족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신족은 괴물에게 약하다.
그건 당연한 종족 상성이었다.
하지만 최영준과 같은 초일류 신족 플레이어는 그런 종족 상성을 뛰어넘는다.
이신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사략기와 마법 유닛을 잘 쓰면, 도리어 괴물의 천적이 될 소지가 컸다.
“아, 진짜 신족 하면 어떡하지.”
진철환은 탄식을 했다.
상대는 이신.
결단코 쉬운 싸움은 아닐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적어도 예상된 범주 안에서 싸우고 싶었다.
준비했던 대로 싸워서 그래도 지면 내 실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하며 깔끔하게 승부를 마치고 싶다.
하지만 이신은 그렇게 상대하기 깔끔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당하게 만드는 걸 즐긴다.
예상치 못했던 허를 찔려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고 싶어 하는 변태였다.
“내 생각엔 너더러 고뇌 좀 해보라고 던져준 동영상 같아.”
“그치? 그 인간 진짜 사람이 못되지 않았어?”
“내가 볼 때 이신은 신족을 준비하지는 않고 있을 거야. 게임이 잘 안 풀린다면 즉흥적으로 신족을 선보일 수는 있어도, 준비는 어디까지나 인류야.”
“하긴, 괴물 상대로 인류가 얼마나 개사기인데 굳이 신족을 쓸 필요가 없지?”
박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답은 속으로 삭혔다.
‘적어도 널 상대할 땐.’
냉정하게 말해 진철환은 이신의 적수가 못 됐다.
괴물은 그야말로 이신이 눈 감고도 잡는 상대 종족이었다.
허를 찔러야 할 정도의 상대가 아닌데, 이신이 쓸데없이 비합리적인 변수를 쓸 이유가 없었다.
진철환의 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이신으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박영호는 그 생각은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나밖에 없어.’
그것은 박영호의 각오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신을 꺾고 최고의 권좌에 오른다면, 그건 자신이어야 했다.
‘반드시 이길 거다.’
박영호의 4강전 상대는 차이.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이신과의 사제 대결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절대로 질 수 없었다.
부유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서 이신의 제자가 되어서 원채 가지고 태어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그런 속편한 어린 녀석과는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달랐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학업을 접고 프로게이머가 된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는지 그 쥐방울만 한 태국 꼬맹이는 모를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연습생 월급을 꼬박꼬박 집에 붙이면서, 박영호는 피눈물로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겨야지.’
상대가 누구든 절대로 안 진다.
박영호의 불타는 눈빛이 동영상 속의 현란한 플레이를 펼치는 이신을 겨냥했다.
***
용인의 저택으로 이사를 갔다.
비싼 돈을 주고 업체를 고용했기 때문에 딱히 한 일은 없었지만, 이사를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장양은 컴퓨터가 세팅되자마자 게임 삼매경에 빠졌고, 차이와 존은 집안 곳곳을 다니더니 인근으로 탐험을 떠났다.
주디는 이신이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겠다며 매우 열심히 집안 풍경 사진을 찍었다.
“이거 좋죠?”
“이 사진은 어때요?”
“저기 앉아보세요.”
이신은 귀찮음이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이 주디와 어울려 주어야 했다.
이사하면서 가구 배치 지시나 부엌 정리 등을 주디가 거의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었던 이신은 차마 피곤하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 사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주디는 이신이 1층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을 택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
주디의 센스가 들어간 1층 거실 인테리어.
그리고 특유의 피로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이신의 빛나는 외모까지.
사진은 그야말로 한 폭의 화보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블로그에 투척하면 수십만 이신교 광신도들이 다운받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쓸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주디가 가장 먼저 자기 바탕화면을 그 사진으로 바꿔 버렸다.
이신이야 늘 거울로 보는 자기 얼굴이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올리세요.”
이신은 두말없이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말 잘 듣는 이신의 태도에 주디가 매우 흡족해했음은 물론이었다.
‘정말 피곤하군.’
그날 밤, 이신은 1층 안방에 꾸며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였다.
딱히 한 일이 없었는데,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간단히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이신은 잠을 택했다.
때로는 피로한 몸으로 푹신한 침대에 누운 달콤함을 즐기고 싶었다.
‘응?’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문득 침대에서 느껴지는 안락감이 평소와 다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나 침구류는 이사 전과 동일한데 말이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을 때였다.
“피곤한 일이 있었나 봐요?”
“……!”
천하의 이신도 깜짝 놀랐다.
지척에 그레모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이신은 어느새 마계에, 그것도 그레모리의 침실로 소환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신과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은 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놀랐나요?”
“…예.”
“후훗, 미안해요.”
그녀는 이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바람에 이불이 살짝 들춰지면서 그녀의 상체가 드러났다.
그레모리는 젖가슴이 반쯤 드러난 보라색 네글리제 차림이었다.
뽀얀 살결을 보자 이신은 잠이 확 달아났다.
“대신 피로를 풀어드리죠.”
그녀의 손길이 이마를 매만졌다.
그 바람에 이신은 그곳에서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이마를 매만지고 머리칼을 쓸어 올릴 때마다 쌓여 있던 프로가 사르르 녹는 것이 느껴졌다.
얼음이 녹고, 죽었던 세포가 다시 살아나 약동하듯이, 이신은 편안하면서도 자극적인 감각을 느꼈다.
그레모리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신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다.
그런 기묘한 상황 속에서, 이신이 입을 열었다.
“서열전입니까?”
“네, 물론 우리가 도전하는 거고요.”
“마침내군요.”
다음 상대는 서열 54위의 악마군주 아미.
그리고 그 계약자는 다름 아닌 항우였다.
‘하필이면 이런 때.’
4강전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개인리그가 끝날 때까지는 다음 서열전이 없기를 빌었는데, 미리 그레모리에게 양해를 구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대되는 마음 역시 들었다.
상대가 그 유명한 항우였다.
유방과 중국 천하를 다툰 역발산기개세의 영웅 말이다.
항우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최악의 폭군이기도 한데, 중국에서는 영웅으로 숭상하기도 했다.
그의 용맹과 드라마틱한 최후가 너무나도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상대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신은 흥분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강렬한 승부욕에 아드레날린이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