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결판(1)
“역시 박영호 상대로 후반 병영 체제는 무리 아니었을까?”
선수대기실.
최환열이 의견을 제시했다.
기갑 체제였다면 기동포탑의 막강한 화력과 고속전차의 지뢰로 공성벌레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병영에서 생산되는 보병·의무병·화염방사병으로는 공성벌레는 무리다.
그 전에 충분히 괴물을 박살내어서 승기를 가져와야 했다.
“기갑 체제로 전환했어도 장단점은 있었어.”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박영호가 너무 초인적으로 잘 버텼을 뿐이었다.
다만…….
“박영호가 폭탄충으로 전술위성을 아주 잘 잡았어.”
“차라리 기동포탑을 같이 모으는 빌드로 갔으면 어땠을까?”
“그럼 훨씬 나았을지도.”
그 점은 이신도 인정했다.
어쨌거나 진 건 진 거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스코어 2-1.
이신의 시나리오 범위 내였다.
계획대로라면 이제 다음 4세트에서 마무리된다.
“곧 경기 시작합니다.”
스태프가 선수대기실로 와서 일러주었다.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끝내고 올게.”
그 말이 최환열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들렸다.
이것이 한국에서 보는 이신의 마지막 개인리그가 될 지도 몰랐다.
“그래, 다녀와라.”
최환열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신은 무대를 향해 나아간다.
***
4세트, 신성한 잔흔.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스토리에 의하면, 신족의 성지였으나 전쟁으로 피폐해져 이제는 옛 터만 남은 행성이었다.
맵은 스토리대로 신족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초창기에는 신족에게 너무 유리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
-이제 인류나 괴물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밸런스가 맞춰지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신족에게 유리한 맵입니다. 어쩌면 이신 선수가 여기서 신족을 고를 수 있다는 예측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오가긴 했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죠. 이 맵의 최고 승률과 최다승 기록 보유자가 바로 이신 선수거든요.
-예, 그렇습니다. 인류로도 이미 최고 기록을 쌓은 맵에서 이신 선수가 굳이 차선을 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다승 2위는 영국의 알렉산더 스테인 선수고, 3위가 최영준 선수가 되겠습니다.
종족을 선택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해설진의 예상대로 이신은 인류를 택했다.
양상은 3세트와 비슷했다.
이신이 보병·의무병·화염방사병으로 구성된 병영 체제로 거친 압박을 시작했다.
박영호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온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운 채 상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상대는 이신.
사상 최고의 공격성과 결단력을 가진 플레이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과감한 돌파에 당해 패배해버린다.
언제든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위험한 인간과 싸운다는 것은 이토록 고달픈 일이었다.
하지만 3세트에서 이미 질리도록 겪은 보병 체제의 공격이었다.
박영호는 상당히 냉정하게 잘 대처하며 3광산까지 무사히 확보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전함?!
-이신 선수가 전함을 뽑았습니다!
전함(戰艦).
인류의 최종 테크 트리에 있는 거대한 비행 유닛이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모든 유닛을 통틀어도 최강인 이 초호화 전력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기는 힘들었다.
-이신 선수는 빠른 전함을 전략으로 택했습니다!
-전술위성의 숫자가 줄어든 대신, 전함을 뽑은 이신 선수. 이러면 박영호 선수가 조금 골치 아파지겠는데요. 전함은 전술위성과 달리 쉽사리 격추시킬 수가 없으니까요.
전함은 웬만한 건물에 비견될 정도로 체력이 많아, 격추시키려면 많은 폭탄충이 필요했다.
심지어 전함의 공격 한 방에 폭탄충 1마리가 즉사한다.
무엇보다도, 전함이 그냥 추락하게 가만히 놔두겠는가?
보병들이 곁에서 호위를 할 게 뻔했다.
‘제기랄, 까다롭게 나오네.’
박영호는 자신의 체제를 공중 공격도 가능한 독침충 위주로 바꿔야했다.
이 점도 이신이 노리는 바였다.
3세트에서 박영호의 수비는 바퀴와 촉수충 위주였다.
그렇게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면서 손에 익었는데 이제는 독침충을 다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독침충의 독침도 원거리 공격이기 때문에 흑안개 속에서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3세트와 똑같은 방식의 공격.
거기에 전함이 추가됐다.
전함이 앞장서서 호위하는 가운데, 항공수송선이 침투해 병력을 드롭했다.
병력은 전함과 호응하여 박영호의 본진 내부를 휘젓는다.
박영호의 손길이 바빠졌다.
괴물주술사가 흑안개를 펼치고 독침충과 촉수충이 맞상대한다.
꾸역꾸역 공격해오는 이신의 병력이 점점 부담되기 시작했다.
전함의 숫자도 1기씩 쌓여가 점점 박영호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시달리는 와중에도 박영호는 박영호였다.
어느새 4광산을 확보하고, 긁어모은 자원을 바탕으로 공성벌레를 생산한 것이다.
하지만 공성벌레도 하늘에 떠 있는 전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박영호가 할 수 있는 전술 패턴은 한 가지였다.
-푸하악!
괴물주술사가 전함들에게 피의 저주를 끼얹었다.
피의 저주로 인해 체력이 닳아버린 전함에게 폭탄충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파아앗!
-띠링!
여러 가지 마법 효과음이 일시에 울려 퍼졌다.
“우오오오오!”
“와아아아아!”
“꺄아아악!”
짜릿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띠링거리는 효과음은 의무병이 마법 기술 중 하나인 ‘회생’을 펼쳤을 때 나는 소리였다.
의무병의 회생 스킬은 대부분의 마법에 의한 이상 상태를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원채 공식 경기에 등장하는 빈도가 드문 스킬이라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거기에 전술위성의 디펜시브 실드까지 걸린 전함!
3세트와 달랐다.
후반 병영 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지만, 전함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법이 난무하면서 전투는 점점 컨트롤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이신의 특기 분야다.
-키엑!
-키에엑!
전함이 언덕 너머에서 나타나 기습하자 일벌레가 원 샷 원 킬로 죽어나갔다.
박영호가 괴물주술사와 폭탄충으로 방어에 나섰고, 이신은 전술위성을 동원했다.
-푸하악!
-파아앗!
괴물주술사의 피의 저주와 전술위성의 디펜시브 실드가 동시에 작렬했다.
폭탄충은 실드로 보호 받는 전함을 지나쳐, 그대로 전술위성을 격추시켰다.
-퍼어엉!
하지만 디펜시브 실드가 걸린 전함은 속수무책!
박영호는 일벌레들을 대피시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격전은 다방면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다.
인류 진영의 보병 부대와 괴물 군단이 사방팔방에서 난전을 펼쳤다.
박영호는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3세트에서도 이런 난전에서 피지컬로 이신을 능가했던 박영호였다.
하지만 쉽사리 처리되지가 않는 전함이 야금야금 박영호의 힘을 갉아먹고 있었다.
속도도 느린 주제에 치고 빠지며 얄밉게 견제 플레이를 펼치는 전함.
그럴수록 박영호의 정신적 피로는 커져갔다.
‘절대 안 져. 절대 굴복 안 해, 이 새끼야!’
박영호는 이를 악물며 계속 맞섰다.
전함은 포기했다.
그 대신 보다 빠른 지상군의 기동력을 이용해 게릴라를 펼쳐 보복하기로 했다.
둘이 함께 피 흘리며 진창에 잠겨 들어가는 진흙탕싸움만이 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 줌의 바퀴 떼가 시계 방향으로 맵을 우회하며 달린다.
이동 중인 이신의 병력을 피해 침투한 바퀴 떼는 12시에 위치한 이신의 확장 기지를 기습했다.
12시 확장 기지는 참호가 하나로 방어가 되어 있었다.
그 정도는 깰 수 있다고 판단, 박영호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이신도 반응이 빨랐다.
“와아아―!!”
일을 하던 건설로봇들이 우르르 달려와 블로킹한 것이다.
참호를 빙 둘러 싸서 바퀴 떼가 참호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
-와, 순식간에 블로킹!
-정말 대단합니다! 저럴 때마다 건설로봇이 사기라는 소릴 듣는 거예요!
-오, 하지만 박영호 선수도 소득 없이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바퀴 떼는 대신 건설로봇들을 공격해서 다수 잡는 데 성공했다.
박영호의 게릴라는 끝이 없었다.
중간 길목에 촉수충을 매복시켰다가 지나가는 보병들을 공격하고, 하늘군주에 괴물주술사와 바퀴 떼를 태워 드롭을 감행하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번거롭게 만드는 게릴라로 끊임없이 이신을 괴롭혔다.
그 탓에 이신이나 박영호나 똑같이 자원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똑같이 가난해서 없는 자원을 쥐어짜는 처절한 혈투였다.
“이신! 이신! 이신!”
“박영호! 박영호!”
팬들이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 이름을 부르짖는다.
-정말 이렇게 치열할 수가 있습니까! 피비린내가 여기까지 느껴져요!
-하하,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두 선수의 결승전답습니다. 전 세계가 감탄을 하고 있을 거예요. 한국의 개인리그 결승전이 이 정도 수준이었냐고요!
선수들의 평균적인 실력은 미국이나 중국·유럽 등에 추월당한 지 오래인 한국 e스포츠계.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정상급 선수는 꼭 한두 명씩은 배출했다.
최환열이 그랬고, 오성준이 그랬고, 이신이 그랬다.
박영호와 최영준 등도 그런 케이스였다.
아직 미비한 한국의 제반 시스템의 열악함을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
아직 모든 게 부족한 한국에서 이토록 경이로운 결승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이 게임의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박영호는 이신의 대적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실시간으로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점점 불리해졌다.
자원도 병력 규모도 계속 열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호는 끊임없이 소수 병력으로 게릴라를 펼쳐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괴물주술사로 흑안개를 치고 피의 저주를 뿌리는 컨트롤은 완전히 신들려 있었다.
-박영호! 좀 더 힘내야 합니다! 이것만 이기면 2대 2 동점이에요! 5세트로 가면 우승도 노릴 수 있습니다!
-이기려면 확장을 더 해서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신 선수가 그렇게 가만 놔두지 않죠. 맵을 보세요! 미니 맵에 여기저기 이신 선수의 병력이 있어요!
박영호의 강렬한 근성만큼이나, 이신 역시 철두철미하고 집요했다.
맵의 전 지역에 보병을 하나씩 세워놓고서 박영호의 동향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승부를 예측불허로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싹도 피지 못하게 말살했다.
그러면서 공격, 공격, 계속 공격!
그걸 꾸역꾸역 다 막아내는 박영호의 철벽!
도저히 숨통이 끊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신은 박영호를 철저히 가둬놓고 자원이 말라 아사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계속 소모전을 벌여서 자원 고갈을 앞당기는 것.
박영호의 얼굴이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로기에 빠질 듯했다.
좀비처럼 버티고 있긴 하지만, 무언가 사소한 계기만 주어저도 폭삭 주저앉을 터였다.
그 정도로 박영호는 자신을 완전히 연소시킨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기가 주어졌다.
1기씩 야금야금 생산되어서 쌓인 전함이 일제히 박영호의 목숨 줄 같은 확장 기지를 공격한 것.
거기에 항공수송선 3척도 함께 동원되었다.
항공수송선 3척에서 병력이 내린다.
전함과 함께 박영호의 확장 기지를 깨뜨려버렸다.
그 순간, 박영호는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손은 여전히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얼굴은 이내 쓸쓸한 허탈감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직 GG는 치지 않았다.
하지만 박영호는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완전히 떼버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모은 두 손은 힘없이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한다.
상대를 승자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것이었다.
-아, 박영호…….
-정말 잘 싸워줬는데요. 박영호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런 명승부가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인데요. 너무 아쉬운 마음에 쉽사리 GG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찡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와아아아!”
“박영호! 박영호!”
대형화면에 문득 박영호의 부모님이 비춰진다.
박영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잠시 후, 박영호의 GG가 선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