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투혼(2)
경기장의 카메라는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재경기를 해야 할지 말지 논의하는 관계자들도 비추고, 해설진을 비추기도 했다.
해설진도 재경기인지 판정인지 결론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 이 상황에서 딱히 할 수 있는 멘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다가 대형화면에 박영호가 비춰졌다.
그러자 모든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박영호는 늘 그랬듯 컴퓨터 인공지능을 상대로 게임을 하며 손을 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신이 곧 돌아올 거라는 것을 믿고 3세트를 준비했다.
이 난리통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박영호의 모습은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아, 러너는 카이저가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립니다.
-아까 부스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는 모습도 보였는데요, 러너의 판단은 3세트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죠.
-저희도 소식이 더 들어오는 대로 바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문 열어.”
제정신이 들자 이신은 통역 반지에 마력을 넣어 영어로 말했다.
상체를 일으킨 이신을 여러 사람이 뜯어 말렸다.
“일단 병원부터 가시지요.”
왕춘 감독이 권유했다.
“그래요, 선생님! 방금 쓰러지셨잖아요!”
주디가 애가 타서 말했다.
“비켜, 난 멀쩡해.”
이신은 단호했다.
실제로도 멀쩡했다.
쓰러졌을 때 어디 부딪쳐서 다쳤을까봐 치유의 힘도 한 번 써서 온몸을 깨끗하게 정화시킨 뒤였으니까.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한 상태인 이신은 말리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금메달이 당신의 건강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왕춘 감독이 타일렀다.
이신은 피식 웃었다.
“그런 금붙이 따위는 집에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이신만이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상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팬들도. 그거면 됩니다. 내가 가야 하는 이유는 그걸로 충분해.”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접 구급차의 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왔다.
“어?”
“카이저다!”
“깨어났어!”
“휴, 다행이군. 심각한 건 아닌가봐.”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군.”
찰칵찰칵!
기자들이 득달같이 모여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플래시가 터져 나와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평소에 어떤 지병이 있으셨던 겁니까?”
“경기는 할 수 있습니까?”
질문이 쏟아졌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멀쩡합니다. 경기는 바로 속행되어야 합니다.”
이신의 발언은 실시간으로 속보가 되어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따라 내린 왕춘 감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간단한 진찰이라도 받아봅시다.”
이신은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구급대원 하나가 청진기로 간단하게 이신을 진찰했다.
“특별한 증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무리하셨습니까?”
“밤새운 탓에 피곤했습니다.”
이신은 대충 대꾸해 주었다.
구급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꼭 정확한 검진을 받아보셔야 합니다.”
“예.”
통역을 통해 이 대화를 들은 왕춘 감독은 코치를 시켜서 경기장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케 했다.
[이신 금세 깨어나] [깨어난 이신 “경기 속행돼야”] [이신 금방 회복 “큰 문제 아냐”]속보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신은 경기장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옮기려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의 발길을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쓰러졌을 때 가장 슬퍼하며 달려왔고, 깨어났을 때 눈물 어린 얼굴로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
정신을 차렸을 때 여러 사람 중 가장 먼저 그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
이신은 돌연 뒤돌았다.
구급차로 돌아가, 아직 그곳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디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망가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디는 코앞에 있는 이신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서서히 얼굴을 들었다.
“……!”
역시나 이신이 눈앞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경기를 먼저 생각했고, 승부를 치르러 곧장 떠날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아직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신은 웃었다.
보기 드문 따스한 미소였다.
“…선생님?”
이신은 검지로 주디의 눈가에 뭍은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평생 치열한 싸움에 써왔던 그 손끝의 감촉이 눈가에서, 뺨에서 느껴졌다.
“네가 그러고 있으면, 내가 갈 수가 없잖아.”
주디는 왈칵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눈을 마주보고 있을수록, 따스한 미소와 손길을 느낄수록, 감정은 뜨거워졌다.
도저히 이 남자를 가만 놔둘 자신이 없었다.
두 손을 뻗어 이신의 옷깃을 잡고 살짝 당겼다.
가볍게 당겼음에도 이신은 저항 없이 끌려왔다.
“오오!”
다음 순간에 벌어진 두 사람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워했다.
구급대원들은 웃음으로, 왕춘 감독은 절레절레 내저으며 짓는 쓴웃음으로, 기자들은 플래시 세례로 두 사람을 축하했다.
* * *
“와아아아아아!!!”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수만 관중이 뜨거운 열광으로 카이저를 연호했다.
-카이저가 돌아왔습니다! 큰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정밀 검진을 받아봐야겠지만, 일단은 과로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무사히 무대에 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카이저는 만류하는 걸 뿌리치고 경기 속행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기다려주는 관객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랬다.
카이저가 무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온 이신은 부스에 들어가기 전에, 관중을 향해 한 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박영호가 있는 부스를 향해서도 또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기다려준 관중과 상대에 대한 사과였다.
관중들이 너도나도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정말 여러 가지로 대단한 선수입니다.
-e스포츠가 낳은 최고의 슈퍼스타가 누군지 짧은 시간에 다시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켜보는 팬 여러분들께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요? 자, 마침내 기다리셨던 3세트가 시작되려 합니다!
3세트가 시작되었다.
이신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스텔스 전투기를 쓰려고 했었는데 안 되겠군.’
본래 3세트 계획은 2-0으로 궁지에 몰린 박영호를 스텔스 전투기 견제로 괴롭히는 것이었다.
멘탈을 계속 건드려서 무너지게 만들려는 이신의 심리전!
하지만 이신이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연패로 몰려 있었던 박영호의 멘탈이 다시 리셋된 것이다.
심리전에서도 중요한 것은 타이밍.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한 이신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은 정석이다.’
더 불리한 쪽은 이신이었다.
마계에서 서열전을 치른 탓에 흐름이 끊겨서 다시 감을 끌어올려야 했다.
다행히 하루 안에 끝나고 돌아와서 별문제는 없었지만, 계속 이어가던 결승전 승부의 긴장감이 사라져 버려서 다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안전한 정석으로 플레이해 실전 속에서 감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박영호는 정석적으로 싸워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오오! 러너가 모험을 합니다!
-카이저를 상대로 심리전을 걸었어요!
박영호가 초반부터 바퀴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찌감치 올인 전략으로 끝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바퀴 6마리를 계속 이리저리 돌리면서 이신의 정찰을 말끔하게 커트.
그러면서 더 많은 바퀴는 다른 지역에 숨겨놓아서 이신으로 하여금 바퀴 올인의 의도를 모르게 했다.
박영호의 심리전은 계속되었다.
바퀴 6마리가 돌연 이신의 앞마당으로 파고든 것은 고의적인 무리수였다.
기습적으로 파고들어서 앞마당에서 자원 채집하던 건설로봇들을 사냥하려는 시도!
그러나 이신은 귀신 같이 바퀴들의 타깃이 된 건설로봇을 클릭해 위로 대피시켰다.
다른 건설로봇을 노렸지만, 그 또한 잽싸게 도망가는 바람에 체력이 아슬아슬하게 깎였음에도 죽지 않았다.
“오오오!!”
“역시 카이저!”
건설로봇을 단 1기도 잃지 않은 이신의 반사 신경과 컨트롤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본진 출입구를 지키던 보병들이 우르르 내려와 총을 쐈다.
-투타타타타타!
-키엑!
-키에엑!
곧바로 바퀴를 빼고자 했지만 보병 2기가 퇴로를 교묘하게 막고 있었다.
한 번 파고든 바퀴를 그냥 온전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이신의 센스 넘치는 디펜스였다.
박영호는 아무런 소득 없이 바퀴를 5마리나 잃고 말았다.
-건설로봇을 한두 기 잡고 빠져나왔으면 멋진 성과였을 텐데, 카이저의 디펜스가 너무 좋았습니다.
-방금 쓰러졌다가 일어난 사람 맞나요? 손은 더없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하지만 러너는 고의적으로 방금 공격에 모든 바퀴를 다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만 투입했는데 이건 러너가 카이저에게 던진 미끼일 수가 있습니다.
-아! 그렇죠. 카이저가 방금 거둔 이득 때문에 러너에게 바퀴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는데요?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 뒤로 박영호는 고작 3마리의 바퀴만 보여주면서 이신의 앞마당에 기웃거렸다.
그리고…….
-나갑니다! 카이저가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러너를 압박하러 떠났어요!
-보병 12기와 의무병 2기! 러너가 있는 7시를 향해 내려가는데요?!
그 순간,
“오오오오!”
박영호는 지금 순간을 위해 숨겨두었던 바퀴 떼로 이신을 덮쳤다.
남하하던 보병들을 옆구리에서 들이받는 바퀴 떼!
-키엑! 켁!
-으악!
-으아악!
거칠게 몰아치는 바퀴들에게 보병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이신은 아차 싶었다.
쓰러졌다가 깨어난, 실제로는 마계에서 이제 막 돌아온 이신에게 박영호는 가차 없이 날카로운 승부수를 펼친 것이다.
보병은 전부 잡아먹혔지만, 이신은 의무병 2기라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의무병 2기는 추가 생산된 화염방사병 2기와 합류하여서 쫓아오는 바퀴들에게 맞섰다.
화염방사병은 화염을 뿌려 범위 공격을 펼치므로 잘 싸우면 바퀴들을 삽시간에 학살할 수 있다.
하지만 박영호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화염방사병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순간 바퀴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것.
그리고는 다시 한 데 모이면서 화염방사병을 삽시간에 에워싸 버렸다.
-으악!
-키엑!
계속해서 바퀴들이 계속 뿔뿔이 산개했다가 사방에서 에워싸는 움직임으로 다른 화염방사병마저 단숨에 죽여 버렸다.
의무병 2기가 붙어서 치료해 주고 있었음에도, 박영호가 받은 피해는 바퀴 3마리에 불과했다.
추가 생산된 바퀴들이 계속 달려왔다.
이신은 앞마당의 통제사령부 건물을 들어 올렸고, 건설로봇들도 모두 대피시켰다.
건설로봇들은 본진 출입구에 서서 소수의 추가 생산된 보병과 함께 필사적으로 본진을 사수했다.
하지만 박영호의 바퀴 떼는 계속해서 몰려와서 온몸으로 블로킹하는 건설로봇들을 1기씩 죽여 나갔다.
죽을 것 같은 건설로봇을 다른 건설로봇들로 수리하는 이신의 컨트롤도 예술이었지만, 계속 몰아치는 박영호의 공세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신은 고개를 휘휘 젓고는 GG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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