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위를 향하여(1)
교류전은 그럭저럭 잘 끝났다.
비록 패배했지만 SC스타즈를 상대로는 당연한 일.
그래도 최하위 프로팀을 가지고 단시간에 그 정도까지 선수 역량을 끌어 올렸으니 한태곤 감독의 능력을 인정해야 했다.
무언가 팀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이신도 만족했다.
팀 넥스트의 새로운 팀명에 대해서는 한태곤 감독에게 일임했다. 이신은 정말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태곤 감독은 알겠노라고 하고 선수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현실의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이신은 마계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급한 일도 다 끝났으니 이제 마계에 신경을 써야겠군.’
너무 오래 손 놓고 있으면 감이 떨어진다.
게임이 그렇듯 서열전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에 리처드 1세에게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로 도전을 받는 바람에 1패를 당하지 않았는가.
리처드 1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는 점이 주된 원인이고, 리처드 1세의 활약상이 정확한 계산에 담기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였다.
하지만 평소에 모의전을 하며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그 맹렬한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참에 서열전에 집중해서 10위권대로 진입해야겠군.’
현재 그레모리의 서열은 22위.
세 단계만 더 올라가면 19위로 10위권에 진입하게 된다.
이신이 알기로 72악마군주의 축제에서 봤었던 계약자 전단도 20위였는지 21위였는지에 위치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단 같은 경우 축제를 통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도 파악했으니 더 상대하기 쉬웠다.
‘그리고 이쪽 서열에 위치한 계약자들의 실력에 익숙해져야 하기도 하고.’
축제를 통해서 서열이 너무 한 번에 껑충 뛰었다.
그전까지는 달리 이신을 긴장시킬 만한 실력자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실력 좋은 계약자의 도전을 받게 되면 적응을 못할 수도 있다.
리처드 1세에게 당한 1패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하고 자성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지금부터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이신은 반지에 마력을 주입하고서 그레모리에게 속으로 말을 건넸다.
‘들리십니까?’
-네, 카이저. 무슨 일이시죠?
‘다음 서열전을 준비해 볼까 합니다.’
-알았어요.
파아앗!
이윽고 블랙홀 같은 검은 마력이 나타나 이신을 빨아들였다.
* * *
“카이저가 먼저 원해서 마계로 온 적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요?”
“그렇습니까?”
“후훗,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레모리는 눈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신의 마음을 흔드는 마성의 매력을 풍기며 말이다.
“다만 지금은 조금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왜 그렇습니까?”
의아해진 이신의 물음에 그레모리가 답했다.
“악마군주 마르코시아스가 현재 활발하게 서열전을 진행 중이거든요.”
“마르코시아스라면?”
“계약자 전단의 악마군주예요. 현재 20위 서열에 있죠.”
“서열전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면…….”
“네, 서열 19위의 악마군주 비네와 승부를 벌이는 중이죠. 축제 후로 한동안 잠잠했는데, 아마도 우리에게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이쪽은 리처드 1세 측과 싸워 승리하면서 막대한 마력을 챙겨 서열을 한 단계 더 상승했다.
22위.
전단과 피로스가 위치한 20, 19위를 노릴 수 있는 가시권에 오른 것이다.
“역시 카이저와 겨루게 되는 게 무서워서 더 높은 서열로 도망치는 편이 낫다고 본 걸까요? 후훗.”
그 말에 이신은 축제에서 만났던 전단을 떠올렸다.
“구차하지만 이번이 내 실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달라는 뜻이었네.”
“한신의 말마따나 자네는 하위 서열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닐세. 나중에 일대일로 겨루게 되면 그땐 부끄러움 없이 겨루도록 하지.”
이윽고 이신이 말했다.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그런가요?”
“전단은 저를 두려워해서 피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의 서열 상승에 자극을 받은 건 있어 보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악마군주 마르코시아스는 악마군주 비네에게 가로막혀서 오랫동안 20위에서 더 올라가지 못했거든요.”
악마군주 비네의 계약자는 피로스.
서양 전쟁사에 빠지지 않는 레전드.
한니발이 최고의 명장으로 알렉산드로스 다음으로 피로스를 꼽았으며, 다음이 자신이라고 한 말로도 유명하다.
전단으로서는 이기기 쉽지 않은 강력한 적수였음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신을 보면서, 전단도 자극받아 자신 역시 언제까지고 정체해 있지 않겠다는 투지가 생긴 게 아닐까?
어쨌든 일단은 그레모리의 말마따나 지켜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데 제 3자까지 뛰어들면 괜히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저쪽에서 서열 정리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도전을 시작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도 재정비를 좀 해야겠고.’
현재 이신의 권속으로 있는 질 드 레와 사도 5인은 모두 하급 악마였다.
그리고 이신은 상급 악마로서 현재 무려 75,351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6명 모두를 중급 악마로 승격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다시 중급 악마로 하락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이신은 일단 상급 악마의 기준인 3만을 제외한 나머지 마력을 사도들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질 드 레도 챙기지 않을 수 없지.’
질 드 레는 더 이상 사도가 아니었다.
서열전을 위한 실용성을 생각하면 다른 사도들을 우선적으로 중급 악마로 만드는 게 낫다.
하지만 이신은 일단 중급 악마로 승격시켜줄 대상 4인에 질 드 레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비록 사도로서 서열전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최측근으로서 전략 구상 및 연습에 기여하는 질 드 레이므로 누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챙겨줘야 할 존재였다.
‘질 드 레에게는 사도들보다 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고.’
이신은 질 드 레를 그냥 충성스럽고 유능한 권속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신이 그레모리와의 계약을 그만두고 떠나게 되면, 질 드 레는 자신의 부재를 채울 후임이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연장 없이 덜컥 떠나버려서 그레모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레모리에게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고, 함께 싸워온 정도 있었으니까.
이신의 연습 상대 역할을 하면서 덩달아 실력을 쌓은 질 드 레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수제자였다.
‘물론 계약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니까.’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우승한 뒤, 게임에 대한 열정이 한풀 꺾인 이신이었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픈 의지는 변함없었지만, 더 올라갈 데가 없는 상실감은 적지 않았다.
그런 이신에게 서열전은 색다른 분야였다.
열정을 잃건 나이가 들건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게이머를 관둔다 해도, 여전히 이신은 서열전으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레모리를 서열 1위까지 끌어올려서 더 이상 상대가 없어지면 싫증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신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려웠던 까닭이다.
열정을 잃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된단 말인가?
이신은 스페이스 크래프트에 감사했다.
열정을 다해 살 수 있게 해준 e스포츠가 좋았고, 이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온 스스로가 좋았다.
그걸 모두 잃게 된다면, 남은 건 무료한 삶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때도 과연 너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이신은 흠칫했다.
[넌 다시 이 질문 앞에 서리라.]‘뭐지?’
뭔가가 생각날 것 같은데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짙게 서리 낀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갑갑함을 느꼈다.
휘휘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버린 이신은 자신의 영지로 향했다.
그레모리의 궁전 뒤뜰, 귀족의 별장처럼 화려한 저택에 이르자 질 드 레와 사도 5인이 우르르 나와 이신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주군.”
질 드 레가 대표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끄덕인 이신이 말했다.
“조만간 서열전을 치를 것이다.”
“바로 위쪽 서열에서 다툼이 치열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정리가 끝나면 그때 우리도 움직인다.”
전단 측은 20위.
피도전자인 피로스 측은 19위였다.
22위인 이신은 21위와 서열전을 치르면 그만일 뿐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서열전은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라, 그 위아래로 수많은 영향을 미친다.
리처드 1세의 도전을 받은 이신이 이를 격파하고서 서열이 한 단계 상승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하위 서열에서 큰 배팅에 실패해서 몇 계단씩 하락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높은 서열일수록 그런 변동 폭은 적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20위권 초반에서 10위권 후반 사이는 서로의 마력 격차가 미세하여서 변동이 곧잘 벌어지는 현황이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건 모두 이겨야 할 상대다. 이 참에 19위까지 치고 올라갈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피로스와 전단 둘을 모두 상대한다고 가정하고 준비해야겠군요. 전단의 경우는 마물을 다루니 제가 연습 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너희를 중급 악마로 만들어야겠다.”
그 말에 여섯 권속의 눈빛이 변했다.
마계 생활에 찌든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인 이신과 달리 마력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이제 어엿한 악마라 할 수 있는 그들이니 말이다.
“일단은 네 사람을 중급 악마로 만들 생각인데, 일단 첫 번째는 질 드 레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
질 드 레의 얼굴에 감격이 어렸다.
이제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제외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신이 가장 먼저 챙겨준 것이다.
“그리고 콜럼버스.”
“아자! 감사합니다, 주군!”
콜럼버스가 뛸 듯이 기뻐했다.
사도로 들어온 순서나 활약상이나 콜럼버스는 우선순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존효.”
“저의 용맹으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존효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지막은 오귀스트 마르몽이었다.
결국은 사도로 들어온 순서대로 선정된 것이다.
서영과 로흐샨은 다음 기회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로흐샨이 넉살 좋게 말했다.
“19위가 목표라고 하셨으니 보나마나 연승행진을 하시고 악마군주들에게 엄청난 마력을 뜯어내 저희에게 베풀어주시겠죠.”
“주군을 도와 그 승리를 만들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서영이 경박한 로흐샨을 점잖게 꾸짖었다.
“누가 뭐랍니까?”
전직 간신배 로흐샨(안녹산)은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맞게 대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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