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0
520화 정상을 향하여(2)
한니발의 고유 능력은 강을 건너거나 절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한니발에게는 그 한 번으로 충분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성격이라면, 한니발은 결정적인 전투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성향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틀어박혀서 방어만 하다가는 로마 같은 꼴이 나고 말지.”
나폴레옹의 부연을 듣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니발은 후세의 전쟁사 연구가에 의하여 전략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로마를 상대로 전력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우회 기동은 한니발의 전략적 설계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었다.
이신이 본진에 틀어박혀 방어에 치중한다 해도, 로마를 쳤을 때와 똑같은 구조로 침입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신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주니 설계대로 전투를 벌이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하필이면 종족이 마물.
많은 병력 물량과 기동성을 자랑하는 호전적인 마물에게 그러한 고유 능력은 금상첨화였다.
“까다롭겠군요.”
“까다롭고말고. 이제 고생 좀 할 거야.”
나폴레옹은 몹시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신은 그런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문득 물었다.
“한니발과의 싸움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물론 자네와 한니발은 흥미가 당기는 대결이지. 하지만 아쉽게도 나도 바쁜 몸이다.”
나폴레옹은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악마군주 바알이 마침내 서열 1위로 도전할 자격 요건을 갖췄거든.”
이신은 자신이 잠시 부재중이었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레모리가 서열 6위로 올라갔듯이, 그 시간 동안 알렉산드로스도 절치부심 노력한 것이었다.
압도적인 서열 1위 악마군주인 아가레스의 마력 총량의 9할을 달성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마력을 긁어모았으리라.
“이번에는 알렉산드로스가 방법을 바꿔서 서열전 단체전으로 도전해 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먼저 그대가 생각나더군.”
사실 나폴레옹이 한니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이신을 직접 찾아올 이유까지는 없었다. 이신이 찾아간다면 모를까.
나폴레옹은 이신의 동향을 살피고 싶어서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서열 1위를 탈환하기 위하여 서열전 단체전을 선택한다면, 당연히 우선적으로 이신을 우군으로 만드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니까.
“다행히 한니발과의 일전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니 나로서는 다행이군.”
“1위가 바뀌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하, 그렇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붙는 건 참아다오.”
나폴레옹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신도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직접 바꿀 생각이니까.”
“그건 또 기대되는군. 그러려면 우선 꺾어야 할 상대가 있지? 건투를 빌겠다.”
나폴레옹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이제 그도 알렉산드로스의 도전을 물리칠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 * *
이후로 이신은 한동안 모의전을 펼치며 준비했다.
이신이 준비하는 서열전은 일대일이었다.
한니발과 실력을 겨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질 드 레는 이에 대하여 불안함을 느꼈다.
“물론 주군께서 한니발과 실력을 겨룬다고 하시니 저도 기대가 되긴 합니다만, 역시 단체전이 더 쉬운 길이 아닐까요?”
“여차하면 단체전도 치를 수 있어. 저쪽도 내가 도전할 거란 걸 안 이상 단체전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질 드 레가 생각하기에는 한니발의 고유 능력이 좋지 않았다.
지형지물을 건널 수 있는 고유 능력과 마물이라는 종족의 조합이 공교롭게도 아주 위력적이었다.
아니, 한니발이 그 고유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종족으로 마물을 고른 것이리라.
“주군께서 수비태세를 갖춰도 본진을 직접 노릴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 지금까지의 상대 중 가장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질 드 레의 의견에 이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열 5위에 전설의 명장 한니발이다. 가장 어려운 상대인 건 당연하지.”
“아무튼 주군께서 대결을 결심하셨다면 모의전을 해야 할 텐데, 제가 준비하기에 적합한 연습 상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질 드 레는 한니발처럼 병력을 이끌고 지형지물을 건널 수 없었다.
그게 이번 대결의 핵심일 텐데, 그걸 질 드 레가 구현하지 못하는 이상 연습을 도와줄 수도 없었다.
이신이 말했다.
“한니발은 아마 날 압박해서 수비 태세를 취하게 만들 거야.”
“본진에 가만히 수비하고 있어야 전투를 설계하기 더 편하겠군요.”
질 드 레는 심복답게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한 번만 사용 가능한 고유 능력을 활용하려면, 치밀하게 구상한 딱 한 번의 전투로 승기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신이 설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려 들 터.
이신을 강하게 압박해서 꼼짝없이 수비 태세만 취하게 만드는 게 바로 그것이다.
종족 특성상 마물은 휴먼을 그렇게 압박할 수 있었다.
“넌 날 압박해 봐라. 난 그 압박에서 탈출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모의전을 시작했다.
12가지 전장을 모두 골라가며 모의전을 반복했는데, 질 드 레는 요구대로 이신을 거칠게 위협했다.
원래 이럴 땐 휴먼은 자신이 강해질 타이밍이 올 때까지 잠자코 방어하며 기다기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잠자코 기다리면 한니발이 결정타를 먹이러 온다.
이신은 적극적으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행동을 벌였다.
전투를 상대가 원하는 타이밍과 장소에서 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질 드 레는 이신이 치고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잡아먹는 식으로 대응했다.
가만히 있어도 당하고, 치고 나오면 기다렸던 적에게 잡아먹히고.
이신은 발전한 질 드 레의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한니발도 필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신에게 선택지를 들이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진 안에서 죽을 것이냐, 밖으로 나와서 죽을 것이냐 하는 선택지 말이다.
‘휴먼이 아직 강해지기 전, 마물이 가장 강한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니까.’
질 드 레가 캐치한 승부의 타이밍이라면 한니발도 알고 있을 터.
이신은 뛰쳐나와서 맞붙는 길을 택했는데, 승패가 반반이었다.
이신은 특유의 불꽃같은 컨트롤로 병력에게 지시를 내리며 전투를 구사했지만, 질 드 레 또한 이미 덮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전술적 우위를 보였다.
거기다가 이신이 치고 나오는 순간 살아 있는 소수의 마룡을 우회 침투 시켜서 본진을 교란시키기까지 하니, 이신으로서는 더욱 까다로웠다.
설사 이신이 전투에서 이겼다 해도 힘이 빠진 상태이긴 마찬가지.
질 드 레는 그동안 마력석 채집장을 곳곳에 구축한 상황이라 전투 지속력에서 우세를 점했다.
승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질 드 레가 걱정을 표했다.
“괜찮겠습니까?”
“진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는 적에게 싸움을 거는 건 확실히 힘든 일이다.”
“예, 그런데 아마 정면이 아닌 다른 루트로 우회해서 나오셔도 제가 사전에 알아차릴 겁니다. 계속 감시하고 있었으니까요.”
“열기구 같은 걸 쓰면 확실하게 당한다는 뜻이군.”
“예, 마룡을 대기시켜놨다가 격추시킬 겁니다. 열기구는 속도도 느리니 저로서는 더 편해집니다.”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질 드 레의 봉쇄 전술이었다.
질 드 레는 한니발이 가진 고유 능력이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고 모의전을 펼쳐보였고, 그것은 이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대충 싸움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니까 휴먼이 별로 두렵지 않더군요. 한니발 정도 되는 인물이니 이 능력의 활용을 저보다 훨씬 잘할 게 틀림없고요. 이번에는 정말 강적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이신도 동의했다.
어쩐지 나폴레옹도 한니발은 꺼려하는 기색이더라니.
지형지물과 건물을 활용하여 디펜스를 펼쳐야 하는 휴먼 입장에서는 가장 천적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한니발에게 휴먼은 그야말로 한 끼 식사거리였을 거라는 짐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상대할지 견적은 나오십니까?”
“대충.”
이신의 대답에 질 드 레는 눈을 빛냈다.
자신의 주군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궁금했다.
“원하는 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지.”
“둘 중 하나요?”
이신이 계속 말했다.
“수비를 택한다면, 어떻게든 한차례 침공을 버티고 나면 그 뒤에는 한니발의 고유 능력이 사라지니 해볼 만해지겠지.”
“그걸로 큰 피해를 입으면 돌이키기 어려울 텐데요.”
“잘 막아야지. 출입구만 뚫리지 않는다면 후속타는 막을 수 있어.”
질 드 레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이신의 수비 능력에 기대해 봐야 하는 부분 같았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 어떻습니까?”
“밖으로 진출해서 기다리는 적과 싸우는 거지.”
“지금껏 계속 저와 모의전을 해본 바로는 결과가 좋지 않았지요?”
질 드 레의 지적을 이신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 싸움에서 이긴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
질 드 레는 모의전에서 이신을 압박하면서, 본인은 마력석 채집장을 여러 개 가져가서 확장에 성공했다.
싸움에서 이겼다 해도 그 마력석 채집장까지 부수지 못하면, 마력량에서 밀리므로 자연스럽게 다시 이신이 불리한 상황이 된다.
“치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도 모자라서, 마력석 채집장까지 깨뜨려야 하는군요. 그러려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야 합니다.”
적을 이기고서 병력을 어느 정도 보존할 정도의 대승.
한니발을 상대로 그런 대승을 계속 거둬야 한다는 것은 이신이라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좀 더 전투를 잘 설계해 봐야지.”
두 가지 선택 모두를 가정하고서 전략을 짜기로 이신은 결심했다.
한두 차례의 서열전으로 끝나는 승부가 아니므로, 몇 번을 싸워도 이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을 수립해야 했다.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는 것은 이신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기습적인 초반 기습 전략으로 선수를 치기도 하고, 때로는 불리한 싸움을 이기기 위해 복잡한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신은 비로소 도전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길 자신은 있으신가요?”
악마군주 가미진에게로 출발하기 전에, 그레모리가 물었다.
“아마 여태껏 겪은 것보다 더 많은 패배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이번 상대는 다른가 보네요. 평소에는 늘 승리를 확신하셨잖아요.”
“물론…….”
이신은 단언했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건 우리입니다.”
“그러면 돼요.”
그레모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계약자를 신뢰했다.
파앗!
둘의 신형이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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