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1
521화 한니발(1)
한니발은 전쟁 중에 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는데, 그래서 이와 관련된 명언도 여러 번 남긴 바 있었다.
“감은 눈으로 작전을 생각하고, 뜬 눈으로 적을 바라본다.”
“눈물을 흘릴 눈이 하나뿐인 것이 원망스럽구나.”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꾸눈일 한니발 바르카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신은 한니발을 처음 보았을 때 흠칫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평범한 체격을 한 장년의 사내.
카르타고가 아프리카의 국가였기에 흑인일 거라고 생각했던 일부의 추측과 달리 한니발은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백인이었다. 카르타고를 세운 페니키아 혈통이었기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신의 상상과 달리 안대를 쓰고 있지 않았다.
두 눈은 모두 있었는데, 다만 한쪽 눈은 붉은 안광이 흐르고 있었다.
“오, 자네가 이신이로군?”
“예.”
한니발은 이신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껄껄 웃었다.
“아, 이 눈 말인가? 마계에 와서 하나 붙였네. 악마의 눈이라 그런지 밤에서 아주 잘 보이더군.”
“그렇군요. 어쨌든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아직도 날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군.”
“잊히기에는 역사에 너무 큰 족적을 남기셨지요.”
로마는 자기 땅에 세워진 한니발의 공적비 등의 유적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했다. 공포와 증오를 넘어, 한니발의 능력을 존경했다는 뜻이었다.
‘한니발리아누스’라는 이름까지 왕족에게 지어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뭐, 결국 실패한 옛 사람의 이야기는 그만하세. 그보다 나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자네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저 말입니까?”
한니발이 관심을 가져주니 영광이었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같은 이는 하도 자주 만나다 보니 무덤덤해졌지만, 한니발은 오늘 처음 본 것이다.
“자네가 군인이다 아니다 소문이 많던데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은 군인이 아닙니다.”
“흠, 그랬나? 하긴 전혀 군인다운 풍모는 아니었거든. 물론 무시하는 뜻은 아닐세. 군인은 아니지만 다른 무언가로 성공했을 것 같은 인상이거든. 하기야, 무언가 재주가 있었기에 계약자로 발탁된 것일 테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니 더욱 궁금해지는군. 아무튼 휴먼으로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다 싶었네.”
“가장 좋은 종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에이, 농담 말게. 못 들었나? 나도 원래 휴먼으로 하려 했다는 것을.”
“처음 듣습니다.”
“나도 자네처럼 휴먼에 관심이 갔지. 같은 인간이라 더 마음이 가고, 역사에 족적을 남겼지만 지금쯤 지옥에 가 있을 양반들을 사도로 삼아 부리고 싶다는 상상도 했지. 자네도 그러고 있지?”
“예.”
콜럼버스, 질 드 레, 이존효, 로흐샨(안녹산), 오귀스트 마르몽, 서영.
하나같이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인물들이 이신의 휘하에 있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와 모의전을 해보았는데 힘 한 번 못 써보고 완패를 당했지 뭔가. 휴먼은 때려치우라고 충고해 주더군, 나 원.”
알렉산드로스다운 거침없는 일침이었다.
“그래서 마물로 종족을 바꿨는데 이건 기어 다니다가 날게 된 기분이더군. 근데 나폴레옹은 그런 휴먼을 가지고 서열 1위까지 올랐으니 참 특이한 친구야. 내 생각에 그 친구는 드워프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모양인가 보지.”
서열전이 벌어지기 직전.
그레모리와 가미진 두 악마군주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서, 한니발은 이신을 만나서 반가웠는지 잡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별로 나폴레옹 그 친구가 겁나지 않아. 전적에서도 내가 앞서고 있고. 아마 드워프로 종족을 바꾸지 않는 한, 내가 그 친구를 두려워할 일은 영원히 없을 거야.”
그렇듯 자신감을 드러내는 한니발의 기분을 이신은 이해했다.
‘종족 상성이라는 게 있으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현실세계의 게임에서는 인류가 괴물의 천적이지만, 마계의 서열전에서는 반대로 마물이 휴먼을 이겼다.
마치 괴물 플레이어가 인류를 짓밟고 강세를 보였던 e스포츠 초창기 시절을 보는 듯했다.
‘헬하운드가 너무 세니까. 궁병은 너무 약하고.’
나폴레옹은 이 약점을 중반까지 버티다가 장기전을 펼치는 스타일로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한니발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인 것이다.
상대가 버티려 해도, 절벽이나 강을 건너서 먼저 쳐들어가면 되니까.
하지만 과연 이신은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려 할지 한니발은 몹시도 궁금했다.
-이야기는 끝났나?
검은 말의 모습을 한 악마군주 가미진이 물었다.
그제야 한니발은 잡담 삼매경에서 깨어났다.
“아, 너무 반가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군. 늘 보던 놈들만 보다 보니 새로 올라온 계약자가 반가웠거든.”
한니발은 잘해보자며 이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4전장 엔터홀, 배팅은 5만. 이 정도면 되겠나?
가미진의 물음에 그레모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시작 지점이 총 4군데인 엔터홀은 아주 균형이 잘 잡힌 전장이었다.
이블 홀처럼 마물에게 유리한 전장을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과 악마군주 가미진님의 서열전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서열과 마력에 영향을 줍니다. 마력은 10만이 배팅됩니다.] [마력 10만이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됩니다.]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휴먼.”
“마물.”
한니발은 이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서열전이 시작됩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계약자 이신님과 악마군주 가미진님의 계약자 한니발 바르카님께서 참전합니다.]서열전 1차전이 시작되었다.
한니발의 진영은 1시, 이신은 5시로 서로 세로 방향이었다.
예상대로 한니발은 일찍부터 헬하운드를 10마리까지 소환하여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이신은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구축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본진 출입구를 막고 틀어박혀야 했다.
한니발은 이신의 본진 출입구 앞에 헬하운드들을 도열시켜 놓고 나오지 못하게 완전히 봉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신은 노예 1명을 미리 바깥으로 빼두고 있었다.
봉쇄된 뒤에도 정찰은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차하면 콜럼버스가 블링크를 써서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적어도 한니발의 동태는 계속 살필 수 있는 셈이었다.
노예로 계속 정찰한 결과, 12시에 마력석 채집장이 구축하는 움직임을 발견했다.
이신은 본진에 갇혀 있는데, 한니발은 그 틈에 본진은 물론 앞마당, 12시까지 총 세 곳에서 마력석을 채집해서 부유해지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이 부분을 충분히 예상했던 이신은 본진에 갇혀 있는 동안 병력을 모으고, 테크 트리도 진행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손해를 한 번에 만회해야 한다.’
이신은 모았던 병력을 이끌고 본진에서 뛰쳐나왔다.
“쏴라!”
로흐샨이 석궁병들을 이끌었다.
쉬쉬쉭―
“키엑!”
“키에엑!”
헬하운드 2마리가 즉사했다. 나머지 8마리의 헬하운드들도 싸우지 않고 달아났다.
이제야 간신히 앞마당을 확보한 이신.
앞마당에 화살탑을 건설하면서 디펜스를 보강했다.
누가 봐도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구축하려는 준비 단계였다.
* * *
‘지금이군.’
이신이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구축하면서 마력 확보에 나서려는 모습이었다.
한니발은 지금이 가장 좋은 공격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한니발은 독포자꽃을 대량으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세 곳에서 파먹은 마력량이 물량으로 폭발하는 것이었다.
헬하운드와 독포자꽃이 삽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마물의 무서움.
마력석과 마법진만 충분히 갖춰져 있으면 단숨에 대군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마물이었다.
지금부터 한니발은 계속 병력을 꾸역꾸역 소환해서 공격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똑같이 병력을 소모시키면 한니발은 세 곳에서 채집하는 마력으로 계속 충당할 수 있지만, 이신은 병력을 충당하기도 바빠서 앞마당 마력석 채집장을 운영하기도 버거운 상황이 된다.
그렇게 틈을 보다가 고유 능력으로 일격을 가하면 끝.
승리의 확신이 서자 한니발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가라!’
마물 대군이 물밀 듯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한니발은 확실히 휴먼보다는 마물이 좋다고 생각했다.
휴먼의 경우 기동성이 좋은 병과가 따로 필요하지만, 마물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모든 병력이 다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신도 병력을 끌고 요격을 나왔다.
‘나와서 붙겠다고?’
화살탑을 끼고 앞마당을 수비해야 하는 이신이 과감하게 치고 나온 것이다.
넓은 지형에서 싸우겠다는 생각인데, 이러면 한니발이야 좋았다.
그런데…….
‘병력이 생각보다 많아?’
그랬다.
이신이 끌고 나온 석궁병+장창병+방패병의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건설 안 한 거구나!’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확장보다 병력에 집중한 이신과 지금 당장 싸워줄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마력 격차는 점점 벌어질 테니까.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이신은 싸움을 관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계속 북진!
이대로 반드시 성과를 거두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좋다, 그럼 싸워주지.’
한니발도 호승심이 들었다.
한 차례 싸워서 병력을 소모시켜준 후에 후속 병력으로 계속 소모전을 이어나가면 이신은 힘이 떨어질 터였다.
보급이 부족하면 아무리 전투를 많이 이겨도 전쟁에서는 못 이긴다는 건 살아생전에도 충분히 경험했던 바였다.
격전이 시작되었다.
한니발은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진형으로 달려들었다.
이에 이신은 방패병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채 종심 돌파를 시도했다.
방패병과 장창병이 중심이 되어 돌파를 펼치자 한니발은 맞붙어주지 않고 병력을 좌우로 양분하며 길을 열어주었다.
이윽고 좌우에서 마물들이 덮쳤다.
완벽한 협공이었다.
그 순간,
‘엇?’
이신도 앞뒤로 병력을 양분하였다.
각각 앞과 뒤로 빠르게 움직여 좌우협공을 피한 것이다.
그 직후에는 더더욱 기상천외한 전술이 펼쳐졌다.
뒤로 물러난 병력은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마물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앞으로 움직인 병력은, 싸우지 않고 그대로 계속 북쪽으로 달려갔다.
앞뒤로 양분된 병력 중 한쪽만 남아서 싸우고, 다른 쪽은 그대로 1시를 향해 진격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발상이지? 적을 눈앞에 두고서 병력을 분산이라니?’
각개격파당하기 딱 좋은 짓을 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일단 눈앞에 있는 적부터 전부 잡아먹자.’
한니발의 본진인 1시로 달려오는 적이 거슬렸지만, 후속으로 소환되는 병력으로 막으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신이 혼이 실린 필사의 용병술을 펼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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