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7
567화 결말(2)
파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16강전 A조의 혈전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A조의 마이클 조셉과 박영호는 3전 2선승제의 대결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1세트부터가 명경기.
일찍 바퀴를 뽑아 찌르기를 했으나 이를 눈치 챈 마이클 조셉의 디펜스에 막혀 불리한 출발을 했던 박영호는 이내 신들린 쐐기충 컨트롤로 견제를 펼쳐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자 마이클 조셉은 기갑 체제로 체제를 전환하며 고속전차와 기동포탑을 활발하게 쓰기 시작했다.
엄청난 피지컬로 고속전차를 부지런히 쓴 마이클 조셉은 곧 맵 전체를 지뢰밭으로 만들어 박영호로 하여금 발 디딜 곳도 없게 만들었다.
번번이 지상군이 지뢰에 피해를 입으면서 박영호 쪽으로 기울었던 전세가 다시 천천히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마이클 조셉이 회심의 공세가 박영호가 기습 생산한 쐐기충 편대에 막혀버리면서 또다시 마이클 조셉에게 패색이 어렸다.
대대적인 괴물의 공세가 마이클 조셉의 진영을 파괴해나갔다.
그러나 마이클 조셉은 새로운 확장 기지에 새 둥지를 펴고, 스텔스 전투기를 뽑아 박영호의 쐐기충 편대를 몰살시킬 역전의 한 수로 삼았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박영호는 미친 듯한 쐐기충 컨트롤로 마이클 조셉의 전투기 편대를 아작 내고 GG를 받아냈다.
역전이 몇 차례나 벌어진 명경기에 관중의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2세트 역시 그 못잖은 전율을 이끌어냈다.
시작은 역시나 박영호의 쐐기충.
그의 쐐기충은 그야말로 춤을 추었다.
전술위성이 방사능을 살포했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쐐기충만 빼버리는 컨트롤을 정확하게 펼쳐서 쐐기충 편대를 끈질기게 활용했다.
쐐기충이 죽지 않고 계속 활약하자, 마이클 조셉은 1세트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견제를 받아 가난해졌다.
하지만 역시나 마지막까지 희망이 있는 종족, 인류였다.
마이클 조셉은 항공수송선을 5척이나 동원하는 대대적인 드롭 작전으로 박영호의 본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상대의 항공수송선의 존재를 감지한 박영호는 폭탄충을 준비시켜놓았지만, 설마 5척이나 동원할 줄은 예상 못했었다.
본진의 주요 건물이 파괴당하는 바람에 박영호는 무너진 테크 트리를 다시 올려야 했다.
그 사이에 세력을 회복한 마이클 조셉은 그 특유의 강력한 기갑 체제로 체제 전환을 이룬 후에 총공세를 펼쳤다.
계속되는 타이트한 압박에도 계속 버티는 박영호의 신들린 디펜스도 압권.
박영호는 관중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버티다가 끝내 GG를 쳤다.
3세트, 쐐기충에 호되게 당한 마이클의 탄탄한 대공 방어.
하지만 박영호가 페이크를 주고 쐐기충 대신 촉수충을 생산하며 지상전을 펼치면서 대세가 결정되었다.
뒤늦게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마이클 조셉이 버티면서 역전을 기다렸지만, 이번에는 박영호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 희망의 싹을 밟아나갔다.
개미 새끼 하나 못 빠져나가게 마이클 조셉의 진영을 사방에서 감시하는 박영호의 시야 장악이 압권이었다.
그렇게 압살당한 채 끝나는가 싶었던 마이클 조셉은 또 기가 찬 전략을 들고 나왔다.
본진과 앞마당의 자원만 가지고 풀 병력을 모은 것.
처음이자 마지막 풀 병력으로 진격을 개시한 마이클 조셉은 이걸로 사방팔방에 구축된 박영호의 확장 기지를 모두 파괴해야 했다.
하나, 둘, 셋…….
박영호의 확장 기지가 잇달아 마이클 조셉의 군대에게 무너졌다.
마이클 조셉이 기적 같은 역전을 이루어내나 싶어 중계진도 관중도 미쳐 날뛰었다. 박영호는 악역이었다.
박영호는 악역다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아직 확장 기지가 많이 남아 있던 박영호는 수비보다는 역으로 마이클 조셉의 진영을 빈집털이 하는 데 몰두했다.
마이클 조셉은 진격을 하다가도 박영호의 빈집털이로 인해 본진을 지키러 되돌아가야 했다.
앞뒤로 흔드는 박영호의 얄미운 교란 작전이 계속되자, 결국 최후의 기력을 쥐어짰던 마이클 조셉은 힘을 잃었다.
그렇게 3세트는 박영호의 승리.
8강에 진출하게 된 박영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16강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또다시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좌절한 마이클 조셉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팬들은 1, 2, 3세트 내내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준 그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전문가들은 박영호가 결승행을 향한 가장 큰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고 평가했다.
누구도 박영호의 생고생이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8강전.
박영호는 장양을 만났다.
이신의 제자.
중국의 차세대 제왕.
이신이 중국 리그를 쓸어 담는 활약을 벌일수록, 중국 e스포츠계는 그가 키운 제자 장양에게 기대를 걸었다. 장양이라면 이신을 뛰어넘는 중국인 선수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숫자가 엄청난 중국 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러한 인지도가 장양을 더 존재감 있게 만들어주었다.
대중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다는 야망을 품을 줄 알게 되었다.
그저 게임이 좋았던 장양은 왕좌를 탐내는 야심가가 되었고, 친구이자 라이벌인 차이와 함께 나날이 강력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괴물의 왕은 박영호였다.
그런 박영호는 심리전으로 장양을 번번이 속여 1, 2세트를 승리했다. 약점인 심리전이 또 장양의 발목을 잡은 셈.
하지만 3세트부터는 더 이상 심리전에 당하지 않았다.
3세트에서 무난히 이긴 장양은 4세트에서 박영호의 멘탈이 나가게 만들었다.
빌드 오더에서 이기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양의 컨트롤과 흔들기에 계속 당하다가 역전을 당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스코어가 2-2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박영호의 멘탈이 나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대로 패패승승승이라는 드라마가 써지나 싶었다.
하지만 박영호는 다시 멘탈을 다잡았다.
이신은커녕 이신의 제자에게 지는 건 용납이 안 됐다.
5세트는 대개 일합에 끝나버리는 괴물 대 괴물 전답지 않게 40분가량 지속된 장기전이 되었다.
한 방의 전투에 모든 게 끝나기 때문에 서로 섣불리 공격을 시도할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승부.
하지만 끝내 박영호가 배짱 좋게 덤벼들어 장양의 군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간신히 4강 진출 성공.
그러는 동안 D조에서 시작한 차이도 가뿐하게 4강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동안 차이는 이신의 수제자로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강자라기보다는 유망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
D조나 C조에 모여 있던 선수도 대개 차이와 마찬가지로 자국 내에서 장래가 기대되는 신인들이었다.
밝은 미래를 꿈꾸는 어린 신인들의 대결을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차이는 그 신인들을 압살해버렸다.
운 좋아서 어쩌다가 그랑프리 티켓을 딴 애송이들과 자신은 수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제가 스승님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늘 꿈이 큰 어린아이 보듯이 절 기특하게 쳐다봐요. 그게 싫었어요.”
승자 인터뷰에서 차이가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제 목표는 금메달입니다. 4강전, 결승전, 두 번 남았네요. 이제 좀 현실적으로 들리시나요?”
능히 쇼맨십과 자기 어필을 할 줄 아는 배짱.
귀엽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빼어난 외모.
그리고 실력.
차이는 세계무대 한복판에서 거물의 탄생을 알렸다.
장양과 차이가 단순히 장래가 밝은 유망주가 아닌, 당장 세계 패권을 노릴 정도의 강자라는 것이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파란은 아니었다.
진정한 파란은 16강 E조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16강 E조]E1: 이신(Kaiser)
E2: 안드레이 이바노프(Tsar)
결과: 2-0 이신 승리.
작년에 그랑프리 무대로 돌아와 활약한 러시아의 ‘차르’ 안드레이는 결국 이번에도 이신을 뛰어넘지 못했다.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이신을 이기기 위해 온라인에서 여전히 활약 중인 인공지능을 상대로 연습하며 준비했지만, 이신은 그가 준비한 모든 수단을 분쇄하고 승리를 쟁취했다.
완벽하고 깔끔했다.
물론 이 완승은 많은 이가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그 다음 8강전이 문제였다.
상대는 지우펑.
중국의 최강자이자 작년에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이신과 접전을 펼쳤던 적수였다.
이번에도 얼마나 치열한 명승부가 나올지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3-0.
일방적인 3세트 셧아웃.
내용도 평범했다.
정석적인 운영으로 기갑 병력을 모아 진출해 신족의 군대를 깨뜨렸다.
-정말 강합니다, 카이저!
-정신없이 흔드는 견제 플레이도 없었고, 단순한 정석 운영과 타이밍 러시였어요. 근데 지우펑이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버리네요.
-완벽했습니다. 병력 포진과 전술이 술이었어요. 기동포탑 하나하나, 지뢰 하나하나가 장인의 손길이 담긴 것처럼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 한 타 싸움에서 신족이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정말 오랫동안 세계의 정상에 앉은 선수답게 똑같은 타이밍에도 제왕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안전하게 정석 운영을 하는 카이저는 이토록 강하네요.
-그랑프리 개인전 통산 최다승 및 최고 승률, 최다 본선 진출, 최고령 본선 진출 등 많은 기록이 갱신됩니다. 살아 있는 e스포츠의 역사가 되어 가는 카이저입니다.
-그런데…….
캐스터가 뭔가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아직은 설레발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보니 카이저가 예선전에서도 아직 한 세트도 지지 않았죠?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16강전도 2대 0으로 이겼고요.
그랬다.
이신은 올해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지금까지 무패였던 것이다.
결승까지의 여정에 있어 가장 큰 고비로 여겨진 지우펑과의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말이다.
-진짜 사람이냐? 4강까지 무패행진이라니!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센 거야?
-나 2군 선수인데 우리 팀 감독님 카이저와 동갑임…….
-왠지 유일한 맞수인 러너까지 3-0으로 털릴 것 같아. 강한 적을 잡는 데 더 노련해졌어.
-같은 팀이라 카이저의 스타일을 잘 아는 지우펑도 저렇게 격침당하면, 이거 정말 무패 금메달 또 나오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카이저는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고.
-진짜 뱀파이어가 아닐까?
-가만 보면 얼굴도 변한 게 없어.
-헛소리 그만 하자. 소름끼친다.
과거 이신이 달성했었던 무패 금메달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이 다시금 네티즌들 사이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